‘금남기맥’ ‘깃대봉(394m)’에서 호남고속도로를 건너기 전 남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 하나가 있다.
이 능선은 서쪽으로 휘어지며 지금은 폐교된 ‘한민대’를 에워싸더니 얼마안가 ‘국사봉’에 이르고, 계속 남하해 토성산을 지나면 ‘웅천(熊川)’이 합류하는 ‘논산천(論山川)’에 가라 앉는다.
이 10km남짓의 산줄기를 호사가들은 ‘금남국사토성단맥(?)’이라며 굵은 선을 그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웅천을 풀쩍 건너면 오봉산이 있으니 끼워넣는다해도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크게 거스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산줄기의 남단인 오봉산에서 북진하기로 하였다.
지형도가 말해주듯 오봉산은 ‘웅천’과 ‘호남고속지선’이 가로막고 있어 동쪽으로 연(連)을 대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독립된 산세.
105.5m의 산이 ‘오봉산(五峰山)’이라고 하여 지형도를 살펴 보았더니 5봉이 맞았다.
8~90m대의 봉우리가 뽈록뽈록 4봉이 솟아있고, 그 위 100m 위로 고개를 내민 군계일학(群鷄一鶴)이 오봉산인 것.
‘토성산(土城山 167.8m)’은 토성(土城)으로 쌓은 산성이 있어 부르는 이름이다.
토성산에 축조된 ‘논산 신흥리산성(論山新興里山城)’은 ‘모촌리 산성’으로도 불리며 전체 둘레 600여m의 퇴뫼식산성으로 백제산성이다.
논산천의 상류에서 동쪽 방면을 감시하며, 금산과 논산을 통하는 주요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이다.
성벽은 내측의 기초를 1~2단 정도 석재로 쌓고 그 위로 흙을 쌓아 올렸다.
이 산성은 계백장군이 설치했다는 3영(營) 가운데 우군영에 해당되는 것으로, 성 안에서는 백제토기를 비롯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 안에는 성문터·망대(장대)·건물지 등이 있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고, 지형적으로 볼 때 남쪽·남서쪽·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북쪽 정상부 민묘가 자리한 가장 넓은 평탄면이 망대지로, 또 정상부와 남동쪽 평탄 지역은 모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동쪽 성벽 일부는 최근에 통신회사 기지국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국사봉(國司峯 332.6m)’은 전국에 걸쳐 흔한 이름이나 ‘맡을 사(司)’를 쓰는 게 이채롭다.
이러나저러나 국사(國事)를 맡은 이름이니, 제발 저 나랏일 한다는 ‘써글넘’들 정신 좀 차리도록 했으면 좋겠다.
산행코스: 오봉산 입구(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387-2)-오봉산(왕복)-웅천교-모촌2리마을회관-나주정씨세천비-능선-광산김씨묘-토성산(U턴)-신양리(한민대)갈림길-국사봉(U턴)-진주강씨묘-안부사거리-아스팔트-한림대 입구
궤적.
약 8.5km에 4시간 30분이 걸렸다.
고도표.
토성산 들머리를 찾지 못해 '모촌2리마을회관'에서 도로를 따라 600여m 걸어 들어가 '나주정씨세천비' 능선을 오르게 되었다.
이는 '이통 기지국'으로 오르는 옛길(계곡길)을 따를려고 하였으나 묵고 유실되어 그만 좌측 능선(나주정씨세천비 능선)으로 올라 붙었다.
준비한 표지기에다 오봉산은 버스에서 급조하였다.
네비에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387-2>를 입력하여 오봉산 입구인 '메기랑 장어랑' 앞에 버스를 댔다.
가까이 보이는 낮은 산이 오봉산.
버스를 여기에 댄 건 열혈산꾼들이 오봉산을 찍은 뒤 논산천 건너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갈마봉을 다녀올 계획이었던 것.
산자락 입구 화살표로 오르는 게 나앗을 것.
우리는 개울 옆 묵은 임도로 조금 들어가다...
아무데고 치고 올랐다.
이렇다할 길은 없다.
이리저리 치고 오르다...
제법 반듯한 길을 만났다. "이거 어데서 올라오는 길이고?"
오봉산에 올라 표지기를 건 뒤...
아까 그 지점으로 내려왔다.
건너 나즈막한 봉우리, 토성산이다.
바로 질러갈 수 있으려나 하였으나 호남고속지선과 웅천이 가로막고 있을 것 같아 웅천교를 건너기로 하였다.
당겨본 토성산 능선 끝자락. 멀리서 보아도 회색주택 위로 임도처럼 길이 나 있는 게 보여 '저리로 오르면 되겠지' 하였다.
호남고속지선을 위로 건너고...
또 웅천교를 건너서...
우로 꺾어들어 토성산을 향한다. 아까부터 보아왔던 토성산 들머리를...
또다시 당겨 보았다. 우측 회색 주택 우측으로 오르면 산길은 수월할 것이라 보았다.
모촌2리마을회관에서 회색주택 위로 찾아 들기 위해...
좌측 골목으로 꺾어...
아까부터 보아온 곳으로 논스톱 찾아 왔으나...
회색주택 앞에서 우리의 권형님이 "길이 없어"한다. 오른쪽은 대나무 숲이 빽빽하여 난공불락.
회색집 탑차가 보이는 곳 위로 오르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터인데, 남의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데다 또 턱이 져 있어 돌아섰다.
뚫을 곳은 대나무 숲뿐인데, 쯥.
회색집 좌측으로도 쑤셔 보았으나 마찬가지여서 "그만 다른 길을 찾아 봅시다"
600여m를 아스팔트를 걸으며 아까 올랐던 오봉산을 뒤돌아 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웅천교를 건너 두르지 않고 저 좌측 다리를 건너면 수월했겠다.
아스팔트를 걸어...
'나주정씨세천비'에서 좌측으로 기웃거려보다...
더 진행 일군의 비석들이 선 능선자락에 닿았다.
남원양씨부부묘.
능선 좌측 계곡으로 옛길을 찾아 보았다.
계곡으로 이어졌던 옛길은 이렇게 유실되었고, 우리는 간단요기를 한 뒤 좌측 능선(나주정씨세천비)으로 붙기로 하였다.
참봉 밀양박씨묘와 연이은 묵묘를 지나자...
살짝 뚫린 공간으로 조망이 트인다.
이렇다할 등로는 없으나...
이리저리 희미한 길흔적을 좇아...
하늘이 열리는 능선에 올라선다.
후유~
우측 골짜기의 휀스쳐진 시설물은 통신회사 기지국.
아까 옛길 트랙이 그어졌던 유실된 계곡이 여기까지였던 듯.
더 위 북쪽 봉우리엔...
망대지가 있었을 법한 곳.
일군의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어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광산 김'씨 '용(容)'자 항렬이다. 그렇다면 광김 39세로서 나와 같은 항렬.
산성의 흔적인 듯 둔덕같은 언덕 아래의 비석은 역시 '광산김씨 통훈대부'. '재(在)'자 항렬이니 나의 고조뻘.
토성산은 남동쪽으로 살짝 내려섰다 올라서는 곳에 있다.
U턴을 한 뒤 임도급 너른 길을 따라...
힘든 진행을 한다.
자주 쉼을 하며...
고개를 빼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본다.
산판길은...
여기까지다.
묵묵히 앞서가던 '한덤'님이 더위에 지쳐 그만 탈출하셨고...
"아직은 걸을 만하다"며 뒤따르던 권형님과 함께...
무명봉은 사면으로 두르면서...
질러간다.
아직 국사봉이 550m 남았다.
이제 안전밧줄 구간으로 정비된 산길.
실바람이라도 부는 곳에선 "우리 5분 만 쉬어 갑시다"하며 벌컥벌컥 물을 마셔댔다.
이윽고 다다른 갈림길. 우리가 내려갈 방향은 '연산 신양리 한민대학교 입구'이다.
국사봉 정상은 100m 위에 있고, 국사봉을 오른 뒤 이 지점으로 내려와야 한다.
국사봉의 팔각정자와 올곧은 나무 한 그루.
그 옆에 오석 정상석과 기념식수비가 있다.
나무들이 무성한 산속에서 굳이 기념식수까지 하며 비까지 세워야만 했을까? 식수한 나무는 정자 옆 올곧게 선 나무인 듯.
국사봉의 안내판. 국사봉은 머리 위로 묵직한 금남정맥이 지나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은 뒤...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었다.
이정표엔 깃대봉이 3.4km로 적혀있으나...
안내판엔 2.2km로 나와있어 그 차이가 많이 난다.
국사봉에서 10여분 머문 뒤 아까 그 갈림길(한민대 입구)로 되내려 왔다.
오롯한 산길.
개활지에선 탑정저수지도 조망이 된다.
진주강씨부부묘를 지나...
지친 걸음을 계속한다.
건너 깃대봉에서 함박산으로 이어지는 굵은 산줄기(금남기맥).
<뒤돌아 본 모습> 권형님 위 잘록한 안부가 '안부사거리'이고, 우리는 이 지점에서 우측으로 능선을 이탈한다.
오롯한 산길이 이어진 곳...
이제 산행은 얼추 끝이난다.
오롯한 산길은 작은 계곡으로 떨어지고...
계곡 건너 철강회사인 듯 공장이 있어 공장안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다시 계곡 좌측으로 올라 비스듬히 산사면을 따랐더니 우측으로 난 길이 보여...
산자락을 내려섰다.
권형님이 뒤따라 내려서는 모습.
아스팔트로 빠져나와...
돌아본 모습.
신양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 아스팔트를 따랐더니...
얼마안가 길가 농막같이 생긴 컨테이너 사무실 수도꼭지 앞에서 차례로 물을 덮어썼다. 그런 뒤 집어든 카메라.
잠깐 이동하였더니 대기하고 있는 우리 버스. <주소: 충남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464-1>
아치형 간판의 글귀는 개신교 버전. 가까운데 그러한 시설이 있는 모양이다.
전원 무산 귀환한 뒤 차량이동하여...
'모락모락 한식뷔폐'로 왔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388-4>
나는 산을 내려와 시원한 냉막걸리 몇 잔이 최고의 맛.
내가 준비한 식단.
- 여름 이후 -
남아 있는 생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뱉어내는 말보다 주워 삼키는 말들이 많아졌다
삶이 낡았다는 생각이 들자 내 몸에 새겨진 흉터가
몇 개인지 세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반성할 기억의 목록이었다
뼈에 든 바람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두려웠고
계절이 몇 차례 지나도록 아직 이겨내지 못했다
사소한 서러움 같은 것이 자꾸 눈에 밟히지만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했다
바싹 여윈
등뼈가 아름다웠던 사랑이 떠난
여름 이후
<이 종 형>
첫댓글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행복한 목요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