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장미숙
글을 찾으러 길을 나섭니다. 햇볕 쨍쨍한 날, 사유를 넓히기에 좋은 때는 아니지만 황폐한 글 밭을 보니 조급합니다. 흩어진 발자국이라도 있을까 싶어 길바닥부터 훑습니다. 가볍고 잘 숨어버리는 게 언어라 세심하게 살펴봅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글의 발자국은 없네요. 아니,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집 옆 산책길에는 야생화가 만발했습니다. 구에서 조성한 꽃밭입니다. 몇 달 전,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놓고 물 주는 걸 두 번이나 보았으니까요. 그때는 연초록 풀잎만 가득했는데 어느새 초록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을 쏙쏙 키워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꽃이 지닌 색의 본질은 줄기가 아닐까 싶어지네요. 줄기에는 색을 만드는 작업실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색이 얼마나 강렬한지 주위를 압도합니다. 진한 주홍, 환한 노랑, 가슴을 파고드는 파랑 등, 눈을 맞추고 있으면 꽃잎 사이에서 시어가 와르르 쏟아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잡으려고 하면 나비의 날개에 꿰인 채 팔랑팔랑 사라져버립니다. 사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밝은 빛 바탕에 그어진 미세한 선 하나하나가 떨리는 게 보입니다. 꽃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철 잠깐 피었다가 지고 마는 운명이니 누군가의 눈길도 허투루 받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꽃잎은 크기가 다양합니다. 꽃만큼 많은 서사를 지닌 것도 없겠지만 눈이 어두운 탓인지 산뜻한 글귀 하나 못 잡고 허둥댑니다. 비라도 촉촉하게 내린 날 다시 와야겠습니다.
글은 숨바꼭질에는 명수입니다. 찾으려고 하면 숨어버리고 방심하면 나타나 뒤통수를 칩니다. 재빨리 낚아채서 지각의 영역으로 넘기면 어쩌다 제법 모양을 갖춘 의미도 되지만 속이 텅 빈 활자로 남는 경우도 흔합니다. 의식의 영역 안으로 들어올 때는 한없이 무거운 글이 빠져나갈 때는 바람 같습니다. 가벼운 하품 한번에도, 잠깐의 잡생각에도 냅다 달아나버리니 말입니다. 그렇게 집을 나가버린 글이 수도 없습니다. 더러는 잃어버리기도 하고 더러는 떠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허덕허덕 나가버린 글을 찾아 헤매는 꼴이라니요.
상심에 빠져 걷다 보니 시멘트 바닥에 예술가의 공연이 한창입니다. 주인공은 기다란 몸을 가졌네요. 어쩌자고 뜨거운 햇볕 속에서 공연을 시작했을까요. 처음에 통통했을 몸은 벌써 쭈글쭈글 삐들삐들합니다. 어디로 갈 건지 방향을 못 잡은 채 꿈틀거리는 게 정체성을 잃은 그림자 같습니다. 저러다 비극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녀석의 몸뚱이를 막대기로 훌쩍 걷어 공연장 밖으로 데려다 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보다 저는 글을 찾는 게 급하니 어쩌면 녀석에게 닥칠 비극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인지도요. 그래야 극적인 장면을 포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그렇다고 처참함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녀석의 공연은 끝까지 지켜볼 수가 없네요. 마음이 불편해서 말이지요. 그만 발길을 돌립니다.
매일 걷는 길에서 글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좀 더 그럴듯한 산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산이라고 해봐야 숨이 약간 찰 정도의 오르막입니다. 하지만 계절 따라 다채로움을 선사하는 곳이지요. 산 입구에 도착하니 물소리가 쏴, 들립니다. 혹시 계곡을 상상하셨다면 틀렸네요. 평범한 수도꼭지에서 나는 물소리입니다.
초등학생 두 명이 물장난을 치고 있네요. 한 녀석이 수도꼭지를 손바닥으로 막고 물을 쏘아 보내자 다른 녀석이 그 녀석의 뒤통수를 냅다 치고 도망갑니다. 두 아이는 뱅글뱅글 맴을 돌더니 다시 수도꼭지에 달라붙습니다. 옷은 이미 다 젖었고 신발은 주위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아, 숨어 있던 글이 튀어나올 것 같은 순간입니다. 어떤 삽화가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거든요. 맨발, 고무신, 냇가, 쑥 같은 단어들이 반짝 불을 켭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딱 이렇다 하게 잡히는 알맹이가 없으니까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만은 잃어버린 동화처럼 정겹네요.
어디선가 생동하는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팔각정이 보이네요. ‘쿵쿵 짝 쿵쿵 짝~’ 요란한 기계음에 나뭇잎이 팔랑거립니다. 할머니 네 분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계시네요. 여기도 꽃이 만발했습니다. 꽃무늬는 나름 이상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요. 연세가 지긋한 분들에게는 아주 잘 어울리는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맞춰 입은 듯 알록달록한 꽃무늬와 익숙한 트로트가 찰떡처럼 엉깁니다. 어떤 분은 일어나 엇박자 스텝을 밟네요. 흥이 터진 어르신들 속에는 분명 글이 숨어 있을 터인데 그분들의 흥취를 깰까 봐 다가가지 못하고 귀를 한껏 엽니다. 귓속으로 글이 들락날락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귀로 듣는 글은 경지에 올라야만 잡을 수 있나 봅니다.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합니다. 저기 그늘이 보입니다. 나무 의자에서 잠깐 쉬어야겠습니다. 다른 의자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시는데 조금 이상합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꾸벅꾸벅 졸고 계시니 말입니다. 할아버지 팔과 늘어진 이어폰이 무료한 하루를 짐작하게 합니다. 할아버지는 지금 뭘 듣고 계실까요. 하얗게 센 머리 아래 한줄기 태양 빛이 분주합니다.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을 헤아리고 있네요.
주름골 마디마디에 숨은 글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주름은 연상의 실마리입니다. 곧 주름의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주름들, 가장 가까운 이들의 주름, 그러고 보니 주름만큼 한 사람이 살아온 길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듯합니다. 아, 물론 인위적으로 주름을 없애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할아버지의 주름 속에도 개성과 독특함을 가진 서사가 숨어 있겠지요.
글을 찾으러 나왔다가 흔적만 잡고 돌아갈 것 같습니다. 흔적은 무수한데 숨어버린 글을 찾기란 요원하네요. 절실한 무언가가 없어서일까요. 인식의 창이 깨지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현상이 아닌 두꺼운 사고의 벽에 숨어 있는 것일까요. 글이 집을 나간 게 아니라 어쩌면 글의 집에서 퇴출당한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집니다. 쭉정이나마 건지려던 마음을 탈탈 털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행여 오는 길에 한 조각의 글이라도 보인다면 얼른 낚아채서 생각 샘에 가둬야겠습니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