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천 장터에 하나뿐인 주막집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안채, 바깥채뿐만 아니라 앞·뒷마당에
멍석 일곱 장이 깔렸는데도 손님이
골목길에 늘어섰다.
“여보시오 주모, 국밥 속에 먹다 만 풋고추가 들었소. 이럴 수가 있소?”
새우젓장수가 고함치자 주모는 콧방귀를 뀌고
주모의 서방인 소뿔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다가가더니 새우젓장수의 멱살을 잡아채서
마당을 가로질러 사립문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국밥
더럽게 맛없네.
소가 첨벙 솥을 지나갔구려.”
이런 말도 혼자 삼켜야지 입 밖으로 냈다가는
새우젓장수 꼴이 된다.
개성에서 온 홍삼 장수가 통천 첫걸음이라
엉터리국밥을 먹고 나서 중얼거리다가
무릎을 쳤다.
•••
홍삼 팔 생각은 않고 통천 장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만 하더니 한 달 후에
주막집을 차렸다.
•••
주막(酒幕) 독점(獨占)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장날에 맞춰 문을 열자 손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
그때
저잣거리 왈패 셋이 술 한잔 걸친 불콰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맨 앞에 선 녀석이
“캬악”
목구멍에서 가래를 올리고는 설설 끓는 국솥에
퉤~ 뱉어버렸다.
그는 바로 터줏대감 주막집 주모의 서방(書房)이자 통천 제일의 싸움꾼 소뿔이다.
홍삼(紅蔘)장수 주인이 달려나오고 소뿔의
호위무사격인 왈패 두 녀석이 양쪽에서
두 팔을 잡자 소뿔의 이단옆차기에
홍삼장수는 국밥을 기다리는 손님상에
와장창 나가떨어졌다.
손님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텅 빈 주막에
가래 국만 끓었다.
그렇게 새로 생긴 주막집은 하루 만에 문을 닫고
하나뿐인 소뿔의 주막집에 다시 손님들이 들끓었다.
•••
첫서리 내린 늦가을 어느 날 새벽, 젊은이 둘이
감옥에서 출소(出所)했다.
웬 사람이 감옥 밖에서 김이 나는 뜨끈뜨끈한
두부를 들고 있다가 출소하는 두 젊은이에게
건네줬다.
“당신은 누구요?”
“식기 전에 두부 먼저 먹고 앞으로 감옥에는
가지 마시오.”
두리번거리던 젊은이 둘이 두부(豆腐) 한 모씩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
젊은이는 소뿔의 똘마니 녀석들이고 두부를
들고 온 사람은 개성에서온 홍삼장수다.
그를 알아본 두 녀석이 깜짝 놀랐지만
홍삼장수는 그들을 데리고 문 닫은
주막집으로 갔다.
뜨뜻한 안방에서
새벽부터 술잔이 오갔다.
“그래,
소뿔한테서 술 얻어 마시고 푼돈이나 받아 쓰며
온갖 몹쓸 짓에 감옥이나 들락거리며
젊은 시절(時節)을 그렇게 흘려버릴 거야?”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사십 줄의 홍삼 장수는
아예 말을 낮춰버렸고 왈패 둘은 훈장(訓長)한테 꾸지람 듣는 학동(學童)처럼
고개를 숙였다.
“소뿔이 자네들을
이용(利用)해 먹은 게야.
잘 생각해봐.”
침묵(沈默)이 흐르다가 홍삼(紅蔘) 장수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셋이 국밥 집을 다시 열어보자구.
자네 둘은 각각 3할씩, 나는 4할,
우리는 동업자(同業者)자가 되는 거야.”
왈패 두 녀석이 눈을 크게 뜨자 한 마디 한다.
“나는 개성 상인이야.”
•••
장날,
닫았던 새 주막집이 다시 문(門)을 열었다.
소뿔이 달려와 캬~악 목구멍 속의
가래를 올릴 때
똘마니 왈패들이 튀어나와 소뿔의
두 팔을 잡았고 때맞춰 개성상인(商人)이
한가락하던 솜씨로 소뿔의 사타구니를 걷어차자
그는 푹 고꾸라졌다.
•••
그 후로 소뿔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불알이 터져서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누워 지내느라 등이 방바닥에 붙어버렸다느니,
서방이라는 게 두 달째 누워 있으니
색기(色氣) 넘치는 주모(酒母)가
샛서방을 들였다느니
온갖 소문(所聞)이 무성(茂盛)했다.
•••
손끝에서 맛을 뽑아내는 할멈이 국을 끓이고,
왈패 둘은 신이 나서 장작을 해오고
구석구석 티끌 하나 없이 청소(淸掃)하며
온갖 허드렛일에 술상·밥상을 들고
이리저리 나르고, 개성상인은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대하니 새 주막(酒幕)은
손님들로 넘쳐났다.
•••
매월(每月) 그믐날은 결산일(決算日)이다.
개성상인이 정확(正確)하게
모든 비용(費用)을 제하고 3할, 3할, 4할로
나누니 왈패였던 젊은이 둘이 묵직한
전대를 받아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2할씩만 받겠다고 우겨 개성상인이
결국 6할을 차지하게 되었다.
첫댓글 개성상인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