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극선관(CRT) 텔레비전 수상기에 시계 화면이 나왔다. 커다란 말굽 자석을 갖다 대자 시계의 테두리가 이리저리 이지러진다. 자석이 음극선에 무슨 영향이라도 미치는 걸까? <출처: ©MITtechtv / youtube.com 추출>
조지프 존 톰슨(J.J. Thomson)이 전자를 발견하기 이전부터 과학자들은 대전된 도체 구 사이에 발생하는 방전효과를 연구하고 있었다. 높은 전압으로 대전시킨 두 개의 도체 구가 공기 중에서 방전을 일으키면, 마치 인공으로 번개를 만든 것과 같은 멋진 광경이 나타난다. 전기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전기는 이제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전기를 쓰지만, 19세기에는 오로지 물리학 실험실에서만 전기를 쓸 수 있었다. 유리관 속의 공기를 빼내 진공관을 만들고, 그 속에 양극과 음극의 두 전극을 심고 높은 전압을 걸어 방전시키는 실험은 당시 최고의 인기 실험이었다. 진공 대신 네온과 같은 기체를 약간 넣어주면 빨간색 아름다운 빛이 나온다. 지금도 도시의 밤거리를 빛내는 수많은 네온사인 광고가 바로 이 방전실험에서 얻어진 결과다.
네온 기체의 원자기호(Ne)에 맞춰 방전관을 만들고 그 안에 네온을 넣어 방전시켰다. <출처: Pslawinski at wikimedia.org>
사실 네온사인 안에서 움직이는 전자는 멀리 가지는 못한다. 전자들은 이내 원자들과 부딪혀 에너지를 잃고, 대신 그 에너지가 기체 원자를 잠시 “여기”시킨다. “여기”시킨다는 말은 원자 속의 전자가 더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라가 들뜬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여기된 원자는 다시 기저상태로 돌아오면서 사방으로 아름다운 형광빛을 낸다. 즉 네온사인은 전기의 에너지를 전자를 통해 원자에 전달하여 에너지를 사방으로 흩뿌리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진공을 더 심하게 뽑아 튜브 내에 기체가 거의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국의 과학자 크룩스(William Crookes, 1832~1919)는 당시 수준으로는 최선을 다해 유리관 속의 공기를 뽑아내 보았다. 그랬더니 아름다운 형광빛은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형광 빛은 기체 원자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진공이니까. 재미있는 현상은, 어찌되었는지 전류가 계속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통 무엇이 흘러간다고 하면 그 흐름을 전달하는 매질이 있어야 한다. 공기를 다 뽑아 매질이 없는 상태인데, 전류가 계속 흐른다면 무엇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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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크룩스관. 관의 왼쪽에 전선이 연결된 부분이 음극이다. 관 가운데에 금속판이 있고, 이 금속판은 유리관 아래쪽 양극에 연결되어 있다. (오른쪽) 크룩스 관에 전류를 흘리자 형광빛이 나오고, 양극 쪽 유리면에 관 가운데 있는 십자가 형상의 그림자가 생겼다. <출처: (왼쪽)(cc) D-Kuru at wikimedia.org, (오른쪽) ©Harvard College> |
크룩스관을 잘 관찰하면 음극 주변 유리에 까만 때가 끼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오래된 형광등을 보면 양쪽 끝 전극 부분이 까맣게 변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크룩스관 안에 남아 있던 원자들이 전자에 부딪혀 양이온이 된 뒤, 가속을 받아 음극을 향해 달려와 착색된 것이다. 크룩스는 진공을 더 뽑고 더 높은 전압을 걸면 까만 부분이 점점 더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더욱 신기한 것은 반대쪽 양극 주변의 유리면은 맑고 투명하며 전압을 높이면 유리에서 아름다운 형광빛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히토르프(Johann Wilhelm Hittorf, 1824~1914)는 뭔가가 음극에서 나와 양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전류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믿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전류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선(ray)이었고, 그래서 음극선(cathode rays)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음극선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존재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유리벽에 부딪혀 빛을 내는 것을 보아 무언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유리벽에 형광물질을 발라 보면 더욱 환하게 빛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훗날 형광물질을 바른 이 음극관은 브라운관으로 발전해 TV가 된다. 세상을 바꾸는 발견이었던 것이다.
음극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금이야 누구나 그것이 “전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큰 질문이었고 미스터리였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이 음극선이 빛의 일종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물질의 한 종류라고도 생각했다. 유리관 속에 존재하는 이 보이지 않는 흐름이 무엇인지 또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유리병을 깨지 않고서는 음극선을 직접 만져 볼 수 없었다. 물론 유리병을 깨면 다시 공기로 가득 차 음극선이 사라지니, 결국 간접적인 방법으로 음극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시대는 톰슨(Joseph John Thomson)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1920년 6월 캐번디시 연구소 연구원생들과 찍은 사진. 가운데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톰슨, 다섯 번째가 어니스트 러더포드다. 가운데 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제이제이 톰슨의 아들, 조지 톰슨이다. 아들도 1937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톰슨은 수학을 전공했을 뿐 아니라, 전자기학 책을 썼을 정도로 물리학에 정통한 학자였다. 또한 톰슨은 전기와 자기를 다루는 각종 실험 장치에도 전문가였다. 톰슨은 여러 해에 걸쳐 크룩스관에 자기장도 걸어보고, 전기장도 걸어보면서 다양한 실험을 수행했다. 톰슨은 음극선이 전기장과 자기장에 의해 휘어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음극선은 “음의 전하를 가진 입자(corpuscle)”라고 주장했다. 이 입자는 곧 전자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톰슨은 음극선이 “음의 전하를 갖는 입자”로 구성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톰슨은 우선 아래 그림과 같이 음극관에 자기장을 걸어보는 실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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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음극선관에 전류를 흘리고 자기장을 걸어주는 실험을 했다. 왼쪽 그림에서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유리관 가운데에 코일을 감아 놓았다. <출처: (cc) Science Museum London at flickr.com> |
이 실험에서 음극선은 양극을 향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림과 같이 자기장이 위에서 아래로 걸리면, 로렌츠의 힘이 생겨난다. 그 힘의 방향은 음극선의 운동 방향과 자기장의 방향에 동시에 수직인 방향이고, 플레밍의 오른손 규칙처럼 앞쪽을 향하게 된다.
실험을 통해 톰슨은 음극선이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는 것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 휘어지는 정도는 양극의 재질 혹은 음극관에 남아 있는 기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휘어지는 정도는 오로지 전극 간의 전위차와 자기장의 세기에만 관련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톰슨의 결론은 매우 간단했다. 이 음극선은 음극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었고, 기체를 이루고 있는 원소의 흐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 양극에서 출발하는 입자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또 음극선 자체가 음의 전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897년 톰슨은 음극선관 구조를 바꾸어 음극선이 전기장에 의해서 휘는가를 조사했다. 톰슨은 음극선관 안에 평행판 축전지 같은 두 장의 금속 전극을 설치하고, 그곳에 전압을 걸어 음극선의 운동방향에 수직한 전기장을 걸어주었다.
음극선관 안에 금속 전극을 설치하고 전압을 가해 전기장을 걸어주었다. 전류를 흘리자 음극선이 휘었다.
톰슨은 이 실험을 통해 전기장의 방향을 바꿀 때 마다 음극선이 휘어지는 방향도 따라서 바뀌는 것을 관찰하고, 최종적으로 음극선이 음의 전하를 띤 알갱이들의 흐름으로 결론짓게 된다. 톰슨은 이후 계속되는 실험으로 이 알갱이가 수소 이온보다 엄청나게 가벼운 것도 알게 된다. 톰슨은 일련의 실험과 이론적 업적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
20세기 전까지 화학자들이 수많은 화학 반응 실험을 수행하면서 얻은 최고의 지식은 질량보존의 법칙이었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다른 말로 원소들로 구성된 화합물이 반응 전후에 서로 다른 화합물로는 변할 수 있을지언정, 원소 자체는 결코 사라지거나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즉 원소는 변하지 않는 기본입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에 나오는 수많은 원소들은 모두 다 각기 기본입자인 것이다. 이 기본입자를 일찍이 돌턴은 원자라 불렀다. 처음 화학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은 종종 원소와 원자가 어떻게 다른 지 헷갈려 할 때가 많다. 사실 원소(element)란 말은 서로 다른 물질의 종을 말하는 것이며, 원자는 그들 각 원소의 기본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라 믿어지던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지금은 원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가 없지만 20세기 전까지는 원자‘설’일 뿐이었다. 돌턴의 원자설은 각각의 원자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기본입자이며, 이들은 내부구조가 없는 아주 작은 당구공과 같은 알갱이라는 것이었다.
톰슨은 음극선이 음극을 만드는 원자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 당연히 전자가 원자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전자를 원자의 구성 성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자에서 전자가 빠져나오면 어떻게 될까? 원래 원자는 전기를 띠고 있지 않으므로 당연히 양의 전기를 띠는 이온으로 변할 것이다. 톰슨은 이로부터 원자를 몸체를 구성하는 양의 전기를 띠는 가상의 물체를 생각해 냈다. 즉 이 양의 전기를 띤 가상의 물체와 음의 전기를 띤 전자가 합쳐져서, 전기적으로 중성을 가진 원자가 된다는 자신만의 원자모델을 만들었던 것이다. 톰슨의 원자 모델을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면 마치 양의 전기를 갖는 푸딩에 전자가 자두나 건포도처럼 박힌 모습이어서 사람들은 이를 플럼푸딩모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백설기 모델로 비유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즉 흰 떡 부분이 양의 전기를 띤 부분이고, 건포도가 전자라 생각하면 얼추 좋은 비유가 될 것이다.
톰슨의 원자 모델 <출처: ©John Balmier>
톰슨의 원자모델은 1904년에 발표되었다. 그가 전자를 1897년에 발견했으니, 전자를 발견하고 한 7년 정도 톰슨은 원자 구조와 씨름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톰슨의 원자모델은 모델일 뿐 원자의 실제 모습이 그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원자는 너무나도 작아 그 안을 들여다 본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톰슨의 원자모델이 정말 맞는 것인지 알아보는 것은 당시의 전자기학 실험 장치로는 불가능했다. 시대는 또 다른 위대한 실험을 필요로 했다. 바로 원자의 내부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나타나야 했던 것이다. 원자 속을 꿰뚫어 보고자 했던 이는 바로 톰슨의 밑에서 일했던 러더포드였다. 러더포드 산란 실험은 그 시대의 필연이었다.
글 박인규 | 서울시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11대학에서 입자물리실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물리학회 대중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사람들이 물리학은 어렵다고들 하지만, 알고 보면 세상사가 훨씬 더 복잡하고, 물리학은 오히려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물리학 교육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