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대륜43회/고19
 
 
 
카페 게시글
자 유 게 시 판 스크랩 여행스케치 20170421-0503북유럽 발트 러시아 19편/라트비아 리가
구름/최상운 추천 0 조회 52 17.05.30 18: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70421-0503북유럽 발트 러시아 19편/라트비아 리가

라트비아에는 원래 발트인 이라고 하는 고대 인종집단이 살았다.

 이들은 9세기 이후 바이킹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12세기와 13세기에 라트비아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면서 접근한

서쪽의 게르만족 세력에게 넘어가 오랫동안 지배를 받게 되었다.

 1237년 독일의 튜튼기사단과 함께 출현한 검의 형제기사단1230년경 라트비아 전역을 정복했으며

그후 3세기 동안 게르만족 대군주들이 이 지역을 지배했고 게르만의 지주계급이 라트비아 농촌을 장악했다.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초까지 폴란드와 스웨덴 영토로 갈라져 있다가 18세기말 무렵 러시아의 확장정책에 따라

 영토 전체가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게르만족 지주들은 라트비아에서 세력을 유지하려 했으나 20세기초에 이르러 라트비아 민족주의의 급속한 성장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했으며 격전의 혼란기를 겪은 후 1920년 소련과 독일로부터 신생독립국으로 승인을 받았다

독립 후 1934년 독재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민주연합세력의 통치를 받았다.

 1939년 소련에게 자국 영토 내에 군사기지를 내주었고 1940년 소련군이 라트비아에 진주했으며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소련에 합병되었다.

1941∼44년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었다가 1944년에 다시 소련군의 손에 넘어갔다.

라트비아의 농토는 1949년 강제로 집단농장으로 개편되었으며 소련 경제에 흡수되었다.

소련에서 가장 공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번창했으나 라트비아 주민들은 20년 동안의 짧은 독립기간에 대한 기억을 강하게 간직했다.

1980년대말 고르바초프가 자유화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민족주의 정서가 되살아나면서 모스크바의 간섭을 벗어나 좀더

 독자적으로 국내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해체와 더불어 독립했다.  발트3국의 독립운동 중심역활을 했으며 그 중심이 리가다....


   위의 탑은 리가의 상징물  자유의 탑이고 이래 발자욱은 독립을 위해 나가는 200만 발트인들의 출발의 발자욱이다.


이제 독립운동 200만명 고리만들기의 첫시발지인 라트비아 구시가지를 돌아 본다.

라트비아엔 미인들이 많다고 했는데 여기 저기에 미인들이 눈에 많이 들어 온다.

리가는 800년의 역사를자랑 한다는 유서 깊은 도시 답게 전형적인 중세문화 유산인 건축물들이 여기 저기에 줄비 해 있다.

유럽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총집결되어 있다는 해설을 들어온 그데로 느낌이 각양 각색으로 와 닿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가수 심수봉이 불러 국민가요가 된 ‘백만 송이 장미’는 러시아 민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라트비아 리가 태생 작곡가의 곡이다.

라트비아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놀이 문화가 좋다고 한다.



구시가지 깊숙히 들어서니 돔성당 피터성당 삼형제건물 고양이 타워 여러 모습들이 보인다.


골목 골목 들을을 돌아 보니 흥미롭고 아름답다.



이건 화약 탑이란다. 엄청난 규모다...


  스웨디쉬(Swedish) 게이트 독립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것 같은데 가물 가물....

스웨디쉬 게이트에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인지 많이 모여서 해설을 듣고 있다.


 라트비아 아가씨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친절하게 말을 걸어 왔다. 로사는 또 물을 만난 고기처럼 수다를....그리고 금방 친해진다.


   이것이 삼형제 건물이었던것 같다.








  골목 끝에 보이는 리가 성피터교회 (St. Peter's church )




리가의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역사 지구로 선정됨에 큰 역활을 한 아름다운 건물중 하나인 검은 머리 전당인다.

이 검은 머리 전당은 중세14세기 무역인 모임인 길드의 집합소이자 숙소로도 쓰였는데 한때 이나라 왕궁을 보수 공사 할때

왕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단다.

너무나 아름다워 모든 관광객이 이곳 광장으로 몰려 들고 한참을 머무는 곳으로 유명하고 우리도 이곳에서 오랬동안 머물며 주변 상가에서 쇼핑도 했다.

암튼 이곳은 리가의 명물이다. 






 위 사진 우측에 검은 머리 아저씨가 보인다.

독일의 바그너는 이 리가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은 도시로 유명한 곳이며 독일인들은 리가에 그 보답을 했다고 한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