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박용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시 읽기> 겨울밤/박용래
박용래는 1925년에 논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호남 명문인 강경상고를 나와 조선은행(지금의 한국은행)에 특채되었다. 해방 뒤 대전 등지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며 향토색 짙은 시들을 연이어 써내며 주목받았다.
「겨울밤」은 “발목을 벗고 무을 거너는 먼 마을”을 소묘법으로 맵시 있게 그려낸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한겨울 밤 고향집 풍경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시이 화자는 고향집에 돌아와 눕는데,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사이 밤새 마늘밭에는 눈이 쌓이고, 추녀 밑에 달빛이 쌓이는 광경을 황홀했을 것이다. 마당귀에 바람이 잘 때 비로소 깊은 잠에 빠진다. 박용래는 토속적 정서를 노래한 서정시인일 뿐만 아니라 언어의 내핍을 실천한 시인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가 시를 쓸 때는 가혹할 정도로 언어를 깍고 덜어낸 끝에 겨우 완성에 이른다. 「겨울밤」에도 드러나듯이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를 지향했다.
―장석주,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포레스트북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