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체면과 순종의 관계』
열왕기하 13:18-19. 287장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8장 7절 이하를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은 자신이 병들었을 때 하사엘을 보내 주의 종 엘리사에게 자신이 일어날 수 있을지 물어보게 합니다. 이때 엘리사는 하사엘이 민망할 정도로 그를 쳐다보다가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아람 왕이 될 것과 또 눈물을 흘리며 하사엘이 이스라엘 민족을 처참하게 공격할 것을 예언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열왕기하 13장 7절을 보면 이스라엘과 여호아하스가 타작마당 티끌과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하사엘은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않았으니 북이스라엘은 무장해제를 당한 셈입니다. 이때 북이스라엘과 여호아하스에게 병거과 마병과 같았던 주의 엘리사가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엘리사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통곡합니다. 그만큼 여호아하스는 위기였고 고됐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여호아하스에게 동쪽 창을 열고 화살을 쏘게 합니다. 그 화살은 아람에 대한 하나님 구원 화살이라고 설명한 후 이번에는 화살들을 집어서 땅에 치도록 합니다. 그러자 여호아하스는 세 번 치고 그칩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엘리사는 통탄하며 “왕이 대여섯 번을 쳤으면 아람이 진멸할 때까지 치셨을 텐데. 세 번만 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아하스 왕은 왜 화살들을 집어서 세 번밖에 치지 않았을까요?
첫 번째 체면과 순종 사이에서 갈등하였습니다.
엘리사 병들었을 때 그를 위해 울 수는 있습니다. 엘리사를 위해 우는 모습은 오히려 동정심과 존경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명령대로 활을 쏘고 화살을 바닥에 치는 것은 다릅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순종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아람 하사엘에게 스스로 무장 해제할 정도로 처참한 패배를 맛본 상황에서 과연 여호아하스는 엘리사의 말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라면 믿고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마지막 세 번째 소망이 있을 때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패배와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여호아하스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호아하스처럼 버겁고 무기력할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라는 진리입니다. 이 소망이 있을 때 순종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반면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은 자기 체면을 버리고 요단강에 들어갔을 때 나병으로부터 치유 받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어 장사지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달리다쿰’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수로보니기아 여인도 예수를 만나면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 나왔을 때 회복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결국 믿음은 순종의 싸움입니다. 체면과 이목이 아니라 순종할 수 있을 때,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순종할 때, 믿음을 가지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화살을 집어 땅을 치라고 하실 때 저는 저와 여러분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삶의 적용 : 체면과 이목보다 믿음이 간절할 때가 있으셨습니까? 내게 주신 화살을 몇 번까지 쳐야 할까요?
마무리기도
믿음이 있어야 순종합니다. 소망을 품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주님 순종의 믿음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