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옥의 상도를 아십니까?
신명 26,16-19; 마태 5,43-48 / 사순 제1주간 토요일; 2025.3.15.
인간은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하지만 개체(個體)로서의 사람이나 종(種)으로서의 인류가 하느님을 닮아가는 데 있어서는 지난한 역사의 진화 과정이 소요되었습니다.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문명이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각성하는 시기를 근대라고 부릅니다.
마치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처럼 예수님께서 밝히신 진리의 빛을 알아본 선각자들은 고대에도 중세에도 간헐적으로 나타났었지만 근대에 인류의 집단적 각성을 불러 일으킨 예언자들은 ‘데카메론’(1353년)을 쓴 이탈리아의 단테와 ‘돈키호테’(1605년)를 쓴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 서양에서는 17~18세기 이래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일어나서 물질문명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문화적으로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보편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아서 이른바 계몽사상으로 포장된 세속화와 무신론 사조도 대중적으로 퍼져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 조선의 19세기에도 문명의 새벽을 열어 젖힌 선각자들이 이 땅에도 나타났습니다. 그 중 한 흐름은 이벽과 정씨 삼형제(약전, 약종, 약용)를 비롯한 선각자들이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들여와 교회를 창립한 일을 들 수 있고, 또 하나의 흐름은 같은 시기에 임상옥이 상거래가 피폐되었던 조선 상계에서 근대적인 상업을 일으킨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영정조 시대 이래로 노론을 중심으로 한 외척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관료들의 부패가 나라의 명운을 기울게 하던 그 와중에서도 이 두 흐름은 조선의 새벽을 여는 빛이었습니다.
이에 주목한 인물이 1970년대 이후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소설가 최인호입니다. 10대 시절에 이미 한국 문단에 등장한 그는 40대에 천주교에 입교했으나 불교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상인 임상옥을 조명하여 2009년에 ‘상도(商道)’라는 장편소설을 써서 대중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책은 출간 7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고, 20년 동안 총 누적 판매부수 500만 부에 달하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무역왕이었던 임상옥의 일대기를 파란만장하게 그린 최인호의 『상도』는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로 뽑힌 것 외에도 TV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기도 한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던 저자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는 '경제의 신철학(新哲學)'입니다. 그는 그것을 2백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 '임상옥'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가 이 소설에서 불교적 가치관으로 부각시킨 것이 ‘탐진치(貪瞋癡)’를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탐진치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요청되는 회개를 불가(佛家)에서는 탐진치라는 세 가지 독(三毒)을 멀리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탐’은 지나친 욕심을 말하는 것이고, ‘진’은 분별없이 성내는 것이며, ‘치’는 세상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개인의 영적 성숙을 막는 것은 물론 세상의 평화도 해치는 독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은 탐진치를 멀리하고 재물을 많이 쌓았지만, 죽기 직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 인물입니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부자들이 감히 흉내를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선진적인 철학을 자신의 경제 활동에서 실천한 인물입니다. 그는 동 시대에 당시 조선 사회에 들어온 또 다른 흐름인 천주교에 입교하지는 않았지만, 천주교가 가르치는 복음적 가치관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서, 한국 사회의 근대를 열어 젖힌 선각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각기 다른 강조점이 있다고 보기 보다는 같은 주제를 다른 시대의 언어로 다루고 있을 뿐이어서 종합하여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계약은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고 믿음으로써 그분을 닮고자 노력하겠다는 약속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백성으로 삼아 공정함에서 거룩함까지 이끌어 주시겠다는 약속, 두 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이 약속과 약속으로 맺어진 계약의 구체적인 현실은 파라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과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구원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길을 가야 하는 주체로서는 우리 개별 신앙인들부터 시작해서 전체 교회에 이르기까지 이르고, 그 길의 이정표처럼 추구해야 할 가치로서는 공정함에서 거룩함까지 이르며, 또 출발점과 지향점으로 보자면 파라오로부터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 과업을 파스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 사순 시기는 이 파스카 과업을 위해 신앙인들을 위해 마련한 전례적 배려입니다. 파라오의 억압과 지배에서 벗어나 공정함을 회복하려는 회개와 예수님께로 향하려는 부활의 신앙이라는, 해방과 구원의 좌표가 이 사순 시기 전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회개를 불가(佛家)에서는 탐진치(貪瞋癡)라는 세 가지 독(三毒)으로 가르칩니다. 지나친 욕심과 분별없이 성냄과 세상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음이 중생을 해롭게 하는 독이라는 뜻입니다. 현대판 파라오들도 이 탐진치의 삼독에 빠져서 정치적 독선과 경제적 불평등과 문화적 우상숭배로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고 있음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우리는 마땅히 악에 대한 개인적인 통찰과 사회 역사적인 의식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거룩함은 신성의 가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당신 나라에로 이끄시는지에 관해서 가르치시느라고 햇빛과 비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고루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인과 불의한 이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유는 그들이 저지르는 악과 불의가 선인과 의로운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발판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인과 의로운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거룩함의 기운을 보고 느끼고 체험해야만 악인들과 불의한 이들도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갈 가능성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날에도 부자들은 많고, 이 부를 손에 쉽사리 얻고자 권세를 탐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도 그런 부류의 하나입니다. 이들을 추종하거나 지지하는 극우 세력들도 탐진치의 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느님을 닮는 길이고, 그 길은 재물로 사람들을 돕는 데 있습니다. 지식이나 영향력으로도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신 은총이며 은총은 나누라고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