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07 「문둥이」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해와 하늘빛이8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의 「문둥이」
완벽한 시조이다. 옛날 문둥이는 천형이라 생각했다. 문둥이는 세상과 가족과 결별하며 살았다. 세상의 해와 하늘빛이 서럽다. 보리밭에 달이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도록 울었다. 세상의 설움이 이보다 진한 것이 어디 있으랴.
시조를 의식하고 쓰지 않았을 것이다. 쓰다 보니 시조가 되었다. 우리 것이 아니면 그랬을까. 이것이 민족의 숨결이며 DNA이다. 시조는 무형문화재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조지훈의 「승무」1연
이렇게 자연스럽다.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비와 같구나.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다.
단시조는 단 하나의 시튜에이션 단 하나의 이미지이면 된다. 많은 이야기는 시를 택하면 된다.
시조는 민족문화이다. 거기에는 충과 효, 한과 해학이 있다. 가곡과 시조로 부르는 여유와 풍류의 문학이다. 현재도 살아있고 미래에도 살아야할 우리 민족 문화이다. 3장 6구 12소절은 누가 만든 것도 아니요 절로 생긴 것이다. 시와 시조는 격 자체가 다르다. 시조 미학이 바로 그것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