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망은 없다!'
이 짧은 한 마디가 아침부터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과거>의 족쇄에 묶이거나, <현재>의 짐이 너무 무겁거나,
<장래>의 소망이 안 보일 때 절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읽은 룻(Ruth)은 위 셋 다에 해당되었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꿋꿋하게 살아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으로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마1:5).
이를테면...성공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룻기 전체를 꼼꼼이 읽고 묵상한 결과 이같은 가능성은 룻에게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활짝 열려 있음을 보았습니다.
2.
'모압 족속'(the Moabites)인 룻이 처한 상황은 어느 면으로 보든 가히 절망적
이었습니다.
친정 쪽 집안 내력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Lot)과 그
큰딸의 근친상간으로 나온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창19:37). 그런데 성경은
그 후손들의 앞길을 이렇게 가로 막기까지 했습니다.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지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23:3).
<과거>야 그렇다고 치고...룻이 <현재> 직면한 상황 또한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결혼한지 10년이 안 되어 남편이 죽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홀 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했습니다. 누구라도 쉽지 않을 환경입니다.
그러면 <장래> 소망이라도 있는가? 겉으로 볼 때는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형사취수 풍습이 있다해도 장차 형수를 아내로 맞이할 시동생은 아예 없었습니다
(룻1:11-12). 끝이 안 보이는 생계 칙임이 그녀의 어깨를 눌렀습니다.
남편없는 늙은 시모를 모시는 일 또한 그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룻에게 장래 소망이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3.
그러나 이제부터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같은 처지에 놓인 두 며느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동서인 오르바(Orpah)는 환경에 순응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어찌보면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 선택한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룻은 달랐습니다. 시모와 그의 하나님 그리고 그의 백성을 택한 룻에 대해 성경은
자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귀환했고,
밀 이삭을 줒어다가 어떻게 시모를 봉양했으며, 마침내 죽은 남편의 가까운 친척인
보아스(Boaz)와 재혼하게 된 경위, 그 결과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된 사실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룻은 주 예수님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이 어떠한 긍휼인지요!
4.
그렇다면 룻이 '가시 밭에 핀 백합화' 또는 '진흙 위로 솟아오른 창포'와도 같은
고결한 삶을 살수 있었던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룻은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함으로 이 모든 것들이
더하여진 축복을 받은 경우'라고 할만 합니다(마6:33).
우리 또한 어떤 과거를 가졌건, 현재 처한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건, 미래가
얼마나 불투명하건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먼저 구한다면 동일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떤 사람에게든지 공평하게 하루 24 시간이 주어집니다.
이 시간들을 최선을 다해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얻고 또 얻는 기회로 삼을
수만 있다면(요10:10하)...그 사람의 인생은 룻처럼 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룻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복의 가치를 당대엔 다 못 누리고 생을 마감 할
수는 있습니다. 룻 역시 보아스와 결혼을 통해 당대에 안식을 누리긴 했지만
자신이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될 것을 알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올 영광을 예비해 둔 그 삶이 어찌 복되지 않다 하겠습니까!
사실은 우리 주님도 영광은 장래 오는 그런 길을 가셨습니다(빌2:8-9).
5.
보통은 룻이 한 말 중에서 '시어머니가 어디로 가든 자신도 따라가며, 시모의
백성이 자기의 백성이고, 시모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다' 라고 고백한
룻1:16-17을 많이 묵상하고 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제 마음을 깊이 만진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but Ruth clung to her) (룻 1:14하).
(동서가 울며 자기 길을 가는 그 순간 룻은 더 찰싹 시모에게 달라 붙는 모습)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룻 3:5).
(타작 마당에 노숙하는 보아스에게 다가가 그 발치 이불을 들고 누우라는 말에...)
개인적으로는, 이 두 가지가 룻의 일생을 절망에서 소망이 넘치는 삶으로 바꿔 놓는
큰 분기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얼마나 비관적이든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에겐
절망은 없습니다. '룻'을 보십시오!
첫댓글 BC 약 천년 경 사무엘이 썼을 것이라는 이 룻기는 그 내용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라 노벨 문학상 감이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아멘 주예수여! 룻의 순종과 헌신을 본받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헌신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아멘!
형제님 아침에 신선한 공급과 격려를 얻고 갑니다. 룻기를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글을 가져갑니다.
"다 내게로 오라" 지금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멘.
아멘! 저는 개인적으로 룻도 훌륭하지만..그녀가 하나님을 알게 된데는 시모의 신앙을 보았을 겁니다..우리는 이렇게 보이지 않은 우리들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나가는 영적인 어미들이 되야할 것임을 깨닫습니다.아멘!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아멘.
아멘! 먼저 그 나라외 의를 구하는 " 자 에겐 절망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