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모처럼 모인 동창 모임,
어김없다. 예상은 늘 빗나가지 않는다.
테이블 위엔 먹다 만 안주 접시와 반쯤 비어 있는 소주병들,
누가 먼저 손댔는지 모를 젓가락이 대충 걸쳐져 있다.
그 앞에서 남녀가 번갈아 마이크를 잡고,
노래방 조명 아래서 흥겹게 흔들리는 모습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겼다.
화목한 분위기와 흥겨움을 이렇게도 한결같이 담아낼 수 있다니.
이런 풍경은 언제나 ‘화목한 동창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함께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나 역시 진정 행복했다고ㅡ
늘 그렇듯, 한 치의 의심도 없이.
ㅡ 여고 동창 영자 딸의 결혼식장.
“신랑은 뭐 하는 사람이래?”
“검사라던데.”
“어머, 사위 잘 봤네.”
“영자 남편이 대부업계 큰손이잖아. 사위까지 저러니 이제 걱정 없겠네.”
결혼식에 오가는 말은 온통 사위의 직업과 영자 남편의 재력이다.
ㅡ 초등 동창 순자 시아버지 장례식장.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밝히듯 늘어선 조화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근조, 추모 ㅡ 그 밑엔 큰 글씨로 ○○주식회사, ○○○ 국회의원, ○○대학 총장, ○○○ 장관.
순자 남편은 여당 국회의원이다.
평생 시골에서 농사짓던 고인의 삶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화려한 이름들.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을 산자들의 이름이, 조화 리본에 가장 크게 걸려 있다.
우리 동네엔 글쓰기 모임이 있습니다.
동네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곳으로 제가 얼마 전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어요.
심사평은 간단했습니다.
진부하고 식상하며, 참신하지도 창의적이지도 못한 글이라고.
저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쓴 글이 진부하다면 그 진부함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풍경이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데서 비롯된 것일 텐데.
동창 모임의 사진은 늘 비슷합니다.
결혼식장에서 오가는 말은 늘 직업과 재력이지요.
장례식장의 조화는 늘 인맥의 크기를 말하는 그 반복되는 장면이 진부한 것이지요.
진부하다는 것은
진부한 현실을 쓰면 당연히 진부한 글이 되고,
진부한 현실을 꼬집어도 여전히 진부하다고 말해지는 고리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진부하다는 평은 내 글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가장 정확한 묘사인지도 모릅니다.
첫댓글 아하^^
새로운 해석 - 전혀 진부하지 않은, 참신합니다.
배우고 갑니다.
^(^
ㅎ 고맙습니다 부천이선생님.
^(^ ^(^
진부한. 일상이 흘러 갑니다
맞아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는게 그닥 특별할일 없이 그냥저냥 흘러가니 그날이 그날이니 ㅎㅎ
해서 저도 남편의 치매 얘기 너무 진부할것같아 글을 못 쓰네요
글짓기 모임이라
참 좋은것 같아요
우리 동네도 그런 모임
있었음 참 괜찮을것 같은데 ~~
부군의 병세 언급하신 글 읽었습니다. 그래도 힘 내시라고 응원 드립니다,
시골에는 유행이라고 해요, 활동적으로 글 쓰는 젋은 사람들이 요즈음 의외로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