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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0일(월)
* 시작 기도
주님...
나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없이는 정말 하루도, 단 한 순간도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주께서, 주의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장악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이끌어 주소서.
이 새벽 주의 보혈로 나를 덮으사 내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나의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으로 비추소서.
내 안에서 마음껏 역사하소서.
나를 주의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죄를 짓고자 하는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죄의 몸이 반응하지 못하도록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주소서.
나는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이오니 오늘도 내 영이 거룩함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20:1-14
제목 : 참 복음을 거부하던 자가 복음의 나팔수가 되어 복음을 자랑하다.
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2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5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6 만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8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10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14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 나의 묵상
옛 고사성어에 이런 말이 있다.
忠言(충언)은 逆耳(역이)이나 利於行(이어행)이요, 良藥(양약)은 苦口(고구)이나 利於病(이어병)이라.
충성스런 충고의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는 유익하고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좋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쏟아지는 충고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마치 자기가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고 들려서 들을 때 자기의 마음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짜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은 그런 말속에서도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찾아서 자기를 유익하게 한다.
(5절)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여기서 ‘모략’은 ‘충고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귀에 거슬리고, 짜증나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것을 참고 받아서 자신에게 잘 적용하여 자신을 가꾸는 자가 참 지혜로운 자임을 말씀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어떠한지를 알려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취업대란의 시대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얼굴을 비롯한 전신을 뜯어고쳐서 자신의 외모의 빼어남을 자랑하고, 어학연수를 통하여 습득한 언어의 유창함을 자랑하고, 토익 토플의 높은 점수를 자랑하는 등 자신의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물론 그런 수요를 원하기 때문에 공급자들이 그와 같은 시류를 따라가는 것이겠지만, 외모지상주의나 스펙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이 시대에서 사람의 속에 있는 진실을 찾아보기가 참 쉽지 않다.
외적으로 좋은 인재는 많지만, 정말 진실하고 충성된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든 시대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스펙과 외모가 다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도 나도 자신을 자랑하는 시대에 정말 충성스런 사람, 의로운 사람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6절)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의인을 찾기가 힘든 이 시대에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바로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그의 자손이 복되다고 한다.
(7절)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여기서 ‘온전하게 행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은 본질적으로 불의하고 악하기 때문에 결코 온전하게 행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사람이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다.
사람은 불의하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이다.
(롬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따라서 그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을 믿는 자를 주님께서는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이다.
특히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여러 종류가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곧 고난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나의 죄에 대한 심판일 수 있고, 또 나의 믿음의 연단을 위한 고난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언약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고난일 수 있다.
첫째, 죄에 대한 심판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하여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단행하셨다.
둘째, 믿음의 연단을 위한 고난은 욥의 고난을 들 수 있다.
그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고난을 겪었으나 결국 그의 믿음이 연단되어 이전보다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셋째,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주시는 고난은 요셉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요셉은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입애굽이라는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그를 고난의 풀무 속으로 밀어 넣으신다.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경에까지 처하기도 하고, 장사꾼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고,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으며, 또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이것은 그의 죄로 인함도 아니고, 믿음을 연단하기 위함도 아닌 하나님의 뜻과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중 어떠한 것이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자가 의로운 자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자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장사복음이다.
하나님께서 무덤이라는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 고난의 무덤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즉 義를 세우시기 위함이다.
이 고난의 심판이 ‘옳습니다’라고 받아들이며 말씀과 함께 그 고난의 무덤을 수용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주님은 받으시고 그와 함께 깊은 교제와 사귐 속에서 성전을 지어주신다.
그 속에서 바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인 義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런 의인의 자손이 참으로 복 있는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은 재판장의 자리에서 심판하는 왕과 같이 당신의 눈으로 죄인의 죄를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다.
그 죄를 없애기 위하여 그에게 합당한 심판을 하시는 것이며 그 심판을 받아들이는 자를 주님은 의롭다 칭해주시며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시는 것이다.
(8절)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땅에 속한 것은 존재물로서 언제나 변하고 쇠하며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것은 존재로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히 12:28-29)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본문 10절에서는 저울추와 곡식을 헤아릴 때 사용하는 되가 한결같지 않아서 주님께서 미워한다고 하신다.
(10절)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요즘도 주유소나 곡식을 파는 가게 등에서는 저울과 미터기를 조작하여 불의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있어 가끔 뉴스에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런 물건을 파는 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적용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물건을 사는 자들은 손해를 보는 자들이기 때문에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고 만다.
그러나 말씀은 나와 상관이 없지 않다.
이 말씀은 비단 물건을 사고 파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 사람들을 대할 때 같은 기준으로 대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말씀이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에게는 굽신거리면서 약한 자처럼 아부하고, 나에게 전혀 유익이 없는 사람이나 나보다 을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갑질하고 군림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갑을관계가 유행하고 있다.
갑은 갑질을 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을은 항상 서러움을 당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갑질을 하면 또 다른 상황에서 내가 을이 되어 갑질을 당하는 서러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를 대하든지 동일한 판단의 잣대를 적용하여 대할 때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미움을 받게 된다.
요즘 학연이나 지연 또는 혈연에 의해서 저울추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입 예체능 실기시험에서는 어느 선생에게 사사를 받았는지, 취업할 때 면접시험에서는 그 사람의 내면의 실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스펙이 바로 당락의 기준이 되곤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인간의 이기적이고 간사함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것을 미워하시는 것이다.
(14절)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가능하면 많이 깎아서 저렴하게 사려고 한다.
이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너무 물건 값을 깎으려고 하다 보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물건을 사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중국에 가서 물건을 살 때는 불문율이 있다.
무조건 주인이 부르는 값의 반으로 깎으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일이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가격을 깎으려고 하다보니 주인은 그 물건 가격을 높이 책정하여 깎아 주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세상에 대하여 조금씩 손해보면서 사는 자들이다.
손해보지 않으면 결국 세상의 손가락이 믿는 자들을 향하여 돌아오게 되어 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소금처럼 세상에 맛을 내면서 살아야 되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역시 소금처럼 짜군’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결국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의 행함 없는 믿음의 소치인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 보니 보험사기단에 목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물론 수많은 목사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이런 일로 인하여 많은 선량한 목사들이 도매금으로 팔리게 되고, 더 나아가 결국 기독교와 예수님이 욕을 먹게 된다.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미움과 욕을 먹는 것이지, 세상에서 짠돌이처럼 행동하거나 불의한 일로 인하여 욕을 먹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처음 들을 때는 거의 대부분이 거부감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기존에 자기들이 알고 있던 복음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고 있던 복음은 예수 믿으면 땅에서 잘 되고 복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하고 어려울지라도 이를 용납하고 참으면서 이 땅에서 영생을 맛보고 누리는 것이다.
이처럼 복음을 왜곡하여 잘못 알고 있는 자들에게 참 복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명의 복음을 계속 전하다 보면, 이 복음만이 자신을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이들이 복음을 자랑하는 자들이 된다.
복음이라는 상품을 처음에는 좋지 못하다, 이것은 나에게 맞지 않다 하면서 거부하지만, 이 복음만이 생명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이 복음을 자랑하는 나팔수가 되는 것이다.
나는 복음을 오해하였던 자이다.
예수 믿으면 정말 이 땅에서도 잘 되고 복 받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참된 복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으로 그토록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셨던 ‘영생’임을 알게 되었다.
땅의 것을 복으로 오해하니까 결국 내가 사용하는 저울추와 되는 세상의 가치관에서 내 맘과 뜻대로 이리저리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나의 판단 기준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세상에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미워하시는 것인데 그것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내가 연약한 자들을 도울 때는 여지없이 자기주장의지가 발동하여 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나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기도 못 펴고 굽신거리기도 하였다.
이런 나는 심판주 되신 주님 앞에서 당연히 심판 받아 마땅한 자이다.
이런 나를 주님은 용납하시고 복음을 깨달아 알게 하셨으며 이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게 하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넘어질 때마다 이 복음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다시 생명으로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의 좌소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생의 맛을 누리게 된다.
죽기에만 합당한 자, 주님과 단절된 관계속에서 죽었던 나를 살려 주신 주님께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죄인의 심정으로 날마다 속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과 감사가 넘쳐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이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시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은혜를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보답하면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의 일이요, 또한 나의 일이며, 그 아름다운 열매가 바로 그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참 진리의 복음을 몰랐다면 나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헤매며 돌아다니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를 긍휼히 여기사 복음을 듣게 하시고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생의 삶을 맛보게 하시며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함께 교제하는 영생의 공동체를 주셔서 그 은혜를 나누며 비록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기쁨과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음에도 감사를 알지 못하고 겨우 나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했던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이제 내가 용서함으로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그 용서가 확증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사오니 날마다 용서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그것이 내가 긍휼을 얻는 비결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