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11, 「까치집」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삭정이 물어다가
동그랗게 얽어놓고
허공에 앉힌 집이
추위 막지 못하지만
품속에 안긴 자식들
부자유친 외운다
-원용우의 「까치집」
미사여구가 없다. 더함도 덜함도 없다. 삭정이 물어다가 동그랗게 얽어놓고 이를 허공에다 앉혔다. 추위를 막을 수 없으나 품속의 자식들은 부자유친을 외우고 있다. 선경후정의 전통적 구성 방식이다.
부자유친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추위가 어디 부자유친만하랴. 친함이 있기에 추위도 막을 수 있다. 새끼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금수도 저리 열심히 인륜을 외우는데 천륜을 망각한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있다.
시조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는 노력을, 남구만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는 근면의 교훈을 주지 않는가. 현대시조라도 다를 바 없다.
무려 천 리 길을 택시타고 간 손님이 요금도 내지 않고 달아났단 뉴스 듣고
가슴이 철렁하면서, 딸기밭이 떠올랐다
-이종문의 「죽일 놈」
초장과 중장은 사실을 읊었다. 종장에서는 정을 읊었다. 가슴이 철렁, 딸기밭이 떠올랐다고만 제시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딸기밭이 독자에게 되레 묻고 있다. 가관이다. ‘딸기밭’, 이 단어 하나가 돌발 상수이다. 그래서 의미 계측이 불가능하다. 의미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하게 잴 수 없다. 여기서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여유를 주고 있다.
시조는 무심히 연을 놓아야 한다. 어디로 툭 떨어지고 어디로 돌돌 굴러가는지, 그조차 놓아야한다. 관여하지 말아야한다. 이것이 여백을 만든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지점, 이것이 시조의 위치이다. 그래야 여운이 남는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13.12.13.(수)
첫댓글 멋있습니다.
방문해 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