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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 네게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 보아라. 내가 배운 지혜를 네게 말해 주겠다.
15:18 이것은 내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들도 자기 조상에게서 배운 공개된 지혜다.
15:19 그들이 살던 땅은 이방인이 없는 땅이고, 거기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곁길로 꾀어 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지 못하였다.
15:20 악한 일만 저지른 자들은 평생 동안 분노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잔인하게 살아온 자들도 죽는 날까지 같은 형벌을 받는다.
15:21 들리는 소식이라고는 다 두려운 소식뿐이고, 좀 평안해졌는가 하면 갑자기 파괴하는 자가 들이닥치는 것이다.
15:22 그런 사람은, 어디에선가 칼이 목숨을 노리고 있으므로, 흑암에서 벗어나서 도망할 희망마저 가질 수 없다.
15:23 날짐승이 그의 주검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더 이상 앞날이 없음을 그는 깨닫는다.
15:24 재난과 고통이, 공격할 준비가 다 된 왕처럼, 그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칠 것이다.
15:25 이것은 모두 그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주먹을 휘두르고, 전능하신 분을 우습게 여긴 탓이 아니겠느냐?
15:26 전능하신 분께 거만하게 달려들고, 방패를 앞세우고 그분께 덤빈 탓이다.
15:27 비록,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고, 잘 먹어서 배가 나왔어도,
15:28 그가 사는 성읍이 곧 폐허가 되고, 사는 집도 폐가가 되어서, 끝내 돌무더기가 되고 말 것이다.
15:29 그는 더 이상 부자가 될 수 없고, 재산은 오래 가지 못하며, 그림자도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15:30 어둠이 엄습하면 피하지 못할 것이며, 마치 가지가 불에 탄 나무와 같을 것이다. 꽃이 바람에 날려 사라진 나무와 같을 것이다.
15:31 그가 헛것을 의지할 만큼 어리석다면, 악이 그가 받을 보상이 될 것이다.
15:32 그런 사람은 때가 되지도 않아, 미리 시들어 버릴 것이며, 마른 나뭇가지처럼 되어, 다시는 움을 틔우지 못할 것이다.
15:33 익지도 않은 포도가 마구 떨어지는 포도나무처럼 되고, 꽃이 다 떨어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올리브 나무처럼 될 것이다.
15:34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리는 이렇게 메마르고, 뇌물로 지은 장막은 불에 탈 것이다.
15:35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만을 낳으니, 그들의 뱃속에는 거짓만 들어 있을 뿐이다.
◈ 주해
1. 욥과 친구들의 대화는 세 번에 걸쳐 순환된다(4-14장, 15-21장, 22-31장).
1) 첫 번째 대화에서 욥은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거듭되는 충고, “죄 값으로 고난을 받고 있으니 회개하여 회복하라”는 충고에 “나도 다 알고 있다”면서 거절하고 자신의 고통과 의문을 들어주길 원한다.
2) 욥은 자기 생명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변론하는 모험을 하기로 한다(13:15-16).
3)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며 하나님께 질문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으로 절망한다.
- 하나님이 왜 자신을 피하시며 자신을 원수로 여기는지를 묻는다.
2. 엘리바스는 친구들의 조언을 무시한 욥을 적대적인 태도로 책망한다.
1) 욥이 참으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그만두었다면서 욥의 영적인 상태를 비난한다.
2) 욥이 “친구들이 아는 만큼은 나도 다 알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엘리바스는 오히려 “우리가 너보다 모르는 것이 무엇이냐”며 따진다(욥 15:9-10).
3)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건방지게 행하고, 분노를 터트리며 함부로 말한다고 책망한다.
3. 자기 의를 주장하는 욥을 비난하는 엘리바스도 자기 의, 자기주장의지에 사로잡혀 있다.
1) 본인은 선을 행하고 있으며, 옳은 말을 해주고 있으므로 욥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여서 계속해서 욥에게 주장한다. 자기를 주장하는 의지는 자신의 주장이 거절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반드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2) 그래서 친구들을 무시하는 욥의 태도를 비난하고, 하나님께 건방진 욥을 비방한 뒤에, 욥이 악한 자이며, 욥이 받고 있는 재난은 악한 자이기 때문임을 장황하게 나열한다.
3) 재앙 가운데 있는 욥을 악한 자로 규정하고, 그가 자신의 악함에서 돌이킬 것을 은근히 압박한다.
4. 엘리바스는 두 가지 근거로 인과율의 원리가 신뢰할 만하고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1) 하나는 자신이 그것을 직접 보아 왔다는 자신의 경험이다.
2) 또 하나는 이 땅에서 먼저 살았던 지혜로운 조상들이 전하여 준 것이라는 근거다.
욥 15:17 네게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 보아라. 내가 배운 지혜를 네게 말해 주겠다.
욥 15:18 이것은 내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들도 자기 조상에게서 배운 공개된 지혜다.
욥 15:19 그들이 살던 땅은 이방인이 없는 땅이고, 거기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곁길로 꾀어 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지 못하였다.
3) 지혜로운 자들은 모두 조상들의 지혜를 알고 있으며, 이런 지혜를 알고 있는 자들을 꾀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지 못한다.
4) 엘리바스는 처음 충고 때에도 자신의 보상신학과 함께 자신의 영적체험에 근거하였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충고는 권위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서 충고한다.
5. 20-35절은 지혜자들의 전통에 근거하여 악인이 받는 고통을 나열한다.
1) 엘리바스가 언급하는 악인이 받는 고통은 지금 욥이 받는 고통과 일치한다.
2) 따라서 엘리바스는 욥이 바로 악인이요 그가 사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6. 엘리바스는 악인(욥이)이 받는 고통으로 무려 15가지를 말한다(새번역).
① 악한 일만 저지른 자들은 평생 분노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20a절).
② 잔인하게 살아온 자들도 죽는 날까지 같은 형벌을 받는다(20b절).
- 악인은 길지 않은 인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된다.
③ 악인에게 들리는 소식이라고는 다 두려운 소식뿐이다(21a절). 악인은 자신의 상상에서 나온 공포에 시달린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잠 28:1). 그는 평안과 번영을 누리는 때라도 재앙의 불길한 예감으로 공포에 떤다. 욥도 두려워하던 것이 임했다고 탄식하였다(3:25).
④ 악인은 좀 평안해졌는가 하면 갑자기 파괴하는 자가 들이닥친다(21b절). 욥에게도 갑자기 재앙이 들이닥쳤다(1장).
⑤ 악인은 어디에선가 칼이 목숨을 노리고 있다(22a절). 악인은 자신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며 불행을 두려워한다.
⑥ 악인은 흑암에서 벗어나 도망할 희망마저 가질 수 없다(22b절).
- 흑암은 불행에 대한 비유로 악인은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⑦ 악인은 날짐승이 그의 주검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어 더 이상 앞날이 없음을 깨닫는다(23).
⑧ 악인은 재난과 고통이, 공격할 준비가 다 된 왕처럼, 그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친다(24절).
⑨ 악인은 부자가 될 수 없고, 재산은 오래 가지 못하며, 그림자도 곧 사라지고 만다(29절).
⑩ 악인은 어둠이 엄습하면 피하지 못할 것이다(30a절).
⑪ 악인은 마치 가지가 불에 탄 나무와 같을 것이다. 꽃이 바람에 날려 사라진 나무와 같을 것이다(30절).
⑫ 악인은 미리 시들어 버리며, 마른 나뭇가지처럼 되어, 다시는 움을 틔우지 못할 것이다(32절).
⑬ 악인은 익지도 않은 포도가 마구 떨어지는 포도나무처럼 되고, 꽃이 다 떨어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올리브 나무처럼 될 것이다(33절).
⑭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리는 이렇게 메마르고, 뇌물로 지은 장막은 불에 탈 것이다(34절). 경건하지 못한 자는 뇌물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지은 집은 불에 타버리고 만다.
- 욥의 장막이 불에 타듯 사라졌다. 엘리바스는 욥이 경건하지 못한 자가 받을 재앙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⑮ 악인은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만을 낳으니, 그들의 뱃속에는 거짓만 들어 있을 뿐이다(35절).
7. 엘리바스는 악인(욥)이 재앙을 받는 이유가 하나님을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욥 15:25 이것은 모두 그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주먹을 휘두르고, 전능하신 분을 우습게 여긴 탓이 아니겠느냐?
욥 15:26 전능하신 분께 거만하게 달려들고, 방패를 앞세우고 그분께 덤빈 탓이다.
욥 15:27 비록,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고, 잘 먹어서 배가 나왔어도,
욥 15:28 그가 사는 성읍이 곧 폐허가 되고, 사는 집도 폐가가 되어서, 끝내 돌무더기가 되고 말 것이다.
1) 욥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죄가 있으면 알려 주시고, 무죄한 자신을 왜 가혹하게 다루시는지? 왜 자신을 피하며 원수로 대하시는지? 자신을 잠시라도 평안하게 해달라면서, 자기 속에 있는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토로하였다.
2) 엘리바스가 보기에 이런 욥의 토로는 하나님께 건방지게 함부로 말하며 대항하는 것이었다(15:12).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주먹을 휘두르는 짓이었다.
3) 욥이 감히 전능하신 분께 거만하게 달려 들었으므로, 그의 집이 황폐하게 되어 끝내 돌무더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8. 욥을 위로하고 돕기 위한 일이 거절당하자, 분노한 엘리바스는 자신의 관점으로만 욥을 본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도 보지 못하고, 욥의 입장에서도 보지 못한다.
1) 욥15: 1-35절 전체는 엘리바스가 욥을 비난하고 책망하는 내용이 전부다.
2) 욥이 악인이기 때문에 이런 재앙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조상들의 지혜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진실이라며 비방한다.
9. 엘리바스는 자신의 자녀와 소유를 한 날에 잃어버리고, 욥과 같은 지독한 고통이 수개월간 분초도 쉬지 않고 계속되며, 아내가 떠나고,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며,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곧 죽게 되리라는 절망과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고통하는 욥을 전혀 알지 못한다.
1) 엘리바스도 인생에서 고난을 겪었을 것이고, 그 고난을 잘 이겨냈을 것이다.
- 그런 자기 경험에 근거하여, 자신의 고난보다야 힘들겠지만, 욥이 자신처럼 고난을 견디고,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며 함부로 판단한다.
2) 만약 엘리바스가 욥의 모든 고통을 겪는다면, 그는 욥보다 훨씬 일찍 죽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아마, 모든 자녀와 소유를 잃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낙심했을 것이고,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을 때 절망하며 탄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10. 지독한 육체의 고통에 연이어서 지독한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영적인 분리의 고통을 함께 겪는 것이 무언인지도 모르면서, 엘리바스는 “욥의 고통을 알고, 욥이 아는 것을 다 안다”고 함부로 판단한다.
1) 엘리바스의 표현을 보면, 그는 자기 고향에서 믿음이 좋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리더였을 것이다.
2) 그런데, 자기주장의지로 인한 섭섭함과 분노로 인하여 자신이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왔다는 방문의 목적도 잃어버리고, 바리새인처럼 욥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3)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서 욥을 사랑하고 위로하려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사탄의 대리자인 것처럼 욥을 정죄하고, 저주한다.
4)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바스가 사탄의 대행자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욥을 정죄한다. 엘리바스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편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11. 엘리바스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욥을 보고 계시지 않는다. 만약 엘리바스가 말하는 대로 욥이 악인일지라도 하나님은 엘리바스의 말대로 저주와 재앙만 퍼붓지 않는다.
1) 악인의 형통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있는 현실이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동일하게 해와 비를 주신다. 일반은총은 악인에게까지 주신다.
2) 또한 악인 아합에게까지 얼마나 크신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지 모른다. 아합은 전쟁터에서 죽고, 사후에 그의 가문이 멸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합에게 왕이라는 신분과 부와 권세를 유지시켜 주셨다.
12. 그렇다면, 엘리바스가 보는 관점과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얼마나 다른가?
1) 하나님이 사탄에게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엘리바스는 전혀 하나님의 관점에 무지하면서 마치 하나님이 보듯이 자신이 보는 것처럼 말한다.
1: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13. 엘리바스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얼마나 다른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가? 그리고 하나님과 얼마나 다른 관점으로 나를 보는가?
1) 나에게 고난이 닥치면 엘리바스처럼 나를 본다.
- 나의 죄 때문에 생긴 고난이라면서 자신을 자책한다.
2) 엘리바스의 말에는 악인에게 닥치는 재앙만 있지, 그 악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전혀 없다. 죄로 인한 고난이라면, 십자가가 가라고 해야 하는데, 정죄가 끝이다.
14. 사단은 엘리바스처럼 우리를 논리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저주한다.
1) 욥은 이에 대해 분연히 일어나 반박한다. 만약 욥이 이런 정죄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정죄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하나님께 말하지 못하게 된다.
2) 욥과 다른 죄인일지라도 엘리바스처럼 정죄하는 사단의 속임, 생각을 통해 정죄하는 것을 분연히 거절하며 반발해야 한다.
롬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롬 8: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롬 5: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5: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 나의 묵상
영적 메타인지는 사람에게 불가능에 가깝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위한다며 열심을 내는데, 사탄의 입이 되어 있다. 바리새인들도 그랬다. 제사장들도 그랬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자가 세리와 죄인보다 더 악한 사탄의 대리자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전혀 인식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참극이다.
날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빛을 비추어주지 않으시면 나 또한 사탄의 입이 된다.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사탄의 입이 된다. 성경과 신학과 경험을 가지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가 된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도 사탄의 입이 되고, 교만하며, 불안해하는데, 살아 있고 운동력 있어 내 영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말씀 앞에 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단의 속임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나눌 수 있겠는가? 사탄은 말씀으로도 속일 수 있는 자이기에 성령님의 도우심과 분별을 구한다. 날마다 내 안의 어둠, 바리새적인 외식, 내 경험과 전통에 근거한 자기 확신을 드러내 주시기를 간구한다.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 하나님의 양을 돌보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는 목적, 주님이 하시는 일에 순전히 도구가 되려는 목적을 벗어나 보란 듯한 결과를 산출하고, 인정받고 알아주기를 원하게 하는 마음을 깨트린다. 나의 관점을 깨뜨리고 주님의 관점으로 본다. 주님의 주권과 주님의 넓은 마음,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보기를 원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거두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뜻대로 되어도 감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감사하련다.
주님이 보는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면 나는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있는 자다.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된 생명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통치하는 자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운 자다.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십자가로 용납되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다. 피 값으로 산 예수님짜리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어낼 자는 없다. 그 사랑을 찬양하며, 그분의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모든 상황에서 선하시다.
◈ 묵상 기도
주님의 뜻이라면서 사탄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옵소서. 예의, 절차, 인성, 올바름이라는 이유로 사탄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옵소서. 사탄이 옳음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속이며, 혼잡하게 하며, 미워하게 하며, 서운하게 하는지요. 내 안에 주님이 생명되시고 지혜되시어 영의 생각을 하게 하옵소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얻고 주는 생각, 평안을 누리는 생각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함으로 모든 상황을 수용하고, 거두실 때에도 주님을 신뢰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전에 과외를 주시면 재정을 주셔서 감사하고, 그만두면 쉼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모든 상황에서 고백하게 하옵소서. 주시면 주시는 대로 감사하고, 거두시면 거두는 대로 감사의 이유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모든 것을 채우시고 사랑으로 돌보시는 목자되신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임직식이 한 주 남았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며, 몸된 교회의 마디들로 세워 주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이 임직자와 모든 성도들에게 부어지게 하옵소서. 각 성도들이 주의 은혜의 강물에서 먹고 마시며 생명을 얻고, 사망을 삼키게 하옵소서. 이 종이 생명을 주는 복음을 전하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도록 성령으로 일으켜 주옵소서. 영혼육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쉐마학당에서 선포되는 로드십을 통하여 아이들의 심령에 복음의 영광과 능력이 선포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