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12, 「어쩌다 변방-코로나 19」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생각도 변방에 와 물 한 잔 마셔본다
닳아진 저쪽 시간 등 보이고 가는 사람
주워든 갈 잎 한 장을
거절할 수 없었다
-김광순의 「어쩌다 변방-코로나 19」
생각도 변방에 와 물 한 잔 마셔 본다. 닳아진 저쪽시간 등 보이고 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코로나에 걸린 사람일 것이고 갈잎 한 장은 물론 코로나일 것이다. 이 첫경험과 변방의 생각들을 우리들이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대담무쌍하다. 사연들을 전부 여백으로 처리했다. 삐끗하는 날엔 천길 벼랑으로의 직행이다. 주워든 갈잎 한 장은 얼마나 외로울까. 코로나의 두려움을 차원 높은 은유와 여백으로 직조한 명품 시조이다. 시조는 직조의 예술이다.
내 마음 받아 달라 안달복달 치대다
신발 뒤축 닳듯이 쪼그라든 중성자별
블랙홀 스러진 별들
손등에 박혀있는
-강영임의 「검버섯」
내 마음 받아달라 안달복달 치대다 신발 뒤축 닳듯 쪼그라든 중성자별이다. 검버섯을 중성자별로 은유했다. 손등엔 블랙홀로 스러진 별들이 손등에 박혀있다.
나이가 들면 검버섯, 잡티들이 생겨난다. 검은 잔점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난다. 레이저 피부 시술을 했건만 쪼그라들긴 했어도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것을 어찌하랴.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은 주름과 검버섯들이다. 사람들은 늙어서도 젊어지고 싶고 깨끗한 피부를 갖고 싶어한다.
우주의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이미지가 신선하다. 참신한 은유 바로 현대시조가 요구하는 소이이기도 하다. 시조는 별빛 같은 이미지 하나로도 충분히 명품이 될 수 있다. 이 시조가 그렇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3.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