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친병원을 찾아서/세훈
임진년 섣달보름날
고교 짝과 무궁화호에 기대어
효의 개념은 뇌리의 갈등을 안은 채
시대흐름을 타고 변형되는 모습을 찾는다.
식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목포역에서 택시로 갓 바위 너머
신흥동 복지관 옆 남도밥상
30년만의 친척형님 겸 동창생 만남의 정담은 깊었다.
700번 무안행 버스로 대양리 하차
목포 새한병원의 효친시설에는
고향 어르신의 마지막 휴식처로
이렇게 공동 관리하니 최선의 안식처다.
옛날처럼 연로하신 분을 모셨더라면
지난겨울 낙상이나 감기 등을
감내하기 힘겨웠을 것을
모든 자녀들은 크게 느끼며 안전한 곳이라 한다.
고향을 그리는 대표적인 옛집과
어머니 뵙는 향수는 정해진 시간 없이
가끔 들리는 마음이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실수인 듯 웃음과 함께 알아보신다.
스스로 연명할 수 없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시설이 없었다면 그 많은 환자가
각 가정마다 최소한 간병인이 한분 필요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화재나 사고사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모시는 자제분들은
더욱 독특한 효자로 보일뿐 그 어려움은 형언할 수 없으며
가족이나 노환자의 고통이나 외로움은 더욱 클 것인데
국가적 사회적인 도움으로 수명이 더욱 연장되는 현실이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는 모습을 보고
자녀들 대신 봉사하는 분들의 고마움을 간직하고
떠나오는 자식의 발걸음은
세리의 그 아픔과 함께 정리되지 않은 채 차에 기댄다.
2013.1.26(음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