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통화전쟁의 기운이 무르익고있다.때마침 우리나라 증시로 몰려드는 외국인 투자자금을 보며 "국제적인환투기세력의 공세가 시작됐다"는 자극적인 주장도 일부에서 터져나온다.이렇게 주장하는 인사들은 "정부는 시장개입을 멈추고원화절상(환율하락)을 용인하라"고 외친다. 과연 정부는 그들의 주장처럼`전세계적인 통화전쟁의 와중에서 손을 놓아야`할까?
◇달러가치, 순환의 역사달러/엔 환율은 1985년 9월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G5(서방선진5개국) 재무장관회의를 통해 극적으로 반전한다. 이른바 플라자합의이전까지 달러당 260엔대를 나타내던 환율은 직후 급락세로 돌아서며87년말 120엔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달러가치가 떨어지며, 반대로엔화가치가 올라간 것.
90년대 초반 150엔 수준까지 반등하던 달러/엔 환율은 95년 한때79엔대까지 폭락하는 극도의 엔고(高) 현상을 나타냈다. 일본 제품의가격경쟁력이 악화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위기감에 휩싸이는 동안우리나라에서 엔고는 `상대적으로 낮아진 원화가치`로 치환됐다. 일본과경쟁하는 대부분 수출품목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고 본 것.당시 경제계는 화가치 하락 등 3저(低)가 80년대 중반이후 다시찾아왔다며 쾌재를 불렀다.
이후 상승반전한 달러/엔은 98년 140엔수준까지 치솟은 뒤 수년간100~130엔 수준에서 등락하며 최근 110엔대후반에 걸쳐있다. 달러가유로화에 비해 상당히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엔화에 비해 이처럼상대적인 강세를 유지하고있는 것은 엔강세를 바라지않는 일본 당국의의지와 맞물려있다는 분석이다.
◇통화가치, 각국 정책방향의 산물미국 정부는 `강한 달러`라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버린 적이 없다. 그러나고위 인사들의 빈번한 발언들을 통해 시장에 미묘한 변화를 전해주고있다.한때 85센트에 머물던 유로/달러 환율은 얼마전 1달러20센트대까지 치솟은뒤 최근 1달러10센트대를 유지하고있다. 유로가 약세에서 강세로 극적인반전을 이룬 것. 미국 외환당국의 의지가 반영됐다는게 정설이다. 물론정부의 뒤에는 달러약세로 득을 보게될 미국 기업들이 버티고있다. 또미국경제가 쉽게 회복되지못할 것이란 판단아래 모건스탠리의글로벌이코노미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달러 가치가앞으로 12~18개월 안에 10~20% 추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일본 엔화나 거기에 사실상 연동돼있는 우리 원화는 상대적으로 달러에대해 약하다. 이는 환율수준이 높다는, 그래서 현재원화절상(환율하락)압력을 받고있다는 뜻이다. 중국 위안화가 극도의평가절상 압력에 시달리고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측이 엔와 원에 대해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중·일은 자국통화가치의 상대적 약세로 얻는 긍정적 부산물을 외부압력에 굴복해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통화가치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가져가는 정책은 대체로 수출의존도가 높을수록 강해진다.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에 대한 고민이적다면 더욱더 자국통화가 하락(환율상승)을 통해 수출가격 경쟁력을제고하는 선택을 하기 쉽다. 반대로 미국자본은 아시아 각국이 통화가치절상으로 내수부양에 나서라고 요구한다. 수출보다 내수로 돌파구를찾으란 뜻이다.
통화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결과일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각국정부가 취할 자세는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란 분석이다.
◇시장개입을 둘러싼 논란의 진실은통화전쟁은 결과가 정해진 게임이 아니다.
"세계자본이 달러약세를 원하고있으니 결국 이를 막으려는 한국정부는 질수 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일부 세력에게 `자유방임 시장`은 금과옥조다.그들은 `정부개입은 악(惡)`이란 단순공식을 자랑스럽게 여긴다.`원화절상을 용인해 우리가 훌륭한 나라임을 과시하자`는 주장마저 내놓을 정도다.
정부는 지금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한도를 4조원이나 늘리는 등외환시장 개입을 위한 실탄을 마련하고있다. 정부는 지금 증시에 밀려드는외국인 투자자금이 원화절상, 즉 달러/원 환율의 하락압력으로 작용하는상황에서 이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떨어지려는 환율을 왜억지로 막느냐는 주장은 여기서 나온다.
지금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건 우리만이 아니다. 시장규모가 우리보다 큰일본은 더 큰 규모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고정환율제를 택한 중국도 사실마찬가지다. 한중일 3국의 외환보유액이 1조달러에 이른다는 것은 결국지난 수년간 시장에 넘치는 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쌓았기 때문으로 볼 수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동아시아 국가들은 저평가된 통화가치, 즉 환율을최대 동력으로 삼아 성장을 지속해온 것이다. 물론 10년 불황에 시달리는일본이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에선 결코동정심이 생기지않지만.
◇특정 환율을 사수하진 말아야..종합적 고려가 핵심그럼 이 순간 동아시아 각국은 미국 자본의 논리를 받아들여 통화가치절상을 과감히 용인해야할까. `수출감소, 수입증가`라는 뻔히 보이는 길을걸어야할까. 그래서 무역적자 속에서 내수를 일으키고 경기가 회복되길 기다려야할까.
외환당국이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특정환율을 `사수`하기 시장에개입한다면 그건 문제다. 시장의 누적된 힘이 폭발할 때 보여주는 위력은지난 97년말에 뼈저리게 겪은 일이 있으니까. 그러나 통화가치의 급격한변화를 맞는 스무딩 오퍼레이션까지 `개입=악`으로 몰아부치는 건지나치다는 분석이다.
통화가치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가깝게는 교역조건에서부터 경기,물가, 금리동향 등 훨씬 다양한 정책조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