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해입니다. 이 이야기는 월드컵 분위기가 막 달아오를 무렵인 3월 27일 서울을 출발해 6월 2일 속초에 도착하기까지 68일간 모스크바에서 출발, 자전거에 몸을 의지한 채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해 백두산에 오른 두 젊은이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 추위와 죽음에의 두려움, 고통을 이겨낸 기록입니다..
비록 여러 가지 여건상 계획의 차질과 잦은 변경으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온몸으로 러시아를 겪으며, 결코 일반 여행객들이 접할 수 없는 러시아의 내부를 가로지르며 만난 풍물과 훈훈한 인간애가 풍기는 이야기,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만으로는 겪을 수 없는 러시아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줬던 여정!!
촬영차 따라나선 제게도 힘겨웠던 추억을 남기고, 시베리아에서 만난 고려인들의 애틋한 마음과 탈북자 안모씨, 그리고 연변에서 만난 조선족....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확인해 주었고 아직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며 가슴이 저려오는 기억들...
여행을 사랑하고, 즐기는 이들을 위해 혹,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못난 글 솜씨를 탓하지 않고 취재기를 남깁니다.
편의상 경어를 생략하고 일기 형식으로 올리니 양해 바랍니다.
1. 어긋나는 계획들, 출발은 힘들어 지고
2001년 10월에서 2002년 3월 사이
VJ Center를 통해 2002년 한국의 월드컵 홍보와 통일을 기원한다는 취지아래 독일에서 출발, 폴란드, 벨루로시와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연해주를 지나 백두산에 오른다는 자전거 대장정의 계획을 전해 듣고 이에 동행 취재하기로 결심을 굳힌 지 오래. 그러나 당초 참여인원 7명, 여행기간 6개월 여에 걸친 시베리아 자전거 대장정의 계획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 참가자가 두 명으로 줄어들었고 경비마련에 어려움을 겪던 횡단 팀은 결국 여행일정 3개월, 여행 구간은 당초 계획했던 여정 중 가장 어려운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모스크바에서 백두산까지로 여정을 축소했다.
이에 따라 최대의 희망을 걸고있던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의 후원은 유명무실해 졌고 스폰서에도 제동이 걸렸다. 동행 취재하기로 한 나로서도 "과연 작품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강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고 계획 자체의 실행마저도 의심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두 명의 결심이 확고했기에, 그리고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시베리아 자전거 횡단,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나를 자극했기에 단촐하나마 세 명의 여정은 시작됐다.
2002년 3월 12일
충북 제천에서 의류점을 경영하던 횡단팀장 이춘구(당시 45세)씨와 전남 여수로 향했다.
이는 본격적인 시베리아 자전거 횡단을 앞두고 세 사람(횡단 팀 2명과 촬영 팀 나 혼자)의 횡단 결의를 다지고 예상되는 시베리아의 추위에 적응하기 위한 예비 훈련과, 경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있던 김일호(당시 여수대학교 환경공학과 3학년; 26세)씨에게 힘을 돋아주기 위한 춘구씨의 배려이기도 했다.
부모님과의 갈등에다 경비마련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일호씨는 생각보다 어두운 표정이다.
자전거사랑 전남지부장과 만나 일호씨의 경비 일부 보조를 협의했으나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인근 계곡으로 향했다. 늦은 밤에 계곡에 도착, 어두운데 텐트 치고 오징어와 라면, 소주한잔으로 시베리아 횡단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의 문제점들과 그 동안 겪어온 어려움을 토로하고 준비물과 여러 가지 일정들을 각기 나누어 처리하기로 분배하고 끝까지 성공해 보자는 건배를 마지막으로 결의를 다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춘구씨와 일호씨의 표정이 약간 밝아진 느낌이다. 역시 사람은 서로 이야기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눔으로서 위로를 받는가 보다.
27일 출발을 앞두고 24일 서울서 미리 만나기로 약속.
2002년 3월 16일
한국일보, 동아일보와 스포츠신문 등에 기사가 실렸다.
일호씨는 이에 한껏 고무 된 듯하다.
3월 24일
가족의 걱정과 환송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했다.
카메라 두 대와 기타 촬영장비들, 추위를 대비한 침낭과 겨울옷, 약간의 비상식량, 조리기구 등 짐이 엄청나다. 하지만 이쯤이야!!, 서울가면 춘구씨가 나를 위해 준비한 자전거에다 더 구입해야할 의약품과 식량, 자전거 수리도구, 단복 등등 짐은 한층 늘어날거다.
춘구씨의 사촌동생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기로 하고 저녁식사 후 쇼핑에 나섰다. 추가로 필요한 물품들 구입하고 다음날 일정을 의논.
새로운 여행...모험이 시작된다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3월 25일
러시아행 항공권과 러시아내 각각의 대도시에서 우리 일행의 안내를 담당해 주기로 한 세명여행사를 찾았다. 혹시 모를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해 러시아 대사관에 전화를 해 우리 횡단 팀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공문 발급을 의뢰했는데 청천 벽력같은 대사관의 답변이 돌아왔다. 자전거 횡단은 러시아 교통담당 장관급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의무적으로 경찰을 대동해야 한다는...이런 ! 출발이 낼 모레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갑자기 횡단 팀의 얼굴에 먹구름이 감돈다. 러시아에 대한 사전지식이 너무 없던 횡단팀으로서야...그걸 생각해 보니 대책이 없다.
춘구씨의 제안으로 현재는 가락동 수산물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병화 박사님을 만나기로 했다.
이병화 씨는 전에 러시아 극동 지역의 농산물 국장을 지낸바 있는 러시아 전문가. 시장을 방문해 팀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더욱 절망적이다. 한 일본인 관광객이 자전거로 여행하다 곰에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며, 혹 연방 지역의 법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아무런 이유 없이 구금된다 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고, 게다가 심지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등의....이병화 씨는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고 여기저기 전화통화하고 협조를 구하려 했지만 모두 부정적인 답변들뿐....출발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마음만 급하고 .... 이대로 출발하기엔 너무 절망적이다.
다시 세명여행사로 돌아왔는데 마침 인터넷 동호회 "시베리아 사랑"의 시샾을 만났다.
우리가 들어온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 명료 했다.
모두 가 다 돈을 뜯기 위한 수작일 뿐 러시아 횡단 여정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그때그때 상황을 슬기롭게 넘겨 가라는 이야기며...자신이 직접 체험한 러시아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횡단 팀의 계획을 치하하고 아주 상세하게 만들어진 러시아의 교통지도와 각 도시의 지도들을 넘겨받았다.
횡단 팀의 얼굴에 다시 용기의 기색이 역력하다.
저녁, 다시 남대문 시장에서 휘발유 버너와 몇 가지 밑반찬 등 필요한 물품을 추가로 구입하고 인근 여인숙에 들었다. 경비를 절약하고자 12,000원짜리 방에 묵었는데 세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지경. 일호씨의 노트북이 말썽을 부려 고민에 빠졌다.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 한 대와 춘구씨가 준비한 자동카메라인데 필름은 아끼자고 약간만 구입하고 메모리도 부족해 노트북에 담지 않으면 사진 마저도 별로 못 찍을 상황이다. 다음날 수리 의뢰해 보기로 하고 간단한 맥주로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여전히 많은 변수들이 남아있고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도 남아있지만 무조건 부딪혀 보자는 쪽으로 의기를 모으고...
3월 26일
아침 일찍 노트북 수리를 의뢰하고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의 협조 공문이 필요할거라 여겨 시도해 봤지만 러시아 직원들 묵묵 부답, 한국인 직원도 여간 불 친절한게 아니다. 제 할 일만 하고는 마냥 기다려 보라는 대답, 그리고 영사는 만나주지도 않고....결국 답답한 마음만 뒤로 한 채 물러설 수밖에...
농협에서 생식을 구입하고 자전거 용품을 준비하기 위해 송파 코렉스를 찾았다.
횡단 팀의 취지를 설명하고 신문기사를 보여주자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이것저것 자전거 수리용품과 소모용품들을 챙겨 주신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잊지 않고...고마우신 분이다. 일단 필요한 자전거 용품들은 해결됐고...아직 미진한 채로 남아있는 러시아 내부 사정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이병화 박사가 소개해준 러시아 전문 여행사 직원을 만나기로 했다. 러시아 횡단에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지만 위험할거라는 이야기와, 적극 협조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떤 도움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황. 그래도 많은 위로가 된다.
저녁은 세명여행사 직원과 함께 하고 홍은동 부근 여관에서 출발 전야를 맞았다. 일호씨가 여권을 식당에 두고 와 다시 안국동까지 다녀오는 해프닝 끝에 두 사람의 심경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이제 떠난다는 실감이 와 닿는다.
첫댓글 정회원 등급업 축하드립니다.
와 대단하십니다 다음글이 기대되는군요 빨리올려 주세요
힘든일을 하셨네요..국가의 위상을 높이신거 같아 감사합니다..
관심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국가의 위상??.뭐 그런건 아닙니다.이거 좀 쑥스럽네요..
오와~~정말 대단 하십니다 그 넓은 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