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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열매들의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임마누엘
Regeneration v The Idolatry of Decisional “Evange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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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Washer
When we look at Romans 1:16 we understand that the apostle Paul was not ashamed of the Gospel: “For I am not ashamed of this Good News about Christ. It is the power of God at work, saving everyone who believes”
Now this might seem unusual to some of us that he has to make that statement, being an apostle; a principle carrier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But in reality, Paul’s flesh has every reason to be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the Gospel he preached contradicted everything that was believed to be true and everything that was believed to be sacred in his culture.
Paul makes no attempt to be relevant to his culture. He makes no attempt to make treaty with his culture, adapt his message to the culture, re-package his message, or any of the other non-sense that has become so prominent in the evangelical community today.
To the Jew, the Gospel was the worst sort of blasphemy because it claimed that the Nazarene who died on that cross, a cursed thing in Jewish culture, was the Messiah and the Son of God. To the Greek it was the worst sort of absurdity, because it claimed that this Jew from some out-of-the-way place was actually God in the flesh.
Therefore Paul knew that whenever he opened his mouth to speak the Gospel, he would be utterly rejected and ridiculed to scorn, unless the Holy Spirit intervened and moved upon the hearts and minds of his hearers. This is what he knew and this is what you should know. If you are properly preaching the Gospel it will be scandalous and if you try to make it less of a scandal you no longer preach the Gospel.
I want to quote from some contemporaries of primitive Christianity:
Pliny the Younger writes: “After examining the beliefs of two Christian slave-girls under torture, I discovered nothing but a perverse and extravagant superstition”.
In the dialogue Octavius by Marcus Minucius Felix, he derides the Christians saying: “Their ceremonies centre on a man put to death for his crime and on the fatal wood of the cross”. He goes on to say: “Christians put forward sick delusions, a senseless and crazy superstition which leads to the destruction of all true religion”.
I know I may offend many on this but most modern-day church-growth strategies used in evangelical churches, their main focus is to get around the very thing I just read.
An oracle of Apollo, preserved in the writings of Augustine, in response to a man’s question about what he can do to turn his wife away from the Christian faith says this: “Let her continue as she pleases, persisting in her vain delusions, and lamenting in song a god who died in delusions, who was condemned by judges, whose verdict was just, and executed in the prime of life by the worst of deaths, a death bound with iron.
Lucian, who is basically the Voltaire of antiquity, mocks Christians in his De Morte Peregrini as poor devils who deny the Greek gods and instead honour that crucified sophist, and live according to his laws.
In Origen Adamantius’ work, Contra Celsum, Celsus declares: “What drunken old woman telling stories to lull a small child to sleep would not be ashamed of uttering such preposterous things”.
In our day, the primitive Gospel is no less offensive, for it still contradicts every tenant or “ism” in our culture: relativism, pluralism and humanism.
중생VS 결정적인 "복음주의"우상숭배
로마서 1장 16절을 볼 때, 우리는 사도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지금은,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리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별일이 아닌 듯 여겨집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바울의 육체는 그의 문화 속에서 자신이 진실이라 믿어왔고,신성하게 믿어졌던 모든 것과 모순된다고 그가 설교했던 복음으로 인해, 복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모든 이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문화와 관련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화와 조약을 맺으려하지도, 자신의 메시지를 문화에 적응하려고도, 자신의 메시지를 재포장하거나, 오늘날 복음주의 단체에서 너무도 현저히 드러나고있는 어떤 무의미한(헛튼) 것도 시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유대 문화에서 저주받았던,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한 나사렛이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했기 때문에 신에 대해 가장 불경스러운 것(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헬라인)에게 있어서 복음은 가장 어리석은 것이었는데, 어떤 외딴 장소로 부터 온 이 유대인이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하기만하면 언제든지, 성령께서 중재하시지않고 청중들의 마음과 생각에 감동을 주심이 없었다면, 완전히 거절당하고 경멸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알았고,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러분께서 복음을 전한다면 비방받게 될 것이고, 여러분이 비방이 줄어들도록 노력한다면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당대의 원시적인 기독교(초대 교회)로 부터 몇 가지 인용하고자 합니다.
Pliny란 젊은이는 기록합니다.: "고문을 당하는 두 그리스도인 노예 소녀들의 믿음을 조사(검토)한 후에, 나는 뒤틀리고 기발한 맹신만을 발견했을 뿐이다"
Marcus Minucius Felix의 옥타비아누스 대화에서, 그는 "범죄로 십자가에 운명적으로 처형된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의식" 이라고 그리스도인들을 비웃으며 말합니다. 이어 그는 " 그리스도인들은치명적인 망상, 무감각 그리고 모든 참된 종교를 파멸로 이끄는 맹신을 내세운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이 많은 이들을 불쾌하게 할지 모른다고 알지만,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들이 이용하고있는 현대 교회 성장 전략이며 그들의 주 촛점은 제가 막 읽었던 바로 그런 것들을 피하고자 하는 것들임을 압니다.
아우구스틴(티스)의 저서에서, 자기 부인을 그리스도인 믿음에서 돌아서게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누군가의 질문에 답한 아폴로 계시(신탁)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그녀가 계속 즐기도록 하라. 헛된 망상을 고집하며, 심판에 의해 그의 평결이 바로 그것이며, 저주받아 철에 묶였던 가장 최악의 죽음으로 최고의 삶을 집행받고, 망상 속에서 죽었던 신의 노래 속에 비탄하도록"
기본적으로 고대 볼테르같은 루시안은 그의 페레그리니의 죽음( De Morte Peregrini)에서 그리스도인들을,그리스 신들을 무시하고 대신 처형된 궤변가를 숭상하며, 그의 법에 따라 살았던 가련한 악마들이라고 조롱합니다.
Origen Adamantius(기독교 신학자)의 저서 Contra Celsum(켈수스의 논박-이교도 켈수스가 기독교 신앙을 반대한 것에 반박한 글-역주)에서 Celsus는 선언합니다:"어린 아이가 잠들도록 달래며 술취한 노인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그런 터무니없는 일들을 말하는것으로 부끄러워지지 않을 것이다" (술취한 노인의 말이 예수님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보다 낫다는-역주)
오늘날, 원시적인 복음은 마찬가지로 불쾌한데, 여전히 모든 우리 문화 속에서 tenane즉~상대주의, 다원주의 인본주의의 주의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aul Washer)
첫댓글 기독교에 세상의 문화를 접목시키는것이 얼마나 세속화시키는 것인지 모릅니다.복음주의가 그러한 것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지요.교회성장을 위해서 온갖 프로그램을 동원하는 많은 교회들은 영혼을 구원에 대해선 관심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세속화되기 쉽습니다.
오직 성경적인 기독교(그리스도교)만이 복음과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 교회성장주의에 빠진 곳에서 나와 경건의 능력이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