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보스 / 사진=Unsplash
스위스는 많은 사람들이 버킷리스트 여행지로 꼽는 나라다. 희한한 건 스위스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의 특성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 신혼여행, 계모임, 가족여행, 우정여행 심지어 혼자 여행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여행지다. 마니아층이 많아지면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여행지는 지금 서유럽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여행지 중 하나가 됐다.
스위스 N회차 여행자라면, 흔하디흔한 ‘인터라켄’ ‘체르마트’는 그만 가고 싶다는 여행자라면 스위스 동쪽 끝 그라우뷘덴(Graubunden)주를 추천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아직 생소한 그라우뷘덴주는 스위스 주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지역이다. 그라우뷘덴주에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쿠어(Chur)부터, 전 세계 억만장자들이 모인다는 다보스(Davos) 그리고 스위스 속 작은 이탈리아 포스키아보(Poschiavo)까지 소소한 여행지가 많다.
아직은 낯선 스위스의 보석 그라우뷘덴
그라우뷘덴주는 스위스 동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칸톤(Canton)이다. 칸톤은 스위스를 구획하는 행정 구역 단위로 주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 스위스는 그라우뷘덴주를 포함해 26개의 칸톤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그라우뷘덴의 총면적 7105㎢로 인구는 약 20만 명이다. 남부 알프스에 자리 잡고 있는 그라우뷘덴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과 접한다.
공용어는 독일어, 이탈리어, 로만슈어(라틴어에서 파생된 스위스 언어)를 택하고 있는데,26개 주에서 유일하게 3가지 언어를 공용어로 가지고 있다. 해발고도는 260m부터 시작해 4000m가 넘는 고봉까지 다채로운 지형을 품고 있다. 최남단에서는 포도와 올리브를 키우고 4000m 고봉에는 1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라우뷘덴주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그라우뷘덴은 흔히 생각하는 스위스의 이미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라우뷘덴주 여행은 베르니나 특급으로
베르니나 특급 열차 외관과 내부 모습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베르니나 특급 열차 외관과 내부 모습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그라우뷘덴을 여행할 때 가장 중심이 되는 수단은 기차다. 그라우뷘덴에서 시작한 철도 회사 래티셰반(Rhatische Bahn)은 스위스 사설 철도 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래티셰반은 현재 정기편 열차와 더불어 다양한 관광열차를 운행 중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 빙하 특급(Glacier Express)과 베르니나 특급(Bernina Exporess)인데, 베르니나 특급만 타도 웬만한 그라우뷘덴 명소 구경이 가능하다.
베르니나 특급 열차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알프스 빙하부터 이탈리아 야자수까지.’ 베르니나 특급은 그라우뷘덴 주도 쿠어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티라노(Tirano)까지 122㎞를 달린다. 전체 구간 중 초반 30㎞를 제외하고 전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기찻길이다. 2008년 유네스코는 투시스(Thusis)에서 생 모리츠(St.Moritz)까지 이어지는 알불라(Albula) 라인(67㎞)과 생 모리츠에서 티라노까지 이어지는 베르니나 라인(61㎞)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알불라 라인은 1898년에서 1904년, 베르니나 라인은 1908년에서 1910년에 완성됐다.
베르니나 특급 / 사진=스위스정부관광청
알프스를 넘나드는 베르니나 특급은 총 55개의 터널 196개의 다리를 지난다. 기차는 4시간 동안 100년도 넘은 기찻길을 따라 달리며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라인 협곡(Rhine Gorge)’을 파고들었다가 별안간 해발 2000m에 달하는 베르니나 산맥의 지류를 넘어 야자수가 살랑거리는 이탈리아 북부까지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라우뷘덴 여행지 TOP3 : 쿠어, 다보스, 포스키아보
그라우뷘덴을 대표하는 여행지 세 곳을 골랐다. 베르니나 특급을 타고 지난 10월 직접 다녀온 곳들이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쿠어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쿠어 / 사진=스위스정부관광청
첫 목적지는 그라뷘덴의 주도(主都) 쿠어다. 북서쪽으로 라인강이 흐르고 뒤로는 고봉이 버티고 있는 고대 도시 쿠어는 로마 시대부터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쿠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무려 기원전 39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쿠어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4세기에 알프스 북쪽 지역에서는 최초로 주교가 머물면서 세력을 떨쳤다. 쿠어는 과거 독일과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상인과 물자가 모이는 큰 장이 열리면서 도시가 점점 풍족해졌지만 1464년 큰불이 나면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다. 현재 도시는 1464년 이후 재건한 모습이다.
쿠어는 올드타운이 핵심이다. 올드타운에는 차량 운행이 금지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거리 곳곳을 걸으면서 관광할 수 있다. 그라우뷘덴 예술 박물관에서 시작해 세인트 마틴 교회, 성모 승천 대성당 등을 위주로 구도심 도보 여행을 추천한다.
억만장자들의 겨울 여행지, 다보스
다보스는 스위스 현지인은 물론 유럽 사람들에게 최고의 겨울 여행지로 꼽힌다. 다보스에서 직접 만난 지역 홍보담당자 페트라(Petra)는 기자에게 다보스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었고 고민 없이 ‘세계경제포럼(WEF)’라고 답했다. 페트라는 “다보스 포럼은 고작 1주일 열린다. 다보스에는 세계경제포럼 말고도 이야기할 것이 너무 많다”며 “다보스가 단지 경제포럼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보스의 자랑 샤잘프 / 사진=schatzalp.ch
페트라가 추천한 다보스 대표 명소는 ‘샤잘프(Schatzalp)’였다. 1900년에 문을 연 샤잘프는 본래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이었다. 아르누보 스타일로 지어진 이곳의 설립자는 네덜란드 기업가 빌렘 얀 홀스보어(Willem Jan Holsboer, 1834~1898). 이곳 풍경에 매료된 그는 해발 1900m 산 중턱에 최고급 요양병원을 지어 유럽 전역에 오는 손님을 받았다.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은 아내의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샤잘프를 찾았고 샤잘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마의 산’을 집필했다고 알려졌다.
스위스 속 이탈리아 마을, 포스키아보
브루지오 나선 고가교 / 사진=스위스정부관광청
포스키아보는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마을에 들자마자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인구 3000명 밖에 되지 않는 포스키아보에는 알프스 산간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오래된 가옥 카사 토메(Casa Tome)가 있다. 포스키아보 여행의 시작과 끝은 기차다.
마을로 들기 전 알프 그룸(Alp Grum)역과 100여 년 전 개통한 브루지오 나선 고가교(Brusio Spiral Viaduct)도 꼭 들러야 한다. 알프 그룸에서는 팔뤼(Palu) 빙하와 어우러지는 알프스 절경을 감상할 수 있고 브루지오 나선 고가교에서는 스위스 철도의 기술력과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키아보 / 사진=홍지연 여행+ 기자
포스키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