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16,「채석강」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태곳적 바닷물이
시공간 건너와서
바위 책 층층마다
새겨둔 세상 얘기
파도가 전기수처럼
밤을 세워 읽고 있다
- 우수향의 「채석강」
채석은 책장이요, 책 읽는 이는 조선의 선비이다. 채석강은 서재이다. 거기에서 철얼석, 처얼석 밤을 세워 파도가 책을 읽고 있다.
어떤 사람이 산수화를 그려 달라고 했다. 최북은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았다. 사람이 그를 나무라자 최북은 붓을 던지며 말했다.
“이 사람아! 종이 밖은 모두 물이다.”
채석강과 파도만 그려져 있다. 나머지는 전부가 바다이다. 여백, 이것이 시조이다.
큰형님 대학 간 날 어미소가 없어졌다
마구간 기웃대던 초승달도 저리 울고
아버진 아무 말 없이 대폿잔만 들켰다
- 설상수의 「소 판 날」
큰형님이 대학 간 날 어미소가 없어졌다. 마굿간 기웃대던 초승달이 저리 울고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대폿잔만 들켰다. 초승달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실만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여운이 남는다.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대포잔만 들켰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이다. 그 옛날 소는 재산목록 제 1 호였다. 그것을 아들 등록금을 대기 위해 어미소를 팔았다.
12개의 돌을 자기 자리에 놓았다. 여운, 이것이 시조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14.1.24.(수)제6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