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15, 「맨드라미」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고향집 앞 마당에
붉은 볏 맨드라미
부지런히 땅을 긁던
토종닭 서너 마리
꼬끼오 수탁 울음이
꽃 속에서 들렸다
- 김정의「맨드라미」
묘하다. 신비롭다. 고향집 앞마당에 있는 수탁 볏 맨드라미. 꽃 속에서 꼬끼오 하고 수탁 울음 소리가 들렸다. 맨드라미를 수탁 볏으로 환치시켰다. 수탁 볏, 맨드라미는 진부한 표현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수탁 울음소리가 꽃밭 속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진부한 시각 은유를 새로운 청각 은유로 반전시켰다. 색과 소리가 둘이 아닌 하나로 만들었다. 불이(不二)이다. 불이는 부처님의 깨친 마음자리, 대립을 떠난 경지를 말한다고 한다. 감각적 이미지만 달리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말해봐
까만 꽃씨
무엇을 쥐고 있니?
한모금
햇살이니?
한주먹 바람이니?
아니야
내 품 안에는
새 봄이 자고 있어
- 이정례의 「꽃씨 속에는」
쉿! 꽃씨보고 무엇을 쥐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햇살이니 바람이니? 아니야, 새 봄이 자고 있어.
밖에는 날씨가 춥다. 따듯해지면 자연 깰 것이니 깨우지 말라는 것이다. 따듯한 시 한편이다.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시도 있지만 따듯하게 느껴지는 시도 있다.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마음이 따듯하지 않으면 이런 시를 쓸 수가 없다. 시보다 마음이 먼저이다. 시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다. 글은 바로 그 사람이라 하지 않았는가.
주간문학신문 202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