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아찌!"
어제, 오랜만에 그 이름을 다시 들었다.
마흔을 넘긴 아이들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예전처럼 불러 주었다.
막내는 어느새 서른을 넘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 아이의 결혼식에서는 내가 주례를 섰고, 이제는 그 아이의 아이가 자라며 또 다른 세대를 이어 가고 있었다.
나는 부모의 소망을 담아 지어진 이름이 있다.
내 뜻을 담은 닉네임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이름 하나가 더 있다.
'황아찌'다.
아내에게는 친척보다 더 가까운 이웃 언니가 있었다.
그 집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은 형제처럼 자랐다. 아이들은 아내를 '황엄마'라 불렀고, 나를 '황아찌'라 불렀다.
장난처럼 시작된 이름이었다.
함께 밥을 먹고, 아이들을 돌보고, 기쁨과 걱정을 나누는 동안 그 별칭은 어느새 우리를 가장 잘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분당 집 거실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기의 옹알이가 가득했다.
생명의 울림은 오래된 추억 위에 새로운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나를 지난 젊은 날로 데려갔다. 뛰어놀던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세월은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지금도 그들은 내 성이 아니라
아내의 성을 따라 나를 '황아찌'라 부른다.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젊은 날의 웃음과 분주했던 저녁, 함께 키우던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심한 두통으로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생명이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은 아픔마저 잠시 잊게 했다.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그 아이들이 다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복이다.
한 사람의 삶이
다음 세대의 웃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이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이름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살아가며 얻는 이름은 관계를 품는다.
그 이름에는 함께한 시간과 사랑, 그리고 서로를 기억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나에게 '황아찌'는 우연히 붙은 별칭이 아니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내게 남겨 준 또 하나의 이름이다.
언젠가 기억이 흐려지는 날이 오더라도, 누군가가 "황아찌" 하고 불러 준다면
그 이름 속에 담긴 따뜻한 시간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내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 주셨지만, '황아찌'라는 이름은 함께한 아이들이 내게 지어 준 이름이다.
'황아찌'
그 이름은 지금도 내 삶을 따뜻하게 이어 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첫댓글 이름은 사람을 구별하지만,
살아가며 얻은 이름은 한 사람의 삶을 증명한다.
누군가가 나를 '황아찌'라고 불러 주는 한,
나는 그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좋습니다~^^
첫 글로 은근히 격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내의 성을 따라
불린다는 것은 아내의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오늘도 그렇게 뒤따르며 삽니다.
@본 어게인 노후를 잘 사시고 계시는겁니다.
젊어선 아내가 남편을 따르고
늙어선 반대로
이유는 알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