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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칼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양승
노래가 있다. ‘불효자는 웁니다’. 우는 건 실은 불효자가 아니라 ‘흙수저’다. 자신도 먹고살기 힘든 판에 부모 봉양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한국은 목소리 크면 갑이다. 선거 국면에선 더욱 그렇다. 표 몰이 때문이다. 말만 잘하면이 아니라 말만 크게 하면, 공짜다. 공리다. 하지만 경제 원론에 공짜는 없다. 공짜로 보일 뿐, 누가 벌어 대신 낸 것이다.
요양원의 노인들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반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선 관심이 지나치다. 바로 저출산 정책이다.
출산은 선택이다. 정부가 애를 낳을 때까지 즉 ‘미래 완료형’으로 혜택을 베푸는 건, 노령층을 향한 역차별이다. 사람은 모두 늙는다.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인들은 쓸쓸히 늙어간다. 노인들을 위해 인정을 베풀 필요가 있다. 요양병원 실태들을 점검, 노인들이 돈을 낸 만큼이라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애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식의 저출산 정책은 어리석다. 효과가 없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애를 낳지 않는다. 출산률이 높아졌다고 호들갑 떠는 언론 보도가 있다. 만약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더 큰 문제다. 원래 애를 낳지 않으려 했다가 돈을 준다는 소식에 애를 낳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가 갖고 싶은 부부는 어떻게 해서든 자력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고자 한다. 결혼할 때 이미 아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런 부부에게 아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냉정히 짚자. 자신도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식을 잘 돌볼 수 없다. 여유 있는 가정이 애를 더 낳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상속세 감면이다. 여유 없는 가정을 상대로 돈을 줘 출산을 독려하는 건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하나 더 짚을 건, 저출산과 국가 경제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양자 간의 상관성은 주류 경제학계에서 논의된 적도 없거니와 근거도 희박하다. 높은 인구 밀도는 오히려 삶의 질을 해친다. 한국이 ‘헬조선’이 된 이유도 같다.
입만 열면 AI 로봇 시대가 도래한다 노래를 부르고, AI의 노동력 대체로 인한 실업을 걱정하는 와중에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건 모순이다. 노동력이 줄지 않고 대체되는 경우, 그 나라의 생산 가능성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기술력 신장을 통해 생산 가능성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면 돈을 쓸 사람들이 줄어 총수요 감소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모양인데 이 또한 근거가 희박하다. 사람이 돈을 쓰는 것 같지만 실은 돈이 돈을 쓴다. 빈곤 인구가 아무리 늘어도 총수요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문제만 가중될 뿐이다.
사람만 소비주체가 되라는 법도 없다. 부유층 반려동물들의 소비 규모도 작지 않다. AI 로봇도 소비 주체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생산성 향상과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돈을 퍼부어 출산을 장려하는 건 어리석다 못해 매우 위험하다.
총수요 진작을 위한다면 정책의 초점을 노인들에게 맞출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노령화 추세는 매우 뚜렷하다. 더 뚜렷한 건, 노령층에게서 발견되는 소비 여력 부족이다. 정부 지원도 저출산과 육아에 편중됐다. 한국은 노인들이 돈을 써야 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다.
대선 정국을 맞아 정책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돈을 어딘가에 퍼붓겠다는 것인데 재원 마련 계획은 빠져 있다. 그나마 노인들을 위한 정책은 거의 없다. 대부분 청년, 젊은 엄마 아빠들을 위한 것이다. 그 젊은 계층도 모두 노인이 된다. 그들의 자식 누군가는 미래에 불효자가 되고, 불효는 계속 대물림된다. 노인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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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승 군산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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