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4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우리가 거듭난 것 곧 위로부터 생명을 얻은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깃인데 이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만물 안 곧 이 땅에 있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마르고 떨어집니다.
하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저에게 들려주신 복음이 바로 그 말씀임을 믿습니다(벧전 1:23-25).
복음이 나를 살리는 생명임을 알지 못했던 어리석은 자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다고 하면서 내 맘대로 살던 자였음도 고백합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나를 불구덩이 속에서 건져 주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아가오니 새 영과 새 마음을 두시어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전부가 되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22:1-16
제목 : 슬기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는 백짓장 한 장 차이다.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16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 나의 묵상
(3절)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슬기로운 자 곧 지혜로운 자로 표현된 히브리어 아룸은 그 의미가 교활하다 또는 약삭빠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창세기 2장과 3장에서는 하와를 미혹하는 뱀과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순전한(아룸) 아담과 하와를 표상한다.
(창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3:1a)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다는 것은 원래 인간은 벌거벗은 존재이며 비참한 존재이다.
하지만 아버지 품에 거할 때 벌거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존재이다.
여기서 간교한으로 번역된 아룸은 뱀이 행한 그 약삭빠르고 흉측한 행태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번역한 단어이지, 원래는 아주 순전하고 귀여우며 인간과 친숙한 애완동물처럼 생겼었다.
그렇기에 마귀가 이 뱀에게 하와를 미혹할 수 있는 간교함을 넣어서 미혹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원래 아룸이라는 단어는 순전하다, 친숙하다, 오늘 본문 3절처럼 슬기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아룸 곧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는다.
이처럼 사람의 슬기 지혜는 한 끗 차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룸 곧 슬기롭게 지으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들 앞에 있는 선악과를 보고 진짜 슬기롭게 숨어 피하지 않고 이를 덥썩 물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선악과를 보자 그것이 너무나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한 이는 다름 아닌 그와 가장 친숙하게 교제했던 뱀이었다.
뱀이 하와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 3:1b)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교활하고 슬기롭다는 뱀이 마귀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할 때 하와는 그 안에 가득한 허영심으로 그 선악과를 보자 먹지 않고는 베기지 못하는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를 보니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지,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먹으라고 준 것이다.
그들이 진짜 슬기로운 자(아룸)들이었다면 이를 먹지 않고 피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미혹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 따서 먹었다.
그것은 곧 뱀이 말한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자기 의로 인함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슬기로운 자로 지음을 받았지만 그 슬기 곧 지혜인 아룸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허영심과 공명심을 위해서 사용하였다가 결국 화를 당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선악과를 보고 그런 허영심과 자기 의의 마음이 들 때 숨어 피했어야 했는데 이들은 그 유혹을 찾지 못해서 먹고난 이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수풀 사이로 숨어버린 것이다.
(창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사람의 슬기와 지혜는 백짓장 한 장 차이다.
문제는 재앙을 보면 그것이 자기를 죽이는 미끼라는 것을 알고 숨어 피하여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재앙 앞에서도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공명심이 발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 같은 자이며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본성의 소리, 본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태 신앙인이다.
어려서부터 교회가 나의 놀이터였고 나의 집이었다.
그래서 늘상 교회에서 살았다.
그리고 후에는 이렇게 목사와 선교사가 되어 주를 위하여 나의 전부를 바친 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이 주시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내 속에서 나오는 본성의 소리에 집중하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그것은 나의 의를 위한 소리도 아니다.
그저 나의 육체적인 본능을 충족시키는 짐승의 본성에 다름 아니다.
정말 육신의 본성의 소리가 내 속에서 나오면 그것에 꼼짝 못하고 사로잡히는 나를 본다.
그럴 때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말씀하시지만 성령의 말씀은 외면해 버리고 내 본성의 소리만 듣고 그대로 행하는 나를 본다.
이런 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나를 결코 떠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본성을 따라 행할 때조차 내 마음 한 켠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울며 계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외면한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면서 말이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내가 아무리 악한 자일지라도 나를 점령하신 성령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나를 품으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연약하며 출입을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같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나의 주님이 나를 꼭 껴안으시며 당신의 품안에 품어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이 땅에서 기적적인 일을 체험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날 품어주심을 믿는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말로 다할 수 없는 괴악한 짓을 저지른 자를 주님께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품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나야말로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의 사람이며 제2 제3의 아담임을 고백합니다.
창세전에 나를 택하시고 그 언약 안에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일갈하셨던 주님의 독설 곧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고 외치셨던 그 욕은 다름 아니라 나를 향하신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백번 천번을 들어도 모자랄 욕인데 나는 주님의 그 깊으신 뜻을 알지도 못한 채 내 맘대로 자행자지 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셨습니다.
그 은혜 앞에 오열합니다.
나의 가슴을 치며 이 무지한 나를 돌아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제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나의 소망이 오직 주님임을 알아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그 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진짜 슬기 있는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