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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예술과 그의 인간비밀
-요절한 김유정군을 조함-
김문집(金文輯)
고 김유정군은 조선의 사랑이다. 조선의 피도 아니고 넋도 아니고 오로지 사랑이었다. 한배 계셔서 그의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찾으실진대 유정은 머뭇머뭇하면서 고개를 숙인채 임의 무릎 앞으로 이끌려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잃은 고기가 더 커보인다는 격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기왕 잃은 고리가 애써 더 적게 볼 필요는 아예 없을 것이다.
이런 말 하면 좀 무엇하게 들리겠지마는 사실 나는 김유정군을 인간적으로는 잘 모르는 사나이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사적(史的)으로는 나는 군과 가장 깊은 인연을—그도 꼭 한번 맺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는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친하지도 못했거니와 이렇다는 교제도 없었다. 따라서 나는 군의 인간적 사실에는 그의 동창이요 친우인 안회남군에 비하면 전연 무지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현하 조선문단의 가장 아름다운 신진작가요 근대 조선문학 수립 이래의 드물게 보는 조선언어의 전통미를 살린 작가로서의 김유정군을 두고 두고 사랑했던 것뿐이다.
망자를 두고 또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선비의 덕이 아니겠지마는 예술가로서의 군은 감각이 일찍 이를 간파했음을 나 역시 간파했기 때문에 아무런 괴로움 없이 공개하거니와 나는 인간 김유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다. 만약 그가 악인이었으면 또 혹 나는 그에게 매력을 더 느꼈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면 김군은 선인이었기 때문에 강한 매력은 느끼지 못했나 하면 그도 아니다. 그는 물론 선인이다. 과하다시피 선량한 백성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때벗지 못한 우울이 숙명적으로 그의 위인을 의장시키고 있었다. 숙명적으로 의장한 우울이면 그 우울은 선천적으로 때벗은 우울이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울은 나의 인간적 취미를 흡족하게 어필하지 못한 것을 보면 거기에는 필시 어떤 부자연이 성분되어있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이 의문이 사실인즉 나를 괴롭게 하는 군의 souvenir이며 또 이 안타가운 “수브닐”이 실상은 오늘의 나로 하여금 군의 인간을 재론케 하는 데 주요한 모멘트를 지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러면 네 취미는 어떤 취미냐?” 하는 반성을 접수치 아니치 못한다. 이에 대해서 나는 그 답변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인식상의 취미를 향락하고 싶은 자이나 나의 이 현기(衒氣)는 유정군의 우울과는 대차적인 형기형식이라 이 형식 아래서 나는 고 군의 인간상의 비면에 저촉코자 하는 바이다.
(3월 30일 오전 0시 30분)
군은 강원도 춘천산. 휘문을 아마 마치지 못한 채 연전과 보전에 1, 2개월씩 다녀 보았으나 가세가 경쇠했다기보다 재미가 없어서 일여히 집어치우고 방랑과 직업을 섞어 맛보았으니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일등으로 당선했을 적에는 군의 직업은 실로 “금광쟁이 뒷잽이”였다. 광쟁이 따라 다니면서 밥도 얻어 먹고 술도 얻어 먹고 등기소 심부름도 하고… 아마 그렇게 하고 돌아다닌 모양이다. 그 군의 집안은 어떠했느냐 하면 춘천서도 손꼽는 가문으로 수삼천석 추수를 했다 한다. 아버지와 형이 가산탕진의 경쟁을 한 것은 군의 소년 시대의 일이었다.
삼십세을 일기로 영면의 침실을 찾아 군이 광주로 떠나기는 아마 열흘도 못되는 최근의 일이겠지마는 그때까지 군이 와병한 동대문 안 충신정의 셋방은 사실인즉 행방불명의 탕자(군의 형)가 남긴 근실한 한 아들이 그의 경건한 어머니(유정의 형수)와 수줍은 누이(유정의 조카)와를 적수단신으로 호구시켜온 연한의 소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최하층의 생활을 전전하는 동안 군의 문명은 욱승의 세로 문단을 휘황케 한 것이었으나 이 꽃다운 이면에는 그러나 생활 문제 이외의 크나 큰 다른 문제 하나가 포장되어 있었음을 우둔한 나는 군이 죽기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제사기적 중환에 빠진 군을 구출코자 하여 내가 문단을 총동원시켜 한 마당의 연극을 했을 적의 군의 뜨거운 심회는 오호! 이제야 나를 괴롭게 하는 바 있구나! 진실로 군을 죽인 자는 내가 몰랐던 군 자신의 비밀이었다.
비록 귀공자의 형용은 하고 태어났으나 군은 원래부터가 포유(蒲柳)의 질은 아니었다. 그를 폐병으로 몰아간 것은 그의 술의 탓이요. 우리의 선량한 유정으로 하여금 그만큼 술을 요구케 한 것은 그의 청춘의 특권이었다. 청춘의 특권? 비꼬인 군의 특권은 그의 일대의 실연이었다.
내가 남의 사정도 모르고 단지 내 자신의 문학애와 인간적 정렬로써 군의 존재를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가장 꽃답게 인식케 한 그 운동을 선언했을 적은 군의 사랑의 대상이 약혼했던 모군과 신혼생활을 전개한 지 벌써 일개월이나 — 아니 꼭 한달쯤 되는 바로 그 때의 일이었다. 그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이같이 파혼의 김군은 폭주로써 제 자신에게 도전했다. 단시일 내에 그의 폐는 초년급에서 삼년급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그의 우울은 숙명화했다. 그 우울을 운위하기 전에 군을 위하여 어떤 글 한 절을 삽입하자.
— 일찍 그는 나를 찾았으나 나는 그를 만나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모일 나는 조광사서 병적으로 겸손해 보이는 특이한 어떤 인물 하나를 유심하게 관시했다. 그는 질소한 한복을 입은 원기 없는 미남자였다. 그 무성하고도 일종 조화를 이룬 두발 풍경으로써 나는 그가 구파에 속하는 우울의 시인인가 하는 인상을 얻었다.
대감 앞에 나온 죄인과도 같은 공손한 태도로 편집실에서 무슨 용건을 마치더니 그는 묵묵한 얼굴로 혼자 돌아가는 것이었으니 그가 곧 김유정군이었다.
그 후 군은 또 한번 나를 찾았으나 역시 만나지 못하였다. 그 때는 벌써 나는 그를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멀리 두고 보는 것이 더 흥미와 맛이 있을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우리는 도상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바꾸지 않으면 아니 되는 아름다운 운명을 호흡했다.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보니 「안해」에서 촉취한 나의 순수 추측과 조금도 틀림없는 친구였다.
오랫동안 소식 없던 김유정군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불길의 예감!…… 나는 불현듯이 군의 봉투를 먼저 뜯었다.
— 미지근한 눈물 한 줄기를 안면에 감촉했을 적에는 내 눈이……(중략) — 나는 그날밤은 어쩌는 수도 없어서 홀로 베개를 안고 그의 인생과 조선 작가의 경제 상태의 호개의 일상징물로서의 군의 존재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너무나 서러웠다. 제3기의 중환에 빠져 의식을 결하는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약 한 번 못 쓰고 집 자식이 죽게 되면 위문객이 다 날아들어오고 당천축(唐天竺)의 “위문품”이 둘 곳 없이 뭉치뭉치 뛰어들어 오건만 빈사의 청년 예술가 김유정에게는 이처럼……? 나는 의분을 느꼈다기보다 이(齒)가 갈려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채 — 동녘이 밝아 왔다. 운운 —
부자연하게 느끼어졌던 군의 Souvenir — 김군! 나는 내 일류의 현기(衒氣)형식을 다하기 위하여 역시 그를 표현치 않으리라! 왜냐하면 그 부자연은 혹은 자연을 피안한 부자연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아! 나의 이 망단만은 허락하라. 무슨 망단을? — 그 여자가 자네의 “베아트리이체”가 되기에는 자네 예술은 너무나 순결했다. — 라고 하는 것은 또한 자네가 그 비밀을 사수한 인간적 사정에의 나의 측면적 투찰이기도 하다. 나의 이 표현의 진의를 아무도 아는 이가 없을 것을 희망하면서 또 다시 나는 나 자신에게 한옴큼의 “여유”를 장치하는 양심과 인간애의 소유자일 것을 요구치 아니치 못한다. 그리고 또 연거푸 나는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한 개의 기본적인 가설을 설치치 아니치 못하는 의무를 진 자임을 고백하는 것은 망우의 권리이기도 전에 나의 기쁨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즉 군이 장서하기 십여일전 우연한 일로 그의 비밀을 촉취해낸 나의 자신있는 제육감은 계획적으로 그 비밀의 상대 여인을 지적해 내던 군의 장서 익일의 그 순간에 있어서는 우연히도 disorder(고장!)의 상태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 라는 가설.
어느 잡지에는 다음과 같은 군의 처참한 결혼 플랜이 발표되었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람을 싫어합니다.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좀 적절할는지 모릅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는 말 없는 우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폐결핵입니다. 최근에는 매일같이 피를 토합니다.
나와 똑같이 우울한, 그리고 나와 똑같이 피를 토하는 그런 여성이 있다면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그를 한없이 존경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이 무언가를 그 여성에게 배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건 연애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한 동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특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겠습니다.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면 더욱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이 몸이 죽어 죽어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락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그 봉래산이 어딜는지 그 위에 초가 삼간 집을 짓고 한번 살고 싶습니다. 많이도 싫습니다. 단 사흘만 깨끗이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큰 의문입니다. 서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끼리 모이어 결혼생활이 될는지 모릅니다. 안된다면 그대로 좋습니다.
뼈에서 우러나서 드디어 종교화한 그의 자폭 — 이 자폭 가운데서 오히려 “영원의 여성”을 자폭치 아니치 못한 그의 종교 — 이 자폭의 종교의 진실을 군은 우울이란 용어로써 표현했던 것이다. 내가 말한 군의 우울과는 스스로 그 형태 감정을 달리함은 물론이다.
그의 죽음은 진실로 진실로 아름답도다! 적빈과 병마와 실연과 고독 — . 그의 삶이 슬프면 슬플수록 그의 죽음은 아름다웁고 그의 죽음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의 예술을 고전화한다. 현대 조선문학에서 고전을 찾는다면 나는 확실한 견해 아래서 군의 작품집을 솔선해서 출판할 것이다. 그 견해는 다음 장 예술편에서 구경하겠지마는 만약 그와 동종의 운명자인 나도향의 예술을 유정에 대치한다면 도향은 스스로 다섯보를 뒷걸음치는 겸허를 유정에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 당시의 나도향(羅稻香)의 문단지위는 금일의 김유정의 문단지위에 비(比)는 아니다. 이 논리의 타당성은 그만큼 금일에 조선문학은 전체적으로 성장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지위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실상 나는 유정의 문단지위를 규정하고 싶지 않은 자이다. 군은 진달래 같은 작가다. 진달래의 지위는 모란, 국화, 백합화의 지위보다 낮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진달래, 아름다운 조선꽃이 진달래런가. 과연 군의 죽음은 또한 진달래의 그것과 같이 고상결백도 하였다. “고상결백”을 정화한 배달말이 “애처롭다”라는 말이 아닐까.
애처로운 김유정! 지극히 애처로와야 할 그 군의 비밀이 근본적으로는 한없이 애처로왔으면서도 애처롭지 못한 지엽을 부차하였다는 데에 그 비빌의 자조적 비통성이 있었고 이 어긋난 비통성에 자기 유전이 작용하는 마당에서 또한 그의 우울의 부자연이 표상되었던 것이라고 내게는 해석되니 — 군아! 이 역시 나의 망단일까? 황천서 만나도 아마 군은 별대답만은 하지 않으리마는 —
— 유정아! 너의 죽음을 안 지 사흘이나 나는 아직 너 없는 너의 셋방을 찾지 않았구나! 사실인즉 한평생 나는 그 방을 찾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네가 지극히 좋아한 내 선물은 “희망”이란 그림이었다. 하루는 이십사시간을 그 그림을 쳐다 보았다는 자네 신세가 서러웠으리라! 애처로와라. 이제야 희망조차 희망할 수 없는 그 방이기 때문에 나는 그 방을 찾지 않으련다.
복받쳐 할 말 못하겠으니 여기서 나는 담배 한 대를 빨고 평가(評家)로서의 나 자신을 회복하는 순서를 갖겠다.
작년 여름 어떤 해변에서 군의 죽음을 몽상치도 못하고 읊은 어떤 평론에는 다음과 같은 유정의 조(調)가 있으니 이같은 경우에 그 일절을 대용함은 나의 평가적 신사도가 아니면 아닐 것이다.
— 여기에 작품 「안해」와 「산골」이 있다. 이것을 자료하여 나는 그의 예술의 특질을 정관하겠다.
일언이폐지하면 그의 예술은 그의 고통에 역비례해서 즐거웠었다. 나는 그의 문장의 즐거움을 새로이 즐기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는 그 비통한 군의 문장예술의 즐거움을 즐겁게 하는 그 재주를 사랑한다. 유정은 소설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소설가다. 입체적 구성도 없고 플로트도 없고 “고츠(骨)”도 없고 트릭도 없을뿐더러 문학의 교양조차 없다면 없는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정의 소설만큼 나를 매혹하는 소설은 외국 문단의 신인 중에도 없다. 애기 젖 빠는 본능으로 유정은 소설을 쓴다.
그의 전통 언어 미학의 범람성은 염상섭(廉想涉)과 호일대(好一對)이나 염씨의 언어가 순서울 중류 문화계급의 말인 데 대해서 김군은 병문말에 가까운 순서울 토종말을 득의로 한다. 지금 전기 작품에서 양자의 언어 취미를 비교해 보자.
“ — 틈틈이 쫓아와서는 은근히 들볶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는 이 남자 사무원이 옆에서 콧살을 찌끗해 보일제 남희는 눈을 홉떠보고는 외면을 해버린다.”(염씨의 「청춘항로」의 일절)
“ — 계집이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길할, 황소같은 아들만 줄대 잘 빠쳐놓으면 고만이지. (중략) 에미가 낯짝 글렀다고 이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으렸다. 이 바루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좀 똑똑하고 깨끗이 생겼느냐. 비록 먹고도 대구 또 달라고 부라퀴처럼 덤비기는 할망정 참 이놈이야말로 나에게는 아버지보담 할아버지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유정의 「안해」의 일절)
정련된 점에 있어서는 적시 대선배에게 일시를 양치 아니치 못하지만 순진성에 있어서는 우리의 신진군(新進君)이 승점을 취할 것같다.
군의 작품중 나는 “산골”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작년 팔월호 “조선문단”지에 발표된 것이다. 예와 같이 이 작품은 구성 요소로 프롯트도 계획도 없는 소설 이전적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산골” 이외의 예술적 흥취를 느끼게 하는 작품을 나는 아직 조선문학에서 찾지 못한 자이다.
이 비논리적 논리에 사실인즉 김군의 천분이 있는 동시에 그의 위기가 내포되어 있기는 하다. 젊은 작가에게 있기 쉬운 “무라”가 전연 없는 그의 문장에는 또한 농후한 개성과 전통미가 홍수를 이루고 있을뿐더러 일종 “수줍은 고전미”(이런 형용을 허락하라?)까지 느낀다 함은 나의 과찬일까.
내가 만약 대학의 조선어 강좌를 맡게 되면 먼저 이 작품을 교과의 하나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 아래서 임의의 일절을 여기에 소개함도 무의미는 아닐 것같다.
“ — 산기슭으로 나리니 앞에 큰 내가 놓여 있고 골고루 널려 박힌 험상궂은 웅둥바위 틈으로 물은 우람스리 부닥치며 콸콸 흘러나리매 정신이 다 아찔하여 이뿐이는 조심스리 바위를 골라 디디며 이쪽으로 건너왔으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같이 멀리 도망가자던 도련님이 저 서울로 혼자만 삐죽 달아난 것은 그 속이 알 수 없고 사나이 맘이 설사 변하다 하더래도 잣나무 밑에서 눈물까지 머금고 조르시던 그 도련님이 이제와 싹도 없이 변하시다니 이야 신의 조화가 아니면 안될 것이다.”
운운 — 이 얼마나 치밀하고도 정취적인 스타일이냐. 만약 이 문장으로 「춘향전」이 쓰이었다면 그 때의 「춘향전」은 조선의 “인도”가 될 것이다. (영국에 있어서는 사옹(沙翁)과 인도와의 교환일화 — ) 근간의 군의 센텐스는 퍽 짧으나 이 당시의 그것은 매우 길다. 이는 그의 가슴의 건강의 반영이다. 하늘은 우리의 김유정군으로 하여금 건강을 회복케 할지어다.
아까 나는 군의 위기를 말했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군은 어느 때까지 이 소설 이전적 미묘소설을 계속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의 성장에 따라 조만간 탈피해야 될 것만은 사실이니 탈피한 군은 과연 어떤 면모로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가 하는 “의문의 기대”다 이에 대해서 나는 개인적으로도 의견을 공급한 바 있었거니와 그를 논하는 다음 기회에서 세론하겠다. 운운—
이상은 그 일절이다. 이 세론의 약속을 이행할 필요를 당분간은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의 그 인간을 그려 보였다.
유정군! 그대는 죽었으나 그대는 영원히 살았다.
(4월 1일 오후 11시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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