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긴 바지만 입던 장인어른!
올해 여름 처가식구들과 함께 연천에 있는 계곡으로 당일치기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모두 물놀이에 정신이 없었는데 장인께서 물에 들어오지 않으시고 서성이기만 합니다.
"아버지.. 물이 시원해요. 들어오세요."
하지만 장인어른은 반팔에 긴 바지만 입으신 채로 " 물가에 오니 시원하네. 자네들끼리 놀아!"
라고 말씀하시며 자리에 앉아 지켜보시기만 합니다. 한참을 놀다가도 물에 발목까지만 담구고 서 계신 장인어른...
생각해보니 제가 결혼 후 지난 7년간 아버지께서 물놀이.. 아니 반바지 한번 입으시는 것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뜬금없이 어머니께 "장인어른 다리에 흉터 있으세요?" 라고 물으니 어머니 말씀이..
다리에 "하지정맥류"가 있어 10년 넘게 다리가 들어나는 반바지나 수영복을 입지 않으신다고 하더군요.
창피해서 친구들 모임에서도 한 번도 반바지 한번 입어본 적 없다 말하시는데..
물에서 놀고 있던 사위들.. 무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컴플렉스
대기업의 임원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신 후 제 아내가 운영하는 학원을 경영하며 소일거리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아버지!
자존심도 강하시고 말수도 적으신 아버지께서 사위들에게 마저 자신의 컴플렉스에 대해 말하지 않으시다보니 증세가 더욱
심해져서 이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셨네요.
최근에 하지정맥류 전문병원에 물어보니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 상태에서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혈관과 피부가 죽어
위험한 상황까지 올 수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은퇴 후 작은 학원을 경영하면서 본인을 위해 수술비를 쓰시기가 아까워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위노릇 한번 해볼까?
짠돌이 사위라고 매번 놀리시는 장모님^^
하지만 이럴 때 한번 사위된 노릇 한번 해야겠네요.
집으로 돌아와 처와 의논하고 아버지의 10년 컴플렉스, 내가 한번 고쳐드리겠노라 했습니다.
아내 역시 그날에서야 아버지의 컴플렉스를 알았기 때문에 속내 고민하고 있었는지 제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더군요.
아버지 다리에 있는 철사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하지정맥류를 보니 맘이 아팠다며 그래도 치료비가 많이 들 건데
어떻게 하면 될지 걱정된다 합니다.
뭐 특별하게 재주는 없지만 알아보면 해결방법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이기 때문에 비용과 상관없이 가장 능력 있는 의사를 찾아야 하는데..
제가 아는 의사 분들 중에 하지정맥류를 잘 하는 분이 없어서 다른 의사분께 상의하니 소개해 주시더군요.
"10년 전 모두들 돈 안 되는 흉부외과에 관심이 없고 돈 되는 안과, 치과, 피부과 등 이른바 돈 되는 과를 선택해
입학하고 전문의 수련을 받을 때 친구들 중 혼자 흉부외과를 지원해 개원한 닥터가 있는데..
그 친구라면 추천해 줄 만 하지.."라며 소개받은 반동규 원장님.. 같이 소주 한잔을 기울일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바로 전화해 약속을 잡으시더군요.
그 주 선릉역 골목에서 함께 소주한잔 같이 한때 안과닥터가 저를 소개해 주며
아버지의 다리사진을 미리찍어 보여드렸더니 "직접 봐야 알겠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네요.
하지만 외관상으로 상당히 컴플렉스가 있을 거고, 특히 하지정맥류가 무서운 것이 혈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세포조직괴사도 발생활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 라시더군요.
증상은 자연 치유되는 경우는 극히 없고 대부분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프지 않기 때문에
돈 드는 수술안하고 보통들 그냥 사는 거죠." 아.. 점쟁이 같더군요. 사진만 보여줬을 뿐인데..
아버지의 속마음을 그대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 말고도 수많은 분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그냥" 살고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살면 상관없나요?
"상관없긴요. 물이 고이면 썩듯이 혈류역시 멈추면 썩습니다.
근데 혼자 안 썩고 혈관과 피부까지 괴사가 진행 되요. 심하면 다리가 썩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심부정맥에까지 전이되어 심각한 상황이 올수 도 있어요. 아버지 같은 경우 자각하신지 10년이 되셨다면
그 이전 5년 전부터 진행되신 것이니 꼭 치료를 해야 될 거에요. "
헉.. 하지정맥류는 자신이 알게 된 것보다 몇 년 전부터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알았다면 이전 몇 년 전에 이미 정맥의 판막이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0년이 넘게 5000회가 넘는 하지정맥류 수술을 하셨다며 이제 환자가 상담하러 온 표정만 봐도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며 은근 자기자랑도 하시더군요. ㅎㅎㅎ
냉철한 의사도 우쭐하게 하는 알콜의 힘! 대단합니다.
하지정맥류 수술과정을 보면서...
난생처음... 수술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입니다. 수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겁나는 일일지..
저는 독감 예방접종 한번 맞는 것도 상당히 겁내하는 편이라 수술이라면.. 후덜덜 하고 몸서리부터 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환자 본인의 마음은 정말 간절하시더군요. 조금은 긴장하셨지만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10년여 동안 느꼈던 컴플렉스가 훨씬 더 컸는지 조용히 검사를 받으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 누구도 환자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검사가 진행되고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담담히 의사의 설명을 들으시던 우리 아버지..긴장된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수술대에 누우셨는데.. 그런데 웬일.. 수술대위에서 이야기 하며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ㅡ,.ㅡ;;
나중에 수술에 참여하신 실장님께 여쭤보니..
하지정맥류 수술 시 전신마취나 척추(하반신)마취를 하면 환자가 전혀 느낌이 없기에
근육이나 신경 손상이 발생되도 전혀 모르고~ 마취가 다 깨어나야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전신마취가 아닌 국소마취를 통해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불편함 점이 없나를 살피면서 수술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닥터가 수술을 할 때 환자랑 이야기를 풀어줄 사람이 함께 수술실에 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처음에 조금 걱정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더군요.
수술을 마치고...
2시간이 넘는 긴 수술시간.. 수술을 마치고 아버지는 아무러치도 않은 듯 걸어 나오시더군요.
안아프시냐? 여쭤보니 그렇게 아프진 않다며 바지를 보여주시는데 혈관을 압박하기 위해 붕대로 칭칭 감아
꼭 미라를 연상케 하는 모습 이였습니다. 보기엔 양쪽다리 골절로 보일정도로 칭칭 감았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수술 후 2틀이 지나고나니 붕대를 풀더군요.
닥터께 여쭤보니 혈관이 아니라 압박붕대를 감은 상태로 걸어 다니시며 피멍이 잡힌 것이라고 1~2주 뒤면
깨끗하게 사라진다고 하시더군요. 수술결과는 2일 만에 붕대 풀고 다니셔도 될 만큼 좋았고 이제 일상적인 모든 일을
하셔도 무방하다네요.^^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되내이며 수술해주신 반동규 원장님,
그리고 소개해 주신 안과닥터님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 아버지의 다리는?
멍이 빠지고 나니 수술당시 혈관을 제거한 작은 상처들만이 남았을 뿐..
툭하고 튀어나왔던 혈관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만족하신지 오래전 서랍 속에 넣어뒀던 반바지를 입고 계셨고 사진을 찍는 사위에게 자신감 맴도는 어투로
계속 이야기 하시더군요.
“어, 그 닥터랑 실장.. 우리 집에 한번 오라고 해.. 허허허 내가 해줄 건 없어도 돼지 한 마리 잡아 준다고..”
너무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고 생기가 도는 아버지를 보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은퇴 후 조금은 움츠려 들었던 모습을 보셨는데 예전 젊을 때 당당했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우리사위 고맙다며
즐거운 표정 감추지 않으시더군요. 그리고 또.. 5공주! 딸 다섯과 사위 셋이 장인어른의 오래된 고민을 해결하고 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네요. 이것이 진정 행복 아닐까 싶어요.^_^ 이번에 사위 셋이 제대로 된 사위노릇 한 것 같습니다.
첫댓글 하지정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