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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맨 토다 케이코

"가수에서 배우, 성우로 살아 온 30년"
연극, 드라마, 영화에서 활약 중인 여배우 토다 케이코(戶田惠子, 47). 한편 성우로서 앙팡맨(アンパンマン)에서 줄리아 로버츠까지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한 목소리의 스페셜리스트이다. 16살 때 가수로 데뷔했지만 실패하고 스무 살 때 들어간 극단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성우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올 해로 18년 째 앙팡맨과 함께 하며 성우를 천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17년을 한결같이 지켜 온 작품!"
토다는 154cm의 작은 키에서 나오는 목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늘 우렁찬 목소리로 사람을 반기곤 한다. "기력은 어느 누구보다 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이 세계에서 단련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강단이 있는 건지도 모르죠."
여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목소리에 대한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애니메이션 <자 가거라! 앙팡맨(それいけ!アンパンマン)> 시리즈에서 앙팡맨(アンパンマン)의 목소리를 1988년부터 17년 동안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도 <게게게 노 키타로(ゲゲゲの鬼太郞)>의 3대 키타로, <기동전사 건담(機動戰士ガンダム)>의 마틸다(マチルダ), <캐츠 아이(キャッツ アイ)>의 히토미(瞳) 등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앙팡맨>은 매우 소중한 작품이다. "앙팡맨은 제게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유아 대상 프로그램은 처음이어서 의뢰가 왔을 때 의외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화에서 강한 캐릭터를 맡아 왔거든요."
야나세 다카시(やなせたかし) 작가가 탄생시킨 이 마음 따뜻한 캐릭터는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친숙한 존재이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앙팡맨은 자신의 힘이 줄어든다는 걸 알면서도 배가 고픈 아이를 보면 자신의 얼굴을 떼내 줍니다. 자기 희생적인 캐릭터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줍니다."
녹음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되는데 지난 17년 동안 토다가 쉰 것은 딱 2번 뿐이었다고 한다. "매번 같은 역을 하기 때문에 처음 내지르는 목소리로 내 컨디션을 알 수 있어요. 건강을 체크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죠.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작품과 만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합니다. 앙팡맨을 좋아했던 아이도 조금씩 성장하면 멀어지지만 새로운 아이가 팬이 됩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통하는 애니메이션이죠."
"좌절된 가수의 꿈에서 여배우로"
연예계 활동의 시작은 아역이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고향인 나고야(名古屋)의 NHK아동극단에 들어가 <중학생일기(中學生日記)>에 출연했다. 2년 선배로는 다케시타 케이코(竹下景子)가 있다. 노래도 좋아해서 <어린이 노래자랑(ちびっこのど自慢)>에 출연해 도카이(東海) 지역 챔피언이 됐고 지방 방송국의 스카웃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1974년 도쿄(東京)로 와서 '아유 아케미(あゆ朱美)'라는 예명으로 가수 데뷔했다. 16살 때의 일이었다.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惠) 같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연히 성공할 거라 생각했던 그때까지의 높았던 코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탤런트 일은 많았지만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일단은 연예계를 접을 작정이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데뷔한 가수로는 테레사 텐(テレサ テン)과 하야시 히로코(林寬子) 등이 있다. 버라이어티 아이돌 스타로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니이누마 켄지(新沼謙治)와 함께 도후쿠(東北) 지방을 도는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지만 [기타를 쳐요(ギタ-をひいてよ)] 등 엔카만 4곡을 발표했을 뿐 히트한 곡은 없었다.
그런 토다를 구한 것이 바로 연극이었다. 우연히 한 프로그램에서 만난 연극 연출가 노자와 나치(野澤那智)의 권유로 1978년 노자와가 이끌고 있던 극단 장미좌(薔薇座)에 입단했다. 막내 연구생으로 여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두각을 드러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뮤지컬 <춤추는 함대의 레이디들(踊れ艦隊のレディたち)> <스위트챌리티(スイ-トチャリティ)>의 주연을 맡아 주목을 모았다.
"스타가 된 지금도 천직은 성우!"
"연극은 제게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화려하지만 공허한 세계에서 일찌감치 좌절을 겪어기 때문에 연극은 내실이 있는 세계였습니다. 몸 전체로 표현하고 실력을 그대로 인정받는 곳이죠. 소속사의 역관계 같은 것도 상관없이 정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모두가 함께 의상을 꿰매고 무대 장치를 만드는 것도 처음이어서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기노쿠니야연극상(紀伊國屋演劇賞)을 타는 등 연극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TV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상태가 계속됐다. 1997년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각본가 미타니 코우키(三谷幸喜)가 연속극 <총리라고 부르지 말아(總理と呼ばないで)>에서 비서로 기용한 것이다. 다음 해인 1998년의 <쇼무니(ショムニ)>에서는 재테크의 귀재인 OL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TV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은 별세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드라마와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 연극의 팬이었던 미나티 각본가가 불러줬어요. 해보니 즐거웠습니다."
미타니 작품의 단골이 된 후 NHK대하사극 <신선조!(新選組!)>, 연극 <오케피!(オケピ!)>, 또한 토다를 위해서 쓴 일인극 <나니와 버터플라이(なにわバタフライ)>에 출연했고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ラヂオの時間, 1997)>로 일본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여배우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한 지금도 성우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연극하던 시절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천직이 됐다.
"인생의 고비마다 얻은 사람이라는 인연"
"처음에는 성우라는 일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특히 화면에 따라 목소리의 분위기나 입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웠습니다. 프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해외영화 더빙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를 비롯해 조디 포스터, 니콜 키드만, 줄리아 로버츠, 시고니 위버 등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가 되기도 했다.
인생의 고비마다 누군가가 토다를 이끌었다. 연예계에 나서게 했던 어머니, 가수로 스카웃한 프로듀서, 연극과 여배우의 길을 열게 해준 노자와, 앙팡맨에 기용한 스태프, TV로 길을 터준 미타니 등 수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지금의 토다가 만들어졌다. "이제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 모두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인연이 넓어지고 있는 게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생각지 못한 인연의 만남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이 더 즐겁습니다."
<도라에몽(ドラえもん)>의 오오야마 노부요(大山のぶ代)는 방송 25주년을 계기로 강판이 결정됐는데 18년째에 들어선 토다의 앙팡맨은 기록 갱신을 목표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