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없는 이유없는 여행을 좋아한다.
대부분 2박3일이나 1박2일의 진득한 여정이아닌 당일치기이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번도 후회나 탄식의 순간은 없었던것 같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서 느끼는 내 몸의 감촉들은 열림 그 자체였다...
약발이 오래 못 가는게 단점이었지만^^*
야릇하던 그 내음을 쫓아 글로서 기분을 점찍어 보려한다.
경주부터 시작할텐데....엄청 길거다...각오하시라. 쿠쿠~
경주 남산...천년을 숨쉬는 뫼. 2002년 5월 15일...미친듯이 갈겨 씀.
올만에 혼자 여행이라....가슴이 설레였다.
전날 과음한 탓에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어쩌면 근간에 다시 잡을 수 없을것 같은 기회라서인지 몸이 알아서 일어나더만 새벽에.
간단한 차림과 캠코더를 차에 싣고 길을 나섰다.
날씨가 맑을것이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좀 흐릿하더만.
괜시리 걱정이되는것이, 남산이나 토함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광경 또한 장관인데
이렇게 날씨가 흐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것은 아닐까? 하며 약간은 걱정도 한움큼 쥐고 액셀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간만에 보는 경주 톨게이트...
한옥으로 지은 그 곳에 어느 트로트가수의 감칠 맛나는 노래가 흐르고,
안 어울리는 그 광경을 뒤로하고, 먼저 남산을 향했지.
남산...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한 곳.
그 곳에 오늘 발을 내 딛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하니 괜히 흥분도 되더군.
톨게이트를 따라가다 우회전하니, 경애왕릉, 포석정, 羅井등등으로 들어가는 갈색 입간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먼저 경애왕릉 옆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 차를 세우고 한껏 냄새를 맡았다.
아침 일찍인지라...사람들이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고즈넉한 그 기분이란....
경주에 가면 대표적으로 많은것이 陵이지 않는가? 생명을 다한 육신을 모신곳 치고는 너무나 아름답지 않는가?
신라인, 아니 고대인들의 내세관...몸은 차가워져도 다음 세상에는 또 다른 몫의 삶이 있을거라는 믿음. 어리석게도
그런 믿음들이 지금의 삶을 나태하거나 허무하게도 하겠지만, 그 반대로 현재의 모습에 충실하게 할 수 있는
모태가 되지도 않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경애왕릉, 신문왕릉을 보면서 곡선이 예쁘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차를 돌려 포석정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포석정을 한번 들릴까?하다가 이내 발길을 남산일주로 입구로 틀었다.
이후부터는 차가 못 들어가기때문에 도보이다. 내가 참 어리석었던것이, 남산 아무곳이나 올라가면 이리저리 유적들이
많을것이란 착각이었다. 헌데~ 엄청나게 넓은 산이더만. 그리고, 그 유적들을 다 볼라면 족히 며칠은 걸리겠더라고.
포석정 휴게소에서 국수 한 사발과 파전을 먹고 길을 나섰다. 생수통 하나 들고...
부지런한 산꾼들은 이미 길을 내려오는 터 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 시간이 이미..오전 아홉시였으니까.
평탄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헥헥헥~ 혼자하는 산행이 언제쯤 익숙해질까? 심심했다...그냥 산이었다. 뭐 산은 산이지 뭐..
근데 기분이 참 묘해지는 곳이었다. 빽빽한 숲이 있다가 탁 터인 양지길이 있고, 걷다보니 내가 반석위를 지나고 있고,
오랜만의 산행이라서일까? 신기함이 이를데가 없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가다 멈춰서고 하다보니 이마에 땀이 맺힌다.
봄이라쳐도 이날은 좀 더운 날. 생수 한 모금하고 작은 또 올라가니, "을석마애삼존불(확실히 기억이 안나네...)"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더군. 이내 등산로를 이탈하여 야릇하게 생긴 기와에 씌여져 있는 그 글을 따라
길도 없는 좁은 오솔길을 한 100m쯤 헥헥~~대며 올라갔을까? 커다란...전형적인 외국인 얼굴을 한 바위 하나가
나를 험상궃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건가?싶어서 가까이 가보니, 아하~ ㄱ字의 배경돌에 서로 이야기 하듯 마애보살이
서 있다. 정말 희한한 형태의 위치이다란걸 느낀다...일반적으로 ㄱ字로 불상을 배치 하지 않는다. 물론 석굴암입구에
사천왕상도 ㄱ字의 구조로 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구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런 깊은 산에 그런걸 보면, 뭘까? 그 때에는
약간 아웃사이더들의 작품이 아니었을까?하는 나름대로의 추측도 해보았다. 이내 웃었지만.
다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땀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다리가 아파왔지만, 그냥 올라가느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왜? 이 길을 가야하나?(GOD노래도 아니고...^^)하고 수 없이 되물어봤다. 원래 취지인 남산에 흩어진 많은
유적들을 제대로 찾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산을 오르며 난 생각했다.
토함산도 마찬가지이고 이 곳 남산도 마찬가지이다. 이 비탈진 길을 그들 신라인들은 무엇을 위해 돌을 들고, 정을 들고,
가래를 들고, 반석을 들고 올라왔었을까? "불국정토"라는 단 하나의 신념만으로 그랬을것이다...개인의 욕심과 바램이 아닌
나라와 단체에 대한 이익에 한 몫이라도 하고자하는 의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난 어떨까?
생각의 끝은 항상 부끄러움이다. 뭔가 크게 하고자 한 것도 없고, 작지만 만족한 것도 없는 그저 하나의 속물이 되어버린
내가 부끄럽더란 말이지. 위태로운 정상(사실 봉 이름도 모르겠다...우선딴에 그 주위에서 가장 놀은 봉우리였다.)암벽에
걸터 앉아서 내려다 보이는 경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모든것들은 아름답다, 역시.
내가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사람이라면 이 광경을 빼 놓치 못했을텐데...캠코더를 가지고 올라오는것을 깜빡하고 맨 몸으로
와서, 그 광경들을 머리에 담느라고 혼났다. 내 메모리로는 도저히 담지 못할 용량이 아니었을까?
하기사 내가 이런다고 남산이 그리 빼어난 그리고 수려한 산이란건,,,글쎄 솔직히 아니다. 밖에서 보면 암석이 듬성듬성
있는것이 서울의 북한산이랑 비슷한 점도 있지만...하지만 이 남산이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것은 천년넘는 세월의 힘
이 아닐까?싶다.
길마다 고개마다 계곡마다 천년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땀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이 미천한 인간들을 묵묵히 감싸주는 이 대지의 넉넉함과 풍요로움. 이름없는 이들의 부름...이 쌓여쌓여 퇴적된 곳.
그 힘이 커더란 말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이 넘치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양이 넘치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산이 양이고 바다가 음이란 말이지. 그래서 각각의 氣가 모자란 사람들이 그 기를 보충하기위해 산이나 바다에
취하는게 아닌가?하고 나름대로 씨부리다가, 내려오게된다.
산을 오를때에는 치열함과 열정이, 산을 내려올때에는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있더군. 그걸 몰랐단말이지. 남산의 계곡들은
물이 많지가 않았다. 다른 루트로 올라가는 곳은 어떤지는 몰라도 내가 다녀온 곳은 그랬다. 그래도 물이 어찌나 맑던지,
땀을 씻고 겁 없이 물도 한 모금하고...이미 정오가 훌쩍 넘어선 시간이었다.
점심생각도 별로고...해서,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낮잠 한 판때렸다.
체질인지 습관인지 초컬렛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는 그 달콤함 뒤에 오는 속쓰림때문인데,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달콤함을 다 싫어 할 수 없지 않는가? 낮잠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후후.
잠을 깨운건...다름아닌, 가족사랑협회에서 주관한 온 가족 걷기대회 뒤풀이 때문이었다.
온통 빨간 티 셔츠 일색이었다. 역시 올해 월드컵이 열리긴 열리겠군...이란 씁쓸한 웃음을 흘리고 나서.
뭔고...싶어 가까이 가보니, 아빠랑 엄마랑 애기들이 모두 빨간 티 셔츠를 입고서 남산을 일주하고 와서 뒷풀이겸
장기자랑을 하는 자리였다. 가만히 서서 구경을 하자니 너무나 행복한 모습들이더군.
애기들의 재롱에 어른들은 행복한, 그리고 뿌듯한 웃음들...오후로 넘어가는 햇살이 넘 따가운 만큼 강렬하게
내 정수리에 꽂히고 있는 그때였다...아~~살아야지...하는 생각이 든건.
포석정 주차장을 빠져나와 경주 시내 길을 좀 헤매다가, 불국로로 접어들었다. 예정상으로는 감은사지로 향해야 했으나,
길을 잘못 든것이 틀림이없었다. 불국사야 작년에 갔었으니까 시큰둥했지만(물론 내가 석가탑 예찬론자이긴 하지만,
넘 자주 가는겄두 실례는 아닌지 해서...^^) 그래...석굴암이 있었지?!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랬다. 석굴암...언제 가 보고 못 거봤지? 물음의 답은 역시 1996년인가 97년인가? 보경사 여행때 잠시 들린거-엄밀히
말하자면 입장료가 넘 비싸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나온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설상가상 본존불을 본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때였으니, 두말할 나위 없이 석굴암으로 가는 고갯길위에 이미 차는 접어들고
있었다. 머리가 띵~하니 아팠다. 토함산 정상을 향하는 길 중에 앞번에 왔을때 고기를 구워먹던 장소도 그대로 였고,
별반 달라진것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온통 칠해져 있는 녹색의 푸르름은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신선한것...
흘러나오는 음악과 눈 앞에서 출렁이는 녹음들, 조금만 있으면 만나게 될 석가여래좌상...난 상쾌함을 충전중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제일 처음 귓전을 때리는것은 명상음악류의 금강경 독송...(물론 나올땐 트로트로 바뀌었지만.)
전망대를 향했다.
오른쪽 전망대로는 감포와 동해바다...왼쪽 전망대로는 경주 시내와 남산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날 날씨가
약간 흐릿한 바람에 희뿌옇게 보여서 아쉬움 금할 길 없었다. 그리고 정 중앙에 떡~하니 자리잡은 "佛國大鐘閣"...그거
보고있으니까,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는 선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갑자기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입구로 올라가는
얕은 계단을 밟고, 한 높이 한 높이 석굴암에 다가섰다. 세계의 명소답게 외국인들이 유독 많았다. 그리고 들어섰다.
미처 몰랐었다.
이렇게 좋았는지...왜 기억을 하지 못했을까?싶었다...
사실 어느곳이라도 사찰의 경내로 통하는 초입은 조용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언양 석남사는 별천지에 온 느낌이었고, 하동 쌍계사는 오밀조밀 예쁘고, 밀양 표충사는 남아처럼 장대하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따가운 오후 햇살에 지쳐가던 나에게,
"이보게 젊은이, 느껴보게나... 이게 자연의 힘이지. 이곳을 지나니 시원하고 냄새도 향긋하지 않는가?
세상일에 찌들린 누구라도 여길 데려 와 보게...난 자신이 있네. 그들의 좁은 마음을 다시금 넓고 아늑하게 해줄..."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넘넘 시원하고 아늑하고, 밤나무 솔나무의 향기가 뒤섞여 머리가 아찔 할 정도.
지나는 사람마다 밝고 평온해보인다. 어떤이는 아예 신발을 들고 맨발로 그 길을 걷는다. 그렇다, 여기는 관광지다...
그런데 관광지같지가 않다...라는 생각이 들은건 왜 였을까?
석굴암으로 가는 길...나는 말한다...편안함...그리고 냄새들...냄새들....삶의 냄새들...그것이더라고.
석굴암본전을 올라가고 내려오는 계단들에는 석굴암 증/개축시(일제때 포함) 잘려져 나간 石物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져있다. 사람들은 그냥 한번씩 훑어보고 지나가는거라...그런데 일순간 캠코더를 켜고 그 앞에 장승처럼 멈춰서서
찍어도 그만, 안 찍어도 그만인 그 석물들을 한참을 바라보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픔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인 아픔...말하기 싫은 그런것들...그것들을 증명하는 것들이기에...
일단 그 석물들은, 일제치하 조선총독부에서 석굴암을 발견하고 당시 돔부분등을 개축하면서 잘려나간 것들이다.
그 석물들이 있던 자리에는 얼토당토않게 시멘트가 발라졌고...
그러니까 이 석물들과 저 감실안에 있는 석물들은
애궃은 역사의 장난으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떨어져 생이별을 하고 있는것이렸다.
여기서 잠깐!! 일제의 개축과정에서의 문화재 훼손도 훼손이지만, 60년대 정부의 석굴암 증.개축은
보는 사람들로하여금 더욱더 한심스럽게한다.
관광지 개발을 목적으로 손을 댄 것이란게 겁도 없이 감실 안쪽과 외벽돔 형의 공간이었던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니까 神技에 가까운 건축공법으로 그 어떤 도구나 연결대 없이 순수하게
공학적으로 설계된 감실 천정의 돔부분 위를 일제가 발라놓은 시멘트위에 그냥 대책없이 원형을 복구한답시고,
돌맹이들을 얹어 놓고 때를 덮어버린것으로 알고있다. 물론 이후 학자들의 반발로 다시 개선되었지만...
하지만 그때부터 아님 그 이전부터 감실 내부에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서리가 습기로 인한 수분 증가로 한때
본존불에 푸른 이끼가 끼고 엉망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의 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정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본존불자체가 주는 온화함이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흉물스러운 석물하나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모습일 뿐이었기때문에......
자~이제는 석가여래좌상을 알현하러 갈 시간. 우습게 들리겠지만, 옷 매무새를 약간 고쳤다.
그리고 난 압도 당해버렸다.
살아있는 표정의 사천왕상...그 뒤에 온화한 미소로 날 바라보는 석가여래좌상...그 뒤를 보좌하는 십일제자상...
거기서 소원성취연등을 접수받는 절의 보살님이야 매일 보는 본존불이니 시큰둥하기도 하겠지만,
난...가슴에 뭐 하나가 턱~하니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웅장함에대한 경외와 더불어 소박함과 평화로움이었던것 같다.
사진촬영 금지라는 푯말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엔 캠코더를 돌렸다.
뷰 파인더속에 보이는 본존불의 미소는 뭐랄까...나 보고 이제는 돌아가라...버릴건 버리고...입을건 입고...할만큼 했으면
정작 네가 가야할 곳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사천왕상으로 포인트를 옮기자, 호된 꾸지람을 하신다.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혼내신다.
정신차리게 이 젊은 친구...하며...불호령이 떨어진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짓궃은 개구장이 소년같다면,
[석굴암 석가여래좌상]의 미소는 여든넘은 어르신들의 그것처럼 모든것을 다 받아주고 흡수해버리는 그런 매력이 있는것 같다.
그때 옆에 있던 꼬마가 이런 말을 하더군, 기특하게도.
"부처님은요, 우리 마음에도 있구요, 하늘에도 있구요, 바다에도 있구요, 아빠한테도 있구요, 민지한테도 있어요"
......마음이 따라가는 곳에 마음이 쉴 곳도 정해진다는것을 왜 몰랐을까?
어리석음을 느끼는 순간만다 고마움을 그래도 빠뜨리지 않는
지금의 나에게 그나마 하나 남은 위안을 하고 돌아섰다.
역시 경주로 오길 그리고 석굴암을 들리길 잘 했어...하는 이기적인 바램조차 부끄러워 조용히 나와버렸다.
경내에 뿌려지는 물줄기가 흩어져 흩어져 시원하다가도 아무것도 없어진다. 그게...그런게...마냥 좋다.
눈앞에 보이는 감포바다, 동해. 천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그 곳을 향해 고개 한번 돌리시지 않은 본존불과 석굴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던 말던 아무런 것에 개의치않고 항상 그대로 있음직한 나무들 돌들 이름모를 냄새들.
힘...이 있다...그것이 힘이다.
경내를 나오는 길에 혼자 앉으면 딱좋은 반성이 있어 그 위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가슴이 넓어짐을 알아채버렸다.
지금 나는 너무 쾌적하다......그 생각만이 머리를 맴도니 이정도면 행복의 끝자락이라도 만족스럽다...싶은거라.
이렇게 경주 답사1부는 여기서 끝이 났다. 내친김에 감포근처의 기린사와 감은사지, 그리고 대왕암까지 돌고 남부동해를
따라 무산을 경유하여 내려오려 했으나, 전날 과음으로인한 피곤함으로 토깽이 눈이 되어버린 눈을 보고
'아이가~~고마 시마이 하자...'싶어 마산으로 차를 돌리고 말았다.
이번 경주여행으로 배운건 솔직히 많지는 않다.
하지만 느낌이 너무 많았다.
내 개인적인 수 많은 이유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맺음도 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찾은 여유로 스스로가 한결 가벼워진듯 했다.
적당하면 않되는 삶에서 때때로의 적당함도 약이 되는 법이듯,
힘들어야만 하는게 사람의 삶이라면 때때로 애써 아닌척 하는것도 약이 되는 법이다.
차가 막히는 고속도로위에서마저도 생각나는 사람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제...내가 나다워져 가나보다. 가슴이 넓어지는듯허이. 그래서 이제야 내가 니 소원 들어주려나보다..."라고.
사는게...사람 사는게 사는것 같아야지 그게 맛이지...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