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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이혁섭 (김해 계동초등 4)
표충사에 갔다. 예전에도 한번 왔기 때문에 조금 익숙해졌다. 그런데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올 때에는 친구들과 논다고 제대로 된 뜻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굴렁쇠 동무들과 오니까 익숙한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다음부터 놀지만 말고 제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배운 것이 많았다.
그리고 이 곳 표충사는 특이하게 대웅전이 아니고 대광전이었다. 보살님은 없고 부처님만 세 분 모셔둔 곳이라서 대광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팔상전에는 온몸이 새하얀 불상도 있었다. 그게 참 우스웠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물이 참 맛있었다.
☆밀양 표충사☆
지옥과 천국을 왜 지어냈을까?
이병현 (김해 계동초등 4)
2003년 12월 7일 굴렁쇠 동무들과 표충사로 갔다. 일주문을 통과하고 천왕문도 통과했다. 그런데 표충사에는 불이문이 없었다. 절마다 문이 다 있는 것이 아니란다. 여기는 대웅전이 아닌 대광전이었다. 절마다 그것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지장보살님은 저승으로 가서 혼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고 잘못을 깨닫게 해주는 보살이다. 사람들은 왜 천국과 지옥을 지어냈을까? 내 생각에는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지어낸 것 같다. 오늘이 절에 가는 것은 끝이라는데… 또 와야지
다섯마당 ☞ 현대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물론 부모님 때문에 편하게 살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시간이 나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3. 15의거 묘지와 부산에 있는 민주항쟁 기념관에 꼭 들러보세요.
그 곳에 가보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게 살아 갈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지요. 이 땅의 민주와 평화를 위해 피 흘리며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소중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 잘 살아서는 힘든 일이에요. 국민과 나라를 생각할 줄 모르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는 대통령이 정치를 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행복할 수는 없잖아요! 이제 우리 어린이들도 진정한 행복은 사회나 국가의 안정과 평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쯤은 알아야겠지요.
☆마산 3.15의거 묘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박지윤 ( 창원 토월초등 6)
‘이제 가을이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제법 바람이 불고 쌀쌀한 9월, 아직도 독립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이 들리는 듯한 마산과 부산에 갔다. 제법 여러 곳을 다녔다. 1960년 3월 15일의 부정선거와 함께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3.15 의거 기념 묘지’, 6.25 한국전쟁 때문에 부산에까지 정부가 밀려와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살았던 ‘부산 수도 기념관’ ‘부산 근대화 역사관’ 그리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신 ‘벽산 안희제 기념관’ 등을 갔다,
그 중에서 ‘3.15 의거 기념묘지’에 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대통령을 계속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3.15 선거에서 공개 선거를 하고, 투표하는 곳에 2, 3명을 같이 들어가게 해 감시하는 등 불법 선거를 했다. 화가 난 마산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고 한다.
6학년이 되어 '선거' 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불법 선거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놀랐다. 옛날에는 아직 나라의 기틀이 제대로 잡혀지지 않아서 부정선거나 쿠데타가 흔히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부정선거나 쿠데타는 없지만 정치 안의 사정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로 욕하고 싸우고 약점만 골라내서 자기의 이익만 채우려고 하는 것 말이다. 내가 아직 어려서 많은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가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옛날의 정치나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당이니, 한나라당이니 하는 정치가 똑 같은 것 같다. 자기의 이익이 아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산 3.15의거 묘지☆
김주열의 죽음
강다솜 (창원 성주초등 3)
3.15 의거 묘지에 와서 김주열 죽음을 알게 되었다. 김주열은 눈에 최류탄을 맞아 죽었다. 그 때 있었던 사건을 찍어 놓은 사진첩을 보니 너무 징그럽고 무섭고, 죽은 김주열이 안 되었다. 내가 이렇게 평화가 찾아 왔을 때 태어난 게 다행스럽다.
김주열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다. 경찰들이 왜 김주열을 바다에 넣었는지 굴렁쇠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만, 김주열은 돌에 매달아 바다에 던져 졌다고 한다. 김주열이 실종 된지 한 달만에 발각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기 동포들끼리 싸울까? 너무 어이없는 일이다. 왜구들과 싸우면 몰라도 마산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서 먼저 3.15 의거에 나섰다고 한다. 김주열이 다시 살아나면 좋겠다. 김주열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약 56~57세 정도 일 것이다. 김주열은 16살이라는 작은 나이에 죽었다. 아주 슬픈 일이다.
☆부산 안희제 기념관☆
안희제 선생님처럼 백만장자가 된다면
조기대 (창원 토월초등 6)
내가 만약 안희제 선생님과 같이 사업을 해서 백만장자가 된다면 자주국방에 돈을 쓰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우리가 주한 미군에 약간 힘을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군사를 키우거나 무기를 만든다. 그래서 군사가 미국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돈으로 스파이를 키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게 스파이를 시켜 죽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잘 살아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은 내가 나이가 어려서 자주국방을 할 만한 돈이 없지만 커서는 돈을 많이 벌어서 자주국방을 한 뒤에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키울 것이다.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이승만 대통령과 피난민들의 생활
구경석 (창원 토월초등 6)
오늘 부산에 있는 임시수도 기념관에 다녀왔다. 그 곳은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원래 경상남도 지사가 살던 곳이었는데 6.25 전쟁 때는 이승만대통령이 사용했던 곳이다. 6.25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힘들게 생활했는데 이승만 혼자 그런곳에서 사는 걸 보니 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는 피난민에 대한 것이 많았는데 평소에는 난 6.25때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와 안전하고 편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와서 보니 너무 비참하였다. 그 집은 그런데 너무 좋게 지어서 이승만은 좀 사치스런 것 같다.
오늘 공부를 통해 6.25 전쟁 당시 우리 민족의 슬픔과 피난민들의 아픔을 더욱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부산 민주항쟁기념관☆
하루 빨리 정치 선진국이 되었으면
유아름 (창원 온천초등 4)
12월 8일 부산에 있는 민주공원에 왔다. 여기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들,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세운 곳이다. 여기는 주로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데모 한 사진과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부정선거로 대통령자리에 오르자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을 감옥에 넣거나 죽이는 아주 나쁜 대통령이다. 그 때문에 자유를 원하는 죄 없는 시민, 학생들의 시체는 산더미로 늘어가기만 했다.
일본인처럼 우리나라의 군인도 이런 착한 시민들을 고문하거나 최류탄을 쏘아서 죽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박종철이라는 학생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 죽었다.
정말로 이번 미군 장갑차 사건도 이해가 안 된다. 무죄라니…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계속 후진국으로 남을 것이다. 빨리 정치 선진국으로 발전되면 좋으련만, 하였튼 오늘 여기 와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부산 민주항쟁기념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경민 (창원 용남초등 3)
민주항쟁 기념관에 와 보니 민주항쟁이 얼마나 어려운 건 지 알았다. 정말 나쁜 사람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독재를 막아 주어서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사는 도시 마산, 광주, 부산에 사시는 분들 정말 고맙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저번에 굴렁쇠 신문에 실렸던 이야기인 ‘한미 협정’ 때문에 두 중학교 여학생 언니들이 죽었는데 그 언니들을 죽인 나쁜 미군은 벌을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많이 평화로워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한미협정도 깨어진 약속이 되면 좋겠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독재정치, 정말 무섭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여섯마당 ☞ 전쟁의 상처를 찾아서
남해안을 따라 가다보면 그림처럼 펼쳐지는 절경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4백년 전 일본의 침략에 대항해 목숨 바친 조상들의 넋과 이순신 장군에 얽힌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훌륭하다고는 누구나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왜그렇게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지 이순신 장군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4백 여 년 전 조상들이 목숨 바쳐 지켰던 조선은 그 후 3백년이 지나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아픈 역사였습니다.
나라를 지키고자 애썼던 이순신 장군의 힘듦과 원균의 이야기.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이국 땅에서 비참하게 살다간 전쟁포로 이야기를 하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부산 수영, 자성대, 동래성, 웅천 왜성, 마산 합포성, 고성 당황포, 진주성, 거제 옥포, 칠천도, 사천, 통영, 한산도, 남해 이락사, 여수, 진도 마지막으로 6.25의 상흔이 남아있는 거제 포로수용소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조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 동래 충렬사☆
송상현 동래부사
김호원 (창원 토월초등 6)
송상현은 지금의 시장과 같은 부사였다. 지금의 충렬사가 있는 둘레는 임진조국 전쟁 때 일본의 두 번째 표적이 되었다. 일본은 군사를 잃기 싫어서 그런지
“싸우려거든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길을 비켜라”고 했다.
이때 송상현 부사는
“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며 반항을 해 동래성 전투가 시작되었다.
조선 군은 끝까지 싸웠으나 일본의 조총과 수에 밀려 패배하였다. 군사는 도망치자고 했으나 송상현은 가지 않겠다고 하며 관복을 입고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으로 절을 하고 왜적의 칼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나는 송상현의 충성심과 순국한 기상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쟁의 비참함을 알게 되었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상현 부사와 같은 책임감 있는 조상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있는 것 같다.
☆진해 웅천 왜성☆
대단한 우리나라
김지현 (창원 상남초등 4)
진해에 있는 웅천 왜성을 갔다. 오면서 쑥부쟁이, 구절초, 도깨비바늘 등을 보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무려 7년이나 전쟁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육지에서는 졌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셨을 때는 부하들이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을 물리쳤다. 나는 이순신 장군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죽으면서도 우리나라를 생각 하셨다. 이 성은 돌로 만든 것이다. 원래 총을 쏘는 곳이었는데 약400년이 지나고 나서 없어진 것이다.
우리 반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두 사람이 일본에 갔다 왔는데 한 사람은
“일본이 쳐들어오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라고 해서 전쟁 준비를 못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육지에서 진 것 같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7년 동안 잘 견뎌 낸 것 같다. 우리나라는 대단하다. 준비도 안 했는데 이겼다. 존경스러운 우리나라. 그런데 임진조국전쟁은 7년 동안 계속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통받고 많은 문화재를 잃어버렸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나쁘다. 우리나라는 아직 통일되지 못하고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어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전쟁을 다시 알게 되었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통영 한산도☆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은 시름 잠긴 뜻은
이민규 (창원 토월초등 6)
6월29일 우리 굴렁쇠 기자단은 새로운 친구와 함께 한산도에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2시간 정도 걸려 통영에 도착한 뒤 배를 타고 한산도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간 곳은 여러 곳이었지만 나는 수루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순신 장군이 자주 올라가 시도 짓고 생각했다는 곳, 나는 이순신 장군이 수루에 올라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였다. 굴렁쇠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병에 걸리고 많이 아팠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무척 힘든 전쟁이었다고 하니 이순신 장군의 고생이 알만도 하다. 아마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대해 생각을 하고 깊은 시름에 잠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루에 오르자 즐거운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사회 분위기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을 희생하여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정말 존경스럽다.
☆통영 한산도☆
몰랐던 당파싸움 이야기
정지원 (창원 토월초등 6)
6월 29일 화창한 일요일 우리는 한산도를 둘러보고 잠깐 간식을 먹으러 바닷가로 모였다. 서로 싸온 도시락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당파싸움에 토론을 시작했다. 자료에 나와 있는 당파싸움을 읽어보았다. 난 지금까지 서로 모함해서 죽이고 귀양 보내는 짓이나 하는 당파싸움은 멍청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료에는 오히려 서로 의견을 말하는 이념 정당이 되어 나라가 발전이 된다고 나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당파싸움의 뒷면이 있었다니… 하지만 너무 심한 당파싸움으로 서로 싸우기만 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나 다른 높은 사람들은 서로 사이좋게 의견을 말해서 옛날 사람들처럼 심한 당파싸움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