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효대사가 이 곳에서 열반했을 때에는 1천여개의 사리가 나왔다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지금도 정자 주변에는 마애여래좌상과 작은 석탑 1기가 남아있다. 요선정 앞에는 치악산에서 흐른 물이 옛 흥녕선원지 앞을 지나는 법흥천과 합류하여 맑은 계곡을 형성하고, 깊은 물이 흐르는 강바닥에는 물에 씻긴 큰 바위들이 넓게 깔려있어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고 있다. 계곡을 형성하고, 깊은 물이 흐르는 강바닥에는 물에 씻긴 큰 바위들이 넓게 깔려있어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고 있다.
강기슭 반석 위에는 요선암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곳을 요선암이라 부르고 있다. 이 글씨는 조선시대 시인이며 서예가인 楊蓬來(양봉래)가 평창군수 시절 선녀들과 함께 이곳에와 일대의 경관을 즐기다가 새겨놓은 글씨라 전해오고 있다. 邀僊(요선) 또는 邀仙(요선)이라 쓴 글씨의 뜻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요선정은 대대로 이 지방에 살고 있는 원세하, 곽태응, 이응호를 중심으로 하는 주민들이 힘을 모아 숙종, 영조, 정조 세 임금이 써준 御製詩(어제시)를 봉안하기 위하여 1913년에 세운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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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별마로 천문대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해발 799.8m인 영월읍 봉래산 정상에 세워져 2001년 10월 13일 개관. 군민들을 위한 국내 최대규모의 천문대로 자리 잡았다. | |
영월군 관광안내 홈페이지 http://ywtour.co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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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문대에는 국내 최대규모인 직경 80cm 주망원경을 비롯하여 보조망원경 10대등 총 11대가 설치되고 내부에는 천문전시실과 시청각교재실, 주관측실 및 보조관측실들이 들어서 신비로운 우주 세계를 보여준다. 영월에 천문대 건립이 추진된데는 강원중부내륙 산간지역에 위치해 산림지역으로 오염원이 없고 연간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맑은 날이 연(年) 192일로 50%를 넘는 천혜의 천체 관측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추진된 것이다.
건설공사에는 국·도비 45억원이 투입되어 대지 1,227평에 연면적 281평의 건물이 세워졌으며 지하2층 지상4층의 건물은 봉래산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조망기능과 함게 천체관측 환경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다. 또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 시설도 갖추었고 건물 주변을 천문공원으로 조성하여 별자리 설명대 88개소를 비롯한 5종의 시설을 구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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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하동면 진별리에 소재하고 있는 석회동굴 주굴(主窟)의 길이 1,800m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동굴의 하나로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어있다. | |
영월군 관광안내 홈페이지 http://ywtour.co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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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읍에서 동남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영월화력발전소에서 동남쪽으로 6km떨어진 남한강 상류 하식단애(河蝕斷崖)에 위치하고 있다.
고씨굴이란 임진왜란 당시 고씨가족이 피난하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 밖에도 이곳은 수도장 등으로도 이용되어 왔다고 전한다. 1966년 4월 한국동굴학회가 이끄는 한일합동조사단에 의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후 건국대학의 홍시환(洪始煥) 교수팀의 본격적인 개발조사와 당시 유은재(兪銀在)군수, 박영국(朴泳國) 관광협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관광돌굴로 개발 공개되었다.
이 동굴이 형성된 지질년대는 고생대(古生代)의 대석회암통(大石灰岩統)에 속하는 지층으로 약 4~5억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굴이 1,800m, 지굴(支窟)을 합하면 총연장 3km에 달하는 동굴이다. 해발고도 210m의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고씨굴의 기상환경에 대한 학계보고에 따르면 동굴내부의 기온은 연교차는 비교적 적은 편이며, 일교차는 약 10도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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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하동면 진별리에 소재하고 있는 석회동굴 주굴(主窟)의 길이 1,800m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동굴의 하나로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어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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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읍에서 동남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영월화력발전소에서 동남쪽으로 6km떨어진 남한강 상류 하식단애(河蝕斷崖)에 위치하고 있다.
고씨굴이란 임진왜란 당시 고씨가족이 피난하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 밖에도 이곳은 수도장 등으로도 이용되어 왔다고 전한다. 1966년 4월 한국동굴학회가 이끄는 한일합동조사단에 의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후 건국대학의 홍시환(洪始煥) 교수팀의 본격적인 개발조사와 당시 유은재(兪銀在)군수, 박영국(朴泳國) 관광협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관광돌굴로 개발 공개되었다.
이 동굴이 형성된 지질년대는 고생대(古生代)의 대석회암통(大石灰岩統)에 속하는 지층으로 약 4~5억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굴이 1,800m, 지굴(支窟)을 합하면 총연장 3km에 달하는 동굴이다. 해발고도 210m의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고씨굴의 기상환경에 대한 학계보고에 따르면 동굴내부의 기온은 연교차는 비교적 적은 편이며, 일교차는 약 10도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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