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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김대중 정권 때의 국어정책 관련사건
1948년 한글전용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어정책의 근본은 우리말을 한글만으로 적는 국어생활이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권 때의 공무원과 학자들이 일제 때 태어나 일제 국민교육을 받아서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세대이었기에 한글만 쓰고 읽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이 정책을 불편해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이 정책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었기에 터놓고 한글전용법을 반대하거나 어기려들려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한일회담을 체결한 뒤부터 교과서도 한자혼용으로 하려고 하고, 학술용어도 일본 한자말을 많이 살려 쓰는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한글만으로 만들던 교과서도 한자혼용을 했다. 그러나 한자혼용을 하고 보니 문제가 많았고 한글단체의 반대로 교과서에 한자 혼용을 하는 정책은 포기한다. 그런데 교과서에 살려 쓰던 이름씨, 그림씨, 세모꼴, 네모꼴 같은 토박이말이 사라지고 일본식 한자말을 많이 쓰게 된다. 그래도 전두환 정권 때까지는 막연한 한글사랑 정신이라도 살아있었는데 노태우 정권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리면서 한글사랑 정신이 식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때까지도 한글전용법을 폐기하고 한자혼용법을 만들자 거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글보다 한자를,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섬기는 풍조가 일어나고, 한글 전용법까지 폐기하자는 무리까지 설치게 된다. 김영삼 정권이 영어 조기교육과 한자 조기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나서서 우리말과 한글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심해진다. 이 때 한자 조기교육은 거센 반대로 시행은 하지 못했으나 영어 조기교육 정책은 확정된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 때부터 영어 조기교육을 시행한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김대중 정권은 한자혼용 정책을 획책하다가 안 되니 한자병용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가. 김영삼 정권 때 국어 정책
김영삼 정권은 1993년 2월 25일부터 1998년 2월 24일까지 5년 동안 문민정부란 깃발아래 ‘新한국’ 을 창조하겠다면서 얼빠진 ‘세계화’를 외치다가 나라 살림을 망쳐서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식민지로 만들었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한참 나라 경제가 일어나고 국민이 생기를 가지고 열심히 땀 흘리는 때에 일본식 한자말과 미국말 섬기기에 얼이 빠져서 나라를 망친 것이다. 대비책 없이 영어 조기교육을 외치면서 국민정신, 국가정신의 그릇인 우리 국어를, 우리 자존심이고 긍지인 우리 한글을 짓밟아 놓으니 국민정신이 약해져서 조그만 외세에도 나라가 흔들리고 뿌리가 뽑힌 것이다.
김영삼 정권 초기 새로운 한국을 만든다면서 일간 신문에 ‘新한국 창조’한다는 광고를 크게 냈었다. 그런데 그 광고문이 모두 한글인데 ‘新’자만 한자로 쓴 것을 보면서 얼빠진 자들이 정치를 한다고 나라를 망칠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내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정신인데 그 나라의 말을 헌신짝 보듯 하니 국민의 정신이 흔들려 나라가 혼란스럽고 흔들려서 국제 투기자본의 밥이 된 것이다.
김영삼 정권 때에 우리의 뿌리인 우리 국어와 우리의 긍지요 자존심인 한글을 흔들어서 영어 열병을 일으키고 나라를 망치게 만든 국어 관련 사건들을 살펴보자.
1. 한자혼용파가 국회에 낸 ‘한자혼용법 제정 청원’과 ‘헌법 소원’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학자와 정치인인 유정기, 김인식, 이상돈, 서영훈, 장을병, 김상구, 신국주 들이 1993년 3월 29일자로 <한글, 漢字混用에 관한 法律制定등에 관한 請願>을 김길홍(민자당 : 경북 안동), 황윤기, 장영철 의원이 소개해 국회에 냈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바로 일어난 일이다. 한글전용법을 폐지하고 교과서와 공문서에 한자를 혼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에 <한글 專用法廢棄 敎本改書法制定 請願書>도 내고 교과서에 한글만 쓰는 것도 위헌이라는 헌법소원도 낸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정책을 추진하려고 할 때에 ‘民族文化守護大會’를 열고 반대하는 데 앞장섰다가 교수직에서 파면당한 충남대 유정기 교수가 이 일들에 또 앞장섰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혼용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헌법 제31조 1항 ‘균등교육 수혜권’ 위반이라는 것이다. 유정기(전 충남대 교수), 임원택(전 서울대 교수), 안병욱(흥사단 이사장) 들이 공동명의로 청구서를 제출했다. 그 때 문화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유정기 교수는 “ 한글전용 발상은 위험천만이다. 이론상으로 보면 그들은 소피스트(궤변자)이고, 실천상으로는 메피스토(악마)다.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쓴 건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한글, 漢字混用에 관한 法律制定등에 관한 請願>
1. 請願題目: 公文書에 한글專用法廢棄, 敎科書에 漢字混用法律制定
2. 請願趣旨: 公文書에서 한글專用한 것은 解讀하기가어렵고 記憶도잘안되니 事務能率만 低下시키는것. 敎科書에는 漢字混用만하면 國校六年만卒業해도 漢字語는 다理解해서 知能이 發達되는 것.
3.請願內容: 한글專用으로 文盲敎育을 시키는 것은 天才도低能으로만드니 이것은敎育의 自己否定이라 그래서官界에는 不正이蔓延하고 民間에는 犯罪가增加해서 國家는總體的으로 危機에直面한것. 漢字廢止로서 文字鎖國을 强行하는 것은 國際化時代에 逆行해서 國家民生에 損害만自招하는데 이것을愛國이라고 虛僞로欺瞞하는데 따라만가는 이民族은利害得失도 모르게되었을것. 進化된西歐人은 賢明해서 古典語를活用하여 西歐共通語를 造成해서 文化交流를하는데 退化된東洋人은 愚昧해서 漢文字를廢止하고 各其獨自語를 造成해서 文化交流를 遮斷하는것. 우리五次元의文字(漢字)로 造成된國語體系를 一次元의文字(한글)로 平面化시키는데서 敎育이荒廢되어 文化는衰亡하고 社會는混亂하니 그런有百害無一利한 文敎政策을 是正하려는 것.
以上에要項을 文章으로쓴 請願書三枚를 다음에添附하였음
柳正基 인
한글단체의 대응
한자파가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지만 한글학회(회장 허 웅)와 한글문화단체(회장 안호상)는 한상범(동국대 법학) 교수와 이강로(한글학회 이사)교수를 참고인으로 내고 그 잘못을 알려주는 데 온 힘을 기울였고 기각 결정이 나서 그 헌법소원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한글학회(회장 허웅)와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지도교수 최기호) 등 한글단체 연합회인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은 그 반대 건의서도 내고 강력하게 반대활동을 한다.
한자혼용파인 김종필씨가 참여한 노태우정권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서 한자 세력이 득세하게 만들었고, 이어서 또 김종필씨가 참여한 김영삼정권이 들어서면서 바로 일어난 한글 죽이기 사건이었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도 한자단체에 맞서서 1993년에 ‘새 대통령 및 새 정부와 국회의원들에게 한글 전용에 관한 청원서’를 낸다. 그리고 바로 한글학회가 중심이 되어 "새 나라 건설을 위한 말글 정책 강연회"를 연다. 또 그해에 한자단체가 주장해서 대학 수학능력 시험에 한자를 중요하게 여기겠다고 나서서 한글단체는 그에 대한 반대의견을 밝히는 성명서를 낸다. 힘센 언론(조선일보)과 김영삼 정부와 한자단체가 한 통이 되어 한글을 짓밟으려니 한글이 위기에 몰린다. 그 때 한글문화원 공병우 박사님은 한자 쪽의 공세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니 강력하게 대응할 시민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해서 한말글사랑겨레모임(공동대표 밝한샘, 이대로)이 결성된다.
2. 옥외광고물 관리법에 한글 쓰기 규정 제정
1993년 2월 옥외 광고물 관리법 중 한글쓰기 규정(9월 25일부터 시행)을 제정 공포한다. 모든 옥외 광고물의 문자는 한글 맞춤법, 국어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어를 쓰게 될 때는 한글과 함께 쓴다는 내용이다. 영문 간판이 하나씩 늘어나기 때문에 중국 연길 동포들처럼 간판은 한글로 쓰자는 법을 만들자는 건의를 국민이 했고, 그 건의를 정부가 받아들여서 만든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 법 시행령 제 13조엔 행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감독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는 영업정지 또는 고발하도록 되어있으나 지방자치단체는 이 규정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법이 발표되자마자 들어선 새 정권의 대통령과 정부가 영어에 빠져있어 한글을 지키고 우리말을 살려 쓰자는 말이 가볍게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말할 거 없고 담당 공무원도 이 법이 있는지도 모르는 이가 많다. 그러니 이 법이 지금도 살아있지만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 위반했을 때 처벌조항이 없고 영어 열병에 걸려서 정신이 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행정자치부에 여러 번 이 법을 제대로 지키게 감독해달라고 건의한 일이 있으나 모두 헛일이었다. 강력한 처벌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3, 조선일보의 한자복권운동
한글날을 공휴일에 빼면서 한자파는 태풍 같은 기세로 한글과 한글단체를 억누르고 한글을 짓밟는다. 정치인들의 지원을 받고 경제단체와 조선일보사까지 나서서 한글을 쓸어버릴 기세로 나왔다. 1994년 2월 조선일보사가 ‘亞太시대 우리들의 국제문자 漢字를 배웁시다.’라는 제목으로 17회까지 연재하면서 벌인 ‘한자복권운동’은 정치, 경제 단체까지 합세하여 여론을 조성해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는 큰 사건이었다. 이들의 뒤에는 일본과 비슷한 한자혼용 글이 좋다는 뜻이 숨어있다고 본다.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한글단체의 대응
일본과 중국이 한자를 쓰니 우리도 한자를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써야한다는 주장 등을 {조선일보} 1쪽에 17회째 연재하던 날, 한글단체는 동숭동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그 규탄대회를 열었다. 조선일보사의 잘못을 꾸짖는 말씀을 하는 강사로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김동길 연세대 교수, 백기완 민주운동가, 이진우 변호사가 나서고, 강연을 마친 뒤 결의문을 내가 읽었다.
규탄대회를 하기 전날인 2월 25일 저녁에 한글운동 별동대인 ‘바로모임(회장 최기호, 총무 이대로)’은 한글회관에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조선일보사에 근무하는 신향식 기자로부터 “조선일보사 노조가 내는 회보에 전태수 기자가 한자복권운동은 잘못이라는 글을 전면에 썼다”는 소식을 전해 와서 반대 활동이 더욱 힘을 얻었다. 우리는 그날 밤에 인쇄소에 찾아가 ‘조선노보’ 수천 장을 복사해 다음 날 거리에서 뿌리고, 국어교사인 김두루한 선생은 다른 국어 교사들과 함께 조선일보사 앞에서 그 반대시위도 했다.
조선일보사는 한글단체의 반발도 강력한데다가 내부 기자들까지 반기를 들고 나오니 바로 한자복권 연재 기사를 끝낸 일이 있다. 이 일을 막는데 조선일보의 전태수, 신향식 기자와 노조 여러 분들과 바로모임 회원들이 많이 애썼다.
4. 정부와 정당과 언론을 업고 날뛰는 한자파
한자를 좋아하고 잘 안다는 김종필 민자당 대표도 국회 연설 때 ‘蝸角(와각)’을 ‘와각’인지 ‘과각’인지 읽지 못해 머뭇거렸듯이 한자는 매우 불편한 글자다.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도 전방부대를 방문해 방명록에 한자를 썼는데 잘못 써서 신문에까지 난 일이 있고,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는 한글날에 상을 받은 분들을 초청했는데 공병우박사의 禹(우)자를 노 대통령의 이름 끝 글자인 愚(우)로, 강태진 선생의 泰(태)자를 奉(봉)으로 잘못 써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잘나고 똑똑하다는 청와대 비서들이 ‘우’자는 노태우 대통령의 ‘우禹’자만 있는 줄 알았거나 그 글자밖에 쓸 줄 몰라서 생긴 일로서, 강태진씨는 강봉진씨가 되어버렸다. 한자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도 읽고 쓰기 힘들고 국가 최고기관도 바보로 만드는 매우 불편한 글자다.
그래도 한자파는 자기들이 아는 글이 일본식 한자 섞어 쓰기여서인지 한글만 쓰는 것은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고 김종필씨 같은 정치인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같은 보수신문과 전국경제인단체와 손을 잡고 일본식 한자혼용 세상으로 만들려고 태풍처럼 몰아붙인다. 이렇게 돈이 많은 이들이 밀어주니 한자파는 행사도 크게 하면서 신문에 광고도 크게 낸다. 그러니 그들의 뜻이 옳은 줄 알고 지지하는 국민이 늘어난다. 김영삼 정권 때 한자파가 낸 글을 소개한다.
第2回 국어傳統性 회복을 위한 國民運動모임
-‘한글과 漢字問題’ 大討論會-
決議文
1. 深化一路에 있는 우리 國語의 荒廢化현상을 바로잡기 위하여는 現行 한글專用의 國語敎育 틀에서 하루빨리 脫皮해야 한다.
2. 國家의 發展을 위해서는 올바른 國語敎育을 통하여, 모든 學問의 基礎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
3. 우리의 民族魂이 담긴 傳統文化를 繼承發展시키려면 漢字교육을 必須化해야 한다.
4. 統一民族共同體의 語文政策방향은 國漢混用의 國語體制이어야 함을 認識하고 그를 위한 敎育을 서둘러야 한다.
5. 國字의 하나인 漢字의 早期敎育風土를 振作시켜 競爭力있는 敎育, 특히 全人敎育을 꾀하고 先進社會의 建設을 앞당기도록 해야 한다. 國民學校 1學年부터 단계적으로 敎科書에 漢字를 露出 混用해야 한다. 韓, 中, 日 三國中 유독 우리만 常用漢字가 없다. 亞, 太시대에 대비하여 2,000字 정도 常用漢字의 制定이 시급히 요구된다.
6. 現在 ‘漢字排斥, 한글 專用’으로 우리의 文化와 敎育등 全體를 誤導하고 있는 한글 專用法은 즉각 廢棄 또는 改正되어야 한다.
1995년 9월 22일
第2回 국어 傳統性 회복을 위한 國民運動 모임
-한글과 漢字問題 大討論會- 參席團體 및 參席者 一同
5. 국민이 정한 새 공항이름, ‘세종공항’을 버린 김영삼 정권
김영삼 정부는 영종도에 새 공항을 만들고 국민을 상대로 새 공항이름을 공모해 ‘세종공항’으로 정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바꾸는 횡포를 저지른다. 1992년 9월 노태우 정부 때 교통부와 한국공항공단에서 국민을 상대로 새 공항 이름을 공모한 결과, 586종의 이름에 1,644건이 접수되었는데 1위가 ‘세종’, 2위가 ‘서울’, 3위가 ‘아리랑’ …… 8위가 ‘인천’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그해 9월 30일에 ‘명칭심사위원회’를 열고 심사한 결과 ‘세종’이란 명칭이 뽑혀서 문화부 등 관계기관의 동의를 얻어 신문에 공고했다.
그런데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는 앞서 노태우 정부 때 국가기관이 많은 예산을 들이고 국민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을 무시한 채 다시 ‘영종’, ‘세종’, ‘인천’, ‘서울’, ‘서울영종’ 등 5개 안을 정해 놓고 또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심사한 결과 1위가 ‘영종’, 2위가 ‘인천’으로 뽑혀 이를 건설교통부에 보고하고 ‘영종’으로 결정했으나, 또 인천 사람들이 반발한다고 보류했다. 중앙정부가 공실절차를 두 번이나 밟아 결정한 일을 지방자치단체장인 인천시장(시장 최기선)이 반대한다고 무시하고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에 ‘인천국제공항’으로 결정해 발표한다. 최기선 인천시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을 할 때 따르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김영삼 대통령 대통령은 문민정부란 간판을 내걸고 민주절차를 밟아 국민의 뜻을 물어서 정한 공항이름을 철저히 무시하고 당신을 따랐다는 최기선 인천시장의 말만 듣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정한다. 두 차례의 공식 절차와 민주방식을 거쳐서 결정한 ‘세종공항’이란 이름을 버리고 다시 또 정한 ‘영종공항’까지 헌신짝 버리듯 한 것이다. 세종의 큰 뜻과 정신을 받들어 세계 중심국가가 되겠다는 국민의 뜻이 여지없이 짓밟히게 된다.
그래서 한글단체가 중심이 되어 그 잘못을 정부에 알려주고 ‘세종국제공항 명칭 되찾기 위원회 (위원장 전택부)’를 만들고 세종공항으로 해달라고 운동을 벌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또한, 영어 조기교육을 강행하고 한자 조기교육을 시행하려 한 일과 함께 김영삼 정권이 저지른 큰 잘못이다. 이 사건을 보면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들이 얼마나 비민주인사였는지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500년 전 군주정치시대에도 정책을 잘 결정하려고 여론조사를 한 일이 있는 데 민주화시대 대통령이라는 이는 그 여론조사로 결정한 일을 짓밟았다.
6. 한문 제호를 한글로 바꾸고 가로 짜기로 신문을 만든 중앙일보
한글단체와 한글운동가들은 신문을 한글로 가로써달라는 건의문을 오래 전부터 해마다 일간 신문에 많이 보냈는데 중앙일보에서 처음 반응을 보였다. 중앙일보 창간 30주년인 1995년 10월 9일부터 한자로 된 ‘中央日報’란 제호를 한글로 ‘중앙일보’라고 한글로 바꾸고 가로 짜기 신문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그 때 중앙일보 편집부 조일현 차장이 내게 자문을 구하고 여러 번 의논을 한 일이 있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꾼 뒤 10월 17일에 중앙일보사 편집국장 등 간부와 특집 대담까지 해 ‘중앙 사보 10월호’에 올린 일이 있다. 그 때 나는 중앙일보 간부들에게 “전면 한글전용을 했더라면 도 좋겠지만 제호를 한글로 바꾸고 가로 쓰기로 한 건만도 참 잘한 일이고 고맙다. 한겨레신문이 한글전용을 했고, 아무 불편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앞으로 한글전용만 하면 한자 좋아하는 조선일보보다 더 독자도 늘고 국내 최고 신문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 때 이미 한겨레신문이 한글전용을 해서 5년이 지났지만 다른 일간신문은 계속 한자혼용에 세로짜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5년 한글날부터 중앙일보가 한글 가로짜기 신문을 하면서 바로 다른 신문들도 가로 짜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뒤 진짜로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와 맞먹는 독자를 가지게 되었다.
한자 섬기기에 앞장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한자를 더 썼으면 했는데 이제 조선, 동아까지 가로짜기에 거의 한글만 쓰고 있다.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가 모든 신문을 가로짜기 한글로 만들 게 한 큰일이었다.
나. 김대중 정권 때 우리말과 관련된 사건과 국어정책.
김대중 정권은 1998년 2월 .25일부터 2003년 2월 24일까지 ‘국민의 정부’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했는데 ‘한자병용 영어 공용어 정부’라고 부를 정도로 우리 한글과 국어를 힘들 게 한 정권이다. 김대중씨가 김종필씨와 손잡고 정권을 잡으면서 바로 한자병용 정책을 추진하고, 영어 조기교육을 시행하고, 영어 공용어 바람까지 일으킨다. 김종필 국무총리, 신낙균 문광부장관과 심재기 국립국어연구원장, 조선일보(회장 방우영) 같은 언론재벌까지 함께 이 일에 나서니 한글은 바람 앞의 등불 꼴이 된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강력하게 시위하면서 그 반대운동을 한다.
1.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한자와 외국어 병용정책을 강행했다.
우리 국어 정책의 근본은 한글 전용이다. 그러나 집권 초기 김종필 총리와 식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심재기 국립국어원장은 자리잡아가는 한글전용 정책을 더 잘 추진해서 영어에 밀려 죽을 지경인 국어 위기를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한자와 영문, 일본글 등 외국글자를 공문서와 도로 표지판에 병용하겠다고 했다. 일본인과 미국인 등 외국인을 위해서라지만 한글 발전에 찬물을 끼얹고 외국어 열병을 더욱 부채질 하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앞서 김영삼 정권 때 새로 만드는 주민등록증을 한글로만 쓰기로 하고, 수백 억 원을 들여서 다 준비한 새 주민등록증을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바꾸어 버려서 많은 나랏돈을 낭비하고 결정된 정부 정책을 권력으로 파괴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자파들은 정부의 이런 분위기를 살려서 한자혼용 말글살이로 몰고 가려고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라는 크고 강력한 연합운동단체를 만들고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하고 한자혼용정책으로 바꾸려고 발 벗고 나선다. 아래는 김대중 정권 때 문교부장관을 지냈다는 이들이 낸 건의문이다.
金大中 大統領님께
歷代 文敎․敎育部長官의 「初等學校 漢字敎育」 實施에 대한 建議
새해에도 金大中 大統領님의 康寧하심과 뜻하시는 일마다 如意하시옵기를 祝願합니다.
金 大統領님께서는 그동안 國內外로 刮目할 만한 많은 業績을 이룩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원활한 語文生活의 發展을 위하여 1999년 2월 9일에 國務會議에서 公用文書에 『漢字 倂記』를 시행하도록 議決하고, 10월 22일에 再促求하신 바는 歷代 어느 大統領도 하지 못한 勇斷이셨습니다. 또한 2001년 12월 28일에 敎育人的資源部에서 2005년부터 大學修學能力 評價試驗에 「漢文」과목을 추가시킨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今年 월드컵 大會에 中國을 비롯하여 日本, 東南亞 등 漢字文化圈에서 많은 觀光客이 訪韓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아직까지 道路標識板이나 案內板에 漢字가 별로 倂記되어 있지 않아서 觀光客의 不便이 매우 憂慮됩니다. 國益을 위하여 다시 한번 漢字倂記를 再促求하여 주시기를 仰望합니다.
더욱 緊急한 일은 별첨내용과 같이 半世紀 동안 跛行的인 文字政策으로 인하여 초래된 오늘의 심각한 文化危機를 根本的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初等學校에서부터 漢字를 단계별로 학습시키되, 外國語 학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 國語생활의 正常化를 위하여 한글과 더불어 國字로서 교육하는 일입니다. 金 大統領님께서는 「初等學校 漢字敎育」을 早速히 실시하여 주시기를 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의 5萬餘 推進委員을 代表하여 國家와 民族의 將來를 위한 憂國衷情에서 뜻을 같이 하는 歷代 文敎․敎育部長官의 連名으로 간곡히 建議하는 바입니다.
2002년 2월 6일
文鴻柱 閔寬植 李奎浩 權 赫 孫製錫 徐明源 鄭元植 趙完圭 吳炳文 金淑喜 李海瓚 文龍鱗 李敦熙等 敬上
한글단체의 대응
한글단체는 정부의 한자병용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무더운 여름날 상여를 앞세우고 한글학회에서 광화문 종합청사까지 시위도 하고, 문광부 앞에서 삭발시위도 했다. 추운 겨울2월에는 덕수궁 세종대왕동상 앞에서 투쟁 결의식을 하고 광화문까지 100미터가 넘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 시위를 하다가 조선일보 앞에서 현수막이 찢기고 빼앗겼으며 여러분이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3월 1일에는 서울 탑골 공원과 전국 곳곳에서 한글독립선언식을 했다. 서울에선 탑골공원에서 한글독립 선언식을 하고 한글학회까지 자동차에 확성기를 달고 외치며 거리시위도 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1999년 10월 한글날에 김종필 총리를 우리말 으뜸 헤살꾼으로 뽑고 신낙균 장관, 심재기 국어원장을 헤살꾼으로 뽑아 역사에 기록했다.
제 나라 정부에 제 나라 말글을 살려달라고 국민이 삭발시위(원광호 전 국회의원)까지 한 일은 우리 역사에서는 말할 거 없고, 세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때 원광호 전 국회의원과 오동춘 박사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상여를 앞세우고 종합청사까지 시위를 할 때도, 덕수궁에서 광화문까지 시위를 할 때도 앞장서서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자는 김종필 총리는 물러나라!”로 외쳤다. 탑골공원에서 한글학회까지 시위를 할 때도 자동차에 확성기를 달고 목이 터지라고 얼빠진 정부를 꾸짖었다. 그 더운 때, 또 추운 겨울에 7-80 노학자분들까지 시위에 참가해서 함께 구호를 외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며 고마운 마음이다.
2. 준비 덜 된 영어 조기 교육을 강행하면서 영어 공용어 정책을 추진.
영어 조기 교육은 김영삼 정권 때 세계화 바람을 타고 얼렁뚱땅 만든 엉터리 정책이다. 그런데 이 정책을 김대중 정권은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영어를 가르칠 만한 선생님과 시설도 없는 산간벽지 학교까지 모두 시행한 것이다. 그러니 그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영어 조기유학이 늘고 기러기 아빠와 생기고 가정이 무너지는 집도 생긴다. 거기다가 정부가 앞장서서 나라 곳곳에 영어특구를 만들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영어 때문에 국력낭비가 엄청나다.
1997년 말에 소설가 복 거일이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제 249호>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라 주장하고 조선일보가 거들어서 영어 공용화 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2001년 5월 14일엔 집권당인 민주당 제주 국제 자유 도시 정책 기획단 (단장 이 해찬, 총괄분과위원장 김 윤식)은 `제주 국제 자유 도시 특별법` 제정에 제주도를 영어 공용어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러니 영어 열병은 점점 더 깊어지고 거리엔 영어 상호와 간판이 자꾸 더 늘어나는 데 그 감독기관인 행정자치부는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회사 이름을 미국말로 바꾸는 대기업도 생기고 그게 국제화라고 떠든다. 일제시대에 일본 이름으로 창씨개명한 것은 비난하면서 우리 정부와 대기업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조장한 것이다.
한글단체 대응
한글단체는 반대 성명서도 내고 건의문도 보낸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대로는 2001년 10월 9일 한글날에 세종문화회관 기념식장 앞에서 [영어 공용어 반대,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1인 시위을 한다.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남영신은 민주당사 앞에서 [영어 공용어 반대 1인 시위]를 한다. 남영신 대표가 주도해서 영어로 이름을 바꾼 한국통신과 국민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는 영문으로 이름을 바꾼 회사들과 정부 관계자들을 우리말 헤살꾼으로 뽑는다. 그런데 국문과 교수나 한자혼용단체는 꿀 먹은 벙어리인지 조용하기만 했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탄스런 일이다.
3. 나라가 만든 국어 교과서와 표준 국어사전이 엉터리
199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어와 관련된 두 가지 문제가 밝혀졌다. 하나는 교육부에서 만든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잘못된 글이 1000여 건에 이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국어 교과서와 국어사전은 학생들의 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국민 국어 생활의 기준이고 근본으로서 모든 교육과 국민 생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둘 다 잘못되었으니 바른 국어교육과 국어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국민이 낸 세금을 그런 식으로 쓰고, 나랏일을 그렇게 잘못해도 되는 지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일이다.
그 때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와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공동 발간한 정책 보고서에 나타난 ‘중학교 국어 교과서 오류 실태’를 보면 띄어쓰기 잘못이 526건으로 가장 많고,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 잘못과 말본에 어긋난 것이 그 다음이고, 부적합한 낱말 사용과 어색한 표현들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부가 진짜 국민 기본 교육인 국어 교육과 국사 교육은 가볍게 보고, 영어 조기 교육을 더 중요하시하다 보니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국민의 혈세 100억 원이 넘게 들여서 국립국어연구원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윤철상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보면 “표준국어대사전이 순우리말보다는 중국어와 일본어 사전에서 따온 한자 중심으로 구성하거나, 우리말을 무리하게 한자어로 변용 시켜 한자어가 주, 우리말이 종으로 전락하는 등 주체성이 결여된 합성품인 것으로 분석됐다.”라고 주장했다.
잘못된 사례로 ‘푸른 하늘’이라는 우리말 대신 궁창穹蒼, 벽공碧空, 벽락碧落, 벽우碧宇, 청공靑空 등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말과 일본식 한자말 21개가 올라있고, ‘띄어 나다’는 뜻의 한자말로 도월度越, 일군逸群, 탁발卓拔 등 거의 쓰지 않는 한자말로 채워졌으며, 우리말의 ‘개천’을 ‘開川’으로, ‘변덕’을 ‘變德’으로 ‘호락호락’을 ‘忽弱忽弱’으로 표기해서 마치 한자말에서 따온 말인 것처럼 오인하게 했으며, 날씨가 ‘흐린 뒤 갬’을 뜻하는 ‘담후청曇後晴’이라는 낱말은 일본 사전에도 없는 일본 한자말인데도 대사전에 올렸다니 얼마나 엉터리 사전인지 알만하다.
한글단체의 대응
나는 이 사전을 만든다고 할 때부터 반대했다.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 사전’이 나오니까 그 사전보다도 더 올린말의 숫자가 많은 사전을 만들어 한글학회 사전을 누르려는 의도도 보였고, 남북통일사전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북쪽과 함께 사전을 만든다는 게 쉬운 게 아니며 혼자서 통일사전을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랏돈만 날리고 엉터리 사전을 만들 거라는 뜻에서다. 재야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은 이 사전을 만들 때부터 엉터리 사전이 될 거라고 중단할 것을 건의했고 다 만든 다음에 그 사전을 분석해서 잘못된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밝히고 차라리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우리 국어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어교과서도 국어사전도 일본식 한자말을 좋아하는 사람들 주도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우리 토박이말을 죽이고 일본 한자말을 많이 쓰는 이들의 글을 국어교과서에 지문으로 넣을 때부터, 국어원이 한글학회 큰사전과 경쟁의식을 가지고 숫자가 많은 사전을 만들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보고 반대한 사람이다. 그래서 표준 사전이 나오고도 국어원은 많은 들여서 고치고 있으나 이 또한 예산 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또 엄청난 돈을 들여서 ‘겨레말통일사전’이란 사전을 만든다고 남북 학자들이 만나고 있다.
4. 한자혼용법 청원을 제출한 한자혼용주의자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는 정권이 바뀌자 또 국회에 한글전용법을 폐지하고 한자혼용법을 제정해달라고 청원한다. 1998년 2월 18일 박원홍의원이 국회의원 151명의 서명을 첨부하여 <한글전용법 廢棄 請願>을 국회에 내면서 한글단체는 비상이 결렸다. 그 때 서명의원 숫자가 과반 수가 넘었고 그 일을 주도한 김종필님이 집권당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글세상이 다 되었고, 한글 덕분에 정보통신 선진국이 되었는데도 이들은 이 나라 지도층은 계속 한글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한글단체 대응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이오덕, 김경희, 이대로)는 한글학회와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한글단체와 함께 한국글쓰기연구회 사무실에 반대 서명운동본부를 차리고 반대운동을 이끌었다. 그 때 나는 서명 용지를 국회 문광위 위원들 사무실에 전송(팩스)으로 보내도록 했는데 그 효과를 톡톡하게 보았다. 전국에서 서명용지를 보내다 보니 문광위 사무실과 위원들에게 하루 종일 서명용지가 전송되었다. 그러니 여러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처에서 “ 서명용지가 하루 종일 전송되니 팩스가 불이 날 지경이고 다른 업무를 볼 수가 없다. 한글전용법을 절대로 통과되지 못하게 할 터이니 전송을 중지해 달라.”고 사정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청원은 무시되었다.
5. 국립국어연구원과 학술원 바로 세우기 운동.
국립국어연구원은 처음에 한자 쪽 인사들이 한글전용을 막고 한글학회를 힘없는 모임으로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든 거로 보인다. 1986년 일본과 같은 국어연구소를 만들 것을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이희승 교수 중심으로 건의해서 만들었고 그 국어연구소를 개편해서 국립국어연구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국어연구원이 발 벗고 한글학회 죽이기와 한글전용 막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어연구원장이 초대 국립국어원구원장부터 여러 해 동안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전 서울대 이희승교수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말썽이 된 일도 그렇고, 2004년에 국립국어연구원장 출신들이 한자파와 함께 국어기본법 제정 반대 성명서를 낸 일을 봐도 그렇다. 이들은 건의문에서 세종 때 집현전처럼 연구기관을 만들자고 했지만 그들의 주장과 하는 일은 세종대왕 때 한글반포를 반대한 집현전 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다가 국어연구원은 이희승 교수를 한글날이 있는 10월의 문화인물로 추천한다. 학술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펴리고 할 때 강력하게 그 정책을 반대한 단체인데 김대중 정권 때 전 서울대 총장 권이혁 교수가 학술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함께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교수들을 연이어서 학술원상을 준다. 학술원은 일제 때부터 쓰던 학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꿀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식 한자혼용 말글살이 편을 들었다.
<國立國語硏究院 設置 建議書>
우리는 世宗大王 586회 誕生紀念日을 맞아 訓民正音을 創製한 大王의 威德을 칭송하면서 國立國語硏究院(가칭) 設立을 建議하고자 합니다. 國語政策이란 것이 二世國民 敎育은 물론, 일반국민의 國語生活, 또는傳統文化의 繼承發展에 지대한 영향을미치는 것임에도 光復 후 38년이 되는 오늘날, 國立國語硏究機關 하나없이 지내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國家統治, 특히 國民總和에 國語統一醇化가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유럽 各國은 翰林院 통하여 그 나라의 國語를 統一, 整理, 醇化시켜왔습니다. 伊(1588년), 佛(1662년), 英(1662년) 등이 그렇고 이웃 日本도 國立國語硏究所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世宗大王 때에 이미 諺文廳(正音廳)이設立된 일이 있었고 集賢殿 學士들로 하여금 訓民正音創製, 東國正韻편찬 등으로 新文字의 創製, 漢字音의 정리를 하여 國語國字에 대한 연구를 했으며 舊韓末 國運이 기울어졌던 가운데서도 國文硏究所 설치로 國語硏究를 하게 한 先例가 있습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李奎浩 文敎部長官이 국회의원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學術院 안에 國語硏究院을 두겠다는 말을 한 바 있다고 하는데, 매우 반가운 소식입니다. 현재의 國文政策과 심의는 文敎部의 소관이요, 70년대에 마련한 語文관계 4개試案이 學術院에 계류중에 있습니다. 語文政策은 온 國民의 言語生活 전반에 걸치는 것이어서 一部處의 所管限界를 벗어나는 바가적지 않으므로 최소한 國務總理의 직속기관으로 設置하여 關係法을 마련하고 制度的으로 그 기능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는 별도로 마련한 硏究院의 設置提案理由와 硏究內容을 붙여 國語國字 관계 學術, 硏究 團體 등의 名義로 國立國語硏究院(가칭)의 設置를 建議하는 바입니다.
1983년 5월
韓國語文敎育硏究院 會長 李熙昇, 국어국문학회 代表理事 李錫夏, 國語學會 理事長 李亨奎, 韓國國語敎育硏究會 會長 李應百, 語文硏究會 代表理事 都守熙, 東岳語文學會 代表理事 李東林, 韓國讀書敎育硏究會 會長 洪雄善, 韓國放送作家協會 會長 兪湖, 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 李熙昇.
한글단체의 대응
한글단체는 국립국어연구원장을 한자혼용 우두머리인 이희승 교수 제자들이 계속 맞는 것이 부당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한글만 쓰기를 반대한 이희승 교수를 한글날이 있는 10월의 문화인물로 추천하고 선정한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그 반대운동을 한다. 결국 정부는 국립국어연구원장을 공모로 뽑게 되고 국립국어원으로 개편된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한글전용정책을 반대하고 한자 교육과 한자혼용 강화를 주장한 단체인 학술원이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특정대학 출신에게 계속 학술원상을 주는 건 한자혼용 세상으로 만들려는 음모로 보고 이 또한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 때 바로모임(대표 최기호)이 앞장을 섰으며 부경대 김영환 교수, 김두루한, 허재영, 김슬옹 선생들이 자료 수집과 문제점 제기에 수고를 많이 했다.
6. 영어로 회사이름을 바꾸기 반대 소송활동.
2002년 11월 28일에 한글확회,세종대왕기념사업회,국어문화운동본부 들 3개 단체와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 서정수 (한양대 명예 교수), 김세중 (국립국어연구원 규범부장), 최기호 (상명대 교수), 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동훈 (부산침례교회 목사), 박종만 (까치글방 대표), 김성규 (경기대 교수) 들 8명 이름으로 "한국통신과 국민은행이 KT와 KB로 상호를 바꿔서 국어를 아끼는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줬다" 며 2억2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를 외치며 영어조기교육을 시행하겠다면서 불기 시작한 영어 창씨개명 바람이 김대중 정권의 한글 짓밟기 바람이 불면서 점 점 더해갔다. 마침내 국가기관이나 다름없는 한국통신이 KT로 바꾸고, 국민은행이 KB로 바꾼다고 했다. 한글단체는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바람을 막으려고 법원에 소송을 하게 된 것이다.
재판 결과
옛날부터 우리는 성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함부로 바꾸지 않았다. 결백을 주장할 때 "이 말이 거짓말이면 내 성명을 갈겠다. 믿어 달라! "고 한다. 그런 쪽으로 봐도 오늘날 미국식 창씨개명 바람은 우리 참모습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꾼다고 미국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 우리를 그냥 먹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배워도 미국인처럼 하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데 2년 뒤에 법원은 “정신 피해보상은 패소했으나 영문으로 간판을 바꾸는 것은 위법이고 잘못이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행히 영문 간판으로 바꾼 것은 잘못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영문 창씨개명과 영문간판은 잘못이라고 법원 판결이 났는데도 정부나 기업은 계속 그 타령이다. 오히려 지방자치단체는 영어 섬기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가 정신피해 보상을 바란 건 아니지만 아쉬운 판결이었다. 판사들도 막강한 영어와 대기업의 힘에는 맥을 추지 못하는 거 같았다.
7. 한글날 국경일 추진운동.
1990년 어리석은 노태우 정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역협회 등 경제단체가 “공휴일이 많아 국가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1991년부터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 그 때 한글단체와 노동자단체는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경제단체의 말만 듣고 한글단체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문화관광부에 어문정책과를 만들고 국립국어연구원을 만든 정부가 한 짓이다. 그리고 한글과 우리말은 자꾸 힘들게 된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바로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켜줄 것을 건의한다. 국가 기념일 가운데 국경일은 1등급이고 일반 공휴일은 2등급이고 공휴일이 아닌 일반 기념일은 3등급이다. 그런데 예수와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은 대한민국의 공휴일로서 2등급인데 한글이 태어난 한글날은 3등급 기념일로 떨어져버렸다.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서 한글날 행사를 더 성대하게 한다던 정부는 억지도 형식만 갖춘 기념식을 했다. 행사가 대통령이 참석하던 걸 국무총리가 참석하더니 장관만 참석하는 행사를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한글사랑 정신이 식고 영어 섬기기 열병이 번질 수밖에 없었다. 500여년 만에 한글이 나라 글자로 자리잡아가고 그 몫을 다하려는 중요한 때에 정부가 한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한글단체 활동
한글단체는 끈질기게 애쓴 끝에 마침내 국회에 그 소리가 전해저서 16대 국회 때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모임(대표 신기남의원)이 생기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국경일 제정법 개정안‘이 발의된다. 한글단체는 국회의 활동을 돕기 위해 2000년에 한글단체와 사회 각계인사들이 모여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위원장 전택부, 본부장 서정수)를 꾸리고 힘차게 국경일 제정운동을 한다. 한글날국경경일제정추진회는 수만 명으로부터 찬성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하고, 나는 한글날에 기념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라.”는 1인 시위를 했고 그래도 안 되어 2002년 한글날엔 매일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국회 앞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촉구 1인 시위’도 하고, 2003년 한글날엔 세종대왕동상 앞에서 촉구대회도 열고,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하고 간청한다.
그러나 경제단체와 행정자치부가 반대해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뺄 때도 행자부(당시 총무처)가 경제단체의 말만 들었는데 계속 정부와 국회가 경제단체 앞에 꼼짝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과 한글날을 살리는 일은 그칠 수 없는 일이기에 17대 국회에서 또 70여명이 그 법안을 다시 제출하고 ’한글 세계화추진 의원모임‘을 만들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고 있다. 90살을 바라보는 전택부 위원장은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 달라는 건의를 하려고 청와대로 대통령을 만나러 가셨다가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로 가서 깨어나긴 했으나 반신불수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8. 국어기본법 제정운동.
한글단체는 오래전부터 국어 관련법이 한글전용법(법률 제6호)뿐이고 제대로 된 국어 진흥법이나 국어정책이 없는 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강력한 국어 진흥법을 만들 것을 주장했다. 우리말은 오랫동안 한자에 짓밟혀 멍들고 일본말에 더렵혀졌는데 요즘엔 세계화 바람을 타고 영어에 밀려 죽어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국어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국어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공감을 하고 2002년부터 공청회도 열고 여론을 듣고 국어기본법(법률 제7368호)을 만들어 2005년 1월 27일에 공포하고 7월부터 시행령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법 제정운동에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부 대표가 앞장섰다.
한자단체와 전 국어연구원장들의 반대 활동
전 국립국어연구원장들과 한자단체가 이 법 제정을 반대한다. 한자혼용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한글반대 집단임이 증명된 사건이다. 그런데 이 법이 우리말과 한글을 살려 쓴다는 기본 원칙은 그대로 이어갔으나 위반할 때 처벌 조항이 없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아래 국립국어연구원장들의 반대 활동에서 보듯이 일부 국어학자와 그 제자들로 국어정책 업무를 맡고 있어 문제가 많다.
[연합뉴스 2004-12-28 ] 이봉석 기자 = 한국어문교육연구회(회장 강신항)와 ㈔한국어문회(이사장 정기호)는 28일 성명을 내고 `국어기본법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두 어문단체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최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수정을 거쳐 국회 법사위원회로 넘어간 `국어기본법안'은 한자문화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한글전용법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두 단체는 "국어를 문화적인 유산이라고 보면 우리 국어가 과거에 축적해온 문화내용을 수용해 이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법안에는 그러한 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서울 프라자호텔에서는 정기호 이사장과 강신항 회장을 비롯해 안병희 국립국어연구원 12대 원장, 이익섭 4대 원장, 송민 3대 원장, 심재기 5대 원장 등 원로 국어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대 국립국어연구원장 간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두 단체의 성명서에 대해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송민 전 원장과 이익섭 전 원장은 국어기본법은 필요하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anfour@yna.co.kr (끝)
8. 우리말 지킴이와 헤살꾼 뽑기.
우리말이 한문으로부터 풀려나려는데 우리말을 영어의 노예로 만들려는 이들이 생겼다. 영어를 쓰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가 되면서 영어가 온 누리를 휩쓸고 있다. 가만히 있다간 우리말과 한글이 영어에 밀려 이 땅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았다. 어떤 미래학자는 앞으로 100년 뒤에는 지금 사용하는 세계 말 가운데 영어, 중국어 등 5개 정도만 남고 우리말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 국어학자, 돈 많은 기업인들은 우리말을 지키고 빛낼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우리말과 한글을 더 죽이고 못살게 군다. 어쩔 수 없이 국민이라도 나서서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야겠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말을 살리는 것이고 죽이는 건지, 어떻게 해야 우리말이 살고 빛날 것인지 알려주려는 뜻에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해마다 한글날에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 뽑기’행사를 하기로 했다. 지난해부터는 ‘훼방꾼’이라 한자말 대신 ‘헤살꾼’이란 토박이말을 써서 ‘우리말 헤살꾼 뽑기’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서 우리말과 한글이 더 위기에 처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이 행사는 발표회를 하거나 시상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민운동 차원에서 시민의 뜻과 소리를 글로 밝히고 우리 말글 독립운동사에 기록하자는 것이었다. 제 나라의 정부와 국회와 지배자들에게 제 나라 말글을 쓰자고 호소해도 듣지 않아 그들이 한 짓을 역사에 남기자는 뜻도 있었다.
훼방꾼의 반응
해마다 한글날에 이 행사를 하는 데 처음엔 훼방꾼으로 뽑힌 한자단체와 국가기관이 명예훼손이라며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그러나 한자세상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국민이 우리말과 한글 발전을 막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시민의 의견을 모아 알려준 일임을 밝혔다. 그리고 한글단체가 한자보다 한글이 좋다고 해서 우리를 우리말 훼방꾼이라고 뽑으면 영광으로 알 것임도 알렸다.
1999년 우리말 훼방꾼에 으뜸 훼방꾼으로 김종필 국무총리를 뽑고 *신낙균 전 문화광부 장관, * 심재기 국립국어연구원장,* 소설가 복거일,* 조선일보와 조갑제 기자, * 전국 한자교육 총연합회 진태하 상임 집행위원장, * SK 최태환, * 대한민국 국회와 국회의원 박원홍, * 한국 어문회 이응백 이사장 * 일본 외무성을 뽑았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해마다 한글날에 우리말 지킴이와 헤살꾼을 10명씩 뽑아 발표하고 있으나 빨리 이 일을 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국어학자들은 계속 영어와 한자 섬기기를 고집하고 있으니 더 알려줘야 할 거 같다.
마무리 말
지금까지 김영삼, 김대중 정권시대에 일어난 국어정책과 그 관련 사건들을 살펴봤다. 이 두 정권이 한글을 짓밟을 때 김석득 전 외솔회 회장은 “연산군 시대 다음으로 한글이 맞는 큰 위기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두 정권의 국어정책 평가 점수는 낙제점이고 이 시기는 국어 암흑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된 국어정책도 없고 올바른 정책 시행기관도 없는 나라인데 우리 국어를 살리려는 정책은 하나도 세우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돌아가는 한글세상을 한자와 영어 세상으로 바꾸려했다. 그래서 우리 말글살이와 교육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른바 세 김 씨라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가 한글과 우리말을 말아먹으려는 듯이 짓밟은 시기였다.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총리, 언론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포항제철(전 사장박태준)과 대한항공(전 사장 조중훈) 등 대기업과 경제단체들이 한 몸으로 한글전용 정책을 가로막는데다가 학술원(원장 권이혁)과 국어연구원(원장 심재기)까지 나서서 한글은 진짜 바람 앞의 등불 꼴이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제대로 된 국어정책도 없었고, 전문가도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국어기본법을 만들면서 기본 뼈대는 정해진 셈이나 정부가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 그 법이 권위가 떨어지고 우리 말글살이가 몹시 흔들리고 있다. 대학에선 한국어와 한국연사까지도 영어로 강의하겠다고 하고 초, 중, 고교에서도 영어로 과학과 수학도 가르친다고 한다. 영어 몰입교육을 한다고 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한다. 이게 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뿌린 씨앗이 싹터서 자란 열매들이고 상처다. 이 영어열병 때문에 국력낭비가 엄청나다. 이제 이 얼빠진 짓을 그만하고 강력한 국어정책수행기관을 만들어 우리말과 한글을 온 누리에 빛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