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편 주해
시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 지도소이다
시대의 혼란과 그 악화를 보고서 하나님에게 구원을 간구함은, 오직 단 하나의 살길이요 또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
그런 호소를 여호와께서 듣기 좋아하신다(출2:23).
① "도우소서"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호쉬아인데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② "경건한 자"는 히브리 원어로 카시드니 총애를 받는 자,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다(4:3의 같은 말 해석 참조).
③ "충실한 자"란 히브리원어로 에무님이니, 그 여자적(如字的) 의미는 인격이 견실하여 신뢰할만한 자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위의 "경건한 자"란 말에 대한 설명어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받은 결과로 방종해지는 것이 아니고 견실해진다.
"없어지도소이다“
악한 시대에 적막을 느끼는 이는 오직 경건한 사람이다.
악한 시대에 신실한 자들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런 불행한 시기(時期)가 올 줄 아신다.
그래서 먼저 신실한 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복락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하시기 때문이다(사57:1,2).
어거스틴(Augustine)은, 히포(Hippo)지방이 원수에게 빼앗기기 직전에 별세하였다.
파레우스(Paroeus)는 하이델벌키(Heidelberg)가 포위되기 전에 별세하였다.
루터(Luther)도 독일이 전쟁에 빠져 들어가기 전에 별세하였다(Spurgeon).
시 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각 거짓을 말함이여.
① 여기 "거짓"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솨웨니 허탄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광범위의 허위(虛僞)를 가리킨다.
곧, 그릇된 사상 선전, 그릇된 교육, 기타 모든 비 진리의 언사를 가리킨다,
② "말함이여"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 예다뻬르는 강력 동사(强力動詞)이므로 “말하고 또 거듭거듭 말한다”는 뜻이다.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도다.
"아첨"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칼라코트인데 “미끈 미끈하다”는 의미이다.
(1) 사실의 근거 없이 쉽게 거짓말을 꾸미는 것.
(2) 실행은 없이 말만 쉽게하는 것.
(3) 어태(語態)에 있어서 교언영색(巧言令色)하여, 상대자에게 알랑거리는 것들이 모두 다 미끈 미끈한 말에 속한다.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이라는 말은, 표리부동한 생활 곧, 거짓된 처세술을 가리킨다.
스펄죤(Spurgeon)은 “우리가 거짓말하는 자들 틈에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사자들 가운데서 사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이 말은 거짓말하는 자가 사람을 해한다는 것에 대한 경험적인 말이다.
이 시편에 대한 아라비아 번역은 이 시편이 말세에 대한 비탄(悲嘆)이라고 하였다.
말세는 거짓말을 그 모든 행사의 방법으로 삼는다(살후2:9-12).
시 12:3,4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라.
"자랑하는 혀"는 거짓말이 모든 문제 해결의 제일 되는 방법인 듯이 생각하고 덤비는 교만한 혀이다.
시 12:5 여호와여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가련한 자" 나 "궁핍한 자"는 성도를 가리킨 명사(名詞)들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 핍박을 당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궁핍하여지는 일이 많다.
"이제 일어나" 의 "이제"(아타)는 뜻있는 말이다. 곧, 하나님께서 핍박 받으며 궁핍하게 지내는 성도들의 사정을 오랫동안 참아 보시다가 "이제"는 그의 정한 시간이 되었으므로 자다가 깨어 일어나듯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뜻이다.
"그 원하는 안전지대" 이란 히브리 원어로 뻬예솨 야피아크로이다.
이를 직역하면 "저(궁핍한 자)가 갈급히 사모하는 구원에" 라고 할 것이다.
"두리라 하시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불쌍한 성도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감(靈感)에 의지하여 구원의 소망을 가졌다.
그러면 그 영감의 말씀은 얼마나 신실한가?
그것은 다음 귀절이 보여 준다.
구원의 소망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말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이 구절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가리킨다.
이 문구의 문자적 번역은 다음과 같다.
곧, "여호와의 말씀들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단련하여 일곱 번 거른 것 같도다"이다.
일곱 번이나 거른 것이니 일호(一毫)의 찌끼도 섞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는 허황된 요소라고는 전혀 없으시다.
시 12:7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히브리 원문에는 "여호와" 란 말 앞에 "당신께서"(아타)란 말이 역설체(力說體)로 나타난다.
그것은 성도를 보호할 자가 "당신" 곧, 여호와 밖에 없다는 의미의 역설체이다.
"보존하리로다"란 말은 히브리 원어 티츠랜누의 오역(誤譯)이다.
그 정역(正譯)은 "그를 보존하시리이다" 라고 한다.
여기 "그를" 이란 단수 대명사(單數代名詞)는 성도들을 개인 취급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시한다.
시 12:8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고상한 신앙과 도덕이 사회생활의 표준인 때에는 악한 자들이 머리를 들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사회가 부패한 때에는 악인들이 도리어 제 때를 만난 듯이 덤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