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좋다” 라는 감탄사가, 템플스테이 전문사찰 미황사에서 순례법회팀은 마라난타사를 출발하여 미황사를 향하여 달렸다. 땅끝을 향해 가는 도중에 모내기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지만 보리를 수확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중부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한편에서는 모내기 하고 또 한편에서는 수확을 하는 이모작과 같은 풍경이 남쪽으로 가면 갈 수록 더 많이 보였다. 지천에 깔려 있는 동백 미황사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의 끝이라 불리우는 ‘땅끝’ 가까이에 있다. 위도상으로도 가장 아래이기 때문에 자라는 나무도 다른지역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동백나무와 대나무와 같이 항상 푸른 나무이다. 이들 나무를 보면 남쪽지방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나무중에서도 동백나무는 지천에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미황사로 올라가는 길에 보는 동백나무는 마치 벤자민처럼 보였다. 생긴 모습이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는 열대수인 벤자민과 무척 흡사 하다. 더구나 초여름에 접어든 신록의 영향이어서일까 잎파리가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지금은 동백이 피지 않는 철이지만 동백꽃이 피면 장관이라 한다. 이런 동백을 보려면 2월 말에 오면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미황사 주변을 에워싸듯이 빨갛게 피는 동백은 장관중의 장관이라 한다.
미황사 전경. 뒤로 금강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달마산이 보인다.
아~좋다” 라는 감탄사가 미황사에 도착해서 바라본 풍경은 “아~좋다”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찰 뒤로는 달마산, 사찰 앞으로는 다도해상이 보여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찰 주변에는 송전탑과 같은 인공적인 구조물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하늘과 산과 나무이다. 이런 자연 속에 폭 빠져 있는 듯한 사찰이 미황사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한마디씩 한다. “참, 오기 잘했다!” 미황사는 템플스테이로 유명하다. 도로 표지판에도 아예 ‘템플스테이 미황사’라고 쓰여 있다. 이곳 땅끝에 위치해 있는 미황사가 왜 템플스테이로 유명하게 되었을까. 메스컴과 언론에서 수 없이 소개된 미황사의 템플스테이의 성공사례에 대하여 이미 많이 보도 되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템플스테이로 명성을 날리게 된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는 미황사의 주지스님인 ‘금강스님’이 있다는 것이다.
미황사 대웅전. 보물 제947호.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후기에 건립되었고 1754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음. 미황사는 경덕왕8년(749)에 지어졌다함.
대웅전 기단석에 자라, 게 모양의 문양이 있다. 인도불교가 바다를 통하여 땅끝마을로 들어 왔다는 전설을 뒷바침 하는 증거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
대웅전 천정의 공포. 사방에 천명의 부처님이 그려져 있다.
아름다운 대웅전의 내부 모습
저녁 햇살에 빛나는 응진당
응진당 내부의 아라한상
금강스님은 금강스님은 매우 젊게 보였다. TV화면으로 보아도 동안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본 얼굴은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40전후로 보인다. 그런 스님이 순례단이 방문하자 처음 부터 끝까지 안내하고 이끌어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녁공양이 끝나고 스님이 미황사에 온 것은 2000년도라고 한다. 올해로 10년째 인 것이다. 스님이 미황사에 와서 가장 먼저 한일은 한문학당을 만든 것이라 한다. 매년 3차례씩 7박8일 일정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문교육을 했다고 한다. 이 일을 10년째 해 오고 있는데 이제까지 졸업한 아이들이 7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템플스테이 1등 사찰 그 다음에 한 일이 템플스테이라고 한다. 템플스테이 바람이 불기 시작 한 것은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진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사람은 스님은 2002년도에 처음으로 템플스테이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일을 시작한 이래 지금은 템플스테이를 가장 잘 하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8년도의 기록을 보면 5,118명이 다녀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였고 숫자로 보았을 때 전국 1위라고 한다. 이런 영향이어서일까 가던 날도 외국인 두명이 보였다. 독일에서 왔다고 한다. 먼저 다녀간 친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여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순례단과 함께 똑같이 저녁공양을 하고 저녁예불시간에 참석 하기도 하였다. 이들 외국인이 불편함이 없도록 전문통역사가 있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저녁 공양시간. 외국인도 보인다.
공양음식
부도밭으로 가는 산책 저녁공양을 마치고 산책을 하였다. 장소는 부도밭이다. 부도밭으로 가는 길에는 새소리가 유난히 심하였다. 새의 종류도 많은 모양이다. 여기 저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부도밭에는 이끼낀 오래된 많은 부도가 많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가장 큰 부도밭 중의 하나에 들어 간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부 부도에는 물고기나 게의 형상이 조각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형상은 대웅전의 받침돌에도 새겨져 있어서 바다건너 인도에서 불법전래설을 뒷 받침 한다고 볼 수 있다.
산책로를 타고 올라 가다 보면 수십기의 부도전이 나타난다.
부도전에 있는 어느 비석의 비문
저녁햇살의 부도전 모습
샤워장이 있다는 것 미황사는 템플스테이 전문사찰 답게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특히 샤워장이 잘 갖추어진 것이 인상적이다. 따뜻한 물이 언제든지 나와서 마치 집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어떤 법우님은 샤워시설이 잘 갖추어진 점을 가장 높게 평가 하기도 하였다. 그만치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임을 강조 하고 싶어서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황사는 매우 활력이 넘치는 사찰이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매일 외부에서 손님이 들어 오고 나가고 하면서 밤에는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이날도 대전에서 어느 스님이 신도를 데리고 기도 하러 오는 것을 보았다. 밤이 깊어도 사람의 왕래가 있고 법당에는 불이 밝혀져 있어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산사가 밤이 되면 불이 꺼지고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 이지만 이 곳 미황사는 불이 꺼지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종무소.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머무는 장소
또 다른 머무는 곳의 내부 모습
샤워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공양식당을 신축중에 있다.
템플스테이 1등 사찰이 된 이유는 미황사가 템플스테이 1등 사찰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들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다음으로 잘 갖추어진 편의시설이다. 샤워장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음식도 맛있고 맛도 독특 하다. 먹고 자고 머무는 조건이 만족 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템플스테이를 너머’가 있다는 것이다. 템플스테이가 단순한 사찰체험으로 그치는 것에 지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발전 시키는 전략이다. 그 것이 ‘참선프로그램’이라 생각 한다. 이 프로는 한 달에 한번 있는데 7박8일 동안 집중수행한다고 한다. 이프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자신을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프로는 재가 불자들에게 반드시 필요 하다고 본다. 그리고 모든 재가자들이 한번쯤은 참여 할 수 있도록 활성화 되어야 된다고 생각 한다. 염불이나 108배, 다라니 독송 보다도 자기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있어서 참선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 되기 때문이다.
아침햇살에 바라본 대웅전 앞마당
저 멀리 다도해상국립공원이 보인다.
미황사에서 하룻밤은 미황사에서 하룻밤은 매우 유쾌 하였다. 밤에는 별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새벽이 되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새들이 지저귄다. 거기에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도시의 인공적인 냄새는 풍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머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환경도 주지스님의 부지런함만 못 할 것이다. 마당이건 공양간이건 어느 장소에도 항상 주지스님이 보인다. 그리고 참가자하고 담소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바로 이런점이 미황사의 가장 큰 강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이 오늘날 템플스테이 1등 사찰이 된 이유가 아닐까.
다도해가 보이는 아름다운 전경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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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고뇌의 강을 건너 원문보기 글쓴이: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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