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컴퓨터가 고장난 사유로 인해 뒷북 같지만 마음이 편치 않기에 그동안의 봉사활동 후기를 이제서야 올려봅니다. 사실 활동도 많이 부족했거니와 미성숙하기에 후기 또한 이런 태생적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킬 수 밖에 없겠지만 차후의 괄목할만하며 귀감이 되는 마음 가짐과 활동의 초석이 될 줄을 굳게 믿음과 동시에 졸필을 무릅쓰고 감히 적어 보겠습니다.
일시 : 07년 01월 07일 장소 : 아산 둔포 보호소 드디어 첫 봉사 활동이다. 유감스럽게도 06일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모임이 있어 충남 대천에서 평택으로 향하는 루트 외에는 여지가 없기에 그 부담과 인력은 작금의 상황으로써는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06일에 前 강은엽 참모 총장님의 사임식 겸 시무식이 있었던 관계로 그 기회비용까지 막대한 수준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평소와 같이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마음 가짐 말고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아 참, 정성스레 준비한 삶은 계란 한 판 까지.
드디어 07일 아침, 평택역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처음 봉사 활동을 어이없는 이유로 궤멸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꼬박 밤을 새버린 관계로 기차 안에서도 엄청난 인력을 요구 받았다. 잠들어 버리면 그대로 용산. 그래도 무사히 평택에 도착하였다. 혹한이 악명을 떨치고 있었던 터라 기다리고 계실 봉사활동 참모진 김희정 누나와 다른 회원이신 김민선 누님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지만 다행히 차안에서 기다리고 계셨더라.
사실 나는 남자 회원분들과 그외 대략 10여명의 인원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이 날 모인 분들은 나까지 총 세명. 조금은 놀랐다. 아니, 그것보다 획기적인 인력 증강을 필연적으로 갈망하였다. (마음 속으로.) 그동안 이런 수준 이었으면 중(重)작업 들은 모두 이런 소규모 인원, 그것도 여자분들이 떠안아 버렸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많은 인원들이 오히려 통제도 힘들고 역으로 총체적인 임무 달성률이 저조할 수 도 있다는 점은 내가 어느 모 동아리의 부회장을 맡으며 느낀 점이므로 그다지 개의치 않음과 동시에 내가 발산해야 하는 에너지와 노력 여하의 수준을 알게되었다.
당장이라도 핵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둔포 보호소에 도착했다. 이런 경험은 전무한 실정이라 아무 것도 몰랐지만 많이 열악한 것 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100여 마리가 넘는 유기견들을 소장님과 사모님 둘이서 관리를 한다는 것은 분명 이상과는 괴리가 있었으니. 물론 철 없는 소리다. 아무 것도 몰랐으니.
혹한과 싸워가며 두분은 매우 고생하셨다. 나는 논 건 아니지만 위에 기술한 두분에 비하면 단연 "견마지로" 였다. 다들 베테랑이셔서 그런가 기술적 노하우도 상당한 수준이었고, 어깨너머지만 열심히 배워나갔다.
준비한 건빵, 갖가지 간식들을 나눠 줄 때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니 참으로 사람과 다를 것이 없음을 느꼈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니까. 내가 학대를 한 건 아니지만 전에 같이 지냈던 반려견 "미미" 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한 점을 너무나 후회하게 만들었다. 미미는 잘 지내고 있을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두분과 함께 먹는 컵라면. 플러스 알파로 "총각~" 김치까지. 푸하하하. 이런 색다른 맛은 전고미증유였다. 대박. 쓰면서도 웃음이 난다. 내가 참 굴곡진 인생을 살아서 별의별 경험을 해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감히 써봅니다.) 간단한 식사 후에 준비해 온 삶은 계란을 해체하였다. 상당히 사무적인 태도가 예상 되었던 분들이었지만 인간미가 홍수를 이루는 분들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삶은 계란들을 나눠주고 도사견 펜스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흩뿌려 줄 흙 덕분에 삽질을 했는데. 간만에 삽질을 해서 그런가 학교에서 징계 받았을 때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오늘의 중(重)작업을 내가 도맡게 되어, 그 기쁨이란 갈사 직전의 나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던져주는 것과 비견될 정도였다.
그렇게 야속한 시간은 멈출 줄을 모르고 가버렸다. 헤어질 시간이다. 김희정 누나께서 갈 시간이라고 통보를 할 때 그 느낌은 아주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로 가슴 아팠다.
게다가 한 것도 없는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소장님을 보니 괜시리 내가 죄송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소장님을 뒤로하고 떠났다.
분명 그날 나는 2일간 잠을 자지 못했다. 체력적으로 거의 임계 상황까지 도달할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숭고한 에너지로 휘감기어 봉사활동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정신적으로는 정말 고급의 카타르시스. 정작 놀란 건 나였다.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까지 녹아내리는 듯 하였을 정도였으니까. "갖은 오버를 하는구나." 하실 수 도 있겠지만.. 그만큼 나에겐 대단한 것이었다.
오늘의 작전 성공률은.. 400% 였다.
일시 : 07년 01월 27일 장소 : 아산 둔포 보호소
전차(前次)에서 놀라운 흡착력으로 배운 기술적 노하우를 싸들고 짐을 꾸렸다. 이번에는 인원이 늘었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마음씨 좋은 소장님, 사모님을 뵙고 증강 된 인원, 특히 새로이 뵌 회원분들이 상당수라 초반부터 나의 기분을 상큼하게 3분 요리 시켰다.
날씨가 단말마의 몸부림을 치는지 가시질 않았다. 때문에 다른 회원 분들은 삶은 계란을 까시느라 고생 좀 하셨다. 게다가 왜 내가 삶아 온 계란만 이렇게 지저분하게 까지는지. "참치는 왜 동원인가?" 와 비견 될 만한 의아함은 삶은 계란 해체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이런. 안그래도 요 몇달간 3~4kg 씩 계속 빠지는 유동적인 살 때문에 오늘 일에 제대로 참여나 될까, 걱정도 되건만.
드디어, 힘찬 시작. 간식거리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아마 모든 봉사활동을 통틀어서 간식 나눠줄 때가 제일 기분 좋은 것 같다. 재차 언급하지만, 사람과 개는 다른 점을 찾는 것 보다, 같은 점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인가 가슴이 더 아프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꼭 무력을 통해서 남의 간식을 빼앗아 먹는 녀석들이 있다. 얄밉다.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이라는 측은지심까지 들 정도다. 나는 중 3 때 세상에게 환멸을 느끼고 학교도 그만두고 "호스피스" 를 하려고 고아나 소년소녀가장급의 어린이들이 머무는 곳에서 얼마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도 펼쳐지는 시나리오는 보호소에서도 똑같이 적용 되었다. 가슴이 참 미어질 듯 하였다. 사람도 버림받으면 죽을듯이 괴로워 하는데. 얘네들은 제대로 된 의사표현 하나 못하고 오로지 피동적인 자세로 일관한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무관심 때문에 사람은 실제로 죽기전에 죽어버린다." 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래도.. 나와 공통분모가 있는 그녀석들이 얄밉지만은 않다.
오늘은 도사견 펜스 안에 흩뿌려 줄 흙을 삽질 하는 일이 주된 작업이었다. 남자 회원분이 다행히 같이 해주셔서 더 즐거웠다. 그 뿐인가. 군대를 나오신 분이라 그런가 삽질 노하우까지 역으로 배워왔다. 때문에 달성 시간과 효과는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도사견 애들은 전고와 전투 중량이 그동안 말만 들었지, (전에는 소장님께서 출입까지 통제하셨다.) 근거리에서 보니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사모님 얼굴에 나신 상처에 대해 얼핏 얘기를 들었는데, 그 힘도 대단한 듯 했다. 펜스 안으로 들어갈 때 낯선 내가 들어가서 그런가, 엄청 짖던데 그 풍부한 성량은 삽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들어갔는데 삽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푸하하하. 하여튼 이녀석들은 여러모로 나를 흥미로움의 도가니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펜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계속 들어가서 흙을 뿌렸더만 사모님은 이런 무모한 나를 만류하셨다. 한 번 물면 안 놓는 다나? 덕분에 삽질은 밖에서만 했다.
나를 재미로 몰아 넣은 것은 아이들의 행동이었다. 달려들어서 당장이라도 물 듯이 짖어도 자기 펜스 안에다 흙을 뿌려줄 때면 가만히 꼬리만 흔든다. 오히려 귀엽기까지 한 그 모습. 잊을 수 가 없다. 까마귀도 은혜를 알고 보은을 하는데 얘네들도 다를 것이 없다. 순수한 마음은 모든 생명체나 똑같다. 다만 인간만 다를 뿐. 갑자기 뜬금없이 내가 주지하고 있던, "가이아 이론" 에 힘을 실어주기 까지 했다. 미쳤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등에서 날개가 솟았다. (마음 속으로~) 그리고 골든 리트리버. 이녀석은 땅을 죄다 파놓아서 되메우느라 애를 먹었다. 가셔 어루만져주니 장난기가 가득한 녀석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고를 치는 걸 보니, 흡사 나와 닮아서 더 애착이 갔다.
오늘도 부족함을 외치며 봉사활동도 끝맺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고양이 펜스 안에서 미용도 해주시고 참 애를 쓰셨다. 아무리봐도 나보다 다른 분들이 더 고생하신다. 그래서 항상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점이 "열심히 하자" 이다.
온화하신 소장님은 가는 길까지 흐뭇하게 해주신다. 그렇게.. 오늘도 끝이 났다. 매번 이렇게 배워나가고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회원이 되었으면, 그 뿐이다.
일시 : 07년 02월 11일 장소 : 충북 음성 보호소
오늘의 봉사활동은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Young 카라의 활동과 겹치는 바람에 나는 충남 대천에서 운전 면허를 준비할 때 부터 아마 8시간 정도의 막대한 고민을 요구받았다. 난 정말이지 2일 정도간 혼이 나가버렸다. 아니,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고민을 했다. 나의 어이없는 시간 착오와 이모셔널리즘한 성격 탓에 곤란을 겪으신 김효진 누님께 이 면을 빌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 싶다.
때문에 나는 이번 봉사활동은 몇배나 증강된 화력으로 불타올라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매차의 봉사활동마다 미성숙을 자랑했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는 점을 부끄럽지만 고백하고 싶다. 아니, 임무 달성률에서도 치명적으로 저조한 수치였기도 하다. (창공과 같은 마음으로 너그러이 감싸주시길 인지상정에 호소합니다.)
오늘 간 보호소는 이제와서 느낀 거지만 상당히 아늑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유기견의 원개념에는 상처 하나 낼 수 없는 느낌이었지만.
이 곳은 유달리 정이 많은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나를 밀어 펜스에 자빠지게 했던 달마시안과 체인에 내 발을 감아버린 골든 리트리버, 도사견 답지 않게 완전 순둥이었던 태양이, 내가 원명을 무시(웃음)하고 (귀히 여기는 나만의 이름을.) 손수 붙여 준 가온 등.. 어딜가나 아이들은 사랑을 필연적으로 필요로 하지만 전보다 강한 요구치를 느낀 녀석들이었다.
증강된 화력으로 나를 소이시킬 시간이다. 견사를 짓는데 한상필 회원님과 함께했다.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웃음) 토목 건설업의 경험이 있으신 한상필 형님은 나보다 한층 발전 된 기술로 나를 압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견사 짓기는 최후까지 둘 다 달성하지 못했고, 이는 돌아가는 차안을 한상필 형님과 내가 허탈한 웃음으로 메꿔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에는 참으로 특이한 경험을 했다. 도사견 눈물 닦기. 사실 둔포 보호소에서 느꼈던 도사견들의 전투 중량과 전고는 가공할 정도여서 임무를 받고 난 뒤 의아했지만, 도사견 태양이의 온순함은 새로운 경험의 기쁨을 활성화 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가서 안아주고 입도 닦고, 눈물도 닦고.. 의외로 귀여움이 묻어나는 아이였다. 아마 대한민국 1% 의 도사견이 아닐까 웃으며 생각해 본다.
다음은 가온이를 써볼까 한다. (原名 : 효리) 말라뮤트의 대형견 이었는데, 내가 그날 쓰고 간 모자를 봐서 그런가 나를 잘 따랐다. 설마 했는데 힘이 장사였다. 전투 중량과 전고는 도사견 못지 않아서 개를 안고 주춤한 건 가온이가 처음일 거다. 전투 중량에 어울리지 않게 안기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나처럼. 게다가 애교 덩어리라서 후에 X 치우느라 "가온~" 부르면 날 쳐다보고 쫓아 올 정도로 우수했다. 덕분에 가온과 안고 찍은 사진은 나의 PSP에 멋지게 바탕 화면을 장식 하고 있으며,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쓰는 동안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오늘의 중(重)작업. X 치우기. 아마 음성 보호소 작업 중 60% 정도를 차지했을 것이며 동시에 가장 대규모의 인원이 투입 되었던 작업. 그나마 전보다 증강 된 인원이었기에 거의 다 끝냈지, 부족한 인원 이었으면 공정률 85% 는 한낱 희망사항으로 그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내가 자랑스레 딴 구르마 1종 보통 면허는 이날 빛을 보았다. 푸하하하. 이날 나는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X 먼지 마시고, 죽은 제리를 보지를 않나, 갈퀴에 팔을 가격 당하고.. 하지만 다른 분들은 산 제리를 보고 놀라시고 나보다 다른 분들의 더 수고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어디 그 뿐인가. 애견 미용 테크니션, 한상필 형님, 김희정 누나, 그외의 분들도 정말 흙먼지 마셔 가시면서 정말 고생하셨다.
사실 이번 봉사활동은 처음인 장소, 생소한 작업이 많아서 사고도 많이 치고 미숙했지만, 반대 급부로 그에 따른 흐뭇함도 꽤 큰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최대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라고 느껴질 만큼 내가 쳤던 사고는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음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의 발전 된 모습의 윤재식, 아니 KARA 의 회원으로써의 초석이 됨을 간절히 고대하며 미처 못 쓴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 빛나는 모습을 약속 드리면서 후기는 이로써 끝을 맺겠다.
- 끝 -
저의 부족한 점은 언제라도 좋습니다, 채찍을 가 해주십시오. (이 면을 빌어, 양정화 누나, 김희정 누나께 감사를 표합니다.) KARA 에서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저의 마음 한 구석에선 언제나 미완을 외치니까요. 너무 장문이라 죄송스럽기까지 합니다. 다 읽으신 분도 있으시겠고 너무 긴 탓에 휭~내리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양자 어느 것을 택하시든지 마지막 이 글 만큼은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이탈리아의 곡예비행단 " Frecce Tricolori(프레체 트리콜로리) " 의 파일럿이 인터뷰를 요청한 영국의 BBC 다큐멘터리 제작자에게 독일의 람슈타인 공군 기지에서 에어쇼를 하다가 파일럿을 포함하여 70여명 이상이 사망한 사고가 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 조종을 하면서 내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곡예비행은 항상 목숨을 건 모험이니까요.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아마 이 일을 선택 할 테니까 말이죠. "
첫댓글 봉사의 기쁨을 너무도 잘 표현 해주셨네요. 조금 더 짧기만 하면 퍼가고 싶은데...^^;(너무 길면 회원들이 지레 지쳐 읽어볼 생각을 안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