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처럼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던 독재정권 시절의 교육은 글자 그대로 깃발이었다. 학교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못자리였고, 교육은 체제를 지탱하는 보루가 되었다. 교사와 아이들은 회색빛 교실에서 할 일 없이 '의식의 제자리뛰기'를 반복하였고, 획일적인 학교교육은 국화빵처럼 불의를 봐도 잘 참을 줄 아는 미래의 어른들을 끊임없이 배출했다. 암울했던 그 시대의 학교는, 그러나 양은 도시락에 톱밥 난로의 추억과 함께 울 밑에 깔린 채송화처럼 서로의 가슴을 나누는 일말의 동정과 연민은 있었다. 깃발일망정 마을의 센터였고, 아이들의 전천후 놀이터였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학교는 지금처럼 만신창이는 아니었다.
한완상의 교육정책은 트로이의 목마
21세기 우리의 교육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훗날 역사는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을 '총체적인 파국'으로 기록할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혼란은 김대중 정권 이후 3년 사이에 교육부장관이 5명이나 바뀌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민의 정부는 내세우는 교육정책마다 손바닥 뒤집듯 국민을 속여 왔다. 교원정년을 단축하면서 노령교사 1명을 내보내면 2.5명을 충원하겠다더니 2001년 현재 교원부족 사태는 최악에 이르러 초등학교에서는 담임교사 없는 학급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한완상 부총리가 들어선 지금의 교육부가 이런 폐단을 조금이라도 시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지부동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일까. 한완상 교육부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일례로 교사계약제를 보자. 7차교육과정은 고등학교 선택교과 교사 수급을 위해 계약제를 도입한다고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가장 힘 없고 약한 양호교사들이 그 대상으로 '찍혔다'. 2002학년도부터 18학급 미만 학교의 양호교사 자리는 모두 과원처리하기로 방침이 정해졌고 그 자리를 향후 계약직으로 메꾼다는 것이다. 양호교사가 제일 만만하다는 것일까.
또한 교육부는 2005년에는 영·수·국 위주의 수능Ⅰ·Ⅱ 이원화 실시를 예고하고 있다.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현재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사교육비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수능점수를 배추값처럼 폭락시켜 수험생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었다. 교육재정은 4% 대에서 뱅뱅 맴돌고 있고, '교육이민'이란 신조어는 더 이상 새로운 말도 아니다. 과연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전교조가 보기에 한완상 교육부의 본질적 문제점은 재원과 투자에 대한 고려가 없는 교육부의 깃발성 시책에 있다. 땡감 씹듯이 영국과 미국마저 내다 버린 '낡은 정책'들을 직수입해다가 한국판 관료주의와 버무려 교사와 아이들에게 억지로 먹이려 하고 있다. 그 깃발의 이름은 보기에느 그럴 듯하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지식기반 사회를 향하여!' 그러나 그 깃발이 정작 가리키는 곳은 교육의 '시장화'를 통한 교육불평등의 골 깊은 골짜기일 뿐이다.
한완상의 교육정책은 마침내 트로이의 목마로 각인됐다. 교사들은 이제 스스로의 몸이 도매금으로 등급화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과급의 여파는 우수수 C등급을 받은 양호교사와 여교사,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지금까지 9만여 명의 교사들이 반납한 성과급은 3백억 원이 넘어섰다. 결국 자립형 사립고와 계약제 교원 도입, 7차교육과정 강행의 여파는 여의도에 1만5천 명의 교사를 연가투쟁으로 운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중초 임용'과 7·20교육여건 개선 시책에 따른 학급당 학생 수 35명의 감축을 위해 밀어붙인 교대학점제는 전국 2만여 명의 교대생을 동맹휴학으로 몰아넣는 촉발제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교사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시책성 교육개혁이 아니라 공공성 회복 차원의 '공교육 살리기'이다. 착실하게 교사 수를 늘리는 일, 다 낡아빠진 학교 건물에 억지춘향 격으로 교실을 증축하는 것보다는 거대학교 과밀학급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작은 학교의 수를 늘리는 일, 교장선출보직제 같이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할 수 있는 정책, 첨예한 문제는 '교육부-교원노조의 단체협약'에 위임하는 일, 작은 교육부와 학교교육지원센터로서의 교육청을 만드는 일, 7차교육과정의 수정고시 등등 정작 정부가 할 일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 마땅했다.
그러나 한완상 교육부는 그러한 기초를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반짝 인기에 영합하여 빈손으로 나팔을 불어대기만 했다.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한완상 부총리는 결국 역대 장관들처럼 대통령의 지시사항 이행(성과급, 학급당 학생 수 35명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본질을 잃었고, 이제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일만을 남겨두고 있다. 서글픈 일이다.
관료주의에 휩쓸린 부총리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이 '깃발성 시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큰 문제는 '관료개혁이 빠진 교육개혁'에 있다. 교육과정과 입시를 연계시켜 종합적인 개혁을 시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02 대입무시험제'를 등장시켜 2002년이 되면 누구든지 놀면서도 대학 간다고 사기(?) 친 것은 정권의 '깃발성 시책'에 해당된다. 반면에 7차교육과정은 교육관료들의 전형적인 '관료주의'다. 문민정부 시절 만들어진 부실 설계도를 수정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갖다 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지자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수행평가니, 선택형 교육과정이니 해가면서 홍보를 하고 마침내는 나가떨어져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1995년의 5·31교육개혁은 학교를 수월성에 바탕을 둔 '세계화의 기지'로 간주했다. 그러한 관점은 현 정부 들어와서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신지식기반사회라는 미국 중심의 경제체제에 교실을 틀어맞추려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교육부는 왜 이 무리한 정책을 계속하는가? 그 중심에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가진 일단의 교육관련 학자들과 해외파견 연수제의 혜택을 받은 이른바 '유학세대' 교육관료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신관료주의에 대한 사전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능력보다는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풍토, 입시 위주의 교육, 세계에서 제일 많은 수업일수(2백20일)와 주당 수업시간, 열악한 학교환경과 모자라는 교원 법정정원, 대학서열화와 내신성적 등 고질적인 교육계의 병폐가 사라지지 않는 배경도 그러한 구조를 밑으로부터 지탱하고 있는 이 '철의 관료주의'다.
교육에 대한 관료주의적 관점의 핵심은 '학교는 민간재'라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은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하고 생산성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립학교에 지원되는 연간 1조4천억 원의 돈이 아까우니 '자립형 사립학교'를 만들어 교육비를 민간재원에 부담시키려 한다. 일각에서는 공교육에 투자하는 돈마저 아까우니 공립학교도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중학교무상교육을 도입하면서 2천8백20억 원이 아까워 법령 외 경비인 육성회비를 존치시키고, 조기유학 가는 상류층의 투자를 한미투자협정과 국제협력에 따라 내국으로 끌어들인답시고 '외국인학교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평준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국공립 부속학교를 '자율학교'로 지정하고, 이들 학교에는 경쟁체제인 정규 7차교육과정의 적용을 면제해주며, 특례입학도 확대 허용하고, 기부금 입학을 전제로 내신상 특혜를 주려는 등 학교를 시장화하려는 교육관료들의 시도는 끝이 없다. 이 모든 정책의 부가가치는 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는 '입시 경쟁'으로 낙착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의 더욱 심해져만 가는 '서울대 병'의 발원지는 대한민국 교육관료들이다.
국민을 볼모로 잡은 철의 관료주의
최근 한완상 교육부의 실패 또한 교육부의 관료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현직 차관급에 있는 어느 정치인은 이러한 폐해를 일러 "DJ가 죽 쒀서 × 주었다"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정권을 잡았을 때 진정한 교육개혁을 이루어내려면 적어도 교육부의 4급 이상 고위급 관료 중 절반 이상은 개혁적인 외부의 개방직 인사로 교체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5백 년을 이어 내려 온 이 '철의 관료주의'야말로 단군 이래 최초의 정권교체 속에 탄생한 국민의 정부가 비극적으로 개혁과 이별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지금의 총체적 난국은 무능한 정권의 비호 아래 교육관료들이 빚은 관료주의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교육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는 경로를 살펴보면 희미하게나마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 시절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큰 교육정책들이 하나같이 실패하고 표류한 것은 그러한 부작용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권 말기여서일까. 한완상 교육부에서는 일반직의 정책독점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교원 계약제, 교대 학점제, 수학능력고사, 국·공립대 구조조정, 자립형사립고, 외국인학교 개방 등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어떻게 귀결될지는 그간 우리가 너무나 충분히 경험해 왔다.
교육을 개혁하려거든 교육관료를 개혁하라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는 비슷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책실명제에 의한 관료 문책, 아울러 교육정책 관련 직책에 대한 자격기준 및 직무규정을 설정하는 등 교육부 관료들을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한다. 관료는 한 건 해야만 승진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입안하고 시행하는 정책이 교육에 유익한지 아닌지를 따질 겨를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학부모들은 학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육개혁의 부작용을 모두 교사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오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물론 현장의 교사들에게도 문제점은 많다. 그러나 교육개혁의 청사진은 관료가 마련하고 교사는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교육의 부실이 '교사의 문제'라면, 대한민국 교육구조의 붕괴는 '교육부 관료'의 문제인 것이다.
외국인학교 개방을 위한 입법예고가 나왔던 2000년에 필자는 이 문제를 갖고 교육부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호소해도 당시 김왕복 교육자치지원국장과 김용호 과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분들은 "마음대로 해봐라. 그런다고 진행 못할 우리가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궁지에 몰린 필자는 외국인학교에 관련된 각종 비리자료를 발굴하고 관련 증인들을 만나면서 이를 통해 드러나는 열악한 외국인학교의 실태와 이런저런 비리들을 톱기사로 폭로했다. 결국 교육부는 입법예고 5개월 만에 외국인학교 정책을 철회했다. 이런 곳이 바로 대한민국 교육부다.
교육정책을 장악한 일반행정직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열린교육을 교육청 평가에 연계시켜 획일적으로 전국에 확대한 장본인으로 알려진 사람은 당시 김성동 기획관리실장이었다. 청와대 비서관 시절부터 '열린교육 전도사'로 불릴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지금은 교육과정평가원장이 되어 이번 수학능력고사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교육과정평가원의 백순근 연구원(현 서울대 교수) 등이 책임연구를 한 '수행평가'를 행정화시키고 그 당위성을 합리화한 서남수 교육정책기획관(현, 교육부 대학지원국장), 민주당 정권인수위 당시 교원정년단축 프로그램을 가동시킨 것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이기우 교육자치지원국장(현, 교육부 기획관리실장), 불안정한 교원확보 정책과 교직발전종합방안을 생산해낸 김광조 교원정책심의관 등 헤아릴 수 없는 관료들의 실험적 정책이 세간으로부터 관료들의 '승진을 위한 매개체'로 전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만일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번 수능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과연 무엇이 되는가.
결국 전문성도 없고, 책임성도 부족한 일반직 관료에게 국가의 중장기 교육정책을 맡기고 민감한 현안 정책을 결정하게 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를 두고 안승문 서울교육포럼 집행위원은 "그들은 군사독재 시절 학생운동이 치열할 때 골방에 숨어 고시공부에 몰두하고 한 번 고시에 합격한 후에는 해바라기처럼 위만 바라보는 습성을 유지하는 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한계가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이나 공동체를 위한 관점보다는 개인의 출세나 영달을 중요시하는 '관료상'으로 이어지는 폐단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교육 백년대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당장의 우리 세대에게 불행한 일이다. 이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고급 교육관료 선발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대수술이 가해져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