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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해나 타협도 필요없다'
큐브릭의 '악명'높은 일화들
By Nam Lee, March 10, 1999
▲스탠리 큐브릭(1928~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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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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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장치 오렌지(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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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메탈 자켓(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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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1962)
칠순이 다 되신 우리 어머니는 자주 '죽는 복'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늙으막에 병마에 시달리며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잠결에 눈을 감는 것 만큼 큰 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7일 갑작스레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그것도 자기 고집대로 하면서 죽음의 복까지 누린 셈이다.
그는 유작이 된 「아이즈 와이드 샷」(Eyes Wide Shut)의 비공개 시사회를 가진 지 5일만에 자택에서 평화롭게 잠들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뉴욕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워너브라더스의 간부 2명과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부부 딱 4명만이 참석했다고 한다. 큐브릭은 비행기를 타지 않기 때문에 관계자 시사회를 늘 런던에서 하지만 니콜 키드먼이 매진사례를 기록하고 있는 연극을 취소할 정도로 크게 아픈 바람에 프린트를 뉴욕으로 공수했다고 한다. 완벽주의자로 악명높은 그는 작품에 대해서 비밀을 유지하기로도 유명한데 이번 시사회에는 자신의 조수를 보내 영사기가 돌아가는 동안 영사기사가 등을 돌리고 있도록 조치를 취해 관계자 4명만이 보도록 철처를 기했다고 한다.
이 시사회에 참석했던 워너브라더스의 테리 세밀 공동회장은 큐브릭이 사망하기 몇 시간 전에 전화통화를 했으며 큐브릭이 「아이즈 와이드 샷」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고, 광고와 마케팅에 대해 의논을 하는 등 매우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다. 그는 광고는 두가지 버전으로 만들고 영화음악을 좀 수정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영화내용은 아직도 비밀에 싸여있는데 비공개시사회 후 흘러나온 이야기는 러닝타임이 2시간 19분 정도라는 점과 클래식음악이 사용됐다는 점 정도이다.
영국의 한 신문은 큐브릭에 대한 추모기사에서 "그는 폭넓게 사랑받았다고는 할 수없지만 크게 존경받은 작가"라고 썼는데 큐브릭은 생전에 자신의 작업에 대해 엄청나게 꼼꼼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챙긴 것으로 '악명' 높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풀 메탈 자켓」을 개봉할 때도 그는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직원들을 엄청 괴롭혔다. 자막번역이 잘못될까봐 한글 자막원고를 런던으로 보내라고 한 뒤 그곳 교민에게 다시 그 원고를 영역하도록 해 확인을 했는가 하면 광고의 카피 문구 하나, 어느 신문에 몇 단으로 광고를 할 것인가까지 일일이 챙겼다. 당시 큐브릭의 수발을 들었던 워너브라더스 관계자는 팩스가 엄청나게 오갔으며 하도 까다로워서 다시는 큐브릭의 작품을 개봉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자신의 일에 철저한 점에 대해서는 존경심이 앞선다"고 털어놓았었다.
고집센 그는 배우들을 괴롭힌 감독으로도 악명높다. 「샤이닝」 촬영시에는 여주인공 셸리 뒤발에게 같은 장면을 127번 반복하게 했으며 주인공 잭 니콜슨은 참다못해 큐브릭에게 대들기도 했다. 월남전 이야기인 「풀 메탈 자켓」 촬영 때에는 큐브릭이 배우들을 대상으로 영화 초반에 죽는 역을 맡을 사람을 묻자 거의 모든 배우들이 손을 들어 서로 하겠다고 했다. 그 중에서 뽑힌 행운아는 그러나 3개월의 촬영기간 내내 시체가 되어 진흙탕 속에 누워있어야만 했다고.
반세기에 가까운 영화인생에서 단 13편의 작품을 남긴 큐브릭은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되었었다. 60년 할리우드 대작 「스파르타쿠스」를 완성한 이듬해 할리우드의 화려함과 돈에 등을 돌리고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외설시비에 휘말린 「롤리타」를 시작으로 논쟁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앤서니 버제스의 소설을 각색한 「시계태엽장치 오렌지」(Clockwork Orange)를 둘러싼 격심한 논쟁. 웃으면서 강간과 살인을 일삼는 청년들을 묘사한 이 영화가 공개되자 당시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들과 보수론자들은 영화가 폭력을 미화했으며 청소년의 모방범죄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일제히 공격했다. 협박전화에 시달린 큐브릭은 영화가 잘못 이해될지도 모른다면서 아예 영국에서의 개봉을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왜냐하면 영화의 개봉 즉 돈버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큐브릭에게 괴팍하고 은둔적이며 비타협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는 "영화의 핵심은 자유의지의 문제와 관련있다. 우리가 선과 악에 대한 선택권을 빼앗기면 바로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작품에 관한 한 어떤 방해나 타협을 허용하지 않았다. ▲TOP
사족: 72년 발표된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개봉되지 않았는데 큐브릭의 사망 후 영국방송 BBC 온라인은 이제 세월도 흘렀고 영화의 폭력에 대한 감각도 많이 변했으니 개봉하는게 어떨까라는 독자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지 못한 채 복제 비디오 형태로 큐브릭의 팬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