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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동 제 3시집
<판때기 이빨에 털 난 소식>
(도서출판 여래 95. 4)
제 1부 山余洞 詩妙
감
*산여동(山余洞) 시월에
감이 익으면
할배도 아이도 입을 헤 벌리지
하늘에 별 보담도
감이 쪼매 더 많을 상 싶지
얼추 백 접은 될끼다.
한 접에 만원 쳐도
송아지 한 마리 사 못살라구
백일몽(白日夢)한편 꾸고 히히 웃지
할배는 햇살이 부셔 한나절 따다가
목이 아파 드러눕고
아이는 한 이틀 따더니 팔이 아파
꾀병 부리지.
낼 모레 글피 자꾸 미루지.
그래서
나그네가 오다가다 다 따고 설랑
놉으로 칠할 가져가고
주인은 삼할 먹고
배가 아파
또 드러눕지.
*산여동(山余洞)=산여동은 포항시와 경주사이에 끼어있는 울창한 숲, 거울 같은 냇물,
멧새들의 지저귐, 때 묻지 않은 맘들이 어우러진 깊은 산속 오지마을이다.
조선시대(신라 때부터) 질그릇을 굽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엉겅퀴 풀 섶을
헤치면 옛사람들 숨결이 담긴 귀 떨어진 사발이 흩어져 있다.
겨울
산여동 골짝 마을 눈이 내리면
함박눈이 평 펑
무릎까지 쌓이면
다리갱이 성해도 오도 가도 못하지
죽지가 멀쩡해도 오도 가도 못하지
양식거리 떨어져도 옴쭉 달싹 못하지
산토끼도 갇히고
꿩도 갇히고
노루도 갇히고
새들도 주저앉지
네댓새서 한 이레 구류를 살면
누깔이 한 십리 쑥 들어가지
광대뼈도 시오리나 툭 불거지지
굴속에서 꿀밤을 갉아먹는 다람쥐도
아궁이에 감자를 구워먹는 골짝 사람도
눈 산에 파묻힌 허기진 아이들
*르완다 아이들
목구녕에 걸려 넘길 수가 없지
*르완드=아프리카에 있는 소국. 1994년 내전으로 어린이를 비롯 아사자(餓死者) 많았음.
여름밤에
산여동 칠월은
별밤에 별밤에 모닥불을 피우지
멍석을 깔고
팔베개 하고
모잽이로 눕거든
옛날 옛적 고릿적
호랑이 담배 빨던 이바구
콩쥐팥쥐 이바구
장화홍련 이바구
밤은 깊어 가는데
슬픈 대목 갔을라무네
이바구쟁이 제풀에 목이 쉬면
개울물 찔끔찔끔 흐느끼는 소리
부엉이도 숲 속서 엿들었나봐
왕 눈을 껌벅껌벅 부엉부엉 따라 울고
풀벌레 찌르르
고목나무 헛기침 소리가 들리고
대숲은 연신 소매로 눈두덩을 훔치지
철이 덜든 청 바람이 솔가지를 간지르는 소리
개똥벌레는 방정을 떨며 날아다니고,
모기가 콧잔등을 앵 쏘고 내빼지
그리고
사방에서 달빛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지
*한산(寒山)시인
산여동에는 당나라 때
천태(天台) 시풍현(始豊縣)바위굴에 살던 거렁뱅이,
한산(寒山) 시인이
개로 환생해서 살고 있지
태주자사(台州莿史)가 불쌍해서 약과 쌀을 주자
"이 도적놈 썩 물러가라"
"벼슬아치 도적놈 썩 물러가라"했다지.
그런 업보로 개가 되어 살고 있지
그때나 요즘이나
인두겁을 쓴
뱃속이 검은 치들 수두룩해서
도둑인데 도둑놈 아니라고 잡아떼는 맘뽀들 하도 많아
짖느라고 울대가 퉁퉁 붓지
짖지 않으면 목젖이 간지러워 못 배기지
개 눈엔 귀신도 보인다지.
뱃가죽에 철갑을 둘러봤자
내시경에 소갈머리 환히 드러나지
들통이 뽀록나지
돈푼께나 있어 뵈는 글마도 알고 보니
수채통이더라구
"이 도적놈 썩 물러가라!”
세도쟁이 욜마도 이름께나 날리는 절마도
오물통이던데 뭐
“이 도적놈 썩 꺼져!”
산여동에는
당나라 때 한산시인이
인두겁을 쓴 개만도 못한 치들
배때기 훌랑 까보고
한사코 짖어대지
지도 개면서 한사코 짖어대지
*한산(寒山)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천태(天台) 시풍현(始豊縣)에 있는 한암(寒岩)의 깊은 굴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한다. 몸은 바싹 말라 습득(拾得)과 함께 늘 국청사(國淸寺)에 와서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 대통에 넣어 한암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면서도 하는 말은 불도(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詩)를 잘 하였다. 어느 날 태주자사 여구연(閭丘胤)이 한암에 찾아가 옷과 약을 주었더니 그는 큰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 물러가라"하면서 굴속으로 들어간 뒤론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꿈
산여동에는
신라사람 옹기쟁이 한 사람 여태 살지
경주 장터 질그릇 한 짐 내다 팔고
토주 한 잔 걸치고 얼얼 취해
빈 지게에
딸내미 치맛감,
올이 굵은 막베 한 필 달랑 얹고
솔바람에 등 밀려 싸게 싸게 오다가
재 넘어 오다가
시루봉 마루턱 올라서도
해 한 뼘 남았것다
에라 오리나무 그늘
깨잠 한숨 잤는데
장장 천년
퍼지르게 꿈만 꾼 장장 천년
계유년(단기 4326년)에
푸드득 푸드득
까투리 날개짓에 깨고설랑
(아즉 서라벌 임금이사 선덕여왕이제?)
재산공개
산여동 골짝서 뭘 먹고 살지?
가난뱅이야
가난뱅이야
뭘 입고 살지?
(까마귀 고것이 날 우째 보고 자꾸 놀리노? 이래뵈도 알부잔데!)
평당 *오천 원짜리
골짝 땅 백스무 평 있지
쌍팔년도 호부 단돈 *오만원에 산
게딱지 한 채 있지, 옆댕이에
성냥갑만한 흙집 한 채 이어 달고
통시깐 하나는 제대로 지었거든
마루 밑에 수캐 한 마리
깜장 고양이는 얼룩이 세 마리 낳고
늙은 대추나무 한 그루야 석녀(石女)지
추녀 아래
토봉(土蜂) 두어 통
빵구 난 리어커 한 대 있지
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아 참
난리가 나도
쌀 한 톨 없어도
산속서 안 굶어 죽는
연명술(延命術)하나 알고 있지
그거 사 안 가르쳐 준다 임마!
*평당 *오천 원짜리, 단돈 *오만원에 산 게딱지=시인이 산여동으로 들어 온지
3년 후인 88년에야 내 집이랍시고 자투리땅 백스무 평(평당 5천원)과
단돈 오만원에 오두막 한 채를 샀다
산속의 여인, *아나뜨마
산여동 깊은 골짝에 한 여인이 살고 있습니다.
*스물다섯 되던 해 산속에 들어와서 올해로 십년을 맞습니다.
생머리를 제비꼬리처럼 자르고 소녀처럼 고무줄로 묶습니다.
젊은 나이에 새치가 듬성듬성 섞여도 상관치 않습니다.
몸매는 갸냘프고 얼굴은 갸름합니다.
들킬 듯 말 듯 코가 약간 들창인 것을 흠이라며 웃습니다.
서울 태생인데도 사투리로 얘길 더 잘합니다.
사치할 줄 모르며 화장하지 않습니다.
흙 속에 파묻혀 손등이 꺼칠해졌지만 때 묻지 않은 눈을 보상으로
받았다구 자랑합니다.
돈을 주고 옷가지를 산적이 없습니다.
남이 버린 헌옷을 고쳐 입고 외출을 해도 자존심을 상하지 않습니다.
나뭇짐을 지기도 하고 도끼로 장작을 팰 줄 압니다. 손바닥에
못이 박히지 않는 까닭은 힘보다 요령을 익혔기 때문입니다.
봄에는 산나물을 가을에는 약초를 캐러 다닙니다. 배낭을 메고
왼 종일 산속을 누벼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지 않습니다.
할머니들하고 잘 사귑니다.
술은 한 방울도 못 마시지만 여럿이 모인데서 흥을 깨지 않습니다.
세상과 돈의 가치를 부정하려들지 않지만 집착하지 않습니다.
부(富)보다 더 값진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으뜸으로 칩니다.
그것이야 말로 그녀의 종교입니다.
요즘 세상 왜 산속에서 그러구 사느냐 물으면 당신은 어디서
어떻게 살기에 그리 행복하냐구 되묻습니다.
그녀는 어쩌면 천치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의 곁에 서면 싱그러운 산내음과 이름 모를 풀꽃의 향취를 은은히
맡을 수 있습니다.
*아나뜨마=후동산방 안주인인 김문선님의 호칭. 무아(無我)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말이라 함
*스물다섯 되던 해 (84년) 산속에 들어와서 을 해로 십년을 맞습니다=이 시가 나온 해를 94년으로 치면-
아카시아
산여동에 가보렴
아카시아 숲 속에는
마법의 향을 꿍쳐 나온
여신의 몸종
오월의 님프가 숨어 있지
(이 향을 맡으면 큐핏의 화살을 맞거든)
뚜쟁이가 되고파서 망을 보지
웬 가시내와 머스매가
영문도 모른 채 숲길을 들어서지
친구끼린가 봐.
방울잎이 초록초록 붙은
아카시아 가지를 꺾어 들고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이긴 쪽이 한 잎씩 떼는 게임을 하지
"피자 한 턱 내기 해!”
"업어주기 하자구!”
가시내가 눈을 흘기자
솔바람이 얼른
코끝에 싸아- 간지럼을 태우며 얼버무리지
먼첨 가시내가 머스매 등에 업혀
이랴이랴! 열 걸음
나귀를 부리고
머스매도 가시내 등에 업혀
빨랑빨랑! 열걸음
조랑말을 부리지
뽀오얀 꽃닢들이 떨어져 누운
보료 위를
이긴 쪽이 번갈아 말을 타지
해질녘
농염한 꽃 웃음이 주렁주렁 걸린
님프의 성터에는
마향(魔香)에 흠뻑 취한 아카시아 연인이
볼그레 놀을 묻힌 뺨으로
서로의 눈 속을 읽고 있지.
(이 향을 맡으면 큐핏의 화살을 맞거든!)
뻐꾸기가 몰래 웃음을 삼키다
그만 사레가 걸리지
뻑국 뻑국 뻑국 뻑국
딸꾹질을 해대지
봄 편지
산여동 봄 편지는
늘쩡늘쩡
더딘 걸음으로 오나보지
버들개지는 개울에 비친 지 꼴이
꽃 같다구 그러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종일 쉰소리로 호들갑을 떨어도
님은 아직 바다건너 섬나라서 얼쩡거릴 걸
아무도 봄인갑다 믿지 않지
그즈음 딱새는 부리로 목탁을 치거든
각시를 데불고 올 채빈가 봐
마른 고목에 둥지를 파고
산유화도 동글동글 꽃봉을 맺어
겨울산 군데군데 노랑물을 들인다구
안간힘을 써도
님은 아직 산 넘어 남쪽 땅서 얼쩡거릴 걸
아무도 봄인갑다 믿지 않지
어느 날 소쩍이가 숨어서 그리도 울고
얄랑얄랑
아지랑이 간지르는 산자락을
참꽃이 대뜸 꽃불처럼 번져서
마악 새순이 돋은 연초록 풀빛과 어우러져
바삐 단청(丹靑) 칠을 해대면
그제서야
겨우내 입맛을 잃은 골짝 사람들은
여린 머구 잎을 따다
다투어 봄을 싸먹곤 한다지.
새벽의 합창
산여동 시인은 매번
맷새들 등살에 꿀잠을 깨지
휘파람새가 후루룩 휘익 -
호르기를 불면
뻐꾸기가 뻑꾹 뻑뻑국
대거리를 해대지
술뽀시인 여보게
잠뽀시인 여보게
그저께도 곤드레
어저께도 만드레
한낮까지 코골다
오줌통 터질라
꾀꼬리가 노랑 배때기를 까고
이 숲 저 숲 노랫말을 옮기면
딱새가 부리로 장단을 맞추고
덜렁이 녀석, 산까치가 따라 부르고
혀짤배기 참새도 따라 부르고
소쩍이도 숨어서 따라 부르고
까마귀도 숭한 소리로 따라 부르고
앵금을 타듯이
간드러진 목청도 따라 부르고
신출내기 음치도 따라 부르고
칠뜨기 같은 굼뜬 음성도 따라 부르고
개구리 녀석까지 낑겨서 따라 부르고
풀벌레는 영문도 모른 채 징징 따라 울지
"웬 딴다라 패거리가 오밤중에 수선을 떨어?"
시인이 잠결에 화를 버럭
봉창문을 열어 제끼면
어럽쇼, 동녘이 밝았군
처마 밑 거미줄에
깨끗한 하늘이 한 옴큼 걸려 있고
아침을 머금은 풀내음이 밀물처럼 스며와서 코를 찌르잖아
시인은 그만 잠꾸러기 아이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잠방이에 웃옷을 걸치고
댓바람에 마당으로 뛰어 나가지
산속 친구 여러분
합창단원 여러분
어쩌다 지각 한 번
너무 그리 꾸중마소
앙금일랑 얼른 씻고
해님맞이 합시다요
푸닥거리 한마당
우리라도 앞장서서
온누리 깨워설랑
무명중생(無明衆生)제도하세
나이
산여동에서는
귀만 쫑긋 세워도
산(山)들의 선문답(禪問答)을 엿듣지
이 산이 물으면
저 산이 메아리로 대꾸하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고?)
(본래 가고 옴이 없는 덴데, 개꿈 좀 그만 꾸소)
(몇 살이나 먹었는고?)
(난 적도 뒈진 적도 없는데 웬 잠꼬대가 그리 많소)
밤낮없이 어울려 티격태격 거리지
법 거량(擧揚) 해쌓지
골짝 사람들도 서당 개 닮나 보지
어깨너머 공부로 콩알만큼 깨친 걸
흉내를 내지
수염장이 염소가 에헴, 에헴
"여보게 몇 살인가?"물으면
"나랑 갑장인데 그것도 모르오?"
쏘아주고
하루살이 녀석이 왱왱
"아저씨 연세가 몇이세요?"보채면
"자네 랑도 사실은 동갑인데 그것도 모르나?"
퉁겨주지
배운 대로 들은 대로 수수께끼 선문답을 해대지
산여동에서는
예순이 되어도
여든이 넘어도 나이 감긴 티를 안내지
거죽에다 표금을 긋지 않는
불문율(不文律)이 있지
축지법
산여동에서는
할배도 아이도 다
축지법(縮地法)을 쓰지
홍길동이 만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술은 못 부려도
산 고개 두어 개쯤 눈 깜짝할 새 후딱 넘지
장돌뱅이 등짐지고
구름처럼 훌렁 넘지
멀다는 생각 미리 하다간
부정을 타거든
다리가 아플까봐 겁부터 먹어도
사달이 나거든
스미는 생각, 생각 씨 말려서
마음 터엉 비우고
무심(無心)속 걷는 걸음
그게 호왈(號曰) 축지법 아닌가베
어느새 당도했는지
지도 모르니
축지법 아닌가베
시간 그것 알고 보면 말짱 헛것이지
제 아무리 흐른들 알게 뭐람
천년을 흐른들 알게 뭐람
승용차
산여동에서는
사람만 빼고 다
바퀴 달린 귀신을 싫어하지
나무들도 새들도 짐승들도
산신령도
무당벌레 닮았다고 미워하지
문명이기(文明利器)면 단가 뭐
무거운 짐도 나르지 않으면서
바쁜 볼일 없으면서
우짤라고 좁은 산길
등산로로
무법자처럼 우르릉 우르릉
겁주고 댕기느냐구 인상쓰지
어중이떠중이 또도 개도 다 굴리니
가솔린 축내는 게 눈꼴 씌어 째려보지
산토끼 아가는 매연만 맡으면 경기를 해대서
진저리를 치고
까투리각시는 배만 볼록하면 유산을 한 다나
보따리를 싸지
산신령 영감이 한 말씀 더 보태지
동지라고 믿었던 배암골 스님도 새차 굴리더군.
나무들의 명상을 훼방해도 사천왕이 노하지
옛사람
산여동에는
오대조 우리 할배
조선시대
질그릇 굽고 살던 우리 할배
가마터 거기 있지
찔레꽃 덤불 엉긴 언덕배기
한오백년 살고지고
뻑국 뻑국 뻑뻐국
쿵덕 쿵덕 쿵더궁
돌절구에 보리 찧던 우리 할매
초가지붕 거기 있지
세상 많이 변했는데, 그 어른들
여태 그러구 사시나
긴가, 민가
호리병에 감주 담아 뵈러 가지
포항서 걸어도 서너 시간
경주서 넘어도 서너 시간
죽지 않고 저승 가는 길치고는
예사람 찾아가는 길치고는
어째 좀 가깝지
까마귀도 황천 샌가
어데 가니이꺼
까욱 까욱 물어쌓는데
사투리로 물어쌓는데
풀섶을 헤치면
발부리에 채이는 파기(破器)조각
몸은 가고 정만 남은
서런 이바구
조용필이 노래같은 서런 이바구
귀 떨어진 사발마다 담겨 있지
우체부
산여동 골짝 마을
우체부는
산까치 우는 날 골라서 오지
오토바이도 숨이 차서
부릉부릉 부르릉
재 넘어 오지
투덜대고 오지
고까짓 사바(裟婆) 사연
전해준 삯으로
솔바람 꾹꾹 눌러
산(山) 마음도 꾹꾹 담아
행낭에 채워가지
산신령 영감하구 바둑 한 수 두고 가지
아이나라
산여동에는
아이나라 아이들 궁전이 있지
어른은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아이나라 궁전이 있지
산신령 영감이 파수를 서서
구정물이 든 머리통이 들어올라치면
요술지팡이로 한 대씩 패지
마음을 헹구고
아이가 되라고 한대씩 패지
심술꾼 할배도 입을 비쭉거리다가
한대, 딱! 맞자 금세
천진한 아이가 되고
트집쟁이 아범도 생떼를 부리다가
마빡에 혹을 달기 무섭게
뺨이 발간 아이가 되고
제 자랑뺑이 삼춘도 거드름을 피우다
별이 번쩍
다소곳한 아이가 되고
주정뱅이 아재도 괜스레 시비를 붙다가
에구머니
눈이 파란 아이가 되지
껍데기 그 깐 거야 아무러면 어때
알갱이만 새록새록 아이가 되는 거지
아이나라 궁전의
아이가 되는 거지
가을
산여동 시월엔
화가가 한사람 오지
빛바랜 가을산을 해체(解體)해서
한점, 한점 붓끝으로
화폭에 옮겨 담지
어디선가 바람결에
툭 툭
밤송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
놓칠세라
냉큼 찍어 담지
따사로운 햇살의 애무
수줍어 수줍어 귓불을 붉히는
감(甘) 처녀의 순정도 따서 담고
머루 덩굴 늘어진 아래
거울 같은 시내
솜구름 한 뭉치 떠다니는 쪽빛 하늘도
건져 담지
헤어지긴 싫지만 어쩌겠어요?
아듀! 아듀!
들꽃들의 살포시 수그린 아미
눈시울에 맺힌 이슬방울도 받아 담지
가을의 골수(骨髓)를 다 주워 담지
망태를 맨 산(山) 아이가
잠방이에 다닥다닥
도꼬마리 열매를 붙인 채
시월의 그림 속을 성큼 들어서지
낙엽이 켜켜이 쌓여
다람쥐 마실 길도 지운 산속을
사냥개처럼 땅내를 맡으며
지그재그로 싸댕기지
"아서 작품이 망가지겠네"
화가가 말리자, 아이가 말했지
“왕더덕 한 뿌리 캐면 냄새도 주워 담잖아요"
오미골 도인
산여동에서도 한 서너 시간 더 가지
오미골 무릉도원(武陵桃源) 도인은
호박죽에 푸성귀만 먹고 살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귀밑머리 희긋해도
뺨만은 발간 각시 같지
하느님 딸내미를 누가 감히 해코지해?
식구라곤 살찐이 댓 마리
첩첩산중 움막서 혼자 살지
팔도 사람 소문 듣고 더러 오지
고달픈 인생살이
청량제가 아쉬워 찾아들 오지
온종일 밭일을 하고도
연민스런 양떼 위해
밤새워 기도하면
하느님이 당신의 팔을 빌려
갱지에 처방전을 적어주지
듣도 보도 못한 어려운 글귀가 종종 섞여
손님더러 되려 묻는 수도 있지
주로 덕(德)을 쌓아
화(禍)를 면하라는 복음이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게 첫째 덕목
사사로운 복이나 구할 눈치면
눈을 딱 감아버리지
하느님이 그리 시키는지 그거 사 모르지
지나놓고 봐야 족집게라 무릎 탁 치지
돈 절대 안 받지.
"하느님 말씀을 코푸는 종이로 왜 바꿔?"
그럴 때만은 매몰차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날마다 좋은날. 운문선사(雲門禪師 865~946)의 법문에 있음
산짐승들
산여동에는
산짐승들이 살지
사람 못된 것보다 쬐금 나은 살쾡이가 살지
사람 못된 것보다 두어 배 나은 너구리가 살지
사람 못된 것보다 서너 배 나은 멧돼지가 살지
자네한테만은
한 가지 더 일러주지
살짝 일러주지
사람 잘난 것보다 아홉 배나 나은 짐승들도 살지
바보박스
산여동에서는
이날 이때꺼정
*전기 없이 살았어도 마음 하난 편했지
테레빈가 뭔가 바보박스
수다쟁이 여편네
천 날 만날 눈뜬 날 잔소리만 안 들어도
실(失)보다 득(得)이 많지
불륜(不倫)이나 단골로 소재로 삼아야
인기가 있다던 가
시청률이 높다던 가
씨부려 쌓더라마는
화냥끼만 부추기는 뚜쟁이년
코빼기만 안 봐도
실보다 득이 많지
*전기 없이 살았어도=산여동은 1994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음
설법(說法)
산여동 골짝에도, 까만 가방쟁이
전도사들 더러 오지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시오!"
괜스레 자는 범 건드리다
본전도 못 건지고 혼쭐나지
혹 떼러 왔다가 붙이고 가지
여보시요
비우는 게 도(道)란 말 못 들었소?
마음 하나 깨끔하게 다스리면
지옥도 말끔 천국인데
천지우주가 이대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인데
"물고기를 어항에 가둬 키우는 게 구원이란 말이요?"
"돌팔이가 신선을 대체 어쩌잔 말이요?"
되레 법을 펴면
셋 중에 셋이 다
맘 귀가 어두워 멀뚱거리지
눈깔만 들여다봐도 대빡 알지
떠날 때 사 속으로 필시 투덜대지
(사탄한테 걸려 재수 옴 붙었군!)
다시는 안 오지
원시인
산여동에 가보렴
꿈도, 꿈도 참
별난 꿈을 다 꾸지
시간 속을 거꾸로 날아가서
선사시대
원시인이 되고 말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을 거야
손으로 마구 움켜먹고
꼬챙이로 이빨을 쑤실 거야
목이 마르면 아무데나 도랑물에 코를 박고
물배를 채울 거야
대장균도 페놀도 악명을 떨칠 수 없을 거야
인스턴트식품이 얼씬하지 못할 거야
화학조미료가 무언지 모를 거야
소금만 쳐도 다 맛이 날 거야
먹새가 좋아 하루에
노루 한 마리씩 통째로 구워먹어도 탈이 없을 거야
뚱보가 될 턱이 없을 거야
옷이 날개라는 말이 생겨날리 없을 거야
나뭇닢에 거웃만 달랑 가려도
낯짝을 붉힐 턱이 없을 거야
네꼬타이로 모가지를 매지 않을 거야
화장대 앞에서 콧등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
예의라는 것을 위해
외면치례 하지 않을 거야
숨기고 자시고 할 건덕지가 없을 거야
보짱이 편할 거야
내 집 마련을 위해
부금을 다달이 꼬박꼬박 붓지 않을 거야
긴축예산을 짜지 않을 거야
일 가구 이 주택이 어쩌고저쩌고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을 거야
더우면
나무 위에 까치집을 여러 채 짓고
이 별장 저 별장 피서를 댕길 거야
매미처럼 높은음자리표로 창가를 부를 거야
눈 오는 날이면
아늑한 굴속으로 이사 가서
화톳불로 따숩게 난방을 할 거야
가랑잎을 수북이 깔면 쿠션이 그만 일거야
하룻밤에 서너 번은
아내랑 찐하게 흘레를 붙을 거야
문단속을 안 해도 될 거야
코가 좀 비뚤어지면 어떨 가봐
곰처럼 늘어지게 겨울잠을 자둘 거야
시간 속을 거꾸로 날아가서
선사시대
원시인이 되고 말거야
그러구 말거야
돈키와 산초
산여동 골짝에는
스페인 문호
세르반테스의 소설속을 뛰쳐나온
늙다리 기사(騎士) 돈키호테와
얼빵한 졸개 산초빤샤가 숨어살지
*프랑코한테 대들다 죽사발이 되었다나,
내뺀 곳이 여기라지.
폭군이 뒈진 줄 모르고
타향살이 지겨워도 눌러 살지
지 버릇 개 못줘 탈이지
책갈피에 낑겨 있을 때나 지금이나
주책은 맨 구단이지
돈키가 소시 쩍, 풍차를 공격하던 식으로,
(허허 어림반푼어치)
해님도 쏘아 맞힌 다나
손가락 총으로 하늘을 겨누면
"이걸로 받아 식힐게요"
자배기에 물을 받아 대령하지
죽이 맞아도 찰떡이지
만용이라도 아무튼 가상하지
요즘 들어서는 둘 다 동양의
신비스런 선(禪)인가 뭔가에 홀딱 빠져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가 어쩌고저쩌고
하느님 알기를 순 뭐로 알지
야소(耶蘇)쟁이들이 불상을 우상이라 그러 듯이
거꾸로 그리 알지
"말짱 마음이 빚어 논 허깨비야!"
코를 꿰어 내린다며
마닐라삼으로 로우프를 꼬고 있지
말릴 사람은 조선천지 아무도 없지
*프랑코(1892~1975)=팔랑헤당을 기반으로 독재를 한 스페인 총통.
민주주의의 적으로 악명이 높음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우주의 모든 제현상(物心諸現象)이 오직 마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뜻.
제2부 장짜小傳
애칭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할배는 무르팍 밑에 먹음직한 대추를
한 옴큼 묻어두고 들킬세라
혼자서만 오물오물 씹으셨다.
등때기를 긁어 달라는 둥
곰방대를 가져오라는 둥
심부름을 시킬 때만
내 이름 첫자에다 난데없이 <짜>자를 하나 갖다 붙여
장짜야, 장짜야
정이 담뿍 붙은 목소리로 불러대곤 했다.
영락없는 개똥이나 돌쇠 따위
꼴머슴 이름 같은데
도대체 그딴 것이 무슨 애칭이람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나는 그때 네댓 살짜리 버버리였다.
들을 수는 있어도 말을 못하는
희한한 버버리였다.
혼(魂)
망나니 같은 혼이었다.
하늘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땡추였다.
일찍이
하늘 임금 *제석천(帝釋天)이
그를 총애해서
자그마치 아흔아홉 번씩이나
깨쳐서, 푸른 눈 달고 오랍시고
부처되랍시고
사바(裟婆)로 내려 보내 도를 닦게 했으나
왜 이런 말 있지
똥 누러 갈 때 바빠도 바지춤 추스르면 내몰라 라 한다구
땅만 디디면 번번이
요지경(瑤池鏡)에 홀려
군눈이나 팔다가
취생몽사(醉生夢死)
질탕하게 노닐다가
임종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서야
(빌어먹을 제석천이 무슨 애꾼가 색맹인가)
꼼수로 푸르께한 유리눈을 해박고
귀천(歸天)하곤 했다나
죄업이 산더미처럼 불어
연자맷돌 같은 멍에를 모가지에 걸고
황량한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체탈도첩(褫奪度牒)
종신형이었다.
*제석천(帝釋天)=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임금, 4천왕과 32천을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이를 보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는 하늘 임금
*체탈도첩(褫奪度牒)= 중이 큰 죄를 지으면 승권을 빼앗고 절에서 내쫓는 제도(산문출송)
사면(赦免)
제석천 임금님요
도리천(忉利天)에 계신 하늘 임금님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차례만 더
꼬옥 한 차례만 더
지구별에 태어나게 해주이소
당달봉사도 좋고
버버리도 좋고
먹보도 좋고
째보도 좋고
잔나비같은 추남도
온달이 같은 멍청이도 좋다 안캅니꺼
요번만은 우짜던지 푸른눈 달고 올터이니
해탈(解脫)하고 말터이니
사람거죽 제발 좀 덮어 쓰게 해주이소
오매불망(寤寐不忘)
손바닥 명줄이 다 닳도록 비벼댔다.
사백년 째 되던 해
(비는데 사, 무쇠도 녹는다카드라마는)
서기(瑞氣)가 일더니
용안에 노염이 걷히는 것 같더니
비로소 모가지를 죄던 멍에가 스르르 풀리고
관제탑서 착륙신호가 떨어졌다.
조선반도 상공에서였다.
(그 무렵 반도 땅은 일본사람 식민지로 신세를 조져 철사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하강하기 전에 당부 말씀이 있었다.
“자네처럼 후라이나 까는 혼이사 짐(朕)이 버린
영지(領地)도 오감하지
회심향도(回心向道)할 테면 내려보렴!”
착륙지점은
낙동강 하구 델타지역
경남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 달나루(月浦) 마을
(지금의 부산시 강서구 대저2동)
상류의 갯벌이r
조선사람 눈물이랑 밀려와서
가없는 겁(劫) 속으로 실려 와서
시루떡 층이 쌓여 섬이 된 곳이었다.
한 가난한 농사군 아낙의 자궁이
카르마(Karma)가 인도한 모태였다.
땡추는
새우처럼 몸을 말고 열 달 잠을 잤다.
대홍수
그해 여름 홍수를
*소화(召和) 9년도 물난리라 했다
폭우로 낙동강이 범람하여
섬이 홀랑 잠겨버렸다.
촌닭 면장은
일본말이 젬병이었지만
이 대신 잇몸으로
전화통에 침을 튀기며
도지사에게 짬뽕말로 고함을 치댔다.
기미가 도지지까?
(자네가 도지사인가?)
하이 소데스
(예 그렇소.)
와다구시와 나꾸도 강노 멘쪼
(나는 낙동강 지역의 면장인데)
교모 아메가 빠라빠라 후리마시다
(오늘도 비가 엄청 쏟아져서)
미주가 나꾸도강 뽀뿌라 구비마데 촐랑촐랑
(물이 낙동강변의 포풀라 목까지 촐랑촐랑 차서)
가무로치 후다닥
(가물치만 물속서 후닥닥 놀고)
수재미니노 자와자와또 사와구
(수재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야단이다)
고메 구레!
(쌀을 다오!)
시시각각 물이 불어 무릎께로 차올랐다.
아비규환
목숨이나마 건지는 게 장땡이었다.
애비는 살림 밑천, 암소 한 마리
코뚜레 거머쥔 채
방뚝으로 뜀박질을 치다
뒤에 처진 굼벵이 여편네 꾸물거린다구
목구녕서 피 올리는데
에미는 젖먹이 들쳐 업고
홑이불에 쟁개비 양푼이 종지 숟가락
뚤뚤 말아 이고
(우짜고, 우짜고 허리께로 물이 차는데)
그때 어디서 주워들은 일본말 한 마디
퍼득 떠올라 뱉어냈다.
"*조또 마떼"
뒤주 바닥에 좁쌀 쪼매 남은 거 퍼 담아 갈라고
마루로 올라서다 발 헛디뎠다
짚단처럼 풀썩 넘어져 떠내려갔다.
신(神)이 건져준 것은
자비심 때문이 아니었다.
*두견이 수법으로
지지리도 박복해서 만만한 이 여인
그녀의 뱃속에다
땡추 혼 하나 잉태시킬 꿍꿍이로
살려줬을 뿐이었다.
*소화 9년도 물난리=1934년 낙동강 하구지방을 휩쓴 대홍수
박계주(1913~1966)의 소설 순애보에도 그 재해 상황이 생생히 실려 있다.
*조또 마떼=잠깐만 기다리라는 일본말
*두견이=집을 짓지 못해 다른 새집에 알을 낳아 번식함.
뻐꾸기와 닮았으나 몸이 작음.
고 향
갈 숲의 섬이었다.
조선으로 오는 철새들이
계절을 물고 와서
나래를 적셔주는 남녘의 관문이었다.
(새끼 섬 을숙도가 발치에 누워 있었다.)
영남 땅 제일의 곡창지대(穀倉地帶)
*낙강(落江)의 젖줄을 물린
우리네 옥답(玉畓)
대대로 물려받은 목숨이라 했건만
현해탄서 불어온 회오리
날아온 게 박힌 걸 뺀 다던가
어느새 지주가 되어버린 일본사람들
굽신굽신
허울 좋은 연부농(年賦農) 모를 내도
소출은 바다건너 천황이 다 거둬갔다.
태산이 높으다 하드라마는
보리고개 넘는 데다 어찌 비기랴
사람들은 다 누렇게 부황이 뜬 채
논바닥에 엎드려 허리를 차마 못 펴고
목구녕이 포도청
쥐처럼 야금야금 씨나락을 까먹고
우두커니 하늘에다 내일을 떠맡겼다
장마철
뿌우연 안개가 짙으게 끼면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 같은 *무종(霧鐘)이
울어쌓고
노인들은 또
이무기가 비를 뿜고
앙살을 내는 거라 우겨댔다.
*낙강(落江)=낙동강
*무종(霧鐘)=안개 낀 날 들린다는 바다 우는 소리
부모
애비는 도야지 띠
에미는 소 띠
복은 타고 났는데
꿀꿀이죽, 고런 복 뿐이라서
복은 타고 났는데
일복 고거 뿐이라서
가난이 중매를 서서
궁합이 맞았다.
일제(日帝) 말
군내 쉰내
만주 산(産) 콩깻묵 배급으로 나오면
끼니때 마다
넌더리, 넌더리 신물 나서
그래도 속이 덜 보깰끼다.
시래기와 좁쌀로 멀건 죽 쑤어 자셨는데
별식으로 자셨는데
어디서 그런 힘 내셨노
석유 좀 아끼려고 호롱을 끄면
따로 무슨 할 일이 있어야지
밤마다, 밤마다
아이만 만드셨다.
밥그릇만 축내는 아이만 만드셨다.
생일
병자년(丙子年)
오월 초나흗날 오밤중인지
단오날 꼭두새벽인지
장짜는
여덟 마리 촌개 중에
여섯 번째 수캐로 태어났다
천더기로 태어났다
에미는
요놈 귀빠진 날이
조놈 코 빠진 날 같고
요것 코 빠진 날이
조것 귀빠진 날 같아
머리통에 담아둬도 자꾸 헷갈렸다.
보나마나 똥 사주(四柱) 똥 팔잔데
외워뒀다 뭐하노
까먹어버렸다.
벙어리
배냇 버버린가
삼신할매 노염 탓인가
장짜는 탯줄을 끓어도
울음을 물지 않았다
납땜이나 한 듯 주둥일 앙다물고
짖지를 못했다.
크면서도 귓구녕은 뚫렸는데
알은 척은 하는데
말을 못했다
모음만 몇 개 골라 써먹을 참인가
아 오 우 이
아 오 우 이
다섯 살이 넘도록 말을 못했다
달나루 마을에는
쭌이라는 버버리 머슴이 살았는데
두 번째 농아로
장짜가 짝이 됐다.
어메와 화적떼
성들은 망나니, 하나같이 악동
누나는 왈패
구구단보담도 욕을 쪼매 잘했다
두어 살 터울의 여덟 아귀(餓鬼)들
바글바글 엉겨서
물어뜯고 싸우면
집구석은 허구한 날 전쟁터였다.
아수라장이었다.
어메는 진저리를 치다, 치다
기가 넘어
치마끈에 매달리는 젖먹이고 뭐고
패대기를 쳐버리고
부지깽일 휘두르며 쫓아왔다.
패악을 쳐댔다
세(혀)가 천발만발 빠져 뒈질 화적떼야!
전생에 무슨 철천지 웬수가 졌길래 해필이면
내속을 빠져나와 이 고생을 시키노. 앙갚음을 하노
뒈지거레이!
한 놈이라도 지발 뒈거레이 칵 자빠지기만 하몬
헌 거적에 뚤뚤 말아 둑 너머
갈밭에 날라다 석유 한통 끼얹고 싸질러 버릴끼다.
태우고 말끼다
누나가 딱총이면
어메 총은 대포였다
가난한 살림살이, 새끼 수가 많으면
피붙이도 원수 같을까
장짜는
저녁나절 컴컴한 정짓간
밥솥 앞에 쪼그린 어메 뺨이
물기에 펑 젖어
아궁이 불빛에 어른거리는 걸 몰래봤다.
(범 같은 우리 어메 와 저래 우노, 연기가 매워서 저럴끼다)
점괘
중이 삽짝문 밖에서 요령을 흔들었다.
벙거지에 장삼을 걸치고
술내를 풍겼다.
어메는 이참에
(그래도 내 새끼들)
관상이나 봐줄 꿍심으로
보리쌀 한 됫박에
좁쌀 한 홉 더 얹어 시주했다
소발에 쥐잡기로
면서기 한 자리 할 놈 나올지 누가 아노
알부자 하나 불거질지 우째 아노
중은 요놈조놈 상판대길 건너 댕기며
복타령 명타령
저만 아는 문자로 숭얼대다
문득 장짜의 길숨한 상통에
눈총을 박고선 정색을 했다
"조사(祖師) 상이구먼"
도가 아주 높을 중상을 타고 났다나
그리고선 쯧쯧 혀를 찼다
성들은 버버리 주제에 염불을 우째하노
끼득거리는데
장짜는 말귀를 알아듣고 울어버렸다
(까까중 안될끼다!)
억울해서 울어버렸다
중이 덧붙였다
"부처님은 당기고 지는 죽자 사자 내뺄 거요.
출가하면 도인은 따 놓은 당상인데
조놈 고집은 저승사자도 못 말린다니 도리가 없구려.
세상 복 말아요? 허허 반 푼어치만 있어도 내 입을 꿰매리다.
손에다 장을 지지리다. 될듯하면 사달이 나고 맺으면 풀리고
오르다간 떨어진다오. 두고 보시오."
어메는 주정뱅이 중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보리쌀이 아까웠다.
인빼이 도오시
보리밭 고랑에 숨어 있었다.
누나가 술래였다
잠자리 한 마리가 쇠버짐이 핀 머리통에 붙었다가
폴랑 날아갔다
누나가 낌새를 맡고 살금살금 다가와서
"비버리 봐았다!"고함을 쳤다
그때 기적이 생겼다
장짜가 벌떡 일어나서
"나는 <인빼이 도오시>다!"
또깡또깡 말을 했다
<인빼이 도오시>
쪽발이 말 같기도 하고
되놈 말 같기도 하고
몽고 말인가, 티벳 말인가
조샌고(조선어)는 애시당초 발가락도 안 닮았다
버버리가 말을 하다니
아 오 우 이 모음 말고도
자음이 섞인 말을 하다니
식구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둘러쌌다
촉새 같은 작은 성이 금방 또 놀려댔다
"어이 인빼이 도오시! 저승서 부르던 니 이름이가?"
그럴지도 모르지
흐리마리
아슴한 기억의 머언 전생
그리도 잊지 못해 불쑥 뱉은
지 이름 넉잔지 누가 아노
신동(神童)
도깨비가 요술을 부리네 참.
말문이 터진 장짜는
세살 터울, 진쇼꾸(瑨植)형의 고꾸고(국어) 교과서를
따라 읽었다
가다가나고 히라가나고
대번에 줄줄 외어버렸다
뱃속에서 배웠나 저승서 배워왔나
기가 차서 나자빠질 일이었다.
동구리 야마노 동구리와 오찌데모 오찌데모 쿠사노 나까.
(도토리산의 도토리는 떨어져도 떨어져도 풀속이지)
니닌가 시, 니상가 로꾸, 니시 하찌, 니고 도.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이오 십)
구구단도 듣자마자
두꺼비 혓바닥에 파리 감듯
날름날름 주워 삼켰다
콧물이랑 후루룩 빨아마셨다
어메는
서남사 새절을 지을 때
기둥 값을 시주한 과보라며
마실만 나가면
"신동이 태어났다 안카능기요"
"부처님 영검으로 신동이 태어났다 안카능기요"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 쌓곤 했다.
벌(罰)과 양말
사또 고리쯔 고꾸민각교(사도 공립 국민학교) 일학년
장짜의 창씨명은 가네우미 쇼쇼꾸였다
공일날, 셋째형 *갠쇼꾸(現植)를 따라
갯뽀 분교에 놀러간 게 화근이었다
징용설이 떠돌던 형이
울분을 터뜨리다
유리창을 깬 사건이 생기고
분교 조선인 교사 야수모도 선생은
달아난 형 대신
근방서 놀던 사또학교 아이들을
병아리 장짜까지 공범으로 끼워
본교 교장에게 보고해버렸다.
뼈가 쑤시도록 추운 날
빨래처럼 가슴팍을 쥐어짜도
뉘우칠 게 없는데
(연좌법에라도 옭혔나?)
조회시간 운동장 구석
아침 해를 등진 채
팔을 들고 벌을 받았다
고사리 손들이 고드름이 되어 하늘에 붙어버렸다
막대기로 탁 때리면 동강이 날 것 같았다
장짜는 그날 아침
머리맡에 두고 잔 양말마저 도둑맞았다
뒤꿈치만 두어 번 기운 것인데
얼추 새것인데
어느 성이 신고 갔을까
맨발이었다.
*겐쇼꾸형=형은 말썽꾸러기 문제 청년에다 반일성향의 주재소 요시찰 대상이었다. 해방되기 한 해
전에 징용을 피해(징집연령 미달에도 징용을 보냈다) 만주로 달아났으나 그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가미가제 독고다이와 쥐
장짜네 담임 다무라 선생님은
일본인 지주 딸이었다.
아기를 밴 까닭인가
히스테리였는데
(남편이 전쟁터로 나가고 친정에 얹혀살았다)
그놈의 *대동아 전쟁
전황(戰況)이 불리하면 증세도 심해졌다.
애들을 들볶았다.
(일본군의 요충(要衝), 유구열도가 차례로
적의 수중에 떨어지자 선생님은 분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버럭버럭 냈다. 도오꾜오 대공습이
있은 직후 마침내 조선반도에도 적기가 출몰했다. 항공모함서
날아온 비행기가 정찰을 마치고, 회로에, 장짜네 학교에
기총소사를 해대고 달아났다. 선생님은 조회 때마다 신물이
나게 듣던 교장의 훈시를 반복해서
*잇쇼켄메이 *덴노헤이카를 위해
최후의 항전을 벌이자고 가미가제 독꼬다이처럼
옥쇄(玉碎)를 하자고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가네우미 쇼쇼꾸, 커서 뭐가 될래?"
장짜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그러는지 대빡 알았다.
가미가제 독꼬다이라도 된다구 그러면
보나마나 머리통을 쓰담아 줄테지만
아부지가 어느 날 술에 취해
"왜놈들 적이 우째 우리 조선사람 적이고?"
이를 뿌득뿌득 갈던 일이 떠올라
순 뚱딴지로
"네주미(쥐)가 되겠습니다."
(얼결에 뱉은 건데 하필 제 띨 줄이야)
아이들이 와 웃었지만
선생님은 별안간 살기등등 쥐를 본 괭이로 둔갑했다
근방에 작대기가 없어 다행이었다.
칠판 닦던 재우개로,
사무라이 칼 쓰듯이
죽어라고 장짜의 면상을 내려쳤다
"바가야로! 바가야로!"그러며 내려쳤다
분(粉)을 처발랐다
*대동아 전쟁=태평양전쟁을 일본인들은 이렇게 불렸음.
*잇쇼켄메이=온힘을 다 바쳐
*덴노헤이카=천황폐하
*가미가제 독꼬다이(新風特攻隊)=태평양전쟁 때 일본군 파일럿들이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적의 항공모함 또는 기타 함정에 돌입하는 자살전법
*기미가요
일학년 아이들의 쇼까(창가:음악) 시험은
기미가요 독창이었다
"황국신민(皇國臣民)답지 않게 기미가요도
제대로 못 부르는 멍청이가 있단 말이야"
선생님이 개탄했다
장짜는 제 차례가 되자, 요번만은
선생님 구미에 맞도록 불러야지
눈 밖에 나지 말아야지
헤이따이상(병정)처럼
우렁차게 부르면 일등일 거야
있는 힘, 없는 힘 다 뽑아
초장부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선생님이 천둥 같은 고함을 치며
창가를 중단시켰다.
입은 꾹 다문 채 눈으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조센징새끼, 불령선인(不逞鮮人) 종잔가 봐.
대일본제국의 기미가요를 감히 고따위로 부르다니!)
교단 위에 불러 세워
다짜고짜 회초리로 종아리를 후려쳤다
독이 오른 눈으로 개 패듯이 후려쳤다
쇼까시험은 꼴등을 먹었다.
행실이 나쁘다나,
수신(修身)점수도 깎여 버렸다.
곤두박질쳤다.
(점쟁이 중이 그랬거든. 오르다간 구른다구!)
*기미가요=일본나라 국가
해방
1945년 8월 15일
아침나절 까치가 유난히 울었다
포플러 꼭대기서
왕매미도 기승을 부리며 따라 울었다.
아이들은 해방이 된 줄 까맣게 모른 채
도랑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성이 자잘한 붕어를 논두렁에 던져주면
장짜는 핏대를 뽑아 아가미를 꿰었다
뻘이 튀겨 가물치들 같았다.
누나 음성이
가물가물 멀어 뵈는 집 앞에서 매미소리에 실려 왔다
"아부지가 부-르-신-다아!"
장짜는 기겁을했다
(아이고 우짤라고 조선말을 저래하노. 들키몬 학교서 벌 받는데....)
아부지는 서당 훈장처럼
창호지에 언문(諺文)을 적어 마루바닥에
펴놓고
곰방대 주둥이로 한자씩 짚으며 읽었다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ㄱ.
분위기가 수상했다
제비새끼처럼 따라 읽었다.
요즘 글과 달리
끄트리에 ㄱ자 닮은 게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일본이 항복했다. 조선 글을 배워야 한다"
아부지는 목이 좀 쉰 것 같았다
돌대가리 누나랑 성도
꼭지에 전달이 갔을까
장짜는 두어 번 따라 읽곤 외워버렸다
마당으로 내려가 게발쇠발 써댔다
하햐 허혀 호효 후휴 흐히 ㅎ.
역마살
귀환동포
징용 간 아재들
병정으로 끌려간 청년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다
(어떤 이는 일본군복에 *게도로를 친 채 치안을 맡는다구
목총을 메고 다녔다)
아이들은 어디서 귀동냥을 했는지
애국가 가사를
올드랭사인 곡에 맞춰 흥얼대고
어른들은 술이 취해
남인수의 감격시대를 거리거리
쏘다니며 불러댔다
역마살 귀신이 애꿎게도
여덟 살 장짜를 골라 덮쳤다
한평생 흙속에 묻혀 산
무지랭이 아부지는
재주께나 있어 뵈는 새끼하나
다부지게 키워
당신의 대타(代打)로
늘그막에 한을 푸실 요량인 것 같았다
"짠물에 뼈가지가 굵어야 고래라도 된다카이!"
낯선 도시
큰형 네가 사는 부산으로 덜렁 데려갔다
구포다리를 건너
사상, 가야, 범일동을 거쳐
낚시 바늘처럼 꼬부라진
보수동 검둥다리까지
황새다리, 아부지 뒤를
(오십리 먼짓길, 도락구(추럭) 한 대도 못 잡아타고)
뱁새처럼 따라갔다
쪽을 찌고 시집온 형수는
해방 덕에 빠마를 했으나
신혼 단칸방
시궁쥐 같은 시동생을 떠맡으니
옴이 붙은 상이었다.
웃어도 눈 속이 차가웠다
*게도르(guetre)=일본병정들이 발목에서부터 무릎 밑까지 감는 띠 같은 각반
별명
새 학교에 등교한 첫날
장짜는 소매 끝이 오그라든 삼베 윗도리에
무릎 때도 못 가린 반바지
뒤꿈치가 째진 검정 고무신
뚜껑이 덜컹거리는
구닥다리 *나무베낭을 메고 교실로 쑥 들어섰다
눈이 동그래진 아이들이
곡마단 원숭이가 온거라구
왁자지껄 손가락질을 해대며 에워쌌다
짜루야 짜루야
꽁지없는 짜루야
북해도서 왔나 대만에서 왔나
장짜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득달같이 달겨들어
덤비는 녀석마다 자빠뜨렸다.
코흘리개 때는 넘어지면 지는 거잖아
한 놈 두 놈 세 놈 열 놈 쯤 자빠뜨렸다
교실 안이 별안간 조용해지더니
한 녀석이 소리쳤다
"와- 아부지다!"
어른처럼 힘이 세단 말일 게다
당장 아부지란 별명이 붙어 버렸다
호부 여덟 살에 아버지라니
아이들 아버지가 되다니
*나무베낭=일제시대 국민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지급된 걸머메는 목제 책가방.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전차나 군함, 비행기가 그려져 있었으며 뜀박질을 하면 뚜껑이 덜컹거렸음.
주전부리
장짜는 꽁보리 된장국에
배를 키운 촌아이였다
형수가 퍼주는 밥사발이
요술그릇처럼 자꾸 작아 보였다
살찐이 냠냠이만해서 양에 안찼다
다리 밑서 주워 온 아이도 아닌데
숫기가 없어
"눌은밥 있으면 더 주이소"
말문도 막히고
짠지랑 간장이랑
소태 같은 양념만 사그리 핥곤
조갈이 나면
물배만 터지도록 채우곤 했다
보수동 검둥다리
학교 가는 길목에는
호떡장수 단팥죽장수 엿장수 센베장수
가마보꼬 오뎅장수
다라이에 김이 무럭무럭
고래수육 파는 할매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장짜는 다리 께를 왔다리 갔다리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냄새만 맡는 게 주전부리였다
고인 침 두어 종발 삼키는 게
주전부리였다.
오줌싸개
눈치 밥에 오줌싸개 된다더니
요때기에 지도를 그린 아침
머쓱 머쓱
뒤통수를 긁으면
형수는 삼이웃이 다 알게
우세를 시키고
도회지야 키가 없지
소쿠리로 갓을 씌워
구멍가게 욕쟁이 할매한테
소금을 얻으러 보냈다
봉창문을 똑똑
"할매요 할매요 소금 좀 주이소"
엉거주춤 다가가서 손을 내밀면
할매는 기다리고 있은 듯이
싱긋 웃고는
소금도 안주고 씨불씨불 욕도 안하고
찰떡만 한 대 볼때기에 올려붙였다.
(다시는 할매한테 안갈끼다)
이력이 붙어 꾀가 생겼다
일을 또 저지른 날
젖은 요때길 몰래 개켜 얹고
아침이사 뜨는 둥 마는 둥
속옷이 축축한 채 학교로 내빼면
아이들은 어디서 지린내가 난다구
킁킁거리고
장짜는 사타구니에 버캐가 낀 채
도둑괭이마냥 시침을 뗐다
쉬는 시간 종이 땡땡
오줌이 마려워도
걸상에 궁둥일 누지른 채 움츠리고 있었다.
충무공의 훈장
겨울교실
아이들이 난로 가에 모여 조잘댔다
"난 김유신이다"
"난 을지문덕이다"
"난 세종대왕이다"
“난 손기정이다”
장짜도 한 몫 끼었다.
"난 이순신 장군이다!"
한 녀석이 혀를 날름
"저걸 짚어야 진짜로 충무공이다!"
난로는 벌개져서 대장간 풀무로 달군
쇳덩이 같았다
장짜가 얼결에 덥석 짚었다
충무공이 되고 싶어 덥석 짚었다
바지직
손바닥이 자두를 한 알 쥔 것처럼
금시 푸르뎅뎅 부풀어 올랐다
아리고 쿡쿡 쑤셨다
"우직한 놈"
선생님이 자초지종 들으시곤
곰처럼 우그리고 끙끙대는 놈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쓴 웃음만 지었다
형수는
내사 마 모르겠다.
내사 마 모르겠다.
역정을 내다가
병원에도 약국에도 안 데려 가고
뾰두라지 고름 짜는 할매한테 끌고 갔다
곪지 않게 삭히는 처방이라 안카나
돗바늘에 먹실을 꿰어 생살을 저미는
민간요법
뺑소닐 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꽉 붙들렸다
바늘뱀이 요 이불 시치듯이
살 속을 휘젖고 들어가서
사방팔방 거멓게 먹 무늬를 남기곤
실을 뽑는 아픔
장짜는
일제시대 *마루타라나 그런 신세가 되어
돼지 멱도 이렇게 따던가,
저승 문 코앞에서
공룡 같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충무공의 훈장이었다.
*마루타=2차대전 때 일본군이 세균전 연구를 위해 해부했던 실험용 인간.
주로 중국인과 조선인이 그 대상이었다고 함.
친정 가는 날
(장짜는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큰 형 따라
달나루 집엘 따라갔다 그때 대충 질러가는 길을 익혀뒀다.)
토요일 방과 후는 친정 가는 날
꼬불꼬불 *구덕고개 넘어
학장마을
엄궁 나루까지 뜀박질을 쳐도
해거름께 겨우 막배를 탔다
사공은 돌주먹으로
이노무새끼 선가(배삯)도 없이 누가 타라캤노?“
정수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지만
텁쑥부리 수염 밑으로 웃음방을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린 것이 맹랑하지 산넘고 물건너 삼십리 먼 길을
지 혼자 우째 저래 댕기노
혀를 끌끌 찼다
배가 을숙도 거쳐 맥도나루터
닿아봤자
샛강 끼고
갈밭 길 십리는 더 가야 달나룬데
깜깜밤중 하필 그럴 때
애들한테 들은 각시귀신 떠오를까
빨강사탕 줄까?
파랑사탕 줄까?
하얀 손이 덜미를 팍 잡아 챌 것 같아
뒤를 우째 돌아보노
(귀신님요 귀신님요 우리 어메 보러 간다 안캅니꺼
놀래키지 마이소 제발 따라 오지 마이소!)
입속말로 살살 빌면서
오금아 날 살려야
죽자 살자 내뺐다
그날 밤 장짜는
보리밥 양푼이채 고향을 먹고도
배때기를 채우고도
오줌을 싸지 않았다
아부지가 회초리를 들고 부산으로 쫓는 꿈만 꾸었다
(다시는 반공일날 오지 말거라!)
*구덕고개=*부산 서대신동 구덕운동장 뒤로부터 학장으로 넘는 고개
요즘은 그 아래로 터널이 뚫려있다
도시락
달나루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대들보가 내려앉으려고 금이 갔나
아부지가 중풍으로 쓰려졌다
어메는 헐값에 땅꺼정 팔아
용하다는 의원들, 다 불렀으나
돈만 홀랑 떼이고
반신불수 산송장 머리맡서
코만 킁킁 풀면서 밤을 지샜다
도둑괭이가 양철지붕 위를 걸어댕겼다
집안이 망하려면 저런다더라
어느 날 오밤중에
순사가 늘름 큰 형을 잡아갔다
동네사람들이 빨갱이 끄나풀이 묶여갔다고 수군댔다
형수는 와이로를 먹여 빼낸다며
꼭두새벽 끼니 끓일 새도 없이
빚만 내러 댕겼다
(아부지도 드러눕고 성도 갇혔는데 배가 뭐 고프겠노)
장짜는 점심시간
아이들이 도시락을 까먹으면
살며시 뒷문을 빠져나가
학교 담벼락, 은행나무 아래
짝도 없이 공기돌을 받다가
풀잎에 흙손을 문지르고 들어갔다
밖에서 뭘 먹고 온 척
입술을 빨면서 들어갔다.
심봉사
학예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4학년 1반몫의 연극은 심청전
장짜는 심봉사로
꽁치라는 가시내가 심청으로 뽑혔다
(코스모스같이 이쁜 앤데 누가 고런 별명을 붙였노?)
수업이 끝나면 강당에 모여
재잘재잘 대사를 외었다
리허설을 했다
봉사가 눈을 뜨는 피날레
수줍지만 우짜노
“아니 네가 정말 내 딸 청이냐?”
넉살좋게, 와락 꽁치를 껴안으면
선생님도 아이들도 다 웃었다
담임선생님이 별안간 객혈을 하고
마산 결핵요양소로 떠나버렸다
심청전 막도 오르기 전에 이별이라니
교실 속은
울음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배 같았다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은
사범학교 갓 나온 여드름쟁이, 형 같았다
유도선수였다나, 젠체했다
운동시간 모래판에서
*고시나게 시범을 보인다며
조무라기 애들을 던져대곤 했다
(고시나게 선생님이라 부르면 어울릴 것 같았다)
심봉사가 걸칠 무대 옷
집에서 빨랑 맞춰 오라고 야단쳐서
반공일날 시골 가면
아부지가 입던 헌 두루마기, 핫바지
기장 줄여 올거라고 했으나
"이노마야 고런 거 입고 무대 서서 희극 할라카나?"
눈살 찌푸렸다. 갈아 치울 낌새 같았다.
장짜는 억울해서
"선생님요 옛날 심봉사 할배도 걸뱅인데
우째 그 옷보다 좋은 거 입었겠습니꺼?"
따졌지만 들은 척 안하셨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대뜸 한 아일 손짓해 부르고선
"니가 맡아!"
청이 곁에 세워버렸다
(가아(걔) 엄마 고운 옷 차려입고 학교 자주 오던데 *사진뺑이
맞을끼다!)
저녁놀이 조명처럼
텅빈 강당
청이를 뺏긴 심봉사를 비추고 있었다
(점쟁이 중이 뭐라카드노 될듯하면 사달이 난다카지!)
*고시나게=유도의 업어치기 기술
*사진뺑이=치맛바람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선생님한테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 옛날 부산지방 아이들의 은어.
땡땡이와 고시나게
오학년이 되었다
청이역을 맡았던 꽁치도
사진뺑이 글마도
반이 갈려 헤어졌지만
고시나게 선생님만 빚쟁이처럼
5학견 1반, 장짜네 담임 또 맡았다
여름방학마저도 화딱지가 뽀록났다
4학년 때 요양소 가신 선생님 땜에
빼먹은 공부
한 열흘 보충수업 시킨다나
볼멘소리들이 삐져들 나왔다
"씨-우리만 와 학교 나오라카노"
"이런 날 멱 감으러 가면 얼마나 신나겠노"
"땡땡이 치자!"
장짜가 대장처럼 앞장을 서서
큰소리로 선동을 했다
"우리도 *옴쟁이하교 형들처럼 스트라이크 일으키자!"
(고시나게 선생님은 자습을 시키곤 교무실에 안 계신 것 같았다)
그날 장짜반 아이들은
(우선 먹기 사 곶감이 달지)
종아리 몇 대 맞을 양으로
썰물처럼 떼 지어 우- 송도로 내뺐다
짙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갈매기 나래 아래로
파도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반겨주었다
개구리헤엄을 치고
자맥질을 하고
조개껍질을 줍고
모래성을 쌓았다
다음날 아침 고시나게 선생님은
출석부도 부르지 않은 채
장짜의 덜미부터 덥석 틀어쥐고
교실 뒤쪽으로 끌고 갔다
"주모자지?"
숨이 막혀 캑캑거리는 새
으랏차! 공중에 붕 띄워
과당 메다꽂았다
(선생님의 장기인 고시나게였다)
다시 한 번 역기처럼 번쩍 들어
내동댕이 쳐버렸다
뼈가 파편처럼 조각조각 부서지는 것 같았다
코피가 교실바닥을 벌겋게 물들였다
까무러쳐 버렸다
어떻게 집에 옮겨졌는지 모른다
(뼈가지에 금이 갔길래 그토록 쑤시겠지)
형수도 없고
병원에 데려갈 사람이 있을 턱 없었다
옆집 할매가 골방 문 앞에서
기척만 맡고선 이내 사라졌다
장짜는 등짝에 불거진 박 같은 혹 땜에
꼽추 같이 모로 누워
형수한테 들키면 우짜노
뾰두라지 고름 짜는 할매한테 끌고 가면 우짜노
문고리를 건 채, 숨도 코도 못 쉬고 끙끙댔다
"씨름하다 넘어졌다 안캅니꺼"
"그냥 둬도 낫는다 안캅니까"
헛소리만 쳐댔다
*옴쟁이하교=一商(지금의 慶南商高).
그 당시 좌익성향의 학생들과 소위 어깨들이 많아 스트라이크를 자주 일으켰다.
조도마떼
해괴했다
꿈이었건만 생시 같았다
장짜는 의안(義眼)에 색안경을 낀 채
앞머리로, 이마빼기 흉터를 가리고 있었다
추레한 중늙은이 차림새였다
삐라를 문 새떼들이 광장에 내려앉아 있었다
토오키(talkie)가 없던 무성영화시대
*카포네의 일대기가 상영되고 있었다
변사는 청승맞은 입담 대신
북을 둥둥 치고 있었다
장면이 바뀌었다
문득 아이 적으로 돌아가서
보리밭 고랑에 숨어 있었다
어릿광대 탈을 쓴 광대가
"버버리 봐았다!"
냉큼 오랏줄로 칭칭 묶더니
*미나까이 같은, 마천루 꼭대기로 데려갔다
하늘이 만질 만큼 가까워 보였다
검사는 담배를 피우다, 다짜고짜 쇠소리로 물었다
"인빼이 도오시지?"
"그게 누군데요?"
"이노무자슥 까마구 괴기 먹었나 지 이름도 까먹게"
"그게 우째 내 이름이란 말인기요?"
검사는 대꾸 대신
담뱃불로 콧등을 확 지졌다
앗 뜨거
꿈도 참 더런 걸 꾸고 있었다
"너 이번이 백 번째지? 세상에 내려온 것 말이야"
"그런 거 우째 내가 압니꺼 도대체 아저씨는
하늘나라 검사인기요? 땅나라 검사인기요?"
"이노무자슥 검사면 검사지 하늘검사 따로 있고
땅검사 따로 있는 줄 알아. 나는 엿장수 맘대로 검사야!"
야코를 팍 죽여 놓고 심문할 속셈 같았다
재떨이를 코앞에 빤히 두고서도
남의 발등에다 꽁초를 비벼 껐다
앗 뜨거
(아동복지법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오리무중이었다)
검사는 줄담배를 피워댔다
"이실직고 할테냐?"
"불 것이 있어야 불 거 아닌기요"
"그럼 좋다! 붕어가 될래? 참새가 될래?"
"그게 무슨 말인데요?"
"물을 먹일까 불로 지질까 그 말이다"
"둘 다 싫습니더"
검사는 입술에 비웃음을 흠씬 바르며
다가앉았다
"이노무자슥 니가 임진난 때 왜놈장수 고니시(少西行長)
휘하의 부장(副將) 아니냐
천하악질 인빼이도오시란 놈 아니냐 말이다. 그때 조선 땅 쳐들어와서
벼라별 행패, 오만가지 만행 저지르고 이제 와서 오리발
내밀기냐?"
기절초풍
억장이 무너졌다
전생이 쪽발이 게다짝이라니
누가 고런 후라이에 속을 줄 알고
묵비권을 사용하는 게 상수였다
담뱃불로 마구다지 지져댔지만
그럴수록 오기로 입을 다물었다
(벌겋게 달군 난로도 덥석 짚은 이력이 있는데)
아예 혓바닥에 납땜을 해버렸다
검사는 별짓을 다해도 효과가 없자
비장의 카드로, 대질을 시킬 모양이었다.
첫 번째 증인이 들어왔다
뜻밖에 형수였다
그녀는 목이 메이는지 말이 어눌했다
"내 전생 나이 일곱 살 때, 인빼이도오시 저노마가
저거 나라 끌고 가서 종질시켰습니더. 말 안 듣는다고
밥 굶기고 송곳으로 찌르고 인두로 지졌다 안캅니꺼
금생에서 쪼매 괴롭혀 주었지만 만분지일도 아즉 못갚았습니더"
두 번째 증인은 고시나게 선생님이었다.
(꿈속에선 접장이 아니라 엄청 큰 재벌회사 우두머리로 변해 있었다)
그는 *아까마루 담배를 피우며 눈을 감고 말했다
"나는 전생에 진주 부자 만석꾼이었는데
인빼이 도오시 저노마가 쳐들어와 날 알거지로 만들더니
그것도 모자라 가라데로 빙신 만들어 버린거요. 금생에서
혼 쪼매 내줬지만 고 걸로는 간에 기별이 안가요. 살점이
벌벌 떨려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세 번째 증인은 사진뺑이였다
(어릴 때의 쬐그만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장다리에 덩치가 컸다.
금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시종 연설조였다
"에- 또 나는 전생서 금지옥엽 키우던
고명딸을 인빼이 도오시 저노마의 노리개로 빼겼는데
왜장 고니시에게 탄원을 내려하자 닛뽄도(일본도)로
내 눈알을 도려내 봉사가 되게 했소. 금생에서 약 좀
올린 건 새발에 피요. 아시다시피 내 특기가
권모술수 아니겠소. 두고두고 말려서 조질 작정이요"
서기가 부지런히 기록을 하고 있었다
검사가 별안간 창문을 열어제꼈다.
아우성이 들려왔다
수천수만이나 되는 원귀들이
와글와글 마천루를 에워싸고 있었다
(왜병들이 베어간 조선사람 귀와 코가
일본땅 어드뫼 이총(耳塚)에 묻혀 있다더니)
"인빼이도오시 내 귀를 돌려다오!"
"인빼이도오시 내 코가 어디있노?"
아수라장이었다
붙들리면 뼈가지도 못 추릴 판국이었다.
장면이 문득 바뀌었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낙동강 하구, 홍수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원귀들의 함성이 요술만화처럼
별안간 무서운 급류로 변하더니
삽시간에 둑을 무너뜨리고
섬을 홀랑 삼켜버렸다
장짜는 지붕 위로 올라가 박처럼 매달려 있었다
촌닭 면장이 전화통에 침을 튀기며
짬봉말로 고함을 쳐댔다
"교모 아메가 빠라빠라 후리마시다. 미쭈가 나꾸도강노 뽀뿌라
구비마데 촐랑촐랑"
그때 허리께로 차오르는 물길을 헤치고
보퉁이를 인 여인이 오고 있었다
"조또마떼!"
"조또마떼!"
어메였다, 얼굴이 은빛처럼 해맑아 보였다
쟁개비 양푼이 종지 숟가락 좁쌀
말끔 쏟아놓고
(그래도 내 새끼)
장짜를 뚤뚤 말아 이고설랑
뒤뚱거렸지만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꿈은 깨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달마가 방장으로 있다는 -)
*멸업산(滅業山)을 찾아가라 일러줬을 뿐이었다
*카포테(Capone,Alponse 1898 ~1947)
나폴리태생으로 미국의 갱두목 어깨들의 우상이었음.
*미나까이=일제시대 지은 그 당시 부산서 제일 높은 백화점
*아까마루 담배=럭키스트라이크라는 양담배
*멸업산(滅業山)=업장을 멸하는 산이라 해서 입산(入山)을 뜻하는 의미로
저자가 임의로 지은 말
제3부 광시별곡(狂詩別曲)
중도 못 깨치면 속인이요 속인도 깨치면 부처지요
꿈에 사천왕이 나타났다
도끼눈을 치뜬 채 이를 빡빡 갈았다
"이노무새끼"
*시(詩)제목을 하필 고따구로 짓노
훼불죄(毁佛罪)로 당장 주리를 틀끼다!
나는 눈썹하나 까닥 않고
되레 멱살을 쥐고 흔들어댔다
"이노마가 마구니들한테 뇌물 받아먹은 모양이네
시비부터 걸게
정법도 수호하지 못하는 주제에
니가 무슨 사천왕이고 허새비지"
연 사흘 흙탕에서 개처럼 물어뜯고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한 수 더 깨친 아재비 쪽이
참는 거라 해서
조카벌이 되기 싫어 얼른 떨어졌다
화해해야 했다
그가 내 이마빼기에 노기(怒氣)빼는 고약을 발라 주자
나는 그의 가슴패기에다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 한 구절
부적처럼 붙여줬다
(만일 스스로의 마음이 부처인줄 안다면
머리와 수염을 깎는 데 관계치 않나니
속인도 부처가 될 수 있느니라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머리와 수염을
깎았더라도 역시 외도(外道)니라)
부처님이 사라쌍수(沙羅雙樹)아래 관속에서
두발을 내민 대신
대포소리만한 방귀를 서너 방 뀌셨다
자스민(jasmine)향내 같았다.
땡추 성불(成佛)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어드뫼 계시오
노승은 손가락 끝으로 해지는 쪽을 가리켰다.
하루 삼천 배(拜)씩
한 달에 구만 배, 한 해면 백만 배지.
서른 해쯤 엎드려야, 절값으로
코빼기나 구경할까 말까
멍청한 사미(沙彌)는 귀가 솔깃해서
무르팍에 붕대를 칭칭 감고
죽을 똥 살 뚱
모가지와 허리를 꺾었으나
강산이 변해도 서너 번 세월
눈요기는커녕
꼬라지만 폭삭 파뿌리로 변해버렸다.
시주밥만 축내고 뒈지면 아귀(餓鬼)가 된다던데
내생(來生)에 사람거죽 한 번 더 덮어쓸 묘수는 없는가.
선문(禪門)을 두드리자
허허 노망 끼가 도졌군.
폐차 주제에 고속도로라니
달마 새꺄들이 일주문 앞에 피켓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쳐버렸다.
제기랄
싯다르타는 언제 절밥 빌어먹고 도 터졌나.
오기가 빨깍 나서
이럴 때 안 빼면 언제 빼노
혼(魂)속에 깊숙이 꽂아둔 취모검(吹毛劒)
한 오락 터럭서컨 싹둑 베는 마음 칼 말이다
땡추는 별안간 눈깔이 뒤집힌 칼잡이가 되어
종횡무진
삼천대천세계를 누비며 시퍼런 검무(劍舞)를 추고 댕겼다.
조주(趙州) 고불(古佛) 이르기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베고
형제를 만나면 형제도 자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마저 조진다더라
도대체 가치라고 뻐기는 것
빡빡이고 히피고, 주니어고 시니어고,
악마고 양심이고
이데올로기고 도그마(Dogma)고, 전통이고
윤리고, 사관(史觀)이고 모국어고, 오리지널이고
각색(脚色)이고, 소크라테스고 돼지고, 네것이고 내것이고,
공(空)이고 색(色)이고
망막에 비치는 쪽쪽, 대갈통에 스미는
쪽쪽
망나니 칼끝이 사그리 작살을 내버렸다.
땡추는 이제
벨 수 있는 것을 다 베고 나서
벨 수 없는 것만 남긴 자리
텅 빈 신령한 곳간에
아미타불마저 사로잡아 가두고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갚으리라
도끼눈을 치뜨고 있었다.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영원한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한칼에 싹둑
모가지를 따버린다 안카더나
판때기 이빨에 털난 소식
우리들의 친구
아이들은 거기 없었어요.
연극은 서막부터 시시했어요.
장터에는 귀머거리 무리만 우굴 거렸어요.
꼭두각시들이 날라리를 불며
약을 팔고 다녔어요.
히죽히죽 웃은 건 그 때문이었어요.
쓸개가 빠지다니요 말도 안돼요.
찬란한 황금빛 성좌
보리수 아래서 낮별을 봤어요.
불가설(不可說) 불가해(不可解)
가리켜 줄 무엇이 아니란 말에요
*판때기 이빨에 털 난 소식은
대강이로 짜봤자 만구 헛 거예요
히죽히죽 웃은 건 그 때문이었어요.
나사가 빠지다니요 말도 안돼요
꼬나보지 마세요.
*판때기 아발에 털난 것=판치생모(板齒生毛), 선문(禪門)의 화두(話頭)
속지 말거래이
참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예배당에 갈라카면
달마가 꿈에 나타났습니다.
절에 갈라 캐도
*달마가 나타났습니다.
딱부리 눈을 부릅뜨고 한사코 말렸습니다.
"푸른 눈 달고 싶거들랑 지발 마구니들한테
속지 말거래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작당한 귀신들한테 속지 말거래이"
*달마=보리달마의 약칭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527년 인도에서 중국에 도착하여 독실한 불교도였던 양나라 무제와 나눈 문답은 선(禪)의 요체(要諦)로 전해져온다.
무제가 물었다.
*내가 즉위한 이래 무수히 많은 절을 지었고 무수히 많은 경전을 각인하였고 수많은 승려에게 공양을 하여왔소.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공덕이 되겠소?"
달마가 대답했다.
"전혀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어째서 공덕이 없다고 하시오?"
"그러한 것들은 인천(人天)속세(俗世)에서의 조그만 행위이고 과보가 겨우 새어나오는
옹달샘에 불과합니다.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그들을 따를 뿐입니다.
그림자가 존재하는 듯 보이더라도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진정한 공덕이란 무엇이란 말이요?"
"진정한 공덕은 청정한 지혜에 대한 미묘한 파악에 있습니다. 이 지혜의 본질은
말이 없고 공적한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공덕은 속세의 여러 방법으로는
추구할 수 없습니다."황제가 계속해서 물었다
"불교의 거룩한 교리 중에서 첫 번째 원칙은 무엇이오?"
"그 속에 아무 성스러운 것도 없는 커다란 공(空)입니다"
마침내 황제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요?"
"모르겠습니다."
애라이 이노마야 (1)
(이 詩의 내용은 正法을 향해 바르게 修道하시는 多數의 스님들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애라이 이노마야
니가 우째 스님이고?
점이나 사주 봐주고
신도 긁어모으는 스님 말이다
할마시나 아지매들 앞이 아니면
설법도 못하는 깜깜 중 말이다
천날만날 무슨 불사(佛事), 무슨 불사
플래카드 걸어놓는 건축업자 스님 말이다
기왓장에 이름 석 자 새겨주고
복 팔아먹는 스님 말이다
고통 받는 이웃은 본 체 만 체
미꾸리 자라, 방생법회 자주 여는 스님 말이다.
살아있는 혼보다 죽은 귀신 더 위하는 스님 말이다
시줏돈이 지 돈인 줄 착각하는 스님 말이다
경문이나 몇 줄 외어 난척하는 스님 말이다
(*선성(善星)비구 제자 말이다)
벌어먹기 편해 절집에 취직한 스님 말이다
애라이 이노마야 니가 우째 승보(僧寶)고?
명안종사(明眼宗師)도 아니면서
후안무치(厚顔無恥), 삼배(三拜) 날름 받아먹는
양두구육(羊頭狗肉) 땡중이지
*선성(善星)비구=옛날 인도승려. 선성비구가 대장경을 다 외웠어도
윤회를 면치 못한 것은 견성하지 못한 까닭이라 했다.
애라이 이노마야(2)
(이 詩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참 從僕인 多數의 牧師님들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애라이 이노마야
니가 무슨 목사고?
입술로만 하느님 찬송
맘뽀는 구렁이 뱃속 같은 목사 말이다
그리스도 몸 된 교회 세워 설랑
맘은 콩밭에, 수지나 맞추려는 목사 말이다
이적(異蹟) 기적(奇蹟) 헛소문 퍼뜨려
언감생심, 신자 수나 늘리려는 목사 말이다
툭하면 종말론, 가라지는 아궁이 불속에 들어가지
어진 백성 기죽이는 목사 말이다
환난이 오기 전에 하늘금고 예금해 두라나
야금야금 알겨먹는 목사 말이다
주제넘게 남의 종교 일일이 헐뜯고
장승만 봐도 우상(偶像)병이 도지는 목사 말이다
세종대왕보다 유태인 임금, 솔로몬을 명군(名君)으로 치는
목사 말이다.
성령으로 병 고치다 생사람 때려잡는
목사 말이다.
주일학교 꼬맹이들 한테도, 이교도를
마귀라 가르치는 목사 말이다
애라이 이노마야 니가 우째 목자(牧者)고?
눈앞에서 방황하는 양떼보다
안 보이는 아버지 그림자나 쫓는
몽유병자 양치기지
부처새끼
쉽게 푸십시오.
부처가 따로 어디 있는 거라 망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곧 부처입니다
부처새끼들입니다
모두가 다 부처 맘을 어미로
인연 따라 잠시 태어났을 뿐입니다
흩어진 채로 보면 부처 부스러기요
모은 채로 보면 부처 덩어리입니다
임금과 백성도
부자와 가난뱅이도
잘난 이와 못난이도
범(凡)과 성(聖)도
금수(禽獸)와 미물(微物)도
속속들이 부처 맘을 지닌 부처새끼들입니다
털끝만큼 다른 점이 없습니다.
*동체대비(同體大悲)
깨우친 지혜로
자비를 잉태하는 부처새끼들입니다
*동체대비(同體大悲)=불보살이 법성(法性)의 한결같은 이치를 달관하고
중생이나 자기가 같은 몸이라고 알고 있는 데서 일어나는 자비심
도로아미타불
제우스의 애첩, 님프를
희롱하다 들킨
아테네의 궁수가 있었다.
그는 천리 밖의 겨자씨도, 백발백중
맞추는 명궁(名弓)이었으나
꽃을 꺾는 재주만은 쑥이었다.
신(神)이 단죄(斷罪)했다
"세세생생(世世生生) 고추도 안 달린 내시로 태어나
존나게 수모나 받던가 아니면 하늘에 총총히 박힌
저 - 금별
팔만 사천 개를 화살로 떨어뜨려 붓다가 되던가,
양단간에 택일하게. 만일 후자를 택해 존자(尊者)가
되면 사
짐인들 어찌 그대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배기겠는가,
님프도 헌납하겠네."
풀 수 없는 난제(難題)로 올가미를 씌워
기어이 거세(去勢)하려는 술수였다
궁수는 별을 쏘는 것이
귀신의 콧구멍을 맞히기만치 난감한 걸 알았지만
대장부 낯짝에 오물을 끼얹어도 유분수지
사타구니 속에 심벌도 하나 제대로 안단 채
우째 가슴을 펴고 대로를 활보하노
분기탱천
그날로 당장 아테네의 하늘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윤회속의 대장정(大長征)
가없는 목표에의 도전이었다.
전생의 서원은 바로 이어져서
혼백은 태어나는 쪽쪽 궁수가 되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에 태어나서
백스물다섯 갠가 따고
쉰일곱에 죽었다
인도의 갠지스강 유역에 태어나서
이백여개 따고
예순셋에 죽었다
티크리스, 유프라테스 강 문화권에 태어나서
삼백여개 따고
일흔넷에 죽었다
중국의 황하유역에 태어나서
호부 일흔 개
요절하는 통에 반타작에 그쳤다
에스키모인으로 태어나서도
별을 따 모았다
잉카제국 수문장으로 태어나서도
별을 따 모았다
징기스칸의 말몰이로 태어나서도
별을 따 모았다
아프리카 피그미족, 난쟁이로 태어나서도
별을 따 모았다
집시로 태어나서도
노래와 춤 대신, 별을 따 모았다
오스트랄리아 원주민으로,
바이킹족 해적으로 태어나서도
별을 따 모았다
흰둥이 검둥이 노랭이 빨갱이 회색인종으로
두루 태어나서 별을 따 모았다
일본인 사무라이로 태어나서
별을 딴 것이 바로 전생이었다.
죽을 때 헤어보니 총 누계 팔만팔천삼백열여덟개
혼속은 비좁아 터질 것 같았다
마침내 궁수의 혼백은 현해탄을 건너
조선반도로 상륙했다
미수 분
팔백여든 두개만 이승서 따면
이 지긋지긋한 대장정의 막도 내리리라
붓다가 되어
제우스의 무릎을 꿇리고
전리품으로 님프도 안을 것이다
어깨 죽지에 불이 붙도록 시위를 당겼다
칠순에 겨우 팔만 사천 개 아귀를 채울
마지막 한방을 날렸으나
맙소사 이게 뭐야
화살은 금별대신 쪽지만 하나 꿰어 찬 채
부메랑처럼
궁수의 발부리 앞에 도로 꽂히는 게 아닌가.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이런 글귀가 씌어있었다
궁수여 붓다가 되고 싶은가
혼속에 빽빽이 채운 금별을
도로 제자리로 쏘아 올리게!
시쳇말로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궁수는 그래도 고자가 싫었다.
낙서, 산중무료
산속은 해가 짧아요
벽시계는 세시를 가리키고 있어요.
비행기 한 대가 꽁무니로
흰 실타래를 풀며 고공을 날고 있어요.
고양이는 한나절 내내
쥐구녕 앞에서
털 채로 삼킬 영계가 한 마리 나오나
투그리고 있네요.
인내심도 자비심만치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달력은 한 장만 더 뜯으면 설경(雪景)을 선보일 거구요
금잔화는 마침내 할미처럼 시들어 버렸어요.
내일부터 또 금연을 시도하겠어요.
가래가 도시 삭지 않아요.
사흘만 용케 끊어도 다들 지손에 장을 지진다구
입방아를 찧지만
허긴 그래요
귀뚜라미 울음 땜에 말똥말똥
잠 못 이루던 밤이 고비더라구요
전화통이 또 따르릉 한차례 울 것 같아요
마당가를 서성대다 뛰어가서 받으면
얄짤없이
이삿짐센터냐 묻는 통에 진이 다 빠졌어요.
"철수 있어요?"그런다던가, 낯선 전화라도
혹, 아이들 음성이면 괜스레 반갑던 데요
다이얼을 잘못 눌러 놓고
더듬거리는 녀석더러
있는 말 없는 말 부풀려서
동무가 되자고 꼬드겨보고 싶거든요
호랑이 한 마리가 우리 동네 뒷산에다
지네들 머리통만한 알을 일곱 개나 깠다는 둥
그끄젠가 부화되어
오늘 아침 해 뜰 무렵 아장아장 마실을 댕기더라구
허풍을 떨면
깨득깨득 웃을런지
앙하고 울음보를 터뜨릴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우체부가 이틀 치 신문을 배달해 주는 날이에요
군불을 빨리 때야겠네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읽고 싶으니까요
문득
*라훌라하고 *불필(不必)비구니하고 노마라는 녀석
하고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툇마루에 쉬파리 세 마리가 앉아 앞발을 비비고 있어요.
파리채를 드는 새 풀렁 날아갔어요.
*라훌라=석존의 아들, 석존이 태자로 있을 때 출가하여 도를 배우려고 마음을 내었다가
아들을 낳고는 장애됨을 한탄하여 지은 이름
*불필(不必)비구니=열반하신 이 성철 스님이 출가하기 전 낳은 따님. 비구니 스님
꽃씨
캡슐 속에는
바람둥이 가시내
봄님이 갇혀 있대요.
오두방정 탓이라나 봐요, 요술할멈이
벌을 주는 중이래요.
피- 그게 아니에요
이름 모를 어느 흐미한 별나라 공주님이
오채현란(五彩絢爛)
맵시를 뽐내려고,
땅나라 왕자님을 찾아 나선 거래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것도 아니에요
수수께끼 한 올 들어있는 거라구요.
어려운 말로는 화두(話頭)라 그러는데요
뜰 앞의 잣나무니 하는
뚱딴지같은 것들이라구요.
암호문 같아 해독할 수 없대요.
창이 없는 걸요
컴컴해서 우린 뭔지 몰라요
춘삼월 모월모일
단비가 한차례 뜨락을 적시면
난수표가 풀린댔어요.
아직은 요
거울 앞에서 색색의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눈썹을 그리는 꿈만 꾼단 말에요
화장을 하고 싶은걸 어떡해요
만나구 싶어요.
*사구(死句)와 *활구(活句)
우리들은 멧새였어요.
마도(魔都)의 조롱 속을 탈출했어요.
사흘만 더 갇혀있었어도
세뇌될 뻔 했어요
혼은 이미 벌레 먹은 잎새처럼 찢어졌어요.
갈바람이 부는 쪽으로
펄럭펄럭 날아갔어요.
구릉(丘陵)을 넘으니
숲속나라 입구가 있고
어린왕자가
중절모를 하나 그려놓고
이뭐꼬?
이뭐꼬?
이뭐꼬?
다그쳐 묻잖아요.
(화두(話頭)를 못 풀면 한 발짝도 못 들여놓는대요)
그까짓 거야 뭐
쌩떽쥐베리 아저씨가 그린 삽화잖아
"보아 구렁이가 코끼리를 삼킨 거야!"
대답도 채 듣기 전에 어린왕자는
남이 씹다버린 부스러기 말 따윈 듣지 않는대요.
등을 돌려버렸어요.
저만치서 여우가 오고 있었어요.
힌트를 주는 대신
누깔사탕 두 알만 뽑아 달래요
장님이 되기로 했으나
기껏 들은 건 요거뿐인걸요
"숲속나라 자물통은 사구론 안돼, 활구로만 열린다니깐!"
*사구(死句)와 *활구(活句)=의미가 있고 의고(意路)가 통하는 말을 사구,
의로가 통하지 않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활구라 함.
열반송(涅槃頌)
그 자슥도
지구별 무대, 배우였대
스포트라이트라구
웬 걸 쥐구녕에 개똥벌레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구
요람서부터, 사그리
블상놈 걸뱅이 노가다 하수인 쫄다구
빌빌이 깡통 잡것
이가 뿌득뿌득 갈리는 역만 맡았대.
뒈질 때 읊은 열반송(涅槃頌) 한 수
묘비명에 새겨져 있더라던데 -
씨발
혼이 정말 날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다른 별로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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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집 한 권을 읽고 갑니다. 좋은 글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아껴가며 조금씩 읽고있어요^^ 선생님 좋은 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