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드라마 '서울1945'에서 여운형 암살 배후는 물고 늘어지면서
송진우 암살 배후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넘어간다.
여운형 암살 사건 당시 이승만 박사는 돈암장 주인이 방을 비어달라고 해서
돈암장에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택 연금당하여 외부인을 접촉할 수 없었으며,
박창주(김창룡)는 육사2기로 갓졸업하여 1연대에 배속된 군인이었음에도
이승만 박사로부터 암살 자금을 받은 경찰로 등장시켰으며,
운혁(이강국)은 당시 북한 초대 외무상이었음에도,
남한에서 현장 목격하고 인민일보에 기고문을 낸 것으로 방영되었으므로
제작진이 고소당하여 결국 사실 여부가 법정에서 가려져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드라마 32회에서 고하 송진우 선생 암살에 대해서는
그 암살범 한현우의 배후가 상해임정 아니면 박헌영이라는 한마다 나레이션으로 슬쩍 넘어간다.
여운형의 건준 세력과 상해임정이 패권다툼하던 시기에 송진우가 암살되었으니
공산당 소행으로 의혹의 시선이 갈 만도 하다.
그러나 송진우가 반대한 세력은 구체적으로 여운형의 건준 세력이었으며,
여운형의 건준이 상해임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환국 금지를 공표하였음에도
송진우가 미군정과 협의하여 상해임정 환국을 추진하였으므로
오히려 여운형이 그 암살 배후로 의심을 살 만한데도 드라마에서 박헌영을 지목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운형 암살 배후가 송진우 암살 배후였다.
건준의 상해임정 환국 금지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정이 상해임정 환국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미리 예비해둔 숙소 경교장으로 안전하게 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2월 20일 회의 때 신익희는 미군정을 추방하고
상해임정이 공식 정부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함으로
송진우 선생과 의견충돌을 빚는 장면이 드라마에서 비쳐진다.
사실, 그 날 미군정을 인정치 않겠다는 강경 발언은
김구가 하였으며, 이것은 광복군에 군수 지원을 지원했던 미국을 당황하게 하는 발언이었다.
송진우 역시 상해임정 후원의 주역이었다.
그럼에도 김구의 발언에 이의제기를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상해임정에는 백의사 등 여러 테러 단체들이 있었으며,
그 장본인이 신익희였다.
상해임정 테러 단체들의 배후에 신익희가 있었으며,
해방정국 암살 사건의 모든 배후는 김구였다.
김구 자신이 1949년 7월 안두희 총에 쓰러졌으므로
사람들은 김구를 암살 희생자로만 생각하려 하지만
실은 자신이 뿌린 씨를 자신이 거둔 것이었다.
상해임정은 북한에 갈 수 없었자만 북한도 상해임정 영토로 간주하였으므로
백의사 등 신익희가 조직한 테러 단체들은 처음에 김일성 등을 테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송진우와 장덕수 등 남한 우익에 대한 테러 배후 역시 김구였다.
안두희 등 북한에서 월남한 반공청년들은 김구가 반공 인사임을 분명히 하는 한에서
그의 과실을, 즉 남한 우익 사건 암살 배후였다는 사실을 용납하였다.
그러나, 김구가 남한에서의 자신의 헤게모니를 위해
친공으로 선회하고 김일성과 손잡으러 하였을 때
안두희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친공으로 선회하고 김일성을 만난 김구 암살 논리나,
7차례 불법 월북을 하여 김일성과 비밀회담을 하였던 여운형 암살 논리나 같은 것이었다.
여운형 암살 1차저격수가 북한에서 갓 월남한 17세의 청소년 한지근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공범들이 모두 백의사 주변 인물들이며,
권총을 백의사 단장 염동진에게서 받았다고 증언한다.
백의사는 김구를 수반으로 하던 상해임정파의 산하조직이었으니
산하조직의 무기가 암살범에게 넘어가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였다는 것만으로도
김구 선생은 여운형 암살 사건에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송진우와 장덕수 암살의 배후는 분명하게 김구였다.
여운형 암살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이미 그의 수하의 암살단 조직이 커질 대로 커지다 보니
어디까지 백의사 단원의 범주인지 자체가 불분명해졌다.
10년전 4인의 생존자였던 김흥성 (1995년 증언 당시 74세), 김영성 (65), 김훈 (66), 유용호 (66) 등은
1974년 양심고백을 한 인물들이었는데, 자신들이 백의사 단원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도
백의사 행동대원의 역할을 하였던 것처럼 말하니 누구까지 백의사 단원에 속하는지 모호하였다.
그들은 김구의 지시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 때문에 여운형을 암살하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해방정국 암살 사건의 화약고는 김구 선생이었다.
본래 암살단의 의도는 독립운동이었다.
상해임정 자체가 민주적 조직이었다기보다 그 주변에 암살단들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 암살 대상이 조선인들이 포함되었다.
독립운동에 비협조적인 인물들에 대한 암살을 그들은 정당화하였다.
대한광복단에 내는 군자금 후원비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장택상씨 부친을 암살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해방이 되자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암살은 더욱 정당화되었다.
본래 김구 선생에게 테러나 살인은 나쁘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런 일들이 독립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김구가 배후로 한번 성공한 일본인 암살 덕택에 장개석 총통의 후원이 시작되었으며,
그는 독립운동가로서 명망을 날리게 되었다.
아마 이것이 그가 암살단을 멀리할 수 없었던 이유였으리라.
그리고 그의 주변 암살단들이 독립운동단체라는 간판을 제마다 걸고 있었으며
독립운동에 비협조적인 인물들에 대한 암살 논리는 해방 후 더욱 느슨해졌다.
이번에는 상해임정의 집권에 반대하는 이들 제거가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상해임정 환국을 추진하였고,
환국한 독립운동가들 사저를 마련하였던 송진우 선생이 암살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공식회의에서 김구 선생 주장에 말대꾸한 직후 그 사건이 일어났다.
여운형 암살범들의 최후고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