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트레킹 일정을 강원도 최전방으로 잡은 이유는 민족의 대재앙이었던 6,25사변을 의식한 호국과 관련이었습니다. 당시 북쪽 남침으로부터 시작된 전쟁은 어느곳하나 성한 곳이 없었지만 카돌릭 안에 종교시설이나 사제들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한국지역에서 가장 늦게 카돌릭이 전파된 곳이 바로 춘천이었습니다. 강원도는 풍수원, 원주, 홍천을 중심으로 카돌릭 전파는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앙선조들 영향이 컸습니다. 태백산맥을 중앙에 두고 영동과 영서로 구획된 강원도는 풍수원을 깃점으로 영동지역을 넘게됩니다. 풍수원 부제로 계셨으며 프란치스칸이셨던 이광재 데모테오 신부님께서는 새로운 임지로 양양성당으로 발령을 받으십니다. 당시 교구는 지금의 춘천이 아니라 원산이었습니다. 6,25 사변을 앞두고 단행한 북의 삼팔선 봉쇄로 왕래가 끊긴 상태에서 디모테오신부님께서는 3,8선에 탈출 길을 만들어 많은 수의 성직자와 신자들을 북으로부터 탈출을 시킵니다. 그러나 정작 당신께서는 양때들의 안위와 성소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돕기위하여 원산에 남아 성직자로서 역활을 다하십니다. 종교는 아편과 같다는 인식으로 수많은 박해와 만행을 저질렀던 공산주의자들은 수많은 종교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들을 체포구금해 버립니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디모테오신부님은 신자와 성직자들을 남쪽으로 탈출시키는 모험을 손수 결행하시다 결국 체포구금된 후 원산교도소에서 순교의 길을 걷게 된신 것입니다. 춘천교구에서는 디모테오 신부님을 기억하고자 당시 루트를 디모테오 길로 정한 후 복원하여 순례의 길로 만들었습니다. 주임신부로 근무하셨던 양양성당을 출발하여 걷게 되는 디모테오 길에는 예수고난회 수도원과 글라라 수녀회 수도원이 있어 순례자의 마음을 더욱 더 경건하게 만듭니다. 6,25 동란 당시 북측으로 끌려가 순교의 길로 떠나신 많은 수의 성직자와 치열하게 교전이 벌어졌던 동부전선 특성상 카돌릭 군종 활동들도 활발한 중심에 섰던 춘천교구를 방문하여 그 곳에 조성되어 있는 성직자묘역을 참례하고 우리들의 영원한 사부 성프란치스코께서 염원하신 평화를 간구하고자 평화의 공원찾아 기도하고 무명용사들을 기억하자는 의도에서 강원도 춘천, 화천을 찾게 된 것입니다. 또한 성지순례와 더불어 비수구미 오지 마을로 가는 길따라
트레킹을 하면서 원시적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았는 숲과 계곡을 탐방하며 평화의 마음을 공고히 하려는 숨은 목적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계획된 동선을 이용하려면 약 2시간 30분을 소요해야 현지에 돨할 수 있어 이른시간인 6시20분에 집합하여 30분에 출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주 외매한 인원인 관계로 세줄의 좌석은 5명씩 앉아야 하는 불편을 안고 6시35분경 출발하였습니다. 비온 끝이라 가는 길에 새벽 물안개의 근사한 풍광을 보면서 도착한 해산령 오르는 아흔아홉 구비길 그리고 숲사이로 들춰지는 파라호강변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북한의 정략적인 금강산땜 건설로 서울의 안보에 위태로움을 느낀 5공정부에서는 1986년 아시안께임을 앞두고 평화의 땜을 건설하게 됩니다. 첩첩산중이였던 이곳에 길이 만들어진 것은 해산령 터널이 뚫리고 나서였습니다. 아시안께임이 열린 1986년을 기념하고자 터널 길이는 1986m로 하였습니다. 해산령을 벗어나 바로 우측 임도 철문 앞에 모여 트레킹 시작기념 사진을 촬영한 후 비수구미 마을로 향하였습니다.
파라호로 물길이 이어지는 비수구미 계곡물과 동행하게 되는 비수구미 트레킹 길은 폭우의 영향으로 자연발생적으로 깔리고 수해방지와 복구를 위한 인위적 다짐돌들의 영향으로 잔돌을 밟고 걸어야 하는 처음시작부터 1.5km 구간 길은 나름대로 색다른 발품을 요구합니다. 너덜지대처럼 아주 불편하고 위험을 수반하지는 않습니다. 숲이 검푸르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고 각종 야생화와 철이 지니가는 오디 열매 등등이 산객 트레커들을 반겼습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육체적 소음과 마음의 소음마저도 자연의 파노라마적 풍광과 자연 교향곡에 몯혀 전부 사라졌습니다. 나를 잠시 잊고 자연과 동화되어가며 새로운 나와 교감히며 행복한 자신에 대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작은자의 몫 트레킹의 실체입니다. 중간 즈음 도착한 다리에서 잠시 쉬며 사진촬영을.....
조금 가파르고 좁던 계곡길이 넓은 지세로 바뀌기 시작하면 노루 궁뎅이 만한 평지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곳에 나무 집을 짓고 화전을 가꾸며 살던 사람들이 바로 강원산골 회전민들이었습니다. 일곱여 가구가 살았던 이 곳도 화전민 이주대책에 따라 다른 곳으로 소개되고 지금은 이장을 중심으로 장복동 등등 몇가구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찾아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산채비빔밥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초에는 해산 일대에서 나는 산채를 이용하였는데 주말에 급격하게 늘어난 인원을 수용하기 위하여 지금은 인제,원통 산채조합과 연을 맺고 산채를 들여와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채중에 가장 맛 있는 산채는 설악권역에 산채가 으뜸입니다.
이 길에서 몇마장 돌아 나가면 바로 커다란 밤나무가 서 있고 개울건너 언덕받이에 장씨댁이 있습니다. 푸른색을 기와에 입혀 저는 개인적으로 청와장씨라 부릅니다. 커다란 항아리를 들여 놓고 각종 장을 담궈 팔기도 하지만 빕빔밭을 찾는 이가 많아 비빔밥 만들어 팔기도 벅차다 합니다.최초 시작무렵에는 7000원을 그러다 10,000을 .. 오늘 다시 가보니 8000원을 받는 것을 보니 경쟁상대가 주변에 생겼나 봅니다. 이장님께서도 하신다는 소문이 있긴 있었는데..
어디를 가나 봉사자는 있기 마련입니다. 봉사는 주는자와 받는자 그리고 보는자들 모두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려 주고 기쁘게 합니다. 세실리아 자매님께서 밥그릇을 챙겨 주셔서 잘 먹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산골에서 산채와 막걸리는 어울리는 궁합이며 트레킹 발품을 씻어내기 위하여 몇병의 막걸리를 사서 (여긴 막걸리 값은 선불입니다) 형제들과 함께 들었습니다.
양푼에 담긴 흰밥 그리고 가마솥에 삶아낸 산채들... 고추장, 된장, 양념장, 기름장 등등 우리 고유의 어느장과도 궁합이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맛이 바로 비수구미 계곡 산채정식입니다. 다들 투덜거리지 않고 좋다 좋다 참 좋다하며 한그릇씩 뚝딱 하고 일어 섰습니다.
우기에는 이곳까지 물이 차 현수교를 만들고 산기슭을 적당하게 건드려 한뼘 길을 내었습니다. 지금은 갈수기라 물이 적어 그렇지만 성수기에는 한뼘길을 걸으며 느끼는 풍광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습니다. 차 후 초청 트레킹을 단촐한 인원으로 하려고 합니다.
한뼘 길이 끝나면 평화의 댐 수정 보완 사업일한으로 진행되는 길이 만들어지;는 신작로가 나옵니다. (계속)
2번으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맑은 하늘밑에 푸른숲을 걷는 향기!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속까지 맑아옵니다. 걷고 또걸어도 지치지 않는 아름다운 숲속.... 금방이라도 터져나올것 같은 환호소리~~^^ 함께 걷는 트레커님들의 환한얼굴과 행복한 모습.... 비수구미의 산채비빕밥! 행복했습니다. 울 리더님께 감사의 마음이~~^^ 감사! 감사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그 아름다운~ 하늘까지 열린 그 길을 걷고 또 걸어 가고 싶군요.
먼저 길을 내주신 안대장님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우리 당고님이 죽림동 성당에 사셔서 얘기를 많이들어 왠지 친근감이 많았드래유. 강원도가 고향이니까유. 그런데 또 반가웠던것은 외사촌오빠 신부님의 묘소를 보고 또한 반가웠어유.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 묘소와 참으로 기분이 좋았어유 이렇게 좋은곳을 고루 다닐수있어 정말 기쁘답니다. 감사합니다 ^^ ♥♡♥
세상에 이런 곳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천국을 노니는 듯 했습니다. 비가 내려 더욱 깨끗해진 청정 공기, 푸른 숲, 풍덩 들어가고 싶을 만큼 맑게 흐르는 계곡 물, 더하기 촉촉한 숲 길 까지... 어찌 힐링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신선 그 자체 였습니다. 이끌어 주신 안샘(대장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추억 차곡 차곡 쌓고 다녀오신 트레커님 ,,,모두 인생에 멌쨍이 이십니다....
모든걸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 드릴 뿐입니다... 안쌤님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