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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9 Monata Kunsido de Esperantistoj
PREZENTO DE LA KULTURO
[문화의 표현- 낭독을 중심으로-]
푸른 싹이여
돌아오는 길에는
꽃되어 맞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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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da burĝono,
Vi estu floro, kiam
Ni venos ree.**
*초대작가*
동화작가 배혜경
수필가/시인 하현옥
Organizantoj: *BUSANA FILIO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경남지부
DE KOREA ESPERANTO-ASOCIO
*RONDO KTP 론도 코토포
Loko : 부산해운대
ŜŝĈĉĜĝŬŭĴĵ
낭독의 발견은...
멀티미디어 시대인 현대에도 텔레비전은...시각매체라는 등식 때문에
시청자들은 시각 편식증에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시대인만큼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감각에 호소하는 것은 어떨까?
그 감각은 다름아닌 낭독으로 느끼는 제 3의 감각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를 내어 스스로 몸을 통하여 느끼는 것이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의 낭독을 따라 읽었던 경험이 아득할 정도로 책은
낭독에서 멀어져가고 이제는 눈으로 만 읽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에게서 잊혀져가는 낭독의 추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KBS 1 TV (목) 저녁 11시40분 ‘낭독의 발견’에서
성숙하고 교양을 갖춘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갈등과 충돌을 해결함에 있어서 그렇지 아니한 사회보다 훨씬 더 자율적이고 민주적일 것임은 당연할 터이다. 따라서 책 읽는 문화는 단지 개개인의 기호의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의식수준을 결정하고 사회발전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의사소통에 장애를 보이는 요즘의 정치판을 보면서 책읽기의 중요함을 새삼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일보 2007-01-15일자 30면 [부산시론]시민사회의 수준과 책읽기
(김외숙 법무법인 부산변호사) 글 중에서
*/표지 작품설명/
일본 하이쿠의 대가인 Chiyojo의 작품으로 [조선통신사와 치요죠의 하이쿠](손순옥지음, 한누리미디어, 2006, p45) 1759년 동료작가를 다른 지방으로 보낼 때 쓴 시이며, 에스페란토 번역은 Ombro.
*작품의 차례*
/초대작가/
오누이 배혜경
할머니의 꼬까옷 배혜경
/론도 코토포/
양수리로 오시게 박문재
인연 안대진
사의 찬미 윤심덕
고독한 사람 릴케
외할머니를 추억하게 하다 김옥준
그대에게 가는 길 김옥준
/부산경남지부/
La vojo al vi, mia kara kamelio 장정렬
서시 윤동주
꽃 김춘추
강연이 리진에게 보내는 작별의 편지 신경숙
고마울 때는 이동섭
별이 내리는 정원 이동섭
오누이
배 혜 경(동화작가)
여보세요, 엄마? 그동안 잘 계셨죠? 미안해요. 지난 번 아버지 제사에도 가 뵙지 못하고. 그럼요, 저야 잘 있지요. 네, 김 서방도, 경주, 경호도 잘 있어요. 무슨 일 있냐고요? 아네요. 그냥…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요. 죄송해요, 그간 꼭 무슨 일이나 있어야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네요.
엄마, 저 오늘 경주 아빠랑 병원 다녀왔어요. 어디가 아프냐구요? 아니, 그런 게 아니구…우리 애들 고모 말이야. 네, 대구 사는 시누이요. 전부터 신장이 안 좋았는데 아니, 심장 말고 신장, 콩팥이요. 네, 그래요. 고모가 그 병을 앓은 지 좀 됐는데 갈수록 나빠져서 이식수술을 받아야 된데. 자기 것은 못 쓰니까 떼버리고 남의 것 받는 그런 수술 있어요.
근데 엄마, 엄마 생각은 어때? 만약에 만약에 말이지 우리 경주 아빠가 애들 고모에게 신장을 떼어 주어야 한다면…. 내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엄마, 나도 얼마 전 받은 종합검진에서 몸이 약하다는 진단을 받았단 말이야. 나도 이런데 만약 그 사람이 콩팥 하나 떼 주고 덜컥 아프기라도 한다면 우리 가족은 어떡해요? 그래요, 엄마. 나도 알아. 착하게 살면 복 받을 일만 생긴다는 거. 그거 어릴 때부터 엄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우리에게 얘기해 준 거 잖아요. 그런데 나 그러기 싫어. 특히 애들 고모한테는. 엄마도 알다시피 애들 고모 나한테 어떻게 했어요? 그이랑 연애할 때부터 나 마음에 안 들어 했잖아요? 여자가 똑똑하면 집안이 시끄럽다느니, 몸이 그리 부실하니 애나 낳겠냐느니. 그이가 다행히 내 편이 되어 주어서 고모 입을 막고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시어머니도 한 번 안하신 혼수 타령을 아직도 하고 있잖아? 장롱 하나 번듯하게 해 온 거 없다구요.
아니, 엄마. 나 지금 엄마 탓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엄마, 아버지 두 분이 허리 휘도록 일해서 우리 3남매 다 대학공부까지 시켜 반듯하게 키워 주셨으면 됐지 더 이상 내가 뭘 바래? 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엄마, 얼마 전에 시어머니가 제가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 오셨더라구요. 고모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집 애 둘이랑 고모부, 다 고모랑 안 맞다면서 애들 아빠 걸 좀 어떻게 해 주면 안 되겠냐구요. 칠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60을 바라보는 당신 자식 살려 보겠다고 며느리 눈치를 보시면서 어렵사리 말씀을 꺼내시는데 나도 사실 기분이 착잡했어요.
“전쟁통에 난 네 시누이 고생 많이 했다. 경주 애비랑 애들 고모 사이에 딸 둘이 더 있었는데 먹고 사는 게 바빠 잘 돌보지 못하는 바람에 홍역으로 다 죽이고 말았지. 두 자식 가슴에 묻고 도저히 살 자신이 없어서 죽어 버리려던 차에 경주 애비가 들어섰단다. 뱃속에서 꿈틀대는 생명 때문에 모진 목숨 끊지 못하고 맹물에 간장 타 허기 달래가며 살다가 애를 낳기는 했는데 내가 그만 산후풍에 걸려 꼼짝 달싹도 할 수 없지 뭐냐? 설상가상으로 애가 난 지 열흘도 안 돼 네 시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다가 다리에서 떨어져 그만 돌아가셨구나.”
엄마, 나도 거기까진 그이한테 들어서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닌 그때껏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얘기를 울면서 해 주시더군요.
“딱한 집안 사정을 염려하던 동네 사람들이 쌀 한 됫박 없는 가난한 살림에 입이라도 하나 덜라면서 애를 차라리 남의 집에 양자나 주라더라. 나도 정말 그러려 했지. 그런데…네 시누이가 누워 있는 애를 들쳐 업고 도망가면서 소리치더라. 안돼요, 내 동생이에요. 엄마가 죽어도 내가 키울 거예요. 그때 겨우 10살 꼬마였는데 말이다.”
그 시누이 때문에 어머니도 이를 악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고 경주 아빠도 가족의 품에서 자랄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사실, 경주 아빠도 내가 애들 고모 때문에 속상해 하면 그런 말을 해요. 누나는 말이 누나지 엄마랑 다름 없다구요.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가 평생 공장 일 다니신 어머니를 대신해 입히고 먹여서 키워 주었다고요. 하지만 죄송하게도 난 어머니께 그러마는 확답을 못 드렸어요. 한 다리가 천리라고 암만 그래도 그 이와 난 다르잖아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데 경주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어요. 경호가 뜨거운 물에 데었다고. 이런 또 놀래시네. 괜찮아요. 지금은 많이 나았어. 어쨌든 그날 난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허둥대며 와 보니 경호는 오른 쪽 다리를 붕대로 칭칭 감고 있고 경주는 그 옆에서 눈이 퉁방울이 되어 울고 있었어요. 고 1이나 된 계집애가 겨우 여덟 살짜리 동생도 하나 못 보냐고 야단을 치려는데 경주가 그래요. 시험공부 하느라 책보는 사이에 경호가 저 혼자 컵라면을 먹으려다가 그만 물을 엎질렀다고. 잔뜩 겁에 질려 있는 경주를 보니 마음이 아파 혼도 못 내겠더군요.
그런데…엄마. 어제였어요. 경호를 치료하던 의사선생님이 아무래도 다리에 살이 뭉치는 흉이 생길 것 같다시길래 속상해 있는데 경주가 곁에서 이러는 거 있죠?
“엄마, 나중에 피부이식하면 된다니까 그때 내 피부 떼서 해 줄래.”
한데 그때 왜 하필 애들 고모 생각이 나죠? 오늘 그이랑 병원에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이 신장이 고모랑 맞나 검사하려고요. 잘 했다구요? 남은 속 터져 죽겠는데. 하지만, 엄마. 이렇게 전화 드린 것도 실은 엄마의 그 칭찬을 듣고 싶어서였어요.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이랑 고모랑은 오누이잖아요. 우리 경주, 경호처럼요.
*배혜경선생님/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어린이동산 중편동화 공모 당선
부산아동문학상 받음
<가로등의 이야기><달팽이 시계><착한 아이 사세요>등 작품집 있음.
현재 부산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
할머니의 꼬까옷
배 혜 경
“엄마, 뭐 해? 어서 나오세요.”
나는 손나팔을 한 채 5층에 있는 우리 집을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놔둬라. 네 엄마 늑장 부리는 거 어제 오늘 일도 아니잖니.”
말씀은 그렇게 하시는 아빠도 사실 벌써부터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성화는…. 하여간 둘 다 사람 볶아치는 건 알아 줘야 한다니까. 누가 붕어빵 부녀 아니랄까 봐. 거 에어컨이나 세게 좀 틀어 봐요.”
허둥거리며 아파트 현관을 빠져 나온 엄마는 차에 앉자마자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습니다.
“엄마, 근데 이건 뭐야?”
나는 엄마가 들고 나온 커다란 종이가방을 보며 물었습니다.
“이거? 응, 외할머니 드릴 거. 엄마가 한 번 만들어 봤어.”
“그럼 한복이겠네.”
우리 엄마는 한복을 만드시는 일을 합니다. 엄마가 그런 일을 하게 된 데는 외할머니의 영향이 큽니다. 큰외삼촌이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는 삯바느질을 시작하여 다섯 남매를 키우셨다고 했습니다. 외동딸이었던 엄마는 외할머니 옆에서 실밥도 따고 옷 치수를 재는 일도 도와 드리다가 자연스레 한복 짓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미안하구나. 어릴 때 고생 시킨 것도 모자라 개도 안 물어갈 그런 재주나 물려주다 니…….”
외할머니의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엄마는 몇 해 전 우리 아파트 상가에 ‘김명혜 우리 옷’이란 한복집을 내었습니다. 그때 외가 식구들과 함께 우리 집에 오신 외할머니는 축하의 말씀 대신 손수건이 젖도록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이렇게 자란 것도 다 누구 덕인데. 그때 엄마가 어깨 빠지도록 재봉틀을 돌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열심히 해서 가게 잘 꾸리고 엄마께도 고운 옷 한 벌 지어 드릴게요.”
그날 외할머니를 위로하며 애써 웃던 엄마가 오늘 그 약속을 지키시려나 봅니다.
“엄마, 근데 시골에서 일하시는 할머니한테 한복이 필요할까? 입고 벗기가 불편해서 도시 사람들도 잘 안 입는데 말이야.”
“…….”
엄마는 내 말을 못 들으셨는지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뭉게구름만 바라보았습니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 여 달려 우리는 외할머니가 사시는 시골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들어가는 좁다란 길 가 과수원에는 발그레 익어가는 사과가 단내를 솔솔 풍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나는 할머니 댁 강아지 흰둥이처럼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 들어가며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우리 준희 왔냐? 그래,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부엌에서 옥수수를 삶던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나와 우리를 반겨 주셨습니다.
“더운데 고생이 많으셨죠? 정 서방 회사일이 바빠서 우리 준희 방학도 막바지인 이제야 겨 우 휴가를 냈네요. 오빠들은 다녀갔나요?”
엄마는 외할머니께 먼저 다녀간 외가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외삼촌과 숙모들은 이미 오셔서 할머니를 도와 고추밭이며 깨밭을 돌보고 갔다 하셨습니다.
“엄마, 혼자 외롭지 않으세요? 이제 웬만하면 큰오빠 네와 함께 사시지 그러세요?”
저녁상을 물린 후 참으로 내온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 아예 마라. 젊을 때야 너희들 공부 시키느라 하는 수없이 도시에서 살았지만 이 좋은 공기와 경치를 두고 그 답답한 델 또 왜 가?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을란다.”
할머니는 어림도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하여간 노인네 고집은 알아 줘야 한다니까. 하긴 그런 고집이 계셨으니 그 험한 세월 혼 자 몸으로 사셨지. 아이구, 우리 박말남 여사!”
엄마는 나에게 하듯 할머니의 엉덩이를 툭툭 치더니 쪼글쪼글한 그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리 치워라, 징그럽게…….”
비록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어느덧 할머니의 입가엔 함박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참, 당신 아까 장모님께 드릴 거라면서 뭐 하나 챙겨 오지 않았나?”
곁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아빠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잠시 머뭇하더니 건넌방으로 가 아까의 그 종이가방을 가져 오셨습니다.
“엄마, 저… 이거…….”
엄마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자꾸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가방 속의 것을 꺼내어 보였습니다.
“엄마 기억하시죠? 저 결혼할 때 엄마가 제게 직접 한복지어 주신 거요. 어릴 때 고사리 같은 손 바늘에 찔려가며 엄마 일 돕느라 낑낑거렸어도 정작 저는 명절날 색동저고리 한 번 못 입어 봤어요. 주문 받은 옷 만드느라 아버지 제사도 간신히 차리는 걸 뻔히 알면서 감히 제 옷 만들어 달라는 소리를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데 준희 아빠 만나서 엄마 곁을 떠날 때 엄마는 손수 지으신 한복을 제 앞에 내 놓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미안하다. 하나 뿐인 딸 명절 때마다 떨어진 옷 꿰매 입히면서 내년에는 한복 한 벌 해 줘야지, 해 줘야지 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안 되더구나. 이렇게 다 커서 제 짝 찾아 갈 무렵에야 겨우 어미 노 릇을 하는 나를 용서해 주렴.’ 바늘 간 자리마다 엄마의 사랑이 서렸을 그 옷은 지금도 엄 마가 그리울 때면 장롱 속에서 꺼내 보곤 해요. 엄마를 닮아 저도 바느질장이가 됐지만 저 역시 엄마께 고운 옷 한 벌 못해 드려 죄송했어요. 한데 얼마 전 단골로 오시는 손님이 부모님 드릴 수의를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돌아가실 때 입는 그것을 윤달에 마련해 두면 집안이 두루 좋다고요. 그 분들 것 만들자니 엄마 생각이 나는 거 있죠? 엄마, 죄송해요. 약속한 고운 한복대신 이런 거나 지어 드려서…….”
노란 삼베로 만든 그것을 외할머니께 드리던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외할머니는 거칠고 두툼한 손으로 찬찬히 그것을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전에 처음인 꼬까옷이구나. 이 옷 입고 저승 가면 네 아버지가 나를 알아볼까? 옷 이 이리 고우니 쭈글탱이 할멈도 꽃 같아 보일 텐데. 우리 딸 참 손끝도 맵다.”
사과밭에서 단내를 실은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습니다. 바람의 손을 잡고 온 풀벌레 소리가 할머니의 목소리처럼 나지막이 마당에 흩어졌습니다.♥
양수리로 오시게
박문재
가슴에 응어리진 일 있거든
미사리 지나 양수리로 오시게
청정한 공기
확 트인 한강변
소박한 인심이 반기는 고장
신양수대교를 찾으시게
연꽃들 지천 이루는 용늪을 지나
정겨운 물오리 떼 사랑놀이에 여념이 없는
아침 안개 자욱한 한 폭의 대형 수묵화
이따금 삼등 열차가 지나는 무심한 마을
양수리로 오시게
그까짓 사는 일 한 점 명예나 지위 다 버리고
그냥 맨 몸으로 오시게
돛단배 물 위에 떠서 넌지시 누르고
산 그림자 마실 나온 다 저녁답 지나
은구슬 보오얗게 사운거리는 감미로운 밤이 오면
강 저편 불빛들 일렬종대로 서서
지나는 나그네 불러모으는 꿈과 서정의 마을
마흔 해 떠돌이 생활
이제사 제 집을 찾은 철없는 탕아같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뜨겁게 속살 섞는 두물머리로
갖은 오염과 배신의 거리를 지나
가슴 넉넉히 적셔줄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처용의 마을
이제는
양수리로 아주 오시게
/인연/
안대진
우리가 만날 것을 그 언제 이미 알았더냐
누군가가 지어 놓은 비킬 수 없는 뜻이
먼 길로 먼 길로 왔더라
네가 내게 내미는 손은
꽃이면 꽃, 바람이면 바람이어라
지금도 비킬 수 없는 언행의 뜻이
우리에게 쉼 없이 일어나고
그 먼 날의 또 어떤 인연으로 이어지리니
꽃이면 꽃, 바람이면 바람
다만 가슴으로 절실하여라
나는 네게 사랑한다고 말하지않을지라
사랑은 만남보다 먼저 서로에게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사랑은 미움과 함께 왔으니
우리들이 서로에게 사랑을 꽃 피우는 것은
미움의 가시를 잠재우는 일
산다는 건 우리가 흘러가는 일
미움을 잠재우는 법은
서로를 탐하지 않는 사랑으로 흐르는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안의 빈 그릇에 채웠다 하여
나의 너이더냐, 너의 나이더냐
우리 서로가 재도 남지 않을 불이 된다 하여
무덤에까지 하나더이냐
저승에까지 연분이더냐
세상일은 세상일로 지은 만큼 받는 것
그러나 그대여,
우리 어쩌면 별빛 같은 혼으로 남아
서로에게 빛이 된다면
저물녘 강물 위의 반짝임처럼
그렇게 함께 흘러도 좋으리
사의 찬미
윤심덕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어디메이냐
쓸쓸한 세상 허막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도다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혔슴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모든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고독한 사람
릴케
낯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영원히 귀향길에 있습니다.
그들 식단을 보면 충족된 날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아득한 곳의 모습만 있습니다.
내 얼굴 속에 세상이 스며듭니다.
달처럼 어쩌면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
그러나 세상은 어떤 감정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언어에는 삶이 끼어 있습니다.
멀리서 내가 가져온 것들은
희귀하게 보이면서, 제 몸에 매달려 있죠
그들의 넓은 고향에서 그들은 짐승이지만,
여기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타며 숨을 죽입니다.
외할머니를 추억하게 하다
김옥준(Diana)
양평, iela님의 집은 전통 가옥
100년 된 집을 만나
100년 된 집에 다니러 갔던 어린 소녀를 만납니다.
어릴 적 천막 극장에서 보던 영화처럼
허리가 굽어도 눈이 초롱하던 외증조할머니
사랑채 가마솥에 소죽을 쑤고
스크린 다시 끊어졌다 바뀌며 안채 부엌
외할머니, 아궁이 재를 뒤적이며
고구마 한 번 보고, 외손녀 쳐다보고
외갓집 나들이가 잦아, 할머니 등은 나의 것
문턱에 걸려 넘어지면 발딱 일어나서
외할머니 눈을 맞추던 어린 내가 여기에.....
찔레꽃을, 빨간 찔레 열매를 좋아하는 것
촛불 밝히고, 호롱불 밝히기 좋아하는 것
외할머니 치마 자락 잡고 보았던 것이었구나!
햇살처럼 빛나고 따뜻하던 외할머니 미소
외할머니 첫 손녀인 내게 홀려서
눈가의 주름, 입가의 주름도 깊게 패였지
그대에게 가는 길
- Diana -
새벽에 눈을 뜹니다.
세상이 모두 잠든 사이
격리된 나를 만나는 길
오직 그 신비의 길을 더듬어
그대를 만납니다.
어스름 속 발자국 소리
세상을 재우고 홀로 깨어
격리된 당신이 오고 있습니다.
오직 그 신비의 길을 밝히며
나를 만납니다.
많이 살아서
익숙할 것 같은 삶
그래도 여전히 낯선 하루
그 하루의 시작, 개울가에서
그대 손을 잡고 물을 건넙니다
"La vojo"
Mi vekiĝas antaŭ ol sunleviĝo.
La mondo ankoraŭ dormas profunde.
Aperas la vojo kondukanta
al angulo, kie mi sola staras.
Ja por renkonti vin
mi iras atente tiun misteran vojon.
Aŭdiĝas en mallumo
nur sono de piedoritmo.
Ja vi venas laŭ tiu vojo
por renkonti min el via loko de angulo,
vekiĝinte sola
dum dormado de la mondo.
En kutima vivo,
kiun mi jam konas,
troviĝas la tago,
kiun mi ankoraŭ ne konas.
Tiutage mi kuraĝe transsaltos
la riveron kune kun vi man-en-mane.
(Tradukis Semanto)
LA VOJO AL VI, MIA KARA KAMELIO
Ombro
Se vi ne venis tiam al mi ĝuste en tiu loko,
mi ne povis renkonti vin en tiu loko.
Se vi ne benis tiam al mi per la via florloko,
mi ne povis korsenti vin en tiu loko.
Se la rigardo ne estus,
mi ne povus intervidiĝi en tiu loko.
Se la singardo ne estus,
mi ne povus interrigardi en florloko.
Same kiel sen la koroj ni ne povus kompreni nin,
same tiel sen la varmo ni ne povus korsenti nin.
Same kiel sen la voloj ni ne povus kompreni nin,
same tiel sen la amo ni ne povus vivĝoji nin.
Same kiel sen la aero ni ne povus elteni,
same tiel sen la akvero ni ne povus vivteni.
Same kiel sen la konfeso ni ne povus kompreni nin,
same tiel sen la kortuŝo ni ne povus konveni nin.
En antaŭlasta jaro, en lasta jaro kaj en ĉi-jaro,
Vi aperis antaŭ mi, en ĝusta tempo, kiam vi deziris fari venon.
Ho, belaj estas burĝonoj de la kamiliarbo,
Vi aperis antaŭ mi, en ĉagrentempo, kiam mi deziris vian venon.
Ĉar vi elkore salutas min per via lingvo; florlingvo,
mi reciproke salutas vin per mia lingvo; homlingvo.
Ĉar vi kuraĝigas min per via lingvo: belo, verdo, vivforto kaj floroj.
mi reciproke salutas vin per mia lingvo: amo, verdo, vivfrato kaj ploroj.
Kaj mi porĉiam prononcas: "Kara mia kamelio, vin mi amas!"
+Rigardante la unuajn buĝonojn de la kameliarbo en mia apartamento,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rologpoemo/
Ĝis la mortotago
sen punkto da hontoj
eĉ ĉe vento blovetanta inter-folie
al mi doloris la koro.
Kun la koro pri kanti la stelojn
mi devas pri ami
ĉiujn vivantojn egale
Kaj la vojon al mi donitan
mi devas pluen paŝadi.
Ankaŭ ĉivespere la steloj
estas alblovataj de vento.
(Tradukita de Huĝimoto Tacuo)
(La fama korea poeto Jun Dongĝu studis anglan literaturon en universitato Doŝiŝa, kiu situas en Kioto. Tial ni vizitis la universitaton kaj vidis la poemŝtonon. Kaj sinjoro Huĝimoto tradukis tiun por ni. 한국의 유명한 시인 윤동주는 교토에 있는 동지사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대학을 방문했고, 시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지모토씨는 우리를 위해 그 시를 번역했습니다.)
/같은 작품의 또 다른 번역/
Preluda poemo
Ĝis morttago rigarde eteron,
por nehavo de punkto da honto
mi suferis
eĉ je vento blovanta foliojn.
Ĉiun mortantan vivaĵon,
mi amu en koro kantanta stelojn.
Kaj al mia donita vojo
mi devu iri.
Ĉi-nokte, refoje, vento tuŝetas stelojn.
(verkis1941. 11. 20.)/Tradukis Ombro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현대문학] 9호 (1955.9)
*강연이 리진에게 보내는 작별의 편지(조선일보 소설 “푸른눈물”(2007.01.11) 중에서
Kara Arĝenta Sonorilo,
Mirinde, ke mi tiel proksime rigardas vian dormantan vizaĝon…. Estus sonĝo.
Al mi ekpensas la tago, kiam mi venis por la unua fojo al tiu ĉi domo, sekvate de la sinjoro episkopo Blanc. Grandiĝis viaj okuloj, kiam vi renkontis la sinjoron episkopo Blanc, dum kiam vi estis surdorse portita de la korteganino. Ĉu vi forgesis? En tiu ĉi domo la patrino banis min, verŝinte per la varmigjta akvo en la akvpoto. Tio estas la unua tago en tiu ĉi domo.
Pro via ekzisto, mi ne akompanis plu la vojon, sur kiu la sinjoro episkopo Blanc rekomencas ekiri. Vi diris: "Ekloĝu tie ĉi…".
De tiam ĝis nun mi vivis portane vian voĉon, "Tie ĉi vi loĝu…"
Nur restis al mi fluto, kiu estis la postrestaĵo de mia patro, post kiam la de io ĉiam kvazaŭpelata patro mortis ĉe rando de la lageto, kiun mi eĉ ne povas elmemori, akompanante la patron.
De tiam mi estis vaganto. Tiam mi plej timis la noktiĝon de la tago. Mi ne sciis, kie mi dormu en noktoj, kies tago alvenis al mi. Estis bonŝanĉaj tagoj, kiam mi povis dormi aŭ ĉe kuirejo, kie ankoraŭ restis la varmo de la fajro, aŭ ĉe iu budo kun pajloj de iu vilaĝa domo. Al tia mi, vi diris: "Tie ĉi vi loĝu…".
Kara Arĝenta Sonorilo.
Per la hieraŭa nokto mi estas…kontenta. Ĉio estis farita. Tial mi esperas, ke vi starigos la lernejon por geknaboj. Laŭ mia opinio, estus bone, se vi komencu la instruon de la lingvo en tiu ĉi domo, same kiel la patrino, de antaŭe, tradicie, faris saman instruon al siaj gefiloj en la klaso de nobeluloj.
Mi nur deziris helpi vin, apud vi. Nura domaĝego, ke mi ne povas tiel.
En ajna via situacio, mi deziris resti ĉe vi, mi ne povis eniri en la Palacon, nek akompani vin laŭ via mara vojo. Plie; Mi ne havis forton gardi vin, kiu revenis al nia lando Ĉoson.
Tio tre bedaŭras.
Nura mia regalo estas blovo de la muzikinstrumento klarneto.
Kara Arĝenta sonorilo,
Mi esperas, ke vi akiros la vivforton, komparinte la malfacilajn tagojn pli ol nunajn tagojn. Unu peto: Ne serĉu min, eĉ se iu rakonto aŭdiĝus al vi. Mi ekvojaĝas al Ĉinio. Ne faru ion por mi. Kvankam vi sentus malfacilon, sed vi agu tiel. Tio estas la vojo por mi. Ju pli vi farus ion por mi, des pli mi fariĝus en malbona situacio. (Tradukis Ombro)
*강연이 리진에게 보내는 작별의 편지
-신경숙 연재소설 “푸른눈물”(2007.01.11) 중에서*
리진은 자리옷 차림으로 벌떡 일어나 방문을 밀고 나왔다.
마루에도 마당에도 강연의 기척이 없다. 부엌과 뒤꼍을 돌아다 보았으나 마찬가지다. 벌써? 리진은 사립문 앞에까지 나가 내다 볼 수 있는껏 멀리 내다 보았다. 어디서도 강연의 자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리진은 매화나무 아래를 서성이다가 방안으로 돌아와 강연이 놓고 간 수첩을 집었다. 수첩 속에 끼어 있던 만년필이 이부자리 위로 툭 떨어졌다.
은방울.
잠이 든 네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꿈결 같다.
블랑 주교님을 따라 이 집에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난다. 궁의 나인 등에 업혀 집에 돌아오다가 블랑 주교와 나를 보고 커졌던 너의 눈. 잊었을까. 이 집에서 어머니가 물 항아리에 데운 물을 붓고 목욕을 시켜준 것이었지. 그게 이 집에서의 첫날이었어. 네가 있어서 다시 길을 떠나는 블랑 주교를 따라가지 않았어. 네가 그랬지. 여기 살아…라고. 그때부터 여태 여기 살아…라고 말했던 너의 목소리를 품고 살았다. 늘 무엇인가에 쫓겨 다니듯 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마을의 연못가에 아버지가 죽은 후 내겐 아버지가 남긴 피리만 들려 있었어. 이후로 나는 떠돌이였어. 그때는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날마다 찾아오는 밤을 어디서 자야 하는지 몰랐어. 어느 집 짚더미가 쌓인 헛간이나 불기가 남아 있는 아궁이 옆에서 잘 수 있는 날들은 좋은 날이었지. 그런 내게 너는 그랬어. 여기서 살아…라고.
은방울.
어젯밤으로 나는…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그러니 너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세우려는 일을 이루었으면 한다. 반촌의 아이들부터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 집에서 글을 가르치는 것을 시작해봐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곁에서 네 일을 도와 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울 뿐. 네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네 곁에 있으려 했으나 나는 궁으로 들어갈 수도 바닷길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뿐이냐. 다시 조선에 돌아온 너를 지켜줄 힘도 없었다. 그것이 사무칠 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대금을 불어주는 일 뿐이었느니.
은방울.
이보다 더 힘들었던 날들을 견주어 생각해 보며 살아갈 힘을 얻길 고대한다. 한 가지. 어떤 이야기가 들려도 나를 찾아 나서려고 하지 마라. 나는 청국에 가는 것이니. 나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마.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 주어.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니.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 들면 들수록 나는 나빠질 뿐이니.
수첩 뒷장을 넘겨보는 리진의 눈시울에 물기가 고였다. 뒷장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리진은 손을 뻗어 강연의 자리를 쓸어내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는 것이 강연의 작별 인사였다.
고마울 때는
이동섭(1929-1972)
고마울 때는
사무치도록 고마울 때는
눈물로써 자욱을 남긴다.
먼 이역을 떠나는 뱃고동
온 가슴에 퍼붓던 그 때처럼
산과 물이 다 울먹거리기에.
결국, 산다는 걸
아무래도 생각해 낼 수 없건만
고마울 때는
청자기에 볼 대어 보는 눈먼 도공(陶工)의 마음이다.
느닷없이
줄다음치는 골짜기마다
구름에 싸인 햇빛이 안으로 비치어도,
못견디게 고마울 때는
가을을 드리운 나무가 된다.
<<강물에 띄우는 시>>, 삼도사 1961,
<<끝없는 탄생의 시인 이동섭 문집>>, 이동섭, 푸른별, 2005, 35페이지
Kiam mi dezire dankas
Lee Dong-sop(1929-1972)
Kiam mi dezire dankas,
kiam mi sopire dankas,
tiam mi perplore signas.
Ĉar kune gutas la montoj kaj riverakvoj ploron
same tiam, kiam ŝipfajpo, kiu ekvojaĝas foran landon
ŝutas al mia tuta brusto.
Mi, fine, povas elpensi neniel,
kio estas la vivo,
kiam do mi dezire dankas,
mia koro estas tiu koro de blinda porcelanisto,
kiu provas senti sian verkaĵon je sia vango.
Eĉ tiam, kiam ĉe nepripensante kurantaj valoj
nubĉirkaŭigita sunbrilo en ilin penetras,
eĉ tiam, kiam mi seneltene dankas,
mi fariĝas al la arbo, kiun kovras la aŭtuno.
(Tradukis Ombro)
<<강물에 띄우는 시>>, 삼도사 1961,
<<끝없는 탄생의 시인 이동섭 문집>>, 이동섭, 푸른별, 2005, 35페이지
별이 내리는 정원(庭園)
이동섭
나는
정원이 되고 싶습니다.
잠잠히 꽃 피울 나뭇가지 새로
그의 영혼이 머물
풍성한 4월을 꾸밀 것을.
신선한 수목이 푸르러면
외로운 손길 위에
탐스런 축복이 점지되고,
화창한 빛으로
따습게 엮어
울분을 끝없이 풀게 하소서.
그 고적한 정성이 몰래 닿는 곳에
라일락 한 그루 심어 놓고,
말없는 기록과
합장의 자국이 남게 하소서.
그리움이 노래로 물결치고,
묵묵한 대화로
향긋이 영위할 정토(淨土).
거기 영글 꿈을 가꾸어
서러운 이의 울먹이는 가슴팍에
별이 고요히 내리는
정원이 되고 싶습니다.
<<별이내리는 정원>> 1966년
<<끝없는 탄생의 시인 이동섭 문집>>, 이동섭, 푸른별, 2005, 112-113페이지
Ĝardeno, kien ŝutas la steloj
LEE Dong-sop
Mi
fariĝu al ĝardeno.
Kaj mi deziras,
la rikoltan aprilon, kiam lia animo
restu inter la trankvile florantaj branĉoj de la arboj.
Kiam freŝhaj arboj verdiĝas
tiam la bela graco sur solan manon
atingas,
kaj per brilantaj radioj
mi taksu varme,
kaj oni solvu senfine sian plorvenĝon
Kaj tiu kvieta sincero plantu unu lilaikon
ĉe sekrete netuŝata loko,
mi restigu senparolan rekordon
kaj la piedsignon de unuigitaj preĝantaj manoj.
La kvieta tero, sur kiu
sopiro ondas per kantoj,
kaj silenta interparolo regas arome.
Kulturinte rikoltan sonĝon
tie, kien la steloj kviete ŝutas
al la plorantaj brustoj de ĝemantoj
mi fariĝu al ĝardeno.
(Tradukis Ombro)
<<별이 내리는 정원>> 1966년
<<끝없는 탄생의 시인 이동섭 문집>>, 이동섭, 푸른별, 2005, 112-113페이지
첫댓글 와, 빠르다 이엘라님!
저 많은 자료를 언제 올리셨대요~~~ 부산... 부럽습니다.. 편히 안전하게 다녀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