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반적 이해
2. 포스트모더니즘과 20세기 후반의 음악적 흐름
3.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 접근
4. 작품 유형에 근거한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맺음말
머리말
새로운 세기의 출발점에서 20세기를 되돌아 볼 때, 음악의 분야에 나타난 변화는 실로 대단하다. 전통적 음악 개념을 벗어나는 급진적 새로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작용 등, 한번에 열거하기 힘든 다양한 음악 경향이 한 세기 음악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이러한 현상들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러한 복잡한 음악적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는 이 시기의 음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서로 제 각기 독특한 개성을 보이는 그 많은 음악 작품과 음악관을 단지 개개의 현상으로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70년대 음악", "80년대 음악" 등의 객관적 시대구분에 근거하여 음악 현상을 설명하는데 만족할 것인가? 이러한 현란한 음악적 파노라마를 하나로 묶어서 설명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찾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적·예술적 관점에서 "현재" 우리의 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부각되면서, 건축·문학·영화·무용·종교·정치·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미쳐왔다. 물론 이 개념은 "무조건적 수용"과 "알레르기적 거부 반응"이라는 찬.반 양론으로 갈라지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의미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과 시대적 사상(思想)의 연관성이 더욱 밀접해지고, 개별적 예술 분야 사이에서도 상호 영향력이 더욱 커진 오늘의 시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은 20세기 음악의 이해를 위해 시도되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20세기 후반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한 틀로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음악의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20세기 음악 경향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개념을 음악에 적용시킴으로써, 음악학 연구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 논의를 통해,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살펴보고, 이를 20세기 후반 음악사와 음악미학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1.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반적 이해
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건축과 문학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 전 예술분야로 확대되었고, 철학과 자연과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을 지배하는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논의되기도 하였다. 미학자 벨쉬(W. Welsch)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이론가, 예술가, 철학가들이 만든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보다도 우리의 현실과 삶의 세계는 '포스트모던'하게 된 것이다"라면서 20세기 후반의 삶 자체를 포스트모던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1) 철학자 켈러(K. E. Kaehler)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는 산업사회의 문화에서 이미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개념적 사고에 대한 도전"이지만, 동시에 "철학적 미학에서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인다.2) 여기서는 건축·문학·철학의 분야에서 진행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포괄적 시각에서 이 개념이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되는가의 문제를 언급해 보겠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정립에 있어 기본적인 모델로 설명되는 건축에 있어서의 이 개념은 모더니즘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모더니즘 건축은 철저한 기능주의적 사고에 의해, 장식이나 치장, 비유 등을 배제하고, 극도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강조하였다. 뉴욕의 맨하탄에서 볼 수 있는 '유리와 강철 벽의 커튼'의 모더니즘적 건물에 대한 심각한 비판과 도전은 1970년대에 본격적인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서는 과거의 다양한 생활 양식에 대한 향수를 강조함으로써 전통이나 역사성에의 복귀를 주장하였고, 이에 '역사적 절충주의'라는 특성을 보였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적 건축에서는 일상성이나 대중성을 강조함으로써, 규범적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상적 삶을 접목시켰다.3)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1960년대 미국에서 이합 핫산(Ihab Hassan), 수잔 손탁(Susan Sontag), 레슬리 피들러(Leslie Fiedler) 등이 종래의 모더니즘적 작품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감수성을 지닌 문학 작품이 나타나는 것을 감지하고 그것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글쓰기는 이제 독창적으로 비석에 글을 새긴다는 이미지에서, 남의 글을 단순히 옮겨 적는다는 필경사의 이미지로 바뀌어 간다"는 말에서 드러나듯이4), 작품의 독창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새로운 맥락에서 재결합시키는 새로운 기법이 나타났다. <상호 텍스트성>이라 부르는 이러한 특징 외에, 문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탈 장르와 또는 장르 확산>,<반反 리얼리즘과 자기 반영성>,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의 측면에서 논의되었다.5)
철학적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동안 서양역사를 이끌어왔던 이성(理性) 중심주의, 보편주의 형이상학의 전통에 대한 반발로 규정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Jacque Derrida), 푸코(Michel Foucault),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 보드리야드(Jean Baudrilliard), 들뢰즈(Gilles Deleuze)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철학자들은 절대적 진리, 영원불변한 실재, 모든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초월적 관점이나 원리, 정반합(正反合)의 종합을 통한 역사의 발전에 대한 희망찬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신념의 허구성과 모순성을 드러내려 하며, 이성이나 진리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을 드러내려 하였다. 이렇게 역설과 모순을 드러내 기존의 형이상학의 질서를 교란시켜, 더 이상 형이상학적 개념이나 원리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사고 가능성을 탐색하려 한 것이다.6)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에 대해 1982년 발표한 리오타르의 「질문에 답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입장을 잘 대변한다: "전체성에 대항하여 싸워보자. 그리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증인이 되면서 차이점들을 명백히 하고 그 이름의 명예를 지키자."7)
이러한 논의들이 보여주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은 각 분야마다 독특한 특성을 보이며 전개되었다. 물론 각 분야의 개별적 특성은 다원주의/ 복수성(複數性), 경계 허물기, 전체성 또는 총체성에 대한 반발 등 공통적 분모를 기반으로 전개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개념 규정은 매우 다양하며,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되기도 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단어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모더니즘 이후 post-moderne"라는 의미를 지니는 모더니즘의 상관개념이므로, 모더니즘과의 관계규정에 따라 상반된 견해가 나타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상호 관련성은 1) 계승적 관계, 2) 발전적 관계, 3) 대립적 관계, 4) 적대적 관계 등으로 세분화되는데, 이는 크게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연속적 관계로 보느냐, 아니면 단절의 관계로 보는가, 그리고 이 두 입장을 받아들이는 절충적 관계로 보는가로 나뉘어진다.8)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에도 그대로 연결되는 이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해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계승이나 논리적 발전으로 파악하는 입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후기 현상 또는 모더니즘의 극단적 발전 형태로 이해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논리적인 면에서 극한점으로 밀고나간 것이며, 이 두 개념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9) 이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의 독자적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때로는 포스트모더니즘 개념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반(反)모더니즘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의 의식적 단절이나 비판적 반작용으로 보면서, 이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서 그 독자성을 강조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피들러의 논문 「경계선을 넘고 간격을 좁혀라」(1967)에서는 이러한 단절이 확실하게 주장되었다: "우리는 지난 20년동안 모더니즘의 죽음의 고통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출생의 산고를 겪으며 살아왔고 ...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겪으며 살고 있다. 자신들을 스스로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자처하던 유형의 문학은 ... 이제 사망하였다."10) 포스트모더니즘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뒤이어 나타난 급진적으로 새로운 사상 및 예술전통으로, 앞의 경향과 뚜렷하게 구분되어 그 나름대로 독특하고 고유한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11)
반면 이러한 상반된 견해를 포괄적으로 받아들이는, 즉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지속인 동시에 단절의 현상으로 파악하는 절충적 입장이 있다.12) 젱크스(Charles Jencks)는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포스트 모더니즘은 반反 모더니즘도 반동적인 것도 아니라"라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모더니즘 또는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차이를 뚜렷이 강조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앞이 아니라 '뒤'라는 것을 강조하는 '포스트'라는 접두사가 가진 훨씬 함축된 뜻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의 문화와 다원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들에 비추어 볼 때 인본주의적인 원칙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새로운 전통이 느리게 성장하고 모더니즘으로부터 분리되어서 발달하는 방식은 이전의 경향들과 흥미 있는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13) 포스트모더니즘을 현 시대의 사회와 예술의 맥락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파악하는 벨쉬(Wolfgang Welsch)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포괄적 저서의 제목을 『우리의 포스트모던한 모더니즘 Unsere postmoderne Moderne』(1991)이라 붙이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연속선상에서 이해한다. 이러한 견해를 "절충적"이라 비난할 수 있지만, 다원성과 상대성을 기본 정신으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접근방식은 그리 모순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포함한 모더니즘의 기본 원리를 논리적으로 계승하여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경향이며, 다른 한편으로 모더니즘에 내재하는 한계와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경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모더니즘의 <연속> 그리고 <대립>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각각 이 개념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2. 포스트모더니즘과 20세기 후반의 음악적 흐름
1980년대 들어 음악학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음악학에서 이 개념이 도입된 실제적 배경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다. 음악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적용하는 논의들은 주로 70년대를 전후로 나타난 20세기 음악 경향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시작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학에 처음 적용시킨 코놀트(Wulf Konold)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작곡」(1980년)이라는 글에서 70년대 초반에 나타난 음악적 변화와 이 개념을 연결시켰다.14) 50년대를 총음렬음악과 전자음악으로, 60년대를 즉흥연주, 우연성 음악, 알레아, 음색작곡으로 특징지으면서, 코놀트는 70년대 초반에 작품과 개인을 묶어주는 어떤 연결성도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70년대의 시작과 함께 신음악의 상황은 점진적으로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제는 전처럼 새로운 재료, 새로운 합성 가능성, 새로운 연주 기법, 새로운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새로움>의 카테고리는 지금까지의 유일한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15) 즉 그는 70년대 나타난 경향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명명되는 새로운 시기로 규정하면서 -이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지만-, 이를 앞서 나타난 20세기 음악 경향과 뚜렷이 구분한다.
다누저(Hermann Danuser)는 20세기 음악사의 시대 구분을 시도하면서, 1975년에 또 다른 시대구분의 경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하였다(1987).16)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과의 결별"이 동시대 작곡가들의 중심 패러다임으로 등장했고, 여러 대립적 경향이 공존하게 되었다고 이 시기를 특징지으면서, 다누저는 이를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하여 논의하였다.17) 더 나아가 디벨리우스(Ulich Dibelius)는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1989)이란 글에서 70년대 중반 이후의 특징적 발전경향을 고려할 때,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18) 그는 이 시기에 20세기초부터 진행된 역사적 발전과정이 단절되었으며, 지금까지 적용된 예술의 목적, 즉 진보가 (잠재적으로) 종말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방가르드 경향이 약해진 이 시기의 포스트모던적 음악을 "새롭게 강화된 주관주의"의 특징으로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음악적 상황에서 70년대에는 -초반이든 중반이든- 그 이전과 다른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이 음악에서 논의되었을까? 제2차세계 대전 이후 나타난 음악의 특성이라면 한편으로 다름슈타트를 중심으로 발전된 총렬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케이지를 중심으로 드러난 우연성 음악을 포함한 일련의 아방가르드적 경향을 언급할 수 있다. 특히 2차대전 이후에 다름슈타트를 중심으로 전개된 총렬음악(total serialism)은 50-60년대 음악의 창작과 사상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의 논리적 사고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음의 간결함과 집중성 그리고 외형적 경제성을 보여주었던 베베른의 음악적 특징을 받아들인 당시의 전후 세대 작곡가들은 음높이·리듬·셈여림·음색 등 가능한 음악적 요소를 통제하는 총렬음악을 발전시킴으로서,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추구하였다. "머리 속에 내재한 전통적 음악에 대한 기억"이 파고들 여유가 없도록 주관적 사고를 배제하고, 극단적인 이성적 규칙에 의해 구성되는 총렬음악은, 다양한 실험정신에 의해 새로운 예술 형태를 추구했던 아방가르드 경향과 함께 <전통>과 대립되는 경향을 대변하였다.
그런데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총렬음악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대두되었고, "과격한" 아방가르드적 현상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베리오(L. Berio)는 총렬음악이 잘 짜여지고 영리하게 모방된 사물을 만드는 대량 생산품같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음악은 형식주의적이고 도피적인 기법이라 비판하였고, 많은 작곡가들이 총렬음악 양식을 떠났다. 총렬음악의 대표 주자였던 슈톡하우젠이나 불레즈 자신도 다른 양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실험정신에 의한 새로움의 추구에 식상한 작곡가들은 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협주곡, 오페라 등의 전통적인 음악형식과 장르에 관심을 보이거나, 인간의 주관과 내면성에 호소하는 표현성있는 음악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림(W. Rhim)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단순성 Neue Einfachheit>의 경향에서는 감정과 주관에 호소하는, 이해하기 쉽고 듣기 좋은 음악을 추구하여 청중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였고,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된 <최소음악 Minimal music>에서는 즉흥연주 실제와 인도의 음악전통에 영향을 받아, 예술가의 의도를 축소시키고, 소수의 짧은 멜로디 또는 리듬적인 모델의 반복으로 구성된 작품을 통해, 전통적 '발전' 개념에 대립되는 작품의 구성을 보여주었다. 교향곡, 오페라, 실내음악 등 전통적 장르가 새롭게 활기를 띠게되었고, 아방가르드적 경향을 추구했던 록버그(G. Rochberg), 폔데레츠키(K. Penderecki), 리게티(G. Ligeti) 등의 작곡가들이 <신낭만주의>, <신조성주의> 등의 경향으로, 즉 전통적 낭만음악과 조성음악으로 복귀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특히 작곡가 록버그는 진보적 사고에 얽매인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아방가르적 예술로부터의 방향전환을 요구하며,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변화 이론에 영향을 받아,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하였다.19) 즉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시도들은 20세기 신음악을 지배했던 경향과는 매우 다른 측면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위에 언급된 저자들이 주장했듯이- 20세기 역사의 새로운 구분점을 잡아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동시대적 예술개념을 적용하게 된 배경을 이룬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 접근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 설명된다. 이에 먼저 음악에서의 모더니즘에 대해 살펴보자. 모더니즘적 예술은 역사의 진보적 발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영원히" 적용되는 규범을 찾기보다는) 당 시대의 우연적인 것과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수용하여 독창적으로 새롭게 발전시켜, 진정한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경향을 지칭한다.20) 보통 문학에서는 19세기 중엽 보들레르 이후, 음악에서는 19세기 후반 바그너의 『트리스탄』 이후의 경향이 여기에 해당된다. 모더니즘은 계몽과 이성에 대한 믿음, 예술의 자율성 추구, 예술의 형이상학적 요구 등을 특징으로 하며, <전통비판>이 주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합리적 사고에 의한 전통 비판적 특성은, 음악에서 주로 20세기 초반 <신음악 Neue Musik>의 미학적 근간을 이루었다. 전통적 양식에서 파격적으로 벗어난 쇤베르크 악파를 비롯한 20세기 초반의 음악은, 19세기말 20세기초에 <전통>을 변화시키고 소멸시켰다. 그러나 전통비판에서 기원된 <모더니즘>은 자체적으로 전통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는 역사적 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연결된다. 즉 모더니즘으로서의 신음악은, 이전의 고전주의자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스스로 고전성을 획득하려 노력한다. 이에따라 드러나는 역사적 정통성의 강조는 모더니즘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여주었던 쇼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전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문학에서 제임스 조이스를 모더니즘의 고전주의자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통>과의 이러한 관계는 음악에서 쇤베르크에게 적용된다.21)
이러한 모더니즘 미학은 무엇보다도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에 드러난 카테고리로 설명된다. 1949년 첫 출판된 이 책은 20세기 신음악 발전에 기본적 토대가 되었다. 아도르노의 역사철학적 입장에 의하면,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미적인 새로움>으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에서 이를 보여야했고, 그러한 한에 있어서 예술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역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음악적 사고를 중시했으며, 현실에 대한 긍정 대신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예술의 태도를 중시했다. 예술이란 잘못된 사회와 연결된, 틀에 박힌 보편성을 거부하고 유토피아적 생각에 충실하기 위해 유토피아와 현실의 간격을 고통스럽게 의식하며 이를 드러내야 한다고 아도르노는 주장했다: "예술의 형태는 인간역사를 문서보다 더 합당하게 기록한다. 참혹한 형식은 참혹한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 일이 없다."22) 이에따라 역사적 진행과 관계없이 전통적 양식에 안주한 음악을 "중성화되어 자체의 비판적 실체를 빼앗긴 장식품"으로 비판한 반면, 역사적 변화와 사회의 비판적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 예를 들어 쇤베르크의 음악을 높이 평가했다.즉 아도르노의 모더니즘적 미학에는, 예술의 역사적 진보성, 사회비판 요소가 들어있으며, 이렇게 진보의 이름하에 강조된 의미와 필연성을 강조함에 따라, 청중의 역할이 전례없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기본적으로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배경에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70년대 음악적 경향의 뚜렷한 변화에서 출발하지만, 20세기 음악문화를 이끌었던 모더니즘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견해는 다르게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반(反)모더니즘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70년대 이후의 음악을 그 이전의 음악과는 양식적/미학적으로 뚜렷하게 구분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 시기의 총괄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는 듯 하지만, 특이하게도 음악의 분야에서는 이러한 시각이 오히려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으로 이어졌다(H. de la Motte-Haber).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연속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다른 음악적 경향과 함께 공존하는 20세기 음악의 한 경향으로 본다. 20세기 음악 전반을 개관할 때 모더니즘적 음악경향(합리성, 역사성에 근거한 음악)과 함께 언제나 이와는 대립적인 경향이 존재했고, 포스트모더니즘도 그 가운데 한 경향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더니즘의 연속적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입장은 동시에 -모더니즘과 대립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특징을 부각시킨다. 그러므로 이 경향은 -앞에서 언급한- 절충적 개념에 가깝다하겠다(H. Danuser).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연속선상에서 설명하고, 그 대립적 요소를 특징으로 내세우는 견해들은 오히려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음악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적용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견해도 있으며(C.-S. Mahnkopf)23), 음악에서 모더니즘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상이라면서 "모더니즘에 대한 변론"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K. Boehmer).24) 여기서는 음악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이와는 반대로 '시대 또는 미학적 특성'으로서 이 개념을 인정하는 견해를 살펴보겠다.
음악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에 근거한다.25) 그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 예술에 나타나는 반(反)모더니즘적 특성, 즉 계몽주의 구상의 거부, 비이성적 특성, 전통적 감정미학의 부활, 복합적 작품 시학의 후퇴, 아방가르드 예술사상의 퇴각 등을, "회고적인 신보수주의"에 의한 결과로 본다. 모더니즘을 "미완성의 계획"으로 본 그에게 예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매우 비하적인 시각에서 설명된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음악학자 모테-하버(Helga de la Motte-Haber)로 이어진다. 모테-하버는 70년대 중반 이후 교향곡, 현악4중주 등 전통적 장르가 다시 작곡되고, 낭만적 음악양식이 20세기 음악에 접목되며, 신음악에 나타났던 충격이 사라지고, 새로움에 대한 가치 추구가 희미해진 경향을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오늘날 보수적 사상에 상응하여, 새로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음악을 의미한다"고 말한다.26) 또한 "경계를 허물자"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는 개념이 변화되면서, 모든 이들을 위한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와전되어, 예술에서의 소비성과 상업성을 부축이게 되었고, 대중의 취향에 예술이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즉 모테-하버는 모더니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개혁에 제동을 걸고있는" 음악경향으로 비판하는 것이다.27) 이렇듯 모더니즘과 대립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음악은,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일종의 "도피" 또는 "회피"로 평가된 것이다.28)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적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시대적 흐름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급진적 모더니즘의 대표자들이 방어를 해야하는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고 하면서, 음악에서의 새로운 방향전환을 주장한다.29) 즉 음악적 흐름은 단순히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변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속하는 다누저(H. Danuser)를 비롯한 일련의 학자들은 70년대 전후 음악에 나타나 80-90년대에 음악에서 주류를 이루는 새로운 특성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측면에서 설명함에 있어서, 이것이 모더니즘에 대립된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변화된 형태로 이해하려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대립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자체에서 설명되는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e)에서 포스트는 시간 개념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모더니즘 이후를 가리킨다. 독일어에서 오후를 Nachmittag, 즉 점심-이후라고 부르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적으로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 앞선 것의 본질적인 거부 또는 부정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앞의 것의 연장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진보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미적인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경향은 이미 음악사에서 계속적으로 존재하였는데, 만약 이러한 것을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부른다면, 70년대 이후 음악경향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30)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의 대립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모더니즘의 현상이 시대적 특징과 맞물려서 나타난 후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누저는 "오늘날의 모더니즘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e als Moderne der Jetztzeit)이라는 용어로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설명한다.31) 그리고 -창작의 측면에서- 다음의 세 가지 특성을 언급한다: 첫째, 과거의 역사적 요소를 음악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이로서 음악의 구성이 다각적 코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작품을 인용하고, 이러한 요소를 꼴라쥐 기법으로 엮어나가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은 예술 음악과 저급 음악의 큰 간격을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아도르노의 역사철학적 미학에 의해 극복할 수 없는 대립관계로까지 치닫았던 이 두 영역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 경향의 회복을 의미한다. 뷔르거가 확립한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에서는 무엇보다도 합리적으로 근거된, 실험성이 강한 아방가르드 모델이 제시되며, 여기서는 인용·꼴라쥐·몽타주 같은 테크닉이 유기체적 미학에 근거하여 연관성 속에서 작품을 구성하는 작품미학 사상에 대립하여 나타난다. 즉 전체성, 또는 통일성에 대항하는 특성이 아방가르드에 속하는데, 이러한 요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계속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가 내면적 개방성, 한계 없는 다양한 연결가능성, 실험적 특성 등 때문에 아방가르드를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모범적 전형으로 설명했듯이, 아방가르드적 음악은 포스트모더니즘적 다양성 속에서 종말을 이룬 것이 아니라, 논란의 여지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종합하면서,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음 언어에서 통일적 진행을 지양하는 다양성(다원주의 Pluralismus) 사상에서 드러난다고 다누저는 정의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적 현상으로서 수용하는 또 다른 입장은 음악학자 부데(Wolfgang Budde)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규정하기 보다는, 다원주의라는 특성 자체에 관심을 갖고, 이를 "오늘날(70년대 이후)"의 음악현상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러한 의도는 논문 제목 "모더니즘의 다원주의 그리고/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미 읽을 수 있다. 즉 부데는 오늘날의 현상을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오늘날 음악현상에 나타난 역사적 변화를 주시하는데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음악사의 흐름을 세 부분으로 구분하였다32): 첫째, 쇤베르크와 신음악(Neue Musik)으로 대표되는 역사주의; 둘째, 50.60년대에 나타난 역사의 구조성 또는 구조화된 역사주의; 셋째, 오늘날의 다원주의 현상에서 드러나는 구조화된 역사주의의 상실. 즉 20세기 초반기에 나타난 새로움의 추구가 전통을 벗어나는 파격을 보여주었음에도 그 이전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또한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총렬음악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듯이 모든 전통적 요소에서 개방된 가치 중립적 음악재료를 중시하면서 -전통적 의미에서의- 역사의 중립화 현상을 낳았으며, 새로운 재료와 이론, 사상으로 구조화된 역사를 만들어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조적 역사조차도 70년대 이후에는 상실되었다. 음악은 다원주의와 연결되었고, 게다가 과거의 음악을 수용하는 다원주의까지 나타남으로써, 역사성 자체의 의미는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즉 작곡가 개개인은 역사적 연관성 또는 다른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지 않고, 자신 고유의 표현 형식들을 제각기 추구함으로써 음악에서는 다양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부데(W. Budde)는 이러한 음악적 상황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기의 모더니즘을 역사주의 시대로 이해한다면, 드러나는 역사의 종말은 실제에 있어서 모더니즘의 종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의 종말은, 현재가 명확하게 보여주듯이, 예술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날 음악적 현상에 나타난 다양성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으로 연결시키게 될 것이다; 그것을 정말 거리낀다면,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예감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음악적 현상에 나타난 다양성은 단순히 음악적 표현 형식에 대한 욕구로 나타난 것은 아니고, 이러한 다양성 속에 -우리는 아직 잘 모르지만- 영적인 그리고 인간적-감정적 실존의 형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33)
이렇게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의 이해 및 이에 대한 입장은 -다시금-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논의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음악에서 비판적으로보는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보는가의 문제를 접어두고- 이 개념 자체가 음악에서, 특히 70년대 이후 음악에서 간과될 수 없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유럽의 음악학계에서 심포지엄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적용가능성, 의미, 문제점 등을 계속 논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34)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연구를 통해 20세기 후반의 많은 작곡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주장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곡가로는 베리오(L. Berio), 짐머만(A. B. Zimmermann) 등이 논의되는데, 베리오의 『신포니아』, 짐머만의 『병사이야기』는 음언어의 다원적 층구성과 인용의 측면에서 이미 60년대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된다.35) 그리고 급진적 아방가르드적 경향에서 출발하였지만, 전통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는 이 경향의 대표적 작곡가로 설명된다. 특히 펜데레츠키는 자신의 음악에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성이 나타남을 스스로 시인하였을 뿐만 아니라36), 이론가에 의해 "음악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시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37) 더 나아가 주관적 표현에 주력한 볼프강 림(W. Rhim), 트로얀(M. Trojan)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전통을 새로운 음악의 창작에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음악에 대한 음악>을 주장하는 루치카(P. Luzicka)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적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다.38)
미국에서는 뚜렷한 양식변화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선도하는 작곡가로는 록버그(G. Rochberg), 크럼(G. Crumb) 등이 꼽힌다.39) 그리고 미니멀음악의 작곡가인 라이히(S. Recih), 릴리(T. Riley), 영(L. Young), 글래스(Ph. Glass) 등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부류로 설명되며40), 후기 낭만주의의 맥락을 이어온 맥밀란(James Macmillan), 모오(N. Maw) 등과 뉴 심플러서티 경향의 스켐턴(Howard Skempton) 등도 포스트모더니즘적 맥락에서 논의된다.41) 더 나아가 케이지의 음악도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연관성의 맥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성과 연관되어 설명되기도 하였다.42) 즉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은, 단순히 시대경향에 따른 이론적 발상이라기 보다는,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다양한 유형의 작품에서 그 근간을 이루는 실체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4. 작품 유형에 근거한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포스트모더니즘이 건축 및 문학 등 다른 예술에서 시작되었고, 그 사상적 기반이 철학의 분야에서 연구됨에 따라, 이러한 시대적 영향하에 음악에서도 -비교적 늦은 시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다른 분야와는 구분되는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 모델이 구상될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나는데, 이는 개별적 음악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 또는 변화에 근거하여 유추될 수 있다. 그런데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음악적 특징은 예술가가 추구했던 새로운 사상, 음악에 대한 변화된 사고에 근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는 미학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즉 1970년대 이후 음악 양식 변화의 토대를 형성하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1970-90년대 음악 경향을 대변할 수 있는 미학적 흐름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다양한 작품 유형에 근거하여, -서로 연결되는- 네 가지 관점에서 논의해 보겠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음악에 있어서 <다양성/ 다원주의>의 미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양성은 -이전 시대와 비교할 때- 20세기 음악 전체에 해당되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70년대 이후 음악에서의 다양성은 -벨쉬의 용어를 빌리자면- "극단적 다양성"이라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 흐름의 근간을 이루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43) 또한 차이에 주목하고, 각각의 개별적 현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은 "반(反) 총체적 특성"과 연결된다. 즉 하나의 상위 개념에 의해 시대의 경향을 설명하여, 주변의 것을 부수적인 것으로 가치절하 하거나, 또는 하나의 통일적 원칙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 다원주의의 미학>은 음악에서 두가지 측면에서, 즉 시대적 흐름과 작품 내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먼저 시대적 흐름의 입장에서 볼 때 70년대 이후는 뚜렷한 한 양식이 지배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다양한 양식이 각각 고유한 세계를 형성하면서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20-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드러난 주요 경향은 <새로운 단순성>, <신낭만주의>, <신조성주의>, <최소음악>, <명상음악>, <인용음악>, <음악에 대한 음악> 등 다양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자연과학 발전에 영향을 받은 <전자음악> 및 <컴퓨터 음악>의 발전도 계속되었다. 통일적인 음악양식을 찾기 어려운 이러한 상황은 예술음악 안에서의 현상만은 아니다.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이 두 장르를 혼합하는 시도들도 다양한 음악현상의 이루는 또 다른 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즉 음악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전환은 달하우스가 지적했던 70년대 이후 <음악 양식의 중심상실과 다원화>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미학>은 통일적인 현실보다는 혼합되고 이질적인, 그래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현실상을 포용한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이러한 다양성은 작품 내재적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 -모더니즘의 미학관에 입각하자면- 하나의 작품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성하면서 통일적인 어떤 요소에 의해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조성에 근거한 작품에서는 기능화성학 법칙에 의한 화성 진행과, '조성'이라는 커다란 테두리가 작품의 내적인 통일성을 형성했으며, 12음기법이나 총렬음악도 음렬이라는 중심 요소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면서, 작품을 구축하는 틀을 이루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작품에서는 하나의 통일적 원칙에 의한 구성에서 벗어나, 시대적·양식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즉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시대에서 파생된, 다양한 양식의 부분들이 -예를 들어 무조음악과 조성음악, 바로크적 대위법과 고전시대 호모포니 양식 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새로운 작품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언어, 모델, 방법 등의 철저한 다원주의가 실행되는 곳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여러 작품에 병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에서 서로 방해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44)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다양성이, 바로 음악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러한 예는 록버그와 펜데레츠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5년 발표된 록버그의 『피아노 5중주』는 7악장으로 구성되었다: 1. 서주, 2. 판타지, 3. 푸가: 스케르쪼, 4. Sfumato, 5. 작은 변주곡, 6. Molto allegro con spirito, 7. 에필로그. 이미 악장 구성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다양한 형식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4악장을 축으로 대칭적 구조를 보인다. 1악장과 7악장은 반음계적 구성에 근거한 무조성 양식으로 서로 연관성을 보이며, 2악장과 6악장은 조성적 요소와 무조성적 요소가 혼합된 것이 특징이며, 3악장과 5악장은 브람스를 연상시키는 조성적 구성을 보인다. 즉 이 작품은 전통적 형식이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조성에 있어서도 무조성과 조성이 악장마다 계속 변화되는 다양성을 보이며, 자유로운 무조성, 반음계적 양식, 낭만주의적 표현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단순한 나열로 드러나기보다는 작품의 대칭적 구조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작품의 질적인 수준을 보여준다.45)
모든 가능한 양식을 한 작품에 연결시킨 다원주의 경향은 펜데레츠키의 『비올라 협주곡』(1983)과 『폴렌드 레퀴엠』(Polinisches Requiem, 1980-84)에서 잘 드러난다. 60년대 초 독특한 클러스터 기법과 소음 기법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로 부상하였던 펜데레츠키는 1965/66년 『누가 수난곡』을 기점으로 전통적인 종교음악 전통에 의존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양식변화를 보여준 이후, 1970년대 중반 낭만주의 음악기법에 접목한 "신낭만주의" 경향을 거쳐 선율과 화성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조성음악 기법과 현대적 기법 모두를 수용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작품을 발표한다.46) 『폴렌드 레퀴엠』은 4명의 독주자, 거대한 혼성 합창,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밀집된 반음계적 폴리포니 기법이 주로 나타나고(Introitus의 부분, Quid sum miser 부분 등), 반음계적 모티브 진행이 특징적이다. 반음계적 진행에도 불구하고 조성적 느낌을 주는 화성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Introitus의 Domie부분: e-g), 조성감은 반음계적 진행에 덮이거나, 심한 도약(예를 들어 9도 도약)으로 흐려진다. "Recordare"는 이 레퀴엠의 가장 중요한 곡으로서, 여기서는 폴렌드 교회노래 [Swiety Boze]가 pp에서 합창의 알토성부에서 노래되는데, 이 선율은 여기서 파사칼리아 주제로서 계속 등장한다. "Lacrimosa"에서는 조성적 특성이 두드러지며(종결구의 G#장조 및 F#장조 화성), 8성부 아카펠라 합창으로 구성된 "Agnus Dei"에서는 옛 교회음악의 특성이 명확한 폴리포니 기법에 의해 전개된다. 반면 "Lux aeterna"에서는 펜데레츠키 특유의 글리산도 기법과 클러스터 기법이 잘 드러난다. 즉 이 작품에서는 전통적 요소가 옛 교회음악부터 19세기 반음계주의까지 폭 넓게 수용되었으며, 폴리포니 기법에서부터 주제-모티브 기법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펜데레츠키 초기의 소음음향도 포함되었다. 펜데레츠키에게 다원주의는 한편으로 순수한 조성을 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초기 음악양식, 즉 소음적 기법을 연결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 보다 폭 넓은 차원의 양식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적 독창미학에서 벗어나 <전통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보여준다. 모더니즘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새로움을 통한 진보 또는 발전에 대한 믿음이었다. 즉 음악사는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면서 변화되고 발전되며, 작곡가의 가장 중요한 미적 능력은 독창적인 어떤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독창미학"으로 설명되는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18세기 이후 20세기까지 서양음악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였다.47)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예술에도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제 하에, 작품의 독창성을 더 이상 미적 카테고리로 보지 않는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에 만들어진 음악 양식, 작품, 재료를 작품의 창작에 다시 사용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고, 그것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에서 도입된 인용(Zitat), 꼴라쥐(Collage) 기법이 음악에 사용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베리오, 짐머만, 리게티, 크럼 등의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에 존재했던 여러 작품의 요소를 사용하여 혼합시켜서 만들었다. 이러한 특성은 젱크스(Ch. Jencks)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특징으로 규정한, 옛것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이중 코드(Doppelkodierung/ double coding)"와 상응된다.48) 즉 새로움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전통>을 예술 창작의 요소로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록버그의 단언적 입장 표명에서 읽을 수 있다: "변화 그 자체를 위한 변화라는 아이디어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예술가에게는 저주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과거 경험의 가치와 진실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이 후세대에 의해서 의미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를 원하는 자는 그 역시 그 앞 세대의 공헌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과거는 지워지기를 거부한다. [아방가르드적 진보를 주장하는] 불레즈와 달리 나는 기억상실증을 찬양하지 않겠다."49) 이러한 전통관은 <역사 진행의 부정>으로 연결된다. 즉 과거를 현재로 전위시킴으로서, 진보적 역사성은 부정되며, 오히려 역사적 순환이라는 특성이 나타난다.50)
베리오의 『신포니아』는 이러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3악장에서는 말러의 2번 교향곡 스케르쪼 악장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되었고, 말러 음악의 수용 외에도 작품 전체에는 시대와 양식을 초월한 다양한 과거의 작품이 여러 층으로 인용되었다: 쇤베르크의 『관현악 작품 op.16』 중 4번, 드뷔시의 『바다』 중 2악장 및 3악장,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아곤(Agon)』 중 "Double Pas-de Quatre",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의 고정상념, J. S.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1번』,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이러한 인용은 직접적 수용에서부터 하나의 성부 또는 리듬의 인용까지 다양하며, 청취에 있어서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다른 맥락에 숨어서 전혀 들을 수 없는 것들까지 여러 종류이다. 또한 작품 전체에는 베켓(S. Beckett)의 텍스트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존 텍스트가 사용되었다. 즉 이 작품에는 음악과 언어, 음악과 의미, 예술작품과 복수성(複數性 Pluralitat), 유토피와 현실 등이 동시에 패러다임적으로 묶여있다고 볼 수 있다. 베리오는 작품의 의미가 재료의 모순에 의한 자유의 추상성으로 사라지지 않고, 그 의미를 현재의 음악적 실체에서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작품은 "현재의 복수성(다원주의)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평가되고 있다.51)
크럼의 피아노 작품 『여름밤을 위한 음악』(1974: 부제 "마크로코스모스")에서도 전통적 요소의 수용이 -양식의 다양성의 측면과 함께- 잘 드러난다. 바르톡의 『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에 나타난 표현적인 작곡방식을 모델로 하였다는 이 작품에는 "세포"로 설명되는 작은 부분들의 "모자이크"가 주요 기법으로 등장한다고 작곡가 자신이 설명한다.52) 작은 부분(단위)들이 모자이크 요소로서 완결된 전체 계획에 삽입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중심 요소로 작용하는 모티브들은 각각 반음계, 온음계, 전음계, 펜타토닉적 구성을 보이며, 이러한 서로 다른 역사적 층의 재료들이 복합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특성은 5악장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무조적 음형이 피아노의 극단적 음역에서 공격적으로 연주되는 가운데 J.S.바하의 『평균율 곡집』 2부의 d#-단조 푸가가 인용된다. 바하의 인용은 무조성적 음진행과 대립되면서, 소외 효과를 가져온다. 극단적 음역에서 무조적 음악이 진행되는 속에서 중간음역에서 온음계적 진행을 보이는 인용은, 작품의 감정적 곡선이 상승되는 효과를 보여준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음악의 수용의 관점을 고려하는 <주관성의 미학>, <새로운 내면성의 미학>을 보여준다. 20세기에 나타난 음악의 변화를 수용적 관점에서 특징짓는다면 청중과의 거리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양식과의 급격한 단절, 음악개념 및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의 변화 등으로 20세기 음악은 전통적으로 생각했던 주관적 감정의 표현과는 멀어졌고, 더욱이 독창성이 강하게 추구됨에 따라 수용적 측면에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판 또는 반성이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특히 총렬주의 경향을 보인 다름슈타트 악파에 대한 반감으로 드러났는데, 예를 들어 헨체(H. W. Henze)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음악애호가나 음악소비자들은 무시당하고 있다. 쉬운 언어로 된 음악이라는 그들의 요구는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만약에 우리 엘리트 [작곡가]들이 이러한 현학성에 노출된다면, 우리는 경멸과 순교의 우월감으로 무장해야 할것이다. ... 아도르노가 주장했듯이 작곡가가 해야하는 일은 반항하고, 충격적이고, 약화되지 않는 잔인함을 전달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되었다."53)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모더니즘 예술에서 첨예화되었던 음악과 청중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들이 많이 나타났다. 70년대 이후 많은 작곡가들은 <주관성>, <고유한 내면성> 또는 <음악의 표현성>등을 공표화시키면서, 전통적 미학과의 연결점을 찾으려 하였는데, 이러한 시도를 통해 그들은 전통과 아방가르드로 나누어진 음악문화의 분열을 화합하고, 다시금 폭 넓은 음악회 청중에게 이해되고 가치 있는 음악을 창조하려고 하였다. 70년대 초반 이후 "표현의 강요"라고 할만큼 음악적 표현을 중요하게 본 림은 <새로운 단순성 Neue Einfachheit> 경향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음악의 표현성을 시도하였다. 림은 음악에서의 단순성을 1)관계의 단순성, 즉 형식적인 명확성, 2) 수단의 단순성, 즉 음재료의 명확성, 3) 감정이 단순성, 즉 복합적 내용의 단순화로 설명하면서, 청중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음악을 쓰려고 하였다. 즉 그는 이해할 수 있고, 접근하기 쉬운 음악을 추구하였는데, 이는 주관에 호소하는 고백적 음악언어(Bekenntnismusik) 또는 감정의 내면적 추구, 표현으로도 시도된 것이다. 볼프강 림은 자신의 말처럼 "나쁘게 들리는 음악 이후에" 이제는 "좋게 울리는 음악"을 작곡하려고 한 것이다.54)
<주관성의 미학> 경향은 림과 펜데레츠키의 작품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가장 내면적인 것에서"(Im Innersten)라는 부제가 붙은 림의 현악4중주(1976)는 전체 6악장에서 다양한 집중성의 정도가 긴장 곡선을 만들어 낸다: 1악장과 5악장에는 폭발하는 듯한 극적 표현력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면, 2, 3, 4악장에서는 점차 집중성의 정도가 안정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6악장에서는 크레센도나 디미뉴엔도가 한번도 나오지 않으면서, 이러한 집중성에서 해방된 내면적 세계를 나타낸다. 즉 이 작품에서는 섬세한 표현의 능력이 (폭발 하여 드러나는) 내면성으로 개성 있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청중에게 다가가는 음악의 감정적 측면을 고려한 또 다른 예는 펜데레츠키의 신낭만주의적 작품, 『바이올린 협주곡』(1976)에서 발견된다. 조성적 기반에 근거하여 극적인 감정이 강조된 『바이올린 협주곡』은 연주시간이 약40분 정도 소요되는 -교향곡을 능가하는- 대규모적 기악작품이다. 베토벤, 차이코프스키의 전통적 바이올린 협주곡을 계승한 이 작품은, 특히 낭만적 협주곡의 매우 심각한 열정적 표현을 보여주며, 양식적으로는 바그너의 반음계적 경향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하나의 모티브에서 -음정의 변화 또는 리듬의 변화를 통한- 주제적 발전을 통해 전체 작품이 전개된다. 지속음 F로 시작되는 첫 부분은 화성적으로 F-A??-D??(장3화음의 제1전위) 중심화음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조성적으로 명확하게 구성되었고, 마디6에서는 이 베이스의 F음 반복을 배경으로 첫 번째 중심 선율이 첼로그룹에 의해 연주된다. 이 주제적 선율은 중간에 트라이톤(Tritone: A??-D) 도약을 포함한 반음계적인 상승과 하강을 하는 서정적 성격과 표현적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이 주제는 첼로에 의해 곧 한 옥타브 위에서 반복되고, 동시에 바이올린에 의해 음정은 변하지 않고 리듬만 변화되면서 연주된다. 이 모티브의 선율적 윤곽은 물론, 부분적 요소들은 이 작품 곳곳에 계속 나타난다. 소나타 형식, 모티브 기법, 독주와 오케스트라의 관계 등에서 전통적 어법을 수용한 이 작품은 높은 서정성과 강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청중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더 나아가 현재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소련 출신의 작곡가 푀르트(Arvo Part)의 작품에서도 음악의 내면성 추구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친숙한 조성을 기반으로한 단순한 구조를 보이며,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청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반복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예는 『Tabula rasa』(1977)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두 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첫악장은 "유희(Ludus)", 둘째 악장은 "침묵(Silentium)"으로 제목이 붙여졌다. 히포도리안 선법과 a단조의 결합이 이루어진 1악장에서는 처음에 바이올린에 의해 강하게 a음이 옥타브로 나타난 이후, 두 악기가 쌍을 이루어, 한 악기는 a음을 계속 연주하는 동안 다른 악기는 장6도로 하강 진행을 한다.55) 이러한 음진행이 이 악장에서 8번 반복되면서, 이 작품은 독특한 음향을 창출하며, 이러한 면에서 미학적으로 새로운 내면성의 증거로 평가된다.56)
넷째, -앞에서 설명된- 다양성의 미학, 새로운 전통관, 수용의 측면을 고려한 주관적 내면성의 미학 등의 특성을 종합해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주는 새로운 관점은 모더니즘적 음악에서 추구되었던 <인식으로서의 예술>에서 <향유로서의 예술>로의 전환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전통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새로움을 추구했던 모더니즘 미학에서, 예술은 어떤 즐거움이나 유쾌함을 주는 대상이라기 보다는, "진실", "사회비판" 등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인식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작곡가와 청중 모두에게 적용되었다. 작곡가 자신은 자신의 작업에 보다 "높은" 의미를 부여하고 창작을 하였으며, 청중에게는 그러한 의미를 인식할 것이 요구되었다. 예를 들어 쇤베르크는 "작곡은 즐거움이었지만 이제는 의무가 되었다. 나는 내가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반드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음악의 진보를 위해서 나의 생각들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느낀다"라고 말하면서, 작곡가로서 자신의 "엄숙한" 의무감을 피력하고 있다.57) 또한 아도르노는 이러한 숙고(熟考)로 만들어진 쇤베르크의 작품이 "가상과 유희를 부정함으로써 인식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높이 평가했으며, 이러한 음악에 대해 "난 저걸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를 느끼는 청중을 "최악의 청중"으로 보고 있다.58) 이러한 예술관은 비단 쇤베르크와 아도르노에 한정되었다기 보다는, 총렬음악 및 다양한 아방가르드적 경향에서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관이 낳은 결과는 예술의 이분화 현상, 즉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현상이다. 아도르노가 20세기 음악문화를 "아방가르드와 키치"로 나눈 것은,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키치라 함은 전통적 의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예술, 즉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아도르노는 이러한 음악을 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것으로 간주하였다. 반면 아방가르드는 음악적 재료의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음악, 즉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여기서 예술적 가치가 측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예술을 위한 예술의 위치는 엘리트주의와 학구주의로 접근해간 반면, 대중문화는 상업주의에 힘입어 확산되는 이분화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이분적 사고가 비판되었다. "교양층을 위한 예술, 비교양층을 위한 하위예술이라는 생각은 산업화된 대중사회에서 기분나뿐 구별의 마지막 유품이다"라고 피들러(L. Fiedler)는 말한다.59)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예술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미적 경험을 동참할 수 있는 차원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이에따라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벽이 사라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표현성", "주관성" 등의 측면이 작곡가들에 새로이 주목받게된 현상과 함께, 최근 들어 음악문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크로써버(coross-over) 현상,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 굴다(Friedrich Gulda)가 고전적 작품을 즉흥적 재즈연주와 연결시키거나, 고전적 음악과 대중적 음악을 함께 포괄하는 음악회 등은 바로 이러한 음악적 사고의 변화를 보여준다 하겠다. 이러한 현상은 "일상생활의 미학화"라는 측면에서 예술과 예술산업의 생산물을 서로 보완시키려는 시도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제 예술은 감상하고, 즐기고, 동참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 대상을 "고급", "저급"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접근하게 된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문예학자 야우스(H. R. Jauß)에 의해- "향유의 미학"(Asthetik des Geniessens)으로 개념화 되었다.60) 즉 우리는 "향유"가 다시 의미를 부여받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야우스의 향유의 미학이 반(反)아도르노적 사고 전환에서 이론적 근거를 이루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주지해야 하겠지만,61) 이러한 사고의 변화는 -소수의 엘리트 계급에 해당되는- 모더니즘에 의해 강요된 예술 개념에서 벗어나, 예술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고, 예술이 청중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20세기 후반의 음악적 현상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측면에서 논의해보았다. <왜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이 질문에는 -논의에서 보여주듯이- 여러 가지 답변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필자는 음악사 서술(음악편사학)과 음악미학의 측면에서 음악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음악역사를 총체적 단일성의 시각에서 구성하는 시도는 별 성과를 얻지 못한다. 대신 다원주의의 시각에서 역사가 설명될 때는 오늘날의 음악 현상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가성을 보인다. 바로 포스트모던적 시각에서 실제적으로 드러나는 음악의 다양한 모습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는 하나의 척도로 음악을 평가하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현상을 부수적 현상으로 평가절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 우리는 현재의 다양함을 역사에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음악적 현재는 통일성으로 축소될 수 없는 다양성을 통해서 더욱 발전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근본적인 다양성을 확고히 한다면, 음악사 서술은 미래를 제시하는 폭 넓은 기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62)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적 미학관은 이 시대의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이끌어 낼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한 예술작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는 어떤 미학적 틀에 의해 보느냐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아방가르드적 경향이 지배적 이였던 50년대에 조성적이고, 전통적 의미의 감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낭만주의적) 작품이 작곡·연주되었다면, 그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진 예술로서, 예술적 의미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작품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작곡가들이 실험정신이나 새로움의 추구보다는 다양한 전통의 자원을 이용하고, 청중과의 감정적 공감을 추구하는 경향이 대세가 되는 시점에서도 그 이전의 미학적 잣대를 적용시킬 수 있을까? 언급된 작품이 80년대에 다시 연주되었다면, 이 작품은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 음악관에 의하면, 이러한 작품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하나로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20세기 후반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라, 전통적 요소를 사용한 음악이 작곡되었는가? 왜 이 시기에는 주관적이고 내면적 경향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가? 이러한 문제는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음악적 사고는 단지 음악작품과 그것에 대한 숙고에서 뿐만 아니라, 음악 작품의 해석과 수용, 음악이론과 음악에 대한 학문적 연구, 더 나아가 사회적·시대적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음악학도 이러한 다각적 코드에 그 관심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1970년대 이후 서구 음악의 역사와 미학의 모델로 연구하는 관점은 이러한 폭 넓은 시각의 반영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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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 Welsch, Unsere postmoderne Moderne, Weinheim 1991, 4쪽.
2 K. W. Kaehler, "Philosophische Asthetik im Zeichen der Postmoderne", in: W. Gruhn(Hg.), Das Projekt Moderne und die Postmoderne, Regensburg 1989, 35쪽.
3 Ch. Jencks, 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 London 1977, 30쪽; 김욱동 편, 『포스트모더니즘과 예술』, 청하 1991, 37쪽 이하 참조.
4) E. Said, The World, the Text, and the Critic,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3, 135쪽; 김욱동, 위의 책, 65쪽 참조.
9) 대표적 인물로는 그래프(Gerald Graff), 사회학자 다니얼 벨(Daniell Bell), 커모우드(Frank Kermode) 등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혁명적인 혁신보다는 오히려 모더니즘의 한계적 발전으로 파악하는 커모우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이 두 전통이나 이론 사이에는 일종의 연속성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10) Leslie Fiedler, "Cross the Border - Close the Gap", A Fiedler Reader, New York: Stein and Day, 1977.
11) 대표적 이론가는 다우브 W.포크마(Douwe W. Fokkema), 어빙 하우(Irving Howe), 레슬리 피들러(Leslie Fiedler) 등이 있다. 피들러는 "경계선을 넘고 - 간격을 좁혀라"에서 "모더니즘의 문학이 사망하였다"고 선포하였다.
12) 대표적 이론가로는 핫산(I. Hassan), 에이브럼즈(M. H. Abrams), 후이센(A. Huysen) 등이 있다.
13) Ch. Jencks(신수현 역), 『포스트 모더니즘』, 열화당 1992, 10쪽.
14) W. Konold, "Komponieren in der Postmoderne", Hindemith-Jahrbuch 1981/X, Frankfurt 1982, 77쪽.
15) W. Konold, "Die Musiker der siebziger Jahre", Musica 1978, 10쪽: 위의 글, 77쪽 재인용.
16) H. Danuser, "Kulturen der Musik - Strukturen der Zeit. Synchrone und diachrone Paradigmen der Musikgeschichte des 20.Jahrhunderts", Musik Padagogik und Musik- wissenschaft, Wilhelmshaven 1987, 207쪽.
17) Hermann Danuser, "Postmodernes Musikdenken - Losung oder Flucht", H. Danuser(hg.), Neue Musik im politischen Wandel, Mainz 1991.
18) U. Dibelius, "Postmoderne in der Musik", Neue Zeitschrift der Musik, 1989 Vol. 2, 6쪽.
19) G. Rochberg, Reflections on Science, Politics and Art, 1973.
20) H. Danuser, Die Musik des 20. Jh., Laaber 1984, 422쪽; 홍정수, 조선우 편역, 『음악은이』 2권, 521쪽 참조.
21) H. Danuser,위의 책.
22) Th. W. Adorno, Philosophie der neuen Musik, Frankfurt 1958, Einleitung 13-35쪽.
23) 예를 들어 만코프(Claus-Steffen Mahnkopf)는 "건축이론이나 문예학에서 탐구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척도가 음악과 같은 장르에 과연 적용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라고 말하면서, 음악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것에 대해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C.-S. Mahnkopf, "Das Uberdauern der musikalischen Eigenlogik. Reflexionen zu einer Asthetik des Surplus", W. Gruhn(hg.), Das Projekt Moderne und die Postmoderne, Regensburg 1989, 123쪽 이하.
24) K. Boehmer, "Utopische Perspektiven des Serialismus. Pladoyer fur eine Moderne nach der Postmoderne", Neue Zeitschrift fur Musik, 1989 Vol.4, 6쪽 이하.
25) J. Habermas, "Die Moderne - ein unvollendetes Projekt", W. Welsch, Wege aus der Moderne. Schlusseltexte der Postmoderne- Diskussion, Weinheim 1988, 177쪽 이하.
26) Helga de la Motte-Haber, "Merkmale Postmoderner Musik", Das Projekt Moderne und die Postmoderne, 56쪽/ 62쪽.
27) 위의 글, 64쪽.
28) 예를 들어 독일의 작곡가 H. Lachenmann, Matthias Spahlinger등이 이러한 주장을 편다.
29) Hermann Danuser, "Postmodernes Musikdenken - Losung oder Flucht", Neue Musik im politischen Wandel, 62쪽.
30) 예를 들어 바그너를 중심으로한 모더니즘적 음악과 동시에 브람스의 음악이 있었으며, 20세기 초 쇤베르크 악파의 음악과 동시에 피츠너의 음악이 있었으며, 50년대 슈톡하우젠, 불레즈 등의 다름슈타트 악파와 함께 이와 대립적인 후기 힌데미트의 음악이 있었다.
31) H. Danuser, "Postmodernes Musikdenken - Losung oder Flucht?", Neue Musik im politischen Wandel, 63쪽.
32) Elamr Budde, "Der Pluralismus der Moderne und/oder die Postmoderne", O. Kollerisch(hg.), Wiedereinigung und Nuebestimmung. Der Fall "Postmoderne" in der Musik, Graz 1993, 50쪽 이하.
33) 위의 글, 62쪽.
34) 대표적 예: 198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의 연속 강연회로 진행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프로젝트 Das Projekt Moderne und die Postmoderne"에는 10 여명의 연사가 참가하였고, 이는 W. Gruhn의 편집으로 1989년 책으로 출간되었다. 1990년 뮌헨 바이에른 아카데미에서는 "모더니즘 대 포스트모더니즘 - 예술에서의 미적 이론과 실제 Moderne versus Postmoderne - zur asthetischen Theorie und Praxis in den Kunsten"이란 주제로 음악학 분야를 중심으로 철학, 문학의 분야에서 12명의 연사를 초청하여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이는 Bayerische Akademie der Schonen Kunste Jahrbuch 4에 수록되었다. 199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악학교 연구소에서는 "재적응과 새로운 규정.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Wiederaneigung und Neubestimmung. Der Fall 'Potmoderne' in der Musik"이라는 주제로 12개의 논문을 수록한 책을 편찬하였다. 2000년 5월 말에는 H. de la Motte-Haber의 편집으로 "포스트모더니즘 1975-2000"이라는 방대한 이론서가 Laaber 출판서에서 출간될 계획이라 한다.
35) E. Budde, "Zitat, Collage, Montage", Die Musik der sechziger Jahre, hg. v. R. Stephan, Mainz 1972; H. de la Motte-Haber, "Musikalische Postmoderne", Bayerische Akademie der Schonen Kunste. Jahrbuch 4, 392쪽.
36) 펜데레츠키는 한국을 방문했던 1992년 작곡가 강석희와의 인터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행해졌습니다. 미술에서는 보편화된 논리이지요. 음악은 언제나 미술보다 한 걸음씩 뒤쳐지지 않습니까? ... 나는 이미 작품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발전 과정에서 반드시 존재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현재는 모든 사조를 다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객석』, 1992년 9월호, 52쪽.
37) 디벨리우스는 펜데레츠키의 음악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경향이라 주장한다. U. Dibelius, Postmoderne in der Musik, Neue Zeitschrift fUr Musik, 1989, Vol 2.
38) Th. Schafer, "Anti-Moderne oder Avantgarde-Konzept? Uberlegungen zur musikalischen Postmoderne", IRASM 1995, Heft 2, 211쪽 이하.
39) 베버(Horst Weber)는 크럼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가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에 대해 논한다. H. Weber, "Gerge Crumb: Amplified Piano - Amplified Tradition. Zur Kritik 'Postmodernen' Komponieren", Das Projekt Moderne und die Postmoderne, 197쪽 이하.
41) 유인제, "작곡에 있어서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연구", 『이화음악논집』 제2집 1998, 123쪽 이하.
42) H. Danuser, "Die Postmodernitat des John Cage. Der experimentelle Kunstler in der Sicht Jean-Francois Leotards", O. Kolleritsch(hg.), Wiederaneignung und Neubestimmung. Der Fall "Postmoderne" in der Musik, Wien/ Graz 1993, 142쪽 이하.
43) W. Welsch, Unsere postmoderne Moderne, 4쪽.
44) W.Welsch, 위의 책, 17쪽.
45 록버그의 이 작품이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다양한 양식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는 점이라고 다누저는 주장한다. 즉 미적으로 다양한 양식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H. Danuser, "Kritik der musikalischen Postmoderne", in: W. Gruhn(hg.), Das Projekt Moderne und die Postmoderne, Regensburg 1989, 81쪽.
46) 오희숙, "20세기 후반의 음악적 흐름 고찰- 펜데레츠키(K. Penderecki)의 음악을 중심으로", 『이화음악논단』 제1집, 1997.
47) 달하우스는 『음악미학』에서 이러한 독창미학의 역사가 이미 15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본다: "최소한 오백년 전부터 -15세기의 이론가인 요하네스 팅토리스 이래로- 민속음악과 구분하기 위해서 예술음악(Kustmusik)이라 칭하는 영역에서는, 새로움은 결정적인 [미적] 기준으로 인정되어 왔다. C. Dahlhaus, 『음악미학』(조영주, 주동률 역), 이론과 실천 1991, 142쪽 이하.
48) 젱크스는 1986년 다음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하였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1978년에 정의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중 코드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이는] 건축이 대중이나 기타 관련된 소수 그룹과 소통되도록 현대의 기술을 보통 전통적 건물 유형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Ch. Jecks, What is Postmodernism, London/ New York 1986, 14쪽.
49) The aesthetics of survival: A compser' View of 20th century Music.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1984.
50) 이러한 음악적 구조는 <최소음악>의 작품 진행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의 모티브가 계속적인 반복을 보이는 최소음악에서는 이전의 발전적 구성에서 벗어나 순환구조를 보여준다.
51) E. Budde, "Zum dritten Satz der Sinfonia von Luciano Berio".
52) Georg Crumb, Profile of a Composer, D. Gillespie(ed.), 110쪽; Horst Weber, "George Crumb: Amplified Piano - Amplified Tradition. Zur Kritik 'postmodernen' Komponierens", W. Gruhn(hg.), Das Projekt Moderne und die Postmoderne, 200쪽 재인용.
53) H. W. Henze, Music and Politics: collected writings 1953-1981, trans. Peter Labanyi, London: Faber & Faber 1982, 40-41쪽.
54) W. Rihm, "Neue Einfachheit- Aus- und Einfaelle", in: HiFi Stereophonie, 16 Jg.(1977), H.4, S.420쪽.
55) 김은하, "For Silence- 20세기 음악적 현상인 정적에 대하여", 2000년 5월 17일 한국서양음악학회 발표논문.
56) H. Danuser, "Innerlichkeit und Außerlichkeit in der Musikasthetik der Gegenwart", E. Jost(hg.), Die Musik der achtziger Jahre, Mainz 1990, 24쪽.
57) A. Schonberg, Stil und Gedanke, Noerdling 1976.
58) Th. W. Adorno, Philosophie der neuen Musik, Frankfurt 1958,
59) L. Fiedler, "Cross the Bordewr - Close the Gap", W. Welsch, Unsere postmoderne Moderne, 15쪽 재인용.
60) H. R. Jauß, Asthetische Erfarhung und literarische Hermeneutik, Frankfurt 1982, 71쪽; H. Danuser, "Postmodernes Musikdenken - Losung oder Flucht?", Neue Musik im politischen Wandel, 62쪽 재인용.
61) Ch.뷔르거((Christa Burger)는 예술의 비판적 역할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사라지고,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미적 자율성을 포기한 문화이며, 자유, 소비를 활성화시킨다고 비판한다. Ch. Burger, "Das Verschwinden der Kunst. Die Postmoderne-Debatte in den USA", Ch. und Peter Burger(hg.), Postmoderne: Alltag, Allegorie und Avantgarde, Frankfurt 1987.
62) H. Danuser, "Postmodernes Denken - Losung oder Flucht", 앞의 책, 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