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중앙연수원 교육위원 김광수
1. 노동운동의 위기 - 자본 위기의 전가와 대응력의 상실
자본 일반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그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기 위해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자본의 전면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은 스스로의 재편과정 속에서 노동력의 착취를 강화하고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입법화, 공기업과 금융산업 구조조정등 각종의 구조조정법 제정, 대량의 정리해고와 거리에 넘실대는 실업자, 대폭적인 임금삭감 등등. 노동력의 가치 또한 격심하게 폭락하였다. 노동자 민중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고, 생존 자체가 위협당하고 있다. 1백만 이상의 노동자들의 목이 잘렸고, 400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거리에 넘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취업노동자의 53%를 넘어서고, 기초 생활도 안되는 빈곤층이 1천만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공황을 배경으로, 또 위기극복을 내세우며 노동운동에 대한 포섭과 탄압의 양면 공세는 현장에서 또 정권의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기아자동차노조, 현대자동차노조, 만도기계노조등 강력한 자동차 금속노조들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공권력의 탄압에 짓밟혔다. 조폐공사 한국통신 서울지하철 등 핵심적인 공기업노조들도 무력화되었다.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제 등으로 유연고용과 유연노동시간이 일반화되고, 유연임금제 즉 성과급제와 연봉제 임금을 통해서 노동자는 개별화, 상호 치열한 경쟁상대화함으로써 노동자의 집단성, 단결은 와해되고 있으며,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투쟁을 약화시키는 무수한 법 제도적 개악이 이루어졌다. 단체협약의 효력의 약화, 현장 파업의 금지와 대체근로, 차별적인 고용, 차별적인 임금형태를 통해서 현장 의 단결력, 투쟁력이 급속히 크게 약화되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법 제도의 개악과 함께 자본측의 거센 공세로 노자간의 단체협약도 개악되고 형해화했다. 근로조건이 악화되고, 산업재해는 증대하였다. 구조조정에 따라, 또한 경제위기에 편승하여 현장의 노동강도는 가파르게 강화되었다.
수십년간의 간고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들의 권리가 일거에 탈취당했다. 엊그제 도장찍었던 노사. 노정합의도 휴지쪽지로 변한다. 단체협약으로 합의한 내용도 곧 저버리고 근로조건의 추가적인 개악을 요구하고, 추가적인 구조조정, 정리해고, 임금삭감을 요구한다. 합법적인 파업에도, 구조조정이 최고의 선이고 법이므로, 구조조정에 반대한다고 공권력을 투입한다. 이제까지 상식으로 알아왔던 일들이 마구 깨지고 뒤집혔다. 노동현장에는 패배감과 기회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다. 자본의 거센 공격에 노동운동은 수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아직까지 끊임없이 밀리고 있다. 우리가 확보하였던 진지들을 너무나 많이 빼앗기고 퇴각한 상태에서 주체적인 역량마저 기진맥진하게 되어서 과연 반격의 여지-여력이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지금 노동운동의 위기는 총체적인 것이다. 우선 중앙 지도력이 심각하게 무너져 있다. 상층 지도력은 자주성도 투쟁성도 상실, 관료화 개량화로 흐르고 있고 정책도 전술도 오락가락 헤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도 자본에 침탈당해 무너져 있다. 태반이 자본에 협조적인 집행부로 세워져 있거나, 자본에 장악당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다수가 자본의 공세에 거의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져 있다. 노동운동이 별다른 극복책을 마련치 못한 채로, 2002년 전임자 임금지급정지가 실행되면 노동운동은 거의 화석화할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 조합원은 약 60만이다. 이 숫자는 1995년 11월 민주노총을 창립할 당시의 42만에 비해서 크게 증가한 숫자이다. 양적으로는 엄청난 성장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현재의 민주노총이 창립시보다 강력해졌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민주노총은 그 활력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10여년의 간고한 투쟁으로 쟁취한 법제도상의 권리, 단체협약상의 권익은 다시 탈취당하고, 강력한 투쟁의 기풍과 자신감은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죽은 조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 즉 제국주의독점자본, 재벌과 정권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바탕으로 권력과 돈이라는 정치적 경제적 무기를 손에 넣고 관제언론이라는 홍보수단을 장악하고 있다.
50여년 적대관계였던 남한과 북한정권의 대표가 얼싸안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재벌은 북한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이윤을 짜내고, 북한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해 들어가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미사일, 핵, 테러국가 문제를 해결하고 국교수립과 불가침,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실질적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상황 전개에 노동운동은, 자신의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대중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의사 파업과 정부 및 의약계의 갈등이 수개월간 계속되고 있는데도 노동운동(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의약 분업실시와 의료보험료 인상반대라'는 시민운동적 수준의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민 무상의료와 공공의료제도에 대한 청사진도, 현실의 정.의.약 분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공공의료의 강화를 위한 개혁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등 사법.경찰기구와 금융감독기구와 권력의 핵심이 부패와 유착해 있는데도, 노동운동은 한탄조의 성명서 몇 장을 내놓는 외에, 이를 발본할 정치경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 사태발전에 노동자계급은 거의 무력한 것이 현주소다. 이것이 우리 운동의 위기다. 자본이 모든 상황을 장악하고 행세하게 방치하고 있는 것, 이것이 위기다. 자본이 전면전을 걸어 오는데 노동운동은 굳건하게 힘을 결집하여 단호하게 대응치 못하고 있다. 자본의 침탈에 혼란스럽게 흐트러지거나, 대결할 의지를 잃고 스스로 후퇴하여 더욱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거나, 기회주의적으로 일관성없이 투쟁과 협상을 오락가락하는 중에, 끊임없이 손상을 입고 무력화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 이것이 위기인 것이다. 이 끊임없는 후퇴,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이를 수습하여 극복해 낼 대안과 그 주체가 없다는 것이 진정한 운동의 위기인 것이다.
물론 현재의 노동운동이 위기의 측면과 달리, 또 다른 발전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IMF관리하의 공황 이후 민주노총 조합원은 정리해고로 5만명 이상이 줄었지만 반면에 전교조의 합법화와 조직확대, 농수축협노조 가입, 항공사노조결성, 상용직 공무원노조, 자치노조 결성과 공무원 노동3권 쟁취 및 노조 결성 투쟁, 여성노조결성, 비정규직 투쟁 등으로 8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늘여 60만여명의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이들 부문은 전력노조, 철도노조 민주화 과정의 진행과 구조조정 반대투쟁과 함께 새로운 투쟁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권력과 자본의 부패와 모순들 역시 위기상황에서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있다. 1998-99년 상반기의 라스포사 옷로비사건, 언론대책 문건,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 이어서, 정부여당의 선거수사 개입, 한빛은행 및 동방은행 부당 대출, MCI코리아 사건 등으로 정치권력의 중심부와 사정.공안기관, 산업.금융감독기관 자체가 급속히 부패화하였음이 드러남으로써 정권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정치권 전반의 부패, 지역감정 의존, 붕당정치, 당리당략적 정쟁에 대한 민중의 혐오와 거부감은 심화되었다. 생존권이 짓밟히고, 권리를 박탈당한 민중들의 분노가 분출되고 있고, 서서히 투쟁의 의지로 전화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진보정당 건설 또한 우리 운동의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민주노동당 건설은 노동운동이 새로운 영역을 열면서 분화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대중이 자신의 정치적 대표체를 세워 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새로운 무기를 창출함으로써, 자본과의 대회전을 준비해 갈 가능성을 열었고, 이를 위한 최소한의 조직적 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위기를 우리운동의 기회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객관적으로 유리한 조건들과 우리 내부의 발전을 위한 제 요소들을 살려 현실화할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한 것, 노동자계급대중의 총력을 결집하여 자본의 줄기찬 공세를 막아내고, 전진의 계기를 잡아내어 수세를 공세로 전환하지 못하는 것,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 노동운동과 과제 토론회 중 정윤광 발제 중에서
2.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
한국 노동운동의 본질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조직된 대중의 운동이라는 데 있다. 어떻게 조직되었는가는 역사적인 경험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데, 우리의 경우는 기업별로 조직된 연맹과 전국센터, 그리고 그러한 노동조합이 주도한 민주노동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되서야 노동조합의 전국센터와 당이라는 서구사회에서는 100여년의 경험을 가진 완결구도를 비로소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 특히 노동조합운동의 특성은 21세기에 들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자본의 위기가 노동운동의 위기로 전가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가. 조직노동자운동의 한계
한때 서구에서 산별노조운동이 거세게 몰아칠 때 서구에서 직업별노동조합이 한계로 작용했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기업별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이 한계로 작동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의 극복과 관련해 산별노조건설과 비정규직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는 상당히 미흡한 채, 소기의 성과를 못보고 있다. 그리고 대개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조직, 노동조합은 전체노동자들을 다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다. 군산의 대우자동차는 70%의 작업자들이 비정규직이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조합이 그 공장의 작업자를 대표한다는 말이 가능할 수가 없다. 기업별노조하에서 그래도 가질 수 있었던 공장위원회(직업별노조에 대항하는 산별노동운동의 동력이기도 했다)의 성격은 이미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나. 노동자 정치운동은 해체의 계절(90년대)을 경과하면서 이념적인 지향이 흔들리고 있다.
노동해방이라는 구호가 우리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가 하면 민주노총 건설당시 전노협정신이라는 말에 비 전노협 출신들이 보여준 냉소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진보진영의 상당수가 청산주의로 투항하고, 상대적으로 시민사회운동이 지위가 높아지면서 노동운동의 이념적 지향과 계급운동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많이 훼손되었다.
다. 총체적인 사회개혁(변혁)에 대한 전망부재
97년 총파업과 98년 IMF사태이후 노동자운동은 보다 밀도 높은 정치적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반면 일부 근본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선전적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 개혁(개량)의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근본변혁에 나가려고 하는 의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위해 대중운동은 정치적 대응력에서 매우 낮은 수준의 문제제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3. 현 시기 핵심과제
현 시기 이러한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부여받는 노동운동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노동조합 조직율의 비약적인 성장을 위한 선진적 조직체계와 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헌신적 조직활동
2) 노동조합운동의 전투성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지도역량의 발굴과 훈련
3) 비생산직 노조의 기풍 쇄신과 통일성의 강화
4) 현장 정치활동의 강화와 이를 통한 민주노동당 당원의 대폭적인 증대
5) 변혁적 전망의 수립과 민주노동당의 변혁적 강화
6) 민중연대전선의 강화와 시민운동과의 연대강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대중적 흐름과 선진층의 의지를 모아나가야만 한다. 그러면 그러한 흐름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그것은 노동운동의 정치화이다. 정치세력화라는 말은 적어도 노동자 대중이 참여한 당의 건설로 일단 완수되었다. 노동운동의 정치화라는 것은 노동운동이 밀도 있는 정치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넘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조직적으로 투쟁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벌여놓은 일에 대한 즉자적 반대를 넘어서는 투쟁, 자기대안을 책임 있는 자세로 제시하고 집요하게 투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공공성확보를 위한 병원노조와 사회보험노조 혹은 공공연맹의 투쟁, 문교부 7차교육과정에 대한 반대와 교육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교조와 대학노조와의 투쟁 등이 그러한 것이 될 것이다.
결론
노동운동의 정치화를 앞장서 선도하고, 이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세력은 누구인가? 그것은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사회개혁의 총체적 과제를 제시하고, 조직된 노동자와 함께 투쟁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총체적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일, 이를 근거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강력한 저지선을 치고, 이를 넘어 새로운 사회원리를 사회구성원에게 설득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위기의 노동운동을 구하고, 우리사회에 새로운 전망을 일구어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