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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 and conditions
Seamen had no official uniform. A recruit had to buy clothes from the purser, or cloth from which he made his own, often with great skill. The cost was deducted from his pay, which was 23s 6d a month. He didn’t receive his pay until the end of a voyage, and often not even then, which was a great hardship. The seaman lived on the gundeck where he also fought in battle. He slept in a hammock slung between the deck beams. The hammocks were only about 20 inches apart, but as the crew was divided into two watches, each man had 40 inches to himself.
1. 보수와 근무여건
선원들의 공식유니폼은 없었다. 신입선원은 함선 회계관 한테서 옷을 사거나, 가끔은 뛰어난 기술로, 자기 것을 만들 옷감을 사야했다. 구입비용은 월급에서 차감되었고, 월금은 월급 23실링 6펜스 였다. 선원들은 항해를 마친 후에 월급을 받았는데, 가끔은 그 때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큰 고초였다. 선원은 대포갑판에서 살았는데, 그 곳은 전투를 하는 곳이다. 선원은 갑판 대들보에 매달린 해먹에서 잠을 잤다. 해먹들 간의 간격은 겨우 50cm 였지만, 선원들은 2조 경계로 나뉘었기 때문에 각 자 간격은 100cm 였다.
Seamen’s pay has always been poor, even when compared with the small wages earned by labourers, on shore. By the end of the 1700s, pay on a Naval ship was less than that on a merchant ship. However, as well as their basic wages, sailors would expect to have a share of prize money or booty from captured enemy vessels.
육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버는 적은 임금과 비교를 해도, 선원들의 보수는 항상 너무 적었다. 1700년대 말까지, 함선의 선원보수는 상선의 선원보수보다 적었다. 그렇지만 선원들은 기본 급료 이외에, 상금이나 나포된 적함에서 전리품을 분배받을 수 있었다.
The confined and stark conditions on board ship often created a good sense of friendship and sailors enjoyed each others’ company off duty. Seamen made the best of their cramped living quarters, enjoying games of dice and cards, telling tales, playing musical instruments, carving, drawing, practising knots or model making. Sometimes sailors sang sea shanties. These were rhythmic work songs sung on board to help repetitive tasks such as hauling on ropes.
배 위에 갇힌 삭막한 근무환경은 종종 우정을 싹틔우기도 하고, 비번인 선원들은 서로의 동료애를 즐겼다. 신원들은 다이스와 카드게임을 즐기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조각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매듭이나 모형제작을 하면서, 비좁은 할동구역을 가능한 한 최대로 활용를 했다.
http://www.hms-victory.com/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110&Itemid=151
주1. 실링
『영국의 옛 화폐』 a shilling (생략 s.).
┈┈• 3 ∼ 6펜스 three (shillings) and six (pence) (생략 3s. 6d.).
주2. shilling [ʃíliŋ] n.
① 실링(영국의 화폐 단위; 1∕20 pound =12 pence에 상당; 略: s.; 1971년 2월 15일 폐지됨); 1실링의 백동전.
② 실링(영국령 동아프리카의 화폐 단위; 略: Sh.).
③ 【미국】 식민지 시대의 화폐.
주3. 원화 환산
2009. 04. 03. 현재 외환시장, 장마감 매매기준율 기준, 1 파운드=\1,973.00
계산 편하게 2,000원으로 간주하면, 1실링= 1/20 파운드 => 1 파운드=2,000원을 20등분하면, 100원
선원월급 23실링은 곧 2,300원
6 펜스는, 1실링=12펜스, 1실링 100원의 2절반은 50원,
선원월급 총액은 2,3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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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y 함선의 첫 출항일 1778년 05월 16일을 한국사에 비교하여 보면,
1776년 조선 정조 즉위,
1785년 한성에 천주교 교회가 생겼다고 하고,
1787년 프랑스함대 페루즈 일행이 제주도를 측량했다는데,
2,350원은 그 당시에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첫댓글 정보 고맙습니다.
"Her/His Majesty’s Ship"을 줄여서 HMS라고 한다던대 생각보다 임금이 낮군요.
아마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몇배 이상으로 열악한 환경이었을 겁니다. 오죽하면 선원생활에 비하면 감방생활이 천국이라는 얘기가 나오긋어요. 2차대전때 유보트 승무원들 얘기 읽다보면 승무원이 백명도 안되는데도 그 처절한 근무조건에 경악을 하곤했는데 18세기 목재선에서 수백명이 엉켜 살았다는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식량으로 먹는 것도 냉동 보관이 안 되는 당시에는 형편없었다는...;; 어떤 책 표현대로라면 소금에 절여진 쇠고기, 벌레먹은 비스킷......-_-
HMS 가 뭐의 약자인지 홈피에서 본 적이 있어서, 처음 글 올릴때, 설명을 붙이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다시 못찾아서 포기한건데,...보충설명을 하셨네요.
저 당시 1파운드면 최소 20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지 않았나요? 더 많았었나;;
육지 노동자보다 적었다니까 88만원 세대쯤 되나 보네요. ㅋ
1700년대 말까지, 함선의 선원보수는 상선의 선원보수보다 적었다. << 요건 1700년대 말이 아니라 18세기 말까지로 해석하는게 맞는거 같네요. 아...같은 말인가;;;; 암튼 번역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