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과 컴퓨터 틈새에 비좁게 끼어 잠자던
꺾지 같은 아들놈도
거실 책장과 티비 사이에 낮게 파묻혀 자던
모래무지 같은 딸아이도 학교에 간 이른 아침,
어슬렁어슬렁 지느러미 흔들며 주방으로 헤엄쳐 나온
떡붕어 같은 나는
무얼 먹을까 느린 물비늘 비틀어 흔들며 돌다
우유에 후레이크 한 줌 타서 먹는다
거친 곡물이 어금니 사이를 통과하며 잘게 부서지는 동안
둥근 혀는 빗자루처럼 쉼 없이 제 몸을 쓸어
굵은 입자들을 어금니 사이로 연실 모아주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속에서 강력하게 국물만 걸러
목구멍으로 넘기는 혀, 양옆 빗살무늬들을 생각한다
간밤의 미세한 잡념이 숨 끝에만 닿아도
아침 한켠이 숨가빠오는데, 혀는
괜찮다 괜찮다며 빗살무늬 같은 몸을 재빨리 벌려
엉킨 통로를 열어준다, 수저를 놓고
전화기 너머의 약속을 완성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집 앞 횡단보도를 헤엄쳐 다니는 햇살 한 마리,
거대한 아가미로 행인들을 걸러먹고 있다.
수고양이
언제부턴가, 밤이면
내 지난날들의 무용담은 쉽게 무너졌고
내가 집착해야 할 몇 개의 암컷도 길을 잃고 서성였지요
다만, 몇 근 졸음의 중량으로 저울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밤을 쫓던 내 날렵한 수염들이 느려졌고
늘 그렇듯 밤 골목엔
식물성으로 둔갑한 어둠 몇 마리 어슬렁거릴 뿐입니다
화살처럼 쫓던 시절과 어느 늦은 야생의 표정들,
이젠 성급히 체념해야 할 목록들일 뿐입니다
혈통이란 이젠 거추장스러운 내 발톱처럼 묘연합니다
단지 도시의 청결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귀결될
어느 삼류 정치가의 말버릇 같습니다
오늘 밤,
도시의 후미진 골목 그 끝을 따라가 보면
누군가, 잠적이란 가죽 하나 벗어 놓고
모습을 감출 것 같은 예감이 우글거립니다
그리고
오후 저쪽의 담장 밑엔, 그 잠적으로부터 몸을 말리고 있는
수고양이 몇,
중성의 눈빛으로 졸음만 핥아대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 골목에서 살다 보면 문득,
경계를 잘 단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몸집은 크고 윤기가 흐르며 털은 빛나지만
절기에 따라 갸르릉거릴 울음을 얼마 전 거세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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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워낭소리의 은근하고 깊이 있는 울림 / 오태환
이번 신인상 심사에서 본심에 오른 열두 분의 작품 가운데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박선영 씨의 「마량항 클리토리스」, 최빈 씨의 「립싱크」외 9편, 노정균 씨의 「비」외 9편, 권혁찬 씨의 「워낭소리」외 9편이었다.
박선영 씨는 事象을 자신만의 각법으로 새겨 조형하려는 시도는 살 만하다. 그러나 의욕이 앞서 나갔다고 할까.
“마량항 클리토리스에 뿌리를 묻고/ 은갈치 비늘에 흐벅지게 몸 잠그고 싶다”나 “밴댕이 창시를 발라먹으며/ 뻘의 사타구니를 치켜들겠다”(이상 「마량항 클리토리스」)와 같은, 작위적일뿐더러 조악한 표현들이 눈에 사뭇 거슬렸다.
이에 비하면 최빈 씨는 좀 더 편안한 숨결로 대상이 숨기고 있는 의미를 양달로 불러낸다. 하지만 의미의 난삽함이 시적 긴장이나 언어적 쾌감을 유인하기보다 난처한 피로감을 가중시켰고 (「립싱크), 표현하려는 것의 구심력 안에 있어야 할 소재들이 조금씩 어긋나 있거나 비껴 있어
촘촘하게 조여지는 맛이 떨어졌다(「건조증」).
노정균 씨의 「비」외 9편, 권혁찬 씨의 「워낭소리」외 9편은 마지막까지 갈등을 자아냈다.
두 분 모두 알맞게 갈무리된 상상력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다듬어진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성실하게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 두 세계는 아슬아슬 균형을 맞추는 접시저울의 양 끝처럼 대척적 풍경을 드러낸다.
노 씨의 상상력이 디지털로 상징되는 정보사회적 사유를 배경에 깐다면, 권 씨의 그것은 아날로그로 표현되는
농경사회적 감수성을 기저에 둔다.
결국 권혁찬 씨에게 표를 던진 것은 씨가 노정균 씨에 비해 월등한 시적 성취를 보였기 때문은 아니다. 보기에 따라서 노 씨의 문장이 더 매끄럽고, 이미지의 鮮度도 더 인상적일 수 있다. 까닭은 권혁찬 씨의 박진감 있는 리듬을 타고 흐르는 이미지와 진정성의 폭과 울림에 점수를 둔 데 있다.
“수입소와 광우병 사이에서 네발 가진 모든 먹구름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더 식음을 전폐했고”나,
“뒷산 아카시아가 밥물처럼 허옇게 끓고 있다”(이상 「워낭소리」)는 손끝의 재주만으로 다룰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이는 씨가 한낱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워낭소리’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은근하고 깊이 있는 빛깔을 지닌
자기 목소리를 낼 가능성을 드러낸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이하석, 오태환, 우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