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리 모두는‘오님이’를 노래하듯 외쳐 부르며 양회다리위에서 첨벙 첨벙 아래 물속으로 뛰어내렸고, 그녀는 우리들에게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리가 뛰어내린 그 다리 위를 유유히 지나갔다.
그날 우리 벌거숭이 개구쟁이들은 온종일 물놀이에만 열중하다가, 붉은 노을이 강 주변에 깔릴 즈음에서야 하던 짓들을 마치고 충혈 된 벌건 눈들을 하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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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들과 만날 때면 그녀는 의례히 우리 가운데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나 혼자 멍청히 있을 때에도 그녀는 내 앞에 또렷이 그리고 자연스레 다가온다.
이렇듯, 어릴 적 추억을 들추기라도 하면 그녀는 얼른 우리들, 혹은 내 앞에 다가왔고, 그때, 우리 곁에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녀 즉, 오님이 가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아담하고, 소박해서, 그래서 더 예쁜 꽃 채송화처럼 그녀는 나에 아름다운 추억의 꽃밭에서 항상 다소곳하게 피어있다.
내가 언제부터 오님이 를 알았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다만, 어린 내가 스스로 걸어서 동네 신작로에 갈 수 있었을 때, 그 곳을 지나가는 그녀를 보았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녀는 동네 신작로를 따라 어디론가 갔다가 오후 즈음 다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녀가 사는 곳은 남쪽, 읍으로 가는 신작로를 따라 마을 두개를 지나면 까치재가 있었고, 그 재(고개)아래 초가 몇 채 달랑 있는 외진 동네라는 것 외에는 그녀에 관한한 더 이상 안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또한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
오님이 는 미인이거나 부자거나 아니며 다른 특별한 재주가 있는 여자가 아니다.
그 당시 25세 정도의 150센티가 절대 넘지 않은 작은 키, 깡마른 체구에 그을려 검은 얼굴, 겁이 조금 있을 것 같이 보이는 토끼처럼 둥그런 눈, 목 언저리 동전도, 소매 깃도, 때로 절은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그리고 코가 있는 검정 고무신, 거기다 오른 쪽 다리는 절었다.
그리고 오른 쪽 팔은 짧고, 가는 손목은 90도 안으로 굽었으며 걸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뇌성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
그런 증세로 인하여 그녀가 백치가 된 것은 어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이 우리 동네를 지나 면 소재지가 있는, 양회다리건너 마을 어디쯤 갔다가 오후 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우리 마을을 지나 자기 집으로 갔던 못생겼던 여자였다.
그녀는 어느 누구하고 인사를 한다든가, 누가 자기를 간섭한다든가, 혹은 조그마한 눈길 한번도 서로 주고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설령 예쁜 아기가 앞에서 귀엽게 아장아장 재롱을 떤다 해도, 지엄하신 동네 어른이 무게와 품위 있는 걸음으로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가도 도통 묵묵부답이고 바늘귀만큼도 관심이 없다.
고개를 다소 숙인상태에서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앞발치 에만 눈을 고정하고, 감정이라곤 전혀 없는 기계마냥 규칙적인 동작으로 걸어 목적지를 향해 갔다가, 마음이 내키면 거기서 되돌아 집으로 간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주변에서 생소한 일이라도 생기면 (신기한 차가 지나간다든가 혹은 상여라도 지나가면)고개를 돌려 구경할 만도 하고, 감정 변화에 따라 조금은 천천히도, 아니면 빠르게 갈 수도 있을 만도 한데 전혀 흩트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장터나 밭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그녀가 항상 다니는 그 길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그녀를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오님아, 내가 중매해주련? 호호호” 때로는 우물가에서 동네 아낙들이 때 마취 지나치는 그녀를 보며 마구 떠벌이며 속을 헤집어놓아도 그들에 관한한 상관은커녕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사람의 인격적 테두리 안에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이웃동네 개만큼이나 무관심한체로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마치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 신상에 대해서는 알 턱이 없는 몇 가지 추측만 있을 뿐, 무엇이 그녀를 거기에 가게끔 하는지, 꼭 가야할 필요는 있는지, 아니면 무슨 생각을 하며 걷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떤 사람은 면사무소 직원을 짝사랑하여 그 남자를 보기위해라고 하지만, 맞는 말이 아닌 것은, 일요일도 명절 때도, 공무원이 쉬는 날 인데도 그녀는 틀림없이 거기에 갔다.
더러는, 6.25 전쟁 때 인민군이 총부리를 들이대어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하지만, 그도 맞지 않다.
그 말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당시의 악몽을 회상하며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등, 상당한 증세를 보여야 하는데 그녀의 그런 환각증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변함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동네를 지나칠 뿐이다.
한겨울 냇가에서 썰매를 타고 놀다가도 그녀가 지나가면 “오님이! 오님아! 키키킥,” 우리는 그녀를 놀릴 때 마다 즐거웠고, 좀처럼 우리에게 대꾸하는 법이 없는 그녀는 우리의 친구이기도, 아니기도 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간섭하는 것을 무반응으로 대항하며 싫어했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린 우리 개구쟁이들은 틈만 나면 그녀를 놀렸으며, 그때마다 얼마만큼 더 짓궂게 놀려야 반응을 할까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혹, 초상난 집이라든가 잔치가 있으면 동네 사람 모두가 십시일반 돕고 음식을 나누며 하다못해 멀리 사는 비렁뱅이들도 어떻게든 알고 찾아와서 한구석을 차지하여 분위기에 편승하기 마련이다.
그네들 끼리 한상을 받아, 그날만은 찬밥 쉰밥 땟거리 걱정 않고 배를 두들겨가며, 쌀밥에 어디 고깃국뿐인가! 떡도 가지가지 꾸역꾸역 뱃속을 채우기 위해 너도나도 모여들어도, 오직 오님이 만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 사람들의 놀림이 싫어서다.
언젠가는 동네 어른이 젊은이를 나무라면서 “예끼, 이놈! 오님이 서방이나 해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말이 의미하듯이 그녀는 누구로부터도 정상인의 취급을 받지 못했다.
하루는 마을 공터에서 동무들이랑 놀이를 하며 노는데 마침 그녀가 신작로에 지나가고 있었고 우린 심술부리기로 했다.
“오님아 놀~자 !! 히히히” 우린 합창을 부르며 그녀의 뒤를 따르며 놀렸다.
그렇게 놀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 갈길 만 재촉하자 이번엔 더 큰 심술을 부리기로 하고 각기 작은 돌멩이를 주워 그녀에게 던졌다.
그런데 ‘맙소사.....이런!!’
우리들이 던진 돌 하나가 그녀를 맞혀 버렸고, 우리 모두는 큰 죄를 지은 범인처럼 가슴이 덜컹 주저앉았다.
사실 우리는 놀리기만 하려했지 맞출 의사는 전혀 없었다. 정말 그랬었다.
그녀가 뒤를 휘익 돌아 화가 난 얼굴로 우리를 향하여 불평을 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이내 다시 돌아 울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날 그녀는 분명히 큰소리로 울면서 갔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우린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겁에 질린 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어찌할 수 없었다.
첨엔 그녀의 화가 난 얼굴을 보며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얼마나 참기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울면서 화를 냈을까!’ 하는 생각이 번개의 섬광처럼 머리에 스치는 순간.
그때까지 한번도 그녀에게 느껴보지 못한 연민의 정 같은 것이 갑자기 내 마음속으로부터 부풀어 커지면서, 정당하지 못했던 나의 나쁜 짓을 반성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녀를 놀렸던 지난 잘못한 일들을 후회하며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고 굳게 마음 다짐을 했고, 그 후론 정말 하지 않았다.
그녀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가난하고 못생기고 게다가 절름발이에다 지능이 낮다고, 그래서 너무도 보잘것없다고, 해서, ‘사람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며 차별했다.
아이들이 동네어른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야단을 쳐도, 어린 우리들이 오님이 를 놀리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즐거워했다.
우리뿐 아니라, 그녀를 놀리는 것은 상급학생일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집요하고 대담했으며
누구하나 안타까워하는 이가 없었고 마치 동네북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했다.
그리고 마치 상것이나 된 것처럼.... 아니 상것이나 머슴도 아무리 열등한 사람들도 그녀에게서만은 만족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철없는 아이들이 그녀를 괴롭히면 지각 있고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말렸어야 했다. 다분히 그랬어야 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우리 철부지들이(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그녀를 얕잡아보고 놀렸던 배경에는 동네 어른들이 그녀에게 갖고 있는 이런 편견과 차별된 시각과 의식들이 두텁게 깔려있었다.
그녀가 당한 이유는 순전히 지능이 낮은데 기인한다.
그리고 자신을 놀리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이성적으로 대항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며 미천하게 보았을지라도 앙심을 품은다거나, 그것으로 인해 감정에 동요가 있다거나 하여 어떤 행동을 취할 만큼 판단이나 분별능력이 없음을 철부지 우리들도 알고 있었다.
강자만이 돋보이는 세상에서, 돈 많고 힘 있는 자에게 아부할 줄도, 가난하다고 비굴하게 굴 줄도 모르는 것은 분별력이 확실히 떨어진 그녀에겐 누가 보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모든 일에 있어서 분수껏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면장의 명예나 권위도 관심 밖이었다.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놀림을 당했다.
항상 보였으면서도 또 볼 수 없었던,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먼 곳에 있는 그녀는 마치 이방인처럼 행동했고 그녀에겐 모든 사람들이 어색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한가지, 자기를 ‘내버려두라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그녀가 매일 가고 오는 그 길을 왜? 무엇 때문에? 같은 장소를 가고 오는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도 모를 수 있는 일이다.
단순히, 그리고 막연히 거기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독특하고 기괴한 일상의 습관이 사람들의 머리에 속에 무엇으로 각인되어,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든, 그리고 자신과의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건 정작 그녀 입장에선 의미가 없었다.
눈보라가치거나, 혼인잔치도, 상여도, 하늘의 별도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다름 아닌 운명적으로 선택되어진 그녀의 고유한 행위이고 몫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그리고 그것이 그녀자신에게 충분히 중요하고, 그것으로 인생의 보람을 찿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뉘든 이러한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당연히 존중해 주었어야 마땅했다.
여기서 ‘존중’이란 그녀에 관한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먼발치에서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가까이 오는 법이 없었다.
우열을 가려야만 속성이 풀리는 인간의 틀 속에서, 오염된 인간들이 만든 힘의 굴레와 그 참을 수 없는 질서 속에서 연약하다 못해 미약한 자신을 간신히 추스르며 묵묵히 자신만의 공간에서 침해받지 않고 살기를 원했던 오님이었다.
첨엔 그녀도 이웃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시도도 해보았을 것이다.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은 따돌림 속에서 자신이 설자리가 아니거나 혹은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자신의 방법 즉, 사람을 피하면서 사람 속에서 사는 방법이었다.
그녀 입장에선 단연코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곁에 있고 싶었지만 두려운 나머지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람 곁을 떠나 살지 못했던 그녀는 멸시와 천대 속에서 외로운 인생을 살면서도 정말 어린 아이 만큼이나 순수했다.
아니 천사만큼 순수했다.
예수는 ‘누구든 천국에 이르려면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고 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의미할게다.
살아있는 사람 중 어느 누구보다도, 혹은 어느 성직자보다도 그녀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싶은 것은 그녀의 이런 순수함 때문이다.
큰 선을 위해선 적은 죄를 범해도 된다는 괴변을 늘어놓는 어느 성직자보다는 그녀가 더 순수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는 사물을 보이는 그 자체로만 이해했고 어떠한 경우에도 별다른 감정이나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 틈 속을 들어갈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공간에서만은 편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사람들은 그것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배우지 못해 지식은 없었어도, 그리고 판단능력에 한계로 분명한 표현은 못해도 그녀의 의식 속에서는 ‘인간이 자유롭도록 운명지어졌음’을 철학자 사르트르보다 어쩌면 더 먼저 체험하고 깊이 있게 실감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마땅히 자신이 그렇게 살고 싶다고 호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분명 그렇게 살기를 원했고, 그녀에겐 오직 그것이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누가 사람들에게, 그녀의 권리를 침해할 권한을 줬을까?(F)
bakzun.
첫댓글저도 오님이 누나같은 분이 있었죠.. 우리 옆집에 살던 누나였는데 그때 저나이 11살 누나가 25섯살쯤 .. 매일 학교 오는길에 저한테 손을 흔들고 했었는데 어린맘에 전 무서웠죠.그리고 어딘가 떠났다가 배가불러 돌아 왔죠..누나의 아기는 죽었답니다.. 우리 어머니 말로는 오님이누나 엄마가 일부러 죽여서 버렸다는 이
첫댓글 저도 오님이 누나같은 분이 있었죠.. 우리 옆집에 살던 누나였는데 그때 저나이 11살 누나가 25섯살쯤 .. 매일 학교 오는길에 저한테 손을 흔들고 했었는데 어린맘에 전 무서웠죠.그리고 어딘가 떠났다가 배가불러 돌아 왔죠..누나의 아기는 죽었답니다.. 우리 어머니 말로는 오님이누나 엄마가 일부러 죽여서 버렸다는 이
야기도 하더라구요 그뒤로 읍내로 이사온 바람에 누나를 볼수 없죠 저한테 손한번 흔들었을때 인사나 한번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이 참 좋습니다 ^^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