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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산업인산악회 최덕심 산악대장- K2 베이스캠프 등정기 | |||
“꿈에 그리던 K2 봉우리 마음에 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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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기자 dolbi.kept.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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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산업인산악회 여성팀 - 5585미터 K2 베이스캠프 등정 ‘하늘의 절대군주’라 불리는 세계 제2의 고봉(高峰) K2. 해발 8616m ‘산중의 제왕’인 K2는 세계에서 가장 긴 빙하 중 하나인 발토로 빙하와 고드윈오스틴 빙하 그리고 비니빙하가 서로 얼굴을 맞대면 8천 미터 거봉들로 둘러 쌓여 있는 세계 지붕이라 할 수 있다. 10여년 전만하더라도 발토로 빙하를 따라가는 트레킹은 세계에서 가장 힘든 트레킹 코스 로 악명이 높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도로 개설과 확장, 교량 설치로 트레킹 전문 산악인들이 즐겨 찾고 있다. 하지만 K2 트래킹 코스는 하루 7시간 이상 내내 걷는 동안 낮에는 37도에 육박하는 고온과 밤에는 영하 5도 이상까지 뚝 떨어지는 기온차이, 그리고 고소증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지난 7월 5일부터 26일까지 장장 22일 동안 해발 고도 5580m에 이르는 K2 베이스캠프 트레킹 산악 도전에 나선 한국 전기산업인 산악회 여성회원들이 나섰다. 이번 K2 베이스캠프 등정에는 최덕심 산악대장(이종성 남성기업사 대표·부인)을 비롯 정운효, 이원규, 진희자 4명의 여성회원들이 참가했다. 한국전기산업인 산악회 여성대원들의 K2 베이스캠프 등정기를 실었다. 7월 5일 붉은 노을이 인천공항 활주로를 물들일 쯤 전기산업인 산악회 4명의 여성대원을 실은 타이항공 TG657편이 서해의 아름다운 섬을 성냥갑 크기로 줄이며 서쪽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K2 베이스캠프 등정의 ‘장도의 길’을 떠나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산에 미쳐 가정과 남편 그리고 아이들에게 소홀히 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이 쏟아진다. 귀국하면 남편과 가족들에게 더욱 잘해 주고 싶다. 이번 K2 베이스캠프 등정 팀은 전기산업인 산악회 여성회원 4명을 비롯해 타 팀에서 합류한 부산서 5명, 서울서 5명의 산악인들이 합류해 총 14명으로 구성됐다. 7월 7일 방콕 현지 호텔서 쪽잠을 잔 후 등정 팀은 오전 10시 50분 TG509편을 타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이슬라마바드 도시는 한창 재건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5층 이상 건물은 손을 꼽을 정도이고 제대로 지어진 건물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시내 거리는 여자라곤 구경할 수 없고 모두가 남자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도 호텔 종업원 시장 상인도 모두 남자고 여자는 어쩌다 한 두명 눈에 뜨일 정도다. 그것도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고 눈동자만 내놓고 다닌다. 남자들은 짙은 눈썹에 턱수염과 콧수염이 길고 깊은 눈과 검은 눈썹이 좀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눈동자가 우수에 차 멋진 남자도 있지만 정감이 쉽게 가질 않는다. 저녁 식사는 란이란 빵에다 냄새가 심한 카레에 닭고기를 넣은 소스다. 현지식 쌀은 입안에서 각자 굴러다녀 도무지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K2 베이스캠프 등정이란 생각에 억지로 음식을 입에 넣었다. 맏언니인 정운효 대원은 그럭저럭 잘 먹지만 진희자 대원이 숟가락을 자주 놓아 걱정이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 활주로는 정말 신기하다. 사막위에 시멘트로 깔아 놓은 게 전부라 착륙할 때는 무척 무서웠다. 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해 어느 시골 간이역 수준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 60·70년대의 사북지역 탄광촌과 비슷한 풍경이다. 이 곳에서 영국 지배를 받았을 때 내려온 폴로 경기에 귀빈자격으로 초대받았다. 시내 남자들은 다 나와 구경하는데 여자라곤 우리 일행뿐이다. 왠지 남자들만 눈에 띄니 남·여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음과 양이 왜 필요한 지 새삼 느껴진다. 이 나라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된다. 폴로 경기는 남성들만 할 수 있는 과격한 운동이다. 말을 타고 말위에서 골프체 같은 걸로 볼을 쳐 상대방 골문안에 넣은 경기다. 하지만 폴로 경기보다 사람구경이 더 재미있었다. 스카루트 시내 남자들은 우리 여성 팀을 구경하는 것이 더 신이 난다는 표정이다. 일행이 휴식하는 허스름한 건물은 철창문도 굳게 닫혀 있고 문 바깥에는 소총을 멘 경비들이 서 있어 무서워 보였다. 또 휴게 시설도 엉망이고 희미한 백열전구 불빛은 자주 깜박이고 정전은 예사여서 이 나라의 전력사정이 무척 열악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물론 서울서 어느 정도 힘들 산행이라 생각하고 왔지만 K2 베이스캠프를 향한 ‘고생의 문’이 열렸다고 할까. 참으로 암담했다. 스카루트에서 아스꼴리까지 지프로 이동했다. 말이 지프차지 모래먼지가 다 들어오고 거기다 잡음이 많은 라디오까지 틀며 협소한 낭떨어지 계곡을 곡예 운전하는 젊은 기사로 인해 우리 팀 4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찔한 계곡을 제발 안전운전 해 달라며 팁까지 주었으나 오히려 지프 기사는 더 신나게 운전하라는 뜻으로 알고 곡예운전을 멈추지 정말 졸도 일보직전이다. 아스꼴리에 도착하니 이런 척박한 땅에서 사람이 사는 구나하는 의구심까지 드는 오지다. 잠시 짬을 내 동네구경에 나섰다. 비록 사람이 살수 없을 정도로 오지지만 밀, 감자, 옥수수 밭이 강 건너 보이는 소박한 마을 풍경이 정겹다. 150호가 사는 마을 이지만 돌과 흙으로 짓은 집이라 그냥 평지처럼 보이고 사람이 사는 가옥은 금방 눈에 띄지 않는다. 아스꼴리서 하루를 지내고 졸라캠프 이동을 위해 새벽 5시에 기상했다. 밤새 두통과 여독이 풀리지 않아 밤을 꼬박 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K2 베이스캠프 도전에 나선다고 생각하며 등정 각오와 필승을 다졌다. 앞으로 10일 동안 하루 7시간부터 12시간 걷는 트레킹 코스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트레킹 내내 빙하를 건너고 모레지대를 넘어 다시 칼날처럼 쏫아 오른 암석지대를 통과하는 힘든 여정이라 생각하니 새로운 세상을 접한다는 경이로움과 함께 두려움도 몰려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 새벽부터 텐트장은 부산한 움직임으로 술렁거렸다. 1인당 18Kg 짐을 멘 90여명의 포터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등정 길을 재촉한다. 포터의 짐이 18Kg 무게가 초과하면 우리 일행이 오버 차지를 낸다고 해 서로 짐을 옮겨 배낭에 담았다. 동네 어귀를 나와 트레킹을 나서는데 정말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나시 티셔츠를 입고 썬 크림을 팔에 바르고 다시 긴 남방을 겹쳐 입었다. 황량한 산봉우리와 돌무덤이 앞으로의 등정 일정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해발 3100m 높이의 시가르 계곡을 따라 하루 10시간씩 7일 동안 100Km를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 기다린다. 이 코스는 사람 한 두 사람이 몸을 맞대고 지나칠 수 있는 좁은 비포장 길과 무시무시한 협곡, 발밑이 아찔한 절벽 아래 불어난 빙하물이 흐르고 그 위에 나무를 대충 로프에 매단 다리를 여럿 건너야 했다. 차가운 빙하가 흐르는 절벽사이를 걸어 갈 때는 정말 아찔한 긴장감이 돌아 나도 모르게 몸을 움추려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건 지옥훈련 하러 온 것 같고 온도계를 보니 기온 35도. 그늘이라곤 한 뼘도 찾아 볼 수 없는 돌 자갈 사막이라고 할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생활이 그립다. 9시간만의 트레킹 끝에 간신히 30여 포폴러 나무가 군락을 이룬 졸라캠프에 도착했다. 졸라캠프장에서 텐트를 치고 뚫어진 천막으로 만든 간이 샤워장을 설치했지만 고소증 때문에 어지러워 도무지 샤워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진희자 대원 둘이는 용감하게 샤워를 마치고 텐트 속으로 들어오니 고봉으로 쌓인 설산이 너무 멋져 보였다. 정말 새삼 한국에 남아 있는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설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북두칠성, 은하수와 이름모를 샛별들이 수를 놓아 장관을 이뤘다. 여성 대원끼리 소주 한잔을 걸치며 긴 여행길과 세상사에 대해 소담을 나눴다. 물론 우리나라 소주맛이 이렇게 달콤하긴 처음이고 이런 행복한 소주 파티장이 있을까. 포터들도 저녁만 되면 북을 치고 춤추고 노래하면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다. 다음날 점심에는 염소를 잡는다고 포터들이 바삐 움직인다. 파키스탄 국립공원 법에는 포터들한테 이틀에 한번 휴식을 취해주고 반드시 육(肉)고기를 먹어주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 그만큼 짐을 메는데 힘이 들어서 영양보충과 휴식을 해주는 것 같다. 실은 트래킹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18Kg에 짐을 메고 나서는 포터들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잠자리라고 해 봐야 돌로 바람을 막고 비닐을 깔고 영하 5도의 추운 날씨를 견디며 그대로 잔다. 식사라고 해 봐야 란 빵이 고작이다. 3천 미터에서 4천 미터의 추운 설산을 슬리퍼가 아니면 고무로 만든 운동화를 신고 눈을 밟으면 오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보름동안 돈벌이를 나와선 지 밝은 얼굴 표정들이다. 한창 공부할 젊은 청년들인데 나라가 가난하다보니 생존을 위해 저렇게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60~70년대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어려운 생활상이 주마등처럼 스쳐 눈물이 흘렸다. 우리 일행은 불쌍한 포터들한테 일부러 건빵을 얻어먹고 서울서 가져온 스카프, 양말, 신발, 옷 그리고 각종 필수품을 건네주니 너무들 좋아했다. 트레킹을 나선지 나흘을 지나자 처음으로 고도 4050m인 호부체와 우르드까스를 지나 고로2, 콩고르디아 지역을 통과하면서 고소증과 어지러움, 구토는 정말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조차 후회할 정도로 괴롭혔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발토로 빙하지역에 접어들었다. 이 지역은 쉽게 부서지는 잡석과 돌무더기 빙하 길을 지나는 위험한 낙석지대이다. 현지 가이드 와지르가 위험하다고 계속 말을 한다. 따가운 햇볕은 바늘로 꼭 꼭 찌르는 느낌마저 든다. 여성 대원들은 서울 홍제동 맥주집서 마시던 호프 한잔이 그립다며 소리를 외쳐댄다. 트레킹 동안 기온차가 심한 빙하 자갈위에 곱게 피어있는 분홍 바늘꽃 군락은 힘들고 지친 등정 길에 나선 우리들에게 즐거움과 자연의 신비로움에 전해준다. 빙하 위를 따라 걷는 건 너무 힘이 든다. 크고 작은 크레바스를 수십 개를 건넜다. 빙하 위에 쏫은 빙상덩어리와 크레바스의 멋진 장관에 잠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남극에 와 있는 것처럼 멋진 장관에 한 마디로 ‘감탄’이란 단어를 연발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가져 온 라면이 점심특식이다. 비를 맞으면서 빙하위에 식탁을 차려놓고 먹는 라면 맛은 천해진미를 차려놓은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다. 발토로 빙하 위에서 텐트 치고 자는 내내 침낭은 물에 젖어 몸이 솜처럼 무거웠다. 도무지 아무리 잠을 잘 자려고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고로2지역에서 콩고르디아 지역까지 오르는 동안 몸이 너무 지쳐 점심도 거르고 걷고 또 걸었다. 10Kg은 되는 것 같은 납덩어리를 묶어 놓은 것처럼 한 발짝 옮길 때 마다 너무 힘이 든다. 날은 추운데 왜 이리 생리작용은 자주 나타나는 지, 눈보라 속에서 아래를 노출하고 해결한다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다. 7월 16일 콩고르디아 콩고르디아 텐트 바로 앞 K2 봉우리가 떡 하니 버텨 서 있다. 구름에 덮여 보일랑 말랑하지만 거봉답게 너무 웅장하고 멋지다. K2 베이스 캠프 등정에 앞서 여기까지 멋도 모르고 끌러온 염소 한 마리가 우리들의 저녁만찬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 염소는 우리 일행이 5585m 베이스캠프 등정 체력을 다지기 위한 산 아래부터 끌려 온 것이다. 불쌍하다. 저 염소 운명이…. 맛있게 요리된 염소고기가 나올 때 그야말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놓았다. 모두들 환호성이다. 소주 두병에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염소 요리 식탁에 올려진 소주에 여성 대원들이 서로 소주병을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다. 7월 17일 마침내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3일째 하늘의 절대군주로 불리는 K2 베이스캠프 등정에 나서는 날이다. 하지만 지난 밤 텐트가 한쪽으로 기울일 정도로 눈이 내려 오늘 베이스캠프 등정 일정이 미뤄질 수 있다고 말이 들려왔다. 일순간 우리 일행은 얼굴빛은 흙빛으로 변했다. 여기까지 와서 베이스캠프까지 올라 갈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다행히 눈이 조금씩 그쳐 오전 7시 40분경 마지막 목적지인 베이스캠프를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지난 밤 두통이 심해 약을 먹고 잤지만 잠이 오지 않아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베이스캠프까지는 5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자갈돌에 돌무덤 크고 작은 크레바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베이스캠프가 다가 갈수록 새로운 빙하덩어리가 나타나 우리 일행을 괴롭혔다. 온갖 악전고투와 장애물을 극복하고 마침내 오후 5시경에 꿈에 그리던 K2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에는 먼저 도착해 K2 정상 도전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 K2부산원정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국내서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한 여성 산악인으로 유명한 고미영 산악인도 K2정상 도전을 위해 베이스캠프에 와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K2 부산원정대와 함께 한국서 가져온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부산원정대 홍보성 대장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눴다. 9시쯤 취침에 들어갔으나 텐트 안이 꽁꽁 얼어 오리털 등산복을 입고 자는데도 무척 추웠다.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뜨니 K2봉우리가 선명하게 빛을 발했다. 한마디로 신이 빚어 놓은 K2봉우리. 우리 일행에게 K2 길을 활짝 열어 준 히말라야 신께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날 K2부산원정대의 정상등정을 기원하며 5585m인 곤도고로라 지역을 넘어 하산길에 나섰다. 아름다운 초원과 야생화 꽃으로 유명한 셰이초-후쉐마을를 거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거쳐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인천공항에 입국하면서 K2부산원정대가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K2의 남동스퍼(일명 아부르찌루트)를 통해 정상에 올랐다는 쾌거를 들었다. 진심으로 한국 산악인들의 기개에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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