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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추석은 좀 길어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피치항공의 저가 공세에 힘입어 오사카 4일을 실행에 옮겼다. 좋은 계절에 맘에 맞는 친구와 둘이
무식한 사람 손발고생한다고, 책 사볼 생각은 안하고 인터넷만 뒤지다 보니 계획이 이리저리 엉키다 떠나기 1주일 전에 후배가 준 책을 보니, 쿄토는 동서남북을 나누어 하루씩 보는 것이 적당하단다.... 즉, 욕심을 버려야함을 1주일 전에야 알게되었다. 그래서 오사카, 쿄토, 나라의 일정은 아주 단촐하게 짜게 되었다.
10시비행기라 7시 30분에 인천에서 선배와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 이번 여행은 둘이 떠나는 조용한 여행이었다. 원래 말이 없는 선배와 말 많은 후배. 후배가 떠들면 선배는 듣고 씩 웃는 조합이다. 말없고, 행동은 빠르며, 길눈이 밝은 선배는 나의 좋은 여행파트너였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 2터미널은 피치항공 전용터미널로 난바행 기차를 타려면 셔틀을 타고 이동해야했다. 남의 나라 정거장 이름 외우느라 소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냥 물어보며다니지 뭘 그리 아지도 못하는 역명이며 갈아타는 곳 외우느라 고생을 했는지....이 시대는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무엇을 취사선택해야할지 미리 정하고 정보를 탐색해야한다고 했던가.
출구가 32개라는 난바역에 내려 대강 어림잡아 출구에 나오니 일본이다. 도톤보리쪽으로 길을 잡아가다가 시장스시라는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촌스럽고, 싼티나는 집이지만 맛은 그런대로. 며칠 있어보니 시장스시는 체인점인 듯, 도톰보리에서도 몇 개 보았다. 점심값1700엔으로 여행을 시작
대강 어림잡아 호텔로 찾아들어갔다. 난바역에서 가까우며 중간정도의 호텔을 정하였더니, 일본 호텔치고 너무 좁지않아 좋았다. 어떤 날은 한국어 유창한 직원도 있다. 우리가 묻는 것은 대강 무엇을 타고 어떻게 가냐고 묻는거니 뭐 한국말 유창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첫 여행처는 오사카성. 나의 쪼잔함은 조금이나마 더 걷기 싫어서 묻고 또 물어서 정확하게 오사카성 앞. 해자와 일본 성곽의 그 사다리꼴 축성이 일본에 왔구나 확 느끼게 한다. 거기까기 쉬지않고 빠른 걸음을 걸었더니, 기운이 쑥~ . 아 이제부터 아름다움도 신기함도 눈에,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서 누어야겠다.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마음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동행을 재촉해 불켜진 천수각도 못보고 집으로... 니폰바시역에 내려 난바워크라는 지하상가에서 대강 돈부리와 우동을 먹고 나니 나의 쇼핑목록, 스피치오 샵이 내 앞에 있다. 갑자기 기운 생동! 스피치오를 한국에서의 1/3정도의 가격으로 사들이고, 동행도 마구 부추켜서 한 벌 사들고 언제 그리 힘들었냐는 듯 호텔로... 그날 밤은 잠꼬대로 동행을 괴롭히는 밤이었다. 아침에 못 일어날 것처럼 힘든 밤을 지내고 나니 아침에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은 호텔조식부페로. 1300엔/1인, 음, 빵들이 맛있다. 스크렘블드에그는 아주 맛있어 두 번이나. 작은 빵 두 개를 얼른 가방에. 인터넷에 의하면 오늘 가는 곳에는 밥집이 없어 뭐 사가지고 가야한다나... 참 어제밤에 세일하는 빵 350엔 어치 사서 넣었지만, 새모이 만큼 먹는 동행의 눈치가 보여 얼른 내 몫을 더 챙긴 것. 아 나는 왜 이리 많이 먹는지... 요걸 좀 적게먹으면 우아해보일텐데... 이 호텔 조식부페는 나가는 곳에 에스프레소머신과 테이크아웃용 커피잔을 놓아두고, 1인 1컵씩 자유로이 가지고 나가시라고 써있다. 와! 좋다. 그리고 커피맛도 제법 좋다.
오늘 일정은 금각사, 료안지, 시간이 남으면 기오미즈데라. 니폰바시역에서 쿄토 가와라마치역까지는 한 시간 이내에 도착. 우리출발시간은 9시. 내가 꾸물꾸물대어서 이제야 출발. 간사이스루패스 오늘은 본전생각이 안나는 날. 역무원에게 묻고 또 물어 정확하게 승차. 나는 꾸벅거리고, 동행은 열심히 역을 챙긴다. 일본 전철과 버스에서 일본 사람들에 대한 느낌은 전체적으로 젊잖다는 느낌이 들고, 아주 예쁜 사람도, 아주 못생긴 사람도 없고, 특별히 세련된 옷차림도, 누추한 옷차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살집이 넉넉한 사람도 없고, 너무 마른사람도 없어보였다. 4일간 전철과 버스 안에서 느낀 느낌이지만, 그것이 일본스러움인가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련되게 입고, 새 옷을 입는다고 누가 말했듯이. 50대쯤 보이는 사람이 많았는데, 자세히 보니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보였다.
금각사는 전에 여행할 때 들르지 않은 곳이었다. 일본의 많은 소설의 배경이었지만, 난 일본 소설은 잘 읽지 않았으며, 금각사라는 이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유홍준선생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에, 들어가는 길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져 있다고 했고, ‘시각적 관능미’라고 소개 하였기에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 가보기로 하였다. 유선생님의 안목을 바탕으로 모든 유적을 봐온 내 수준을 다시 한 번 확인할 겸. 그렇지만 시즌이 학생들 체험학습시기인 듯, 많은 아이들로 붐비고, 중국인관광객까지 합해 사람이 많아 고즈넉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늘 어딜가나 고즈넉함을 최우선으로 함으로. 금각사는 상상보다 단아한 아름다움이었다. 유선생님 표현대로 ‘눈발 속에서 빛나는 금각은 마치 흰사라를 휘날리는 아름다운 자태를 연상케 했다’는 표현을 마음속으로 되뇌어볼 뿐. 크림트의 그림을 건축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금각사 가기 전에 상국사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잘 살펴가며 보았으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을 했다.
금각사를 나와 버스를 타고 가까운 료안지로 갔다. 저번 쿄토여행에서 둘 다 가보지 못한 곳이다. 그 때는 우리나라 삼국문화가 영향을 끼친 일본문화재를 중심으로 찾아다녔기 때문에 빼 놓았었나보다. 유선생님 책에 의하면 존케이지도 극찬했다고, 그리고 나도 카레산스이를 보고 싶었다. 가장 모범이 되는 것으로.
거기는 사람이 좀 적었다. 방장에 있는 층계에 나에게도 앉을 자리를 내어줄 만큼. 일단 절의 문을 지나면 바로 방장 건물과 카레산스이가 펼쳐진다. 바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온 세상이 다 평온하다. 전에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 그 맛이 느껴지지 않더니 여기는 참 좋다. 낮은 돌담이 이 분위기를 살린다고 누가 했던가. 아, 이래서 좋다고 하는 구나. 방장현판과 어우러져 참으로 이 정원이 더 잘 사는 듯하다. 현판은 그냥 통나무를 켜서 그곳에 잘 어우러지게 방장이라 쓰고 아무런 장식없이 툭 걸어놓았는데, 이 것이 일품이었다. 한 참 앉아있는데 옆에서 여자아이 둘이 장난치며 시끄럽게 군다. 아, 이 아이들아 나는 60년 만에 온 사람이란다. 제발 좀 조용히 해주라. 또 좋은 계절에 다시 꼭 오리라 생각한다.
정원을 지나면 절의 다른 정원을 죽 돌아서 밖으로 나오게 되어있는데, 그 어디도 정갈하고 뒤쪽을 돌아가봐도 지저분한 것을 잘 정리해 놓은 일본 절이다. 참 부럽다. 예쁜 길을 아직도 취한 맘으로 나오는데, 아주 예쁜 밥집이있다. 우리는 빵을 뜯어먹었는데, 참, 젊은이들은 이 집에서 밥을 안먹어도 되지만, 우리 50대는 호사 한 번 해도 되는데. 그 빵을 안 먹었으면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은 예쁜 집이 있었다. 아쉬움을 다음으로 넘긴다.
시간이 기오미즈데라를 좀 빠듯하지만 갈 수 있었다. 내 수준으로는 집에 가고 싶으나, 동행은 쿄토가 처음이니 기오미즈데라를 가고 싶을 것이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니넨자카를 걸어서 부지런히 청수사를 찾았다.
20년 전 친구들과 같이 한 쿄토여행의 처음 날 새벽같이 이 길을 오르며, 해외여행자유화의 기쁨을 누렸다. 우리 젊은 시절은 해외여행은 꿈꾸기 힘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해외여행자유화라는 단어도 첨 듣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멘홀뚜껑도 예쁘게 채색되었있는 고도 쿄토는 일본에 대한 인상을 확 바꾸어 놓는 계기였다. 나는 에도시대의 일본, 노면이나 가부키, 니코로 일본에 대한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기오미즈데라는 고즈넉하게 내맘에 자리잡고, 일본 절은 어찌 저리 새 부속건물을 지어도 전통에 어긋나지 않게 지었을꼬, 저 관리인들 복장도 어찌 그리 전통과 편리함의 적절한 디자인을 골랐을꼬 하며 극찬해 마지 않던 절이었다. 이번에는, 니넨자카 앞부터 차들은 밀리고, 그 사이를 예쁘지 않은 기모노를 입을 젊은 여인들이 떠들며 올라가고, 관광객과 뒤엉키고 그 많은 집들에선 호객을 하고, 우리나라 절집 올라가는 거랑 다를 바 없었다. 시간이 적어 부지런히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가니, 아, 그 고요하던 절집은 어디가고 공사 중인 공간을 사람들에 밀려 다니고 있었다. 그 무대 아래의 예쁜 결구들도 하나도 안 예뻐보인다. 인연석이 여기에 있던 거였구나, 이 곳에 와서 빌면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속설이 있나보다. 기모노 입은 젊은 학생들이 빼곡하다. 그래도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는 젊은이를 본다는 것은 어느 나라의 일이건 아름다워 보인다. 참. 며칠 전 북촌에 갔더니 우리나라 젋은이들도 한복을 빌려입고 북촌을 다니고 있었다. 참 곱고 흐뭇한 일이었다.
기오미즈데라에서 피천득의 인연이 생각났다. 아사코와의 세 번째 만남은 아니만났어야했다는 말이. 기오미즈데라는 추억 속에 그냥 두었어야 했다.
기오미즈데라에서 오사카 오는 기차를 타야하는데, 이게 사람들에게 물어도 그냥 30분 걸어가란다. 참! 거의 30분을 걷다보니 아까 처음 타려고 했던 버스를 타고 다른 이름의 역 앞에 내리면 3분 거리인데, 쯧. 걷다가 배고파 아무집이나 들어가 우동과 돈부리를 먹고, (평소에 우동을 좋아하던 나인데, 이번 여행서는 늘 비싼 돈부리를 먹고 있음)
오사카 우메다 역에서 내렸다. 오늘 쇼핑계획은 구테 데로와 가또러스크. 한신백화점 지하에 있다나. 우메다역에서 한신백화점은 묻고 또 물어서 찾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쵸콜릿 코팅은 내일부터! 참. 내일 또 올 수는 없다. 그게 날이 더우면 쵸콜릿 코팅이 흘러내리는 고로... 그냥 프레인으로 사고 돌아서다가 보니, 과일도 비싸고, 과자도 비싸고,... 택스리펀 받으러 2층 갔다가, 우산겸양산 세일을 하기에 1000엔짜리 가벼운 것으로 하나 샀다. 오늘 일정 끝
3일째, 나라의 동대사와 호류지 가는 날!
오늘도 동대사에 밥 먹을데 없다는 인터넷을 굳게 믿고, 편의점에서 김밥을 두줄 샀다. 400엔과 270엔. 그것을 들고 다니는데, 그 사슴들 땜에 먹을 곳이 없다. 무겁기만 하고, 쯧, 동대사에서 나오다 또 예쁜 집 발견, 소바야. 그래 20년 전에도 저런 집에서 먹었는데, 왜 없다는 게야. 아고 저 예쁜집에서 소바 먹고 싶다.
동대사는 나라역에서 버스를 타면 되었다. 그런데 이 날은 꼭 관광안내소를 다녀왔어야 했다. 나라에서는 간사이쓰루패스가 통용되지않고 나라버스1일권을 사면 500엔이면 될 것을 계속 190엔을 내고 타고 다녔다. 쯧.
동대사에서 내리니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돌진하는 사슴도. 내 백에 든 도시락 냄새를 맡으며 쫒아온다. 엄마야~
동대사의 그 우람한 금강역사상은 다시 멋지게 나를 맞는다. 예전에는 앞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호류지의 금강역사상이었다. 한 분은 수리중이고. 처음 이 인왕상이 주는 디테일한 표현은 나를 압도하여 지금까지도 일본미술하면 먼저 떠오르는 분이다.
동대사특별전시관에 먼저 들르니, 통합권을 800엔에 팔고 있다. 짐은 코인락카에 넣고 한적하게 일광보살 월광보살도 보고, 등롱장식도 보고, 참 좋다. 화장실도 좋고, 비도 안 맞고. 어제 산 1000엔짜리 우산 잘 쓰고
이제 동대사 대불전으로 가는데, 짐을 락카에 두고 갈까 아니면 다른 길로 나올까? 참 일본어실력이 고기까지는 안되는 안타까움. 그냥 들고가자. 아! 나올 때보니 이 길로 나온다. 담에는 락카에 두고가자.
동대사 대불전, 예전보다는 사람이 적은 날이다. 무료 해설사가 있기에 한국어 가능하냐했더니, 한국어를 엄청 못하는 할아버지 해설사가 오신다. 저 지붕의 양식이 뭐냐고 물으니 가라양식(당양식) 이란다. 그랬었나??? 계속 이 지붕의 양식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불전은 여전했다. 대단한 불상들이 많기도 하고, 자연채광으로 잘 보이기도하고, 엄청난 크기가 압도하고, 아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빌며 기둥사이를 넘나들고, 좌대의 앙연에 만다라를 하나 커다랗게 재현해 놓은 것 하며, 한 중 일 삼국 문자로 나가는 곳 써 놓은 것도 여전하다. 이월당과 정창원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잠시 망설였다. 정창원은 8세기 부터의 보물창고로 우리나라 신라의 중요한 문건을 가지고 있는 곳이어서 전에 왔을 때는 그 주변을 한참이나 서성였었다. 유선생님책에 의하면 이월당 건물이 무척 아름답다는데..... 아, 내 힘은 호류지 갈 만큼 밖에 안남은 듯. 돌아서자. 다음을 기약하며.
호류지 가는 버스를 타러 내려오는데 지도를 가만히 보니, 특별전시장을 끼고 도는 길이 지름길 같다. 그리로 가는데, 참 탁월한 선택, 일본의 전형적인 마을 길이었다. 정갈하고 예쁜, 사설미술관도 있고, 참 그 근처는 예전에는 모두 동대사였는데, 메이지유신 등 근대화를 겪으며 일본도 많은 시련이 있었던 듯, 동네가 되었단다. 지나가는데 예쁜 정원의 입구가 보인다. 메이지 유신 쯤에 개인소유가 되었는데 그가 외국인에게는 무료로 개방한다고 써있기에 들어가보았다. 나의 이번 베스트완은 료안지고 또 하나 꼽으라면 이 정원이다. 가야부키로 지붕을 얹은 다실도 있고 기다리는 조그만 초옥도 있다. 여기서 느긋하게 일본 정원을 즐겼다. 이끼가 아주 잘 자라고, 이끼정원이라고 이름지어진 곳도 있으니 습하긴 한가보다. 요기서 그 도시락을 까먹고 싶었지만 “다메데스”라는 단호한 관리인의 일갈. 그 편의점 도시락을 아직도 들고 정원을 나와 호류지행 버스를 타러가는데, 그 길목에 예쁜 “소바야”라고 쓴 집이 있다. 정겹고, 앙증맞기까지 한 그 집을 도시락 때문에 지나려니, 인터넷이 원망스럽기조차. 그 도시락이 계속 문제였다. 어디 앉아서 먹을 곳이 없다. 비는 오고, 좋은 자리는 사슴들이 달려들기 쉬운 거리에 있고, 결국 비 맞으며 시립미술관 앞마당에서 먹었다. 맛은 좋더라.
호류지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시간이 모자라 택시도 타고(7500원 10분쯤 탔을까?) JR도 타고, 버스를 타고 간신히 마지막 입장시간 조금 남기고 들어섰다. 남대문이 품위있다. 중문의 두 금강역사상이 우람하게 나를 맞는다. 사람은 없고 고즈넉하니 좋다. 여전히 아름다운 5중탑! 유선생님 말씀이 한국의 탑은 일정한 비율로 전체적으로 체감하여 상승감을 주고, 일본의 탑은 땅에 궅건히 틀고 앉은 장중함을 준다고 하더니 실감난다. 맨 아래층의 작은 지붕은 후대에 덧달았다니 그걸 빼고 보니 이해가 간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어서 오중탑 안의 그 부조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20년 전 친구들과 같이 갔을 때 부처열반상 앞에 앉아서 오열하는 제자상을 보고 내가 웃고 있는 것 같다고 한 생각이 난다.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이 닯았다는 생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 친구들과 사랑하는 여인과 같이 수영을 즐기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물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리얼하게 살려달라는 표정을 짓자, 호숫가의 친구도 사랑하는 여인도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며 즐겼다. 그런데 그 남자는 정말고 괴롭고 힘들게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중이었다. 친구들이 웃음을 멈추었을 때 그 남자는 더 이상 물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년 전의 그 불상은 아직도 나를 그 모습으로 맞고 있다.
법륭사의 회랑은 어느 회랑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권위있다고나 할까. 품위있고 기분 좋다. 회랑의 창살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아보이는 듯.
대보장전에는 백제관음이 늠늠하게 서 있다. 앞에서 보고, 옆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니 참 당당하다. 그 날렵한 아름다움이 참 좋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또 쇼토쿠태자상이 즐비하다. 그 중 7세상이 참 귀엽다. 내가 이게 나의 이번 베스트 일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른 상들이 모두 신격화된 상이라면 이 7세상은 그저 예쁜 어린아이의 상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예쁜 일본어린이상이다.
호류지는 여러 개의 건물들이 구역지여 놓여있었다. 담으로 둘러쳐진 곳을 지나 몽전으로 가게되는 형식이다. 날은 저물고 문 닫는다고 우리가 들어가고나면 ‘라스트’ 하니 뭐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은 채 호류지를 뒤로 했다. 중궁사까지 갈 시간도 안되고 비는 부슬부슬, 막차 떠날 시간도 다가오고, 부지런히 호류지를 나와 JR선을 타고 오사카난바로 돌아왔다. 어떻게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일본의 철도는 선이 여러 개인가 싶다. JR선 전용으로 쓰고 있는 것인지 역이 사뭇 달랐다. 난바에 내려서 오늘은 블로그에서 맛있고 좋다는 스시집을 찾아갔는데, 엄청 큰 집으로 테이블차지까지 받으며 비싼 스시를 시켜먹었는데, 싼 시장스시집이 생각났다. 암튼 너무 많이 나와서(비싼 만큼) 남기고 나왔다. 저녁시간 도톤보리를 지나니 호객도 엄청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파샤쥬였다. 우리가 매일 지나온 니폰바시역은 한 정거장 차이인데, 시골이고 도톤보리는 본정통 같았다. 뭐 치즈케익집도 있고, 줄서서 사먹는 문어집, 가리바시 구운 것 파는 집 등 블로그에 있는 것들 다 구경하고 돌아왔다.
마지막 날. 6시 비행기여서 이날은 그냥 동행과 헤어져서 각자 쇼핑을 하기로 했다. 내가 사려는 것은 클라리넷과 바오백이었기에. 야마하 클라리넷을 하나 사려고 마음먹고 갔기에. 난바역 관광안내소에서 야마하 뮤직 매장을 물었더니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가까웠다. 바오백 매장도 마찬가지. 우여곡절 끝에 야마하뮤직 매장에 갔더니,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65만원쯤하는 것을 보고 갔는데 현지에서는 같은 모델을 85만워쯤써있었다. 참 왜그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포기. 그런데 이게 웬 조화인지는 모르겠다.
바오바오백의 이새미야게 매장! 약도를 가지고 찾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더라. 그 근처에 가서 뱅글뱅글 도는데, 나이 느긋한 여인이 “이거 어디서 보았는데”하며 고개를 갸우뚱, 그러기를 10분쯤 헤메며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또 묻고 있는데 아까 그 여인이 나를 반갑게 찾더니 바로 50m 앞에 있는 매장으로 데려다 준다. 50m 옆에 있는데도 그 동네 사람인 듯한 사람도 몰랐다는 이야기. 일본에서는 그정도의 위치인가 싶다. 11시에 매장에 도착하니 메니저가 나와서 57번 표를 준다. 57번이 들어올 시간은 11시40분-12시 사이란다. 그러면서 오늘 나온 백은 32개라고, 후훗, 웃음이 났다. 그러고보니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군데군데 서 있다. 이것도 포기. 바오백보다는 옷들이 현지에서 얼마나 하기에 한국에서 그리 비싼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도 한분도 몰라서, 이렇게 힘들여서 찾아야되는 것도 우스웠고, 하루에 32개밖에 내놓지 않고 번호표주는 것도 웃기다. 여기까지 여행와서 한 나절을 백하나 사자고 돌아다닌 나도 우습고.
이것으로 우리의 오사카 여행은 끝났다. 좋은 동행과 좋은 계절에 느긋하게 다녀서 더욱 좋았던 여행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 늘 생각나는 말, 건강하여서,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이렇게 여행다닐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