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문화적으로 특정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한중일 세 나라는 모두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극동 지방의 러시아는 서구문화에 속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게 위치되어 있다. 러시아 극동지방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문화적 공통점이 지리적 특정성과 관계없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유럽이 우리와 근접해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일컬어지는 하바롭스크(Khabarovsk)와 유럽의 등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으로 지난 달 말에 죽마고우와 함께 짧은 여행을 하였다.
양양에서 하바롭스크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하바롭스크 공항은 비행기에서 공항 건물로 옮겨가는 브리지(bridge) 시설이 없습니다. 내리자마자 눈은 쏟아지고 있었고 경찰들인지 알 수 없는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서 인지 ‘아! 여기는 러시아구나’라는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위 지도에서 보이듯이 오른쪽 위에 공항이 보인다. 시내까지 우리는 500루블(당시 환율은 1루블 = 25원, 약 1만원)에 택시를 타고 호텔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아브로라 호텔의 식당의 모습이다. 아브로라(Авро́ра) 는 러시아어이고 그리스신화의 에오스(Eos)에 해당된다. 로마신화에서는 새벽의 여신인 오로라(Aurora) 이다. 새벽의 여신의 품 안에서 첫 번째 밤을 보내고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한 후 아래 지도와 같이 시베리아의 파리를 걸었다. 오른 편 끝에 있는 GPS가 시작점이면서 아브로라 호텔의 위치이다. 우선 디나모 공원(Dinamo Park)을 거쳐 콤소몰 광장으로 가고 거기에서 다시 아무르 강을 만나는 동선을 선택하였다.
눈이 쌓인 거리를 디나모 공원을 향해 가면서 하바롭스크의 거리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이후의 자본주의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러시아식 건물에 서구 자본주의의 상품화된 용어인 ‘러브 카페(Love Cafe)’그리고 극동지방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생각하게 하는 ‘쿠시 스시(Kushi Sushi)’가 합쳐져 지금의 하바롭스크 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 준다. 물론 털모자와 모피를 걸치고 묵묵히 걸어가는 러시아인들을 볼 때 내 기억 속에 ‘여기는 하바롭스크’라는 의미로 빠르게 저장되었다.
좀 더 디나모 공원을 향해서 걷다가 사거리 건너편에서 푸쉬킨(A. Pushkin)의 동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거리의 이름은 울리짜 카를라 마륵사(Ul Karla Marksa)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칼 마르크스 거리이다. 그는 책을 한권 가지고 서 있었다.
알렉상드르 푸쉬킨(1799-1837)은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였는데, 귀족학교 졸업 후 황실에 거슬리는 풍자시로 인해 급기야 1820년에 러시아 남부로 유배되었다. 1826년에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 왔으며, 그 당시의 작품 내용은 민족과 역사 그리고 민중봉기에 관한 것이었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철학이 담긴 이야기들을 많이 발표해 러시아 문학과 러시아어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의 결혼 과정과 결투로 사망하는 죽음은 한 편의 드라마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그의 업적은 러시아 문학이 유럽 문학의 모방에서 독자적인 러시아 문학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고안했고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에게서 그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생략) ”
이 시는 한국어로의 번역자도 여러 명(최선, 백석 등)이고, 영역자도 여러 명이다. 원래 시의 제목이 없어서 첫 번째 문장이 제목처럼 알려져 있다. 구글에서는 첫 번째 문장을‘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라고 번역한 것과 ‘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라고 번역한 것도 나온다. 그 내용은 우리의 슬프고 화나는 삶의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미래의 기쁜 날에는 현재의 슬픔도 아름답게 변한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가 그 시의 주요 내용이다. 결국 삶의 본질은 참고 견디라는 것이다. 그러나 푸시킨 자신은 참지 못하고 결투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는 결투 후 이틀 만에 사망했는데, 죽어 가면서 이 시를 읊조리면서 회한에 잠겼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무르 강가의 꼼소몰 광장(Komsomol Square)에서 만난 러시아 병사들처럼 인간의 삶이란 멀리서 보면 제도와 규칙만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즐거움도 있는 법이다.
병사들 앞에는 1917년 혁명이후 소비에트 정부가 허물었다가 2001년에 다시 복원시킨 우스펜스키 성당(Uspensky Cathedral)이 있었다. 현대 러시아 역사에서 성당의 삶마저도 인간의 삶과 유사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여기는 아무르 강(Amur River)이다.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강이고 많은 부분이 중국과 국경을 나누는 강이다. 동시베리아 초대 총독인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Muravyov Amursky)장군의 동상이 아무르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전망대이다. 풍경이 권력에 의해 감시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풍경을 신념과 이데올로기로 나누어진 체제로 풍경을 만들고 바라본다. 그래서 풍경은 문화적 구조물이다. 풍경은 아름다운 의미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그런 명사이다. 만일 장군이 아니라 시인이 바라본다면 아무르는‘아빠’라는 의미로 전환될 수 있지 않겠는가.
아기를 껴안고 부부가 걸어 들어가는 이 성모영면 대성당(The Transfiguration Cathedral)은 2001년부터 2004년 까지 지어졌다. 러시아 어로는 쁘라아브라젠스키(Spaso- Preobrazhenskiy Kafedralnyy Sobor)라고 부른다. 성당의 의미는 성모 마리아가 마지막 깊은 잠에 든 장소라는 뜻이다. 네 개의 우크라이나 식 금장 돔이 상층부에 있으며, 96m의 높이로 아무르 강가의 언덕에 위치하여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러시아에서 세 번째 큰 성당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하바롭스크시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극동지방의 주도이며 경제와 행정 중심도시이다.
면적은 400㎢이고, 2010년 인구는 57만 8100명이다. 하바롭스크는 1653년 하바로프 장군에 의해 제정러시아로 편입되었으며, 도시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1916년에 아무르 교를 건설하였고, 시베리아횡단철도(Trans Siberian Railroad :TSR)가 건설되면서 하바롭스크 시는 러시아 극동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하바롭스크 바그잘(역) 실내 천정이다. 극동의 역사와 문화를 응축하여 재현해 보았다. 영상 모니터들을 밑 부분에 위치시켜 상업화되고 있는 하바롭스크 시의 현재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읽을 수 있다.
고풍스런 건물과 강이 있는 도시가 우리에게 얼마나 복합적인 의미를 던져주는지를 생각하면서 열차를 탔다. 그들은 푸쉬킨의 시처럼 미래에 자신을 맡기는 걸까?
아니, 블라디보스톡행 열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그들과 미래의 시간을 같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떠 올렸다. 푸쉬킨의 시를 암송하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하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쉬엄쉬엄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