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포츠담, 드레스덴 여행(16.5.7)
독일의 몇 개의 지역을 가본적은 있으나 수도인 베를린을 가보지 못해 베를린을 가보기로 했다.
베를린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고 베를린으로 가야하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트램을 타고 갈아타야 해서 조금은 훼깔렸지만 차질없이 갈 수 있었다.
밤에 도착하니 덤으로 베를린의 야경도 볼 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으며 우리 호텔은 크라운 프라자였고 번화가인 쿠담거리에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초토화되고 새로 건설되었는지 거리 중심지의 건물은 현대식 건물이었다.
주변에 놀이동산인지 동물원인 정도로 추정되는 건물도 보였고 호랑가시나무도 꽃과 열매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가 있었고 이 교회는 전쟁의 참혹함을 후세에 알려주기 위해 파괴된 그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근처에 전철역은 발음이 맞는 지 모르지만 반호프 비텐베르크플래츠역으로 생각되는 좀 오래된 듯한 건물의 전철역도 보였다.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베를린의 거리는 조형물도 많이 보였다.
첫 행선지는 포츠담에 가는 것이었으며 가면서 보니 베를린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는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고 가로수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가는 길에 오토바이 휴게소도 보였으며 많은 오토바이가 있었다.
가다보니 겨우살이가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도 인상깊었다.
포츠담 가는 길에 글레니케 다리에서 잠시 머물다 갔으며 그 다리는 동.서독 분단시절에 서로 스파이를 교환하던 다리라고 하였다.
포츠담 시내에 들어가니 오래된 집들도 보이고 거리가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우리 목적지인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체칠리엔호프 궁전에 도착하였다.
먼저 궁전 외부의 정원을 구경한 후 내부를 구경하였고 포츠담 회담이 개최되었던 방도 보았다. 내부의 어떤 곳은 입장료로는 사진 촬영이 안되고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상수시궁전이었고 궁전에서 처음 만나는 것을 커다란 풍차였다.
상수시궁전은 프리드리히 2세가 건립하였고 당초 건축가 게오르크는 2층을 구상하였으나 소박한 궁전을 원한 프리드리히 2세가 1층으로 짓도록 했다는 것이다.
궁전에서 내려다 보니 커다란 연못이 보이고 상수시 궁전 끝쪽으로 걸어가니 마치 비너스와 에로스 같은 석상이 있고 바닥의 작은 공간에 감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곳은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이라고 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감자를 먹게 해준 고마움으로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감자를 올려 놓는다는 것이다.
상수시 궁전을 프랑스 풍으로 베르사이유 궁전도 참고를 했다고 한다. 밑에 내려가서 연못있는 곳에서 상수시 궁전을 전경을 볼 수 있었고 정원이 어마 어마하게 커서 다 볼 수는 없었고 신궁전 남쪽에 세워진 중국풍의 다실까지 갔다 왔다.
다시 걸어서 되돌아와서 궁전의 오른쪽인 동쪽에 있는 지금은 회화관으로 사용중인 바로크 양식의 파빌리론이란 건물까지 갔다.
이 파빌리론 밑에도 분수대가 조성되어 있었고 정원도 상당히 컸고 이 근처에는 오벨리스크도 있었다.
나오는 길에 풍차 앞에 있는 신 회의실도 구경하였다.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베를린올림픽이 개최되어 손기정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올림픽 경기장 외관을 구경하고 프리드리히 1세의 왕비 소피 샤를로텐의 여름 별궁인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을 보러 갔다.
궁전 외부는 수리공사중이었고 우리는 뒤쪽 정원을 다녀오고 정원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베를린 시내로 돌아오니 길 중앙에 전승기념탑이 보였고 국회의사당도 있었다.
국회의사당 옆에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 제2차 대전시 히틀러가 행한 집시 살해에 대한 추모공원이 있었으며 그 추모공원에는 둥근 연못안에 꽃을 항상 올려 두게 하고 있었다.
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었고 문을 지나가니 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곳에서 길을 건너니 이번에는 유태인 학살 추모관이 있었으며 그 형태는 다양한 높이의 2,711개의 검은색 노출콘크리트 석비로 조성되어 있었다.
옛 프로이센의회건물이 있고 그 앞에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이 있었고 그 근처에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 본부가 있던 터에 토포그라피 데스 테러스라는 나치박물관이 있었다.
이번에는 겐다르멘마르크트 광장에 갔으며 극장인 콘체르트 하우스 베를린을 가운데 보면서 오른쪽에 프랑스돔교회와 왼쪽에 독일돔교회가 마주보면 서있었다.
베를린에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장벽에 그림을 그린 곳이 있으며 그 곳에는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의 작품인 형제의 키스라고 해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동독 공산당 서기장으로 재선된 에리히 코네커에서 축하의 입맞춤을 했다고 하는 그림이다.
장벽 옆에는 수로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멋진 다리가 보였으며 검색해 보니 다리이름이 오버바움 다리라고 하였다.
베를린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하는 곳중 하나인 곳이 베를린 돔으로 불리우는 베를린 대성당이며 성당 앞의 정원은 기쁨의 정원이라고 하는 루스트가르텐이 있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알테 내셔날갤러리 박물관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페르가몬 박물관이 있었다.
대성당 뒤로는 슈프레강이 있었고 그 주변 전망이 아주 멋지게 보였으며 강변에서 보면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TV탑도 보였다.
저녁을 먹으러 운하인지 수로인지 같은 곳 근처에 갔으며 그 곳에서 다리를 건너는데 곰 조각상이 있었으며 베를린인 곰을 상징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드레스덴 가는 날인데 창밖을 보니 풍차도 많이 보이고 유채꽃도 많이 보였으며 유채에서 기름을 짠다고 하는데 세계식량기구에서 유채대신에 곡물을 심으라고 해서 유채를 줄이고 있다고 하였다.
드레스덴에서 먼저 눈에 띤 것은 황금색의 동상이었고 이름은 드레스덴 황금의 기사상이라고 하였으며 궁전이 있는 중심지로는 엘베강의 아우구스투스 다리를 건너가게 되어 있었다.
먼저 만나는 전경은 츠빙거 궁전의 전면, 국립 오페라 극장 젬퍼오퍼, 드레스덴 가톨릭 궁정 교회, 드레스덴 레지덴츠 궁전 등이 었다.
엘베강에 브륄의 테라스로 가서 엘베강 전경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브륄의 테라스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곳도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운다고 하며 드레스덴을 독일의 피렌체라고 하는 이유는 이 브륄의 테라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상도 하나 있었으며 드레스덴 출신의 조각가인 에른스트 리첼의 동상이라고 한다.
브륄의 테라스를 걸어가다가 계단을 내려 상점이 밀집된 뮨즈가세 거리를 지나서 만나는 것은 바로크 건물의 걸작이며 루터교 교회 건축물인 프라우엔 키르케였다.
프라우엔 키르케는 제2차 세계대전시에 폭격을 받아 초토화 되었으나 재건시키고 앞에는 폭격시 파괴된 잔재를 전시하여 전쟁에 대한 상흔을 되새기게 하고 있었다.
프라우엔 키르케 앞은 노이마르크트 광장이 있어 이 도시의 광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호텔 건물 앞에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동상이 있었고 주변에는 관광안내센터, 교통박물관 등도 있었다.
드레스덴에서 꼭 보아야할 군주의 행렬을 보게 되었고 군주의 행렬은 101m길이의 자기 타일을 사용해서 만든 작품으로 드레스덴의 유명한 마이센 지역의 타일을 사용했다고 하며, 작센공국을 다스리던 역대 군주들을 자기타일에 그림에 그려 벽에 붙인거라고 하였다.
군주의 행렬을 보고나서 모퉁이를 돌아가니 고등법원 건물이 있었으며 드레스덴 가톨릭 궁정 교회를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극장 광장에 다시 돌아왔으며 젬퍼오퍼 앞에서 작센 왕 요한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츠빙거궁전에 있는 마이스터 회화관을 들어가기로 했으며 가방을 맡기고 가야 한다고 해서 사진 촬영이 안되는 줄 알았으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작품 촬영이 가능하였다.
마이스터 회화관에서는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마돈나가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였다.
외부 구경을 하였으며 왕관의 문인 크로넨토어도 보고 시계가 있는 글로켄슈필 파빌리온도 있었으며 마주보는 월 파빌리온도 있었다.
다시 츠빙거 궁전을 나오니 옆에 카를 마리아 웨버의 동상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궁전 정원의 전경을 잘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드레스덴 구경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독일 여행을 마사히 마칠 수 있었다.
독일의 몇 개의 지역을 가본적은 있으나 수도인 베를린을 가보지 못해 베를린을 가보기로 했다.
베를린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고 베를린으로 가야하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트램을 타고 갈아타야 해서 조금은 훼깔렸지만 차질없이 갈 수 있었다.
밤에 도착하니 덤으로 베를린의 야경도 볼 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주변을 산책하였으며 우리 호텔은 크라운 프라자였고 번화가인 쿠담거리에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초토화되고 새로 건설되었는지 거리 중심지의 건물은 현대식 건물이었다.
주변에 놀이동산인지 동물원인 정도로 추정되는 건물도 보였고 호랑가시나무도 꽃과 열매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가 있었고 이 교회는 전쟁의 참혹함을 후세에 알려주기 위해 파괴된 그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근처에 전철역은 발음이 맞는 지 모르지만 반호프 비텐베르크플래츠역으로 생각되는 좀 오래된 듯한 건물의 전철역도 보였다.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베를린의 거리는 조형물도 많이 보였다.
첫 행선지는 포츠담에 가는 것이었으며 가면서 보니 베를린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는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고 가로수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가는 길에 오토바이 휴게소도 보였으며 많은 오토바이가 있었다.
가다보니 겨우살이가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도 인상깊었다.
포츠담 가는 길에 글레니케 다리에서 잠시 머물다 갔으며 그 다리는 동.서독 분단시절에 서로 스파이를 교환하던 다리라고 하였다.
포츠담 시내에 들어가니 오래된 집들도 보이고 거리가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우리 목적지인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체칠리엔호프 궁전에 도착하였다.
먼저 궁전 외부의 정원을 구경한 후 내부를 구경하였고 포츠담 회담이 개최되었던 방도 보았다. 내부의 어떤 곳은 입장료로는 사진 촬영이 안되고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상수시궁전이었고 궁전에서 처음 만나는 것을 커다란 풍차였다.
상수시궁전은 프리드리히 2세가 건립하였고 당초 건축가 게오르크는 2층을 구상하였으나 소박한 궁전을 원한 프리드리히 2세가 1층으로 짓도록 했다는 것이다.
궁전에서 내려다 보니 커다란 연못이 보이고 상수시 궁전 끝쪽으로 걸어가니 마치 비너스와 에로스 같은 석상이 있고 바닥의 작은 공간에 감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곳은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이라고 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감자를 먹게 해준 고마움으로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감자를 올려 놓는다는 것이다.
상수시 궁전을 프랑스 풍으로 베르사이유 궁전도 참고를 했다고 한다. 밑에 내려가서 연못있는 곳에서 상수시 궁전을 전경을 볼 수 있었고 정원이 어마 어마하게 커서 다 볼 수는 없었고 신궁전 남쪽에 세워진 중국풍의 다실까지 갔다 왔다.
다시 걸어서 되돌아와서 궁전의 오른쪽인 동쪽에 있는 지금은 회화관으로 사용중인 바로크 양식의 파빌리론이란 건물까지 갔다.
이 파빌리론 밑에도 분수대가 조성되어 있었고 정원도 상당히 컸고 이 근처에는 오벨리스크도 있었다.
나오는 길에 풍차 앞에 있는 신 회의실도 구경하였다.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베를린올림픽이 개최되어 손기정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올림픽 경기장 외관을 구경하고 프리드리히 1세의 왕비 소피 샤를로텐의 여름 별궁인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을 보러 갔다.
궁전 외부는 수리공사중이었고 우리는 뒤쪽 정원을 다녀오고 정원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베를린 시내로 돌아오니 길 중앙에 전승기념탑이 보였고 국회의사당도 있었다.
국회의사당 옆에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 제2차 대전시 히틀러가 행한 집시 살해에 대한 추모공원이 있었으며 그 추모공원에는 둥근 연못안에 꽃을 항상 올려 두게 하고 있었다.
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었고 문을 지나가니 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곳에서 길을 건너니 이번에는 유태인 학살 추모관이 있었으며 그 형태는 다양한 높이의 2,711개의 검은색 노출콘크리트 석비로 조성되어 있었다.
옛 프로이센의회건물이 있고 그 앞에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이 있었고 그 근처에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 본부가 있던 터에 토포그라피 데스 테러스라는 나치박물관이 있었다.
이번에는 겐다르멘마르크트 광장에 갔으며 극장인 콘체르트 하우스 베를린을 가운데 보면서 오른쪽에 프랑스돔교회와 왼쪽에 독일돔교회가 마주보면 서있었다.
베를린에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장벽에 그림을 그린 곳이 있으며 그 곳에는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의 작품인 형제의 키스라고 해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동독 공산당 서기장으로 재선된 에리히 코네커에서 축하의 입맞춤을 했다고 하는 그림이다.
장벽 옆에는 수로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멋진 다리가 보였으며 검색해 보니 다리이름이 오버바움 다리라고 하였다.
베를린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하는 곳중 하나인 곳이 베를린 돔으로 불리우는 베를린 대성당이며 성당 앞의 정원은 기쁨의 정원이라고 하는 루스트가르텐이 있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알테 내셔날갤러리 박물관이 있었으며 그 옆에는 페르가몬 박물관이 있었다.
대성당 뒤로는 슈프레강이 있었고 그 주변 전망이 아주 멋지게 보였으며 강변에서 보면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TV탑도 보였다.
저녁을 먹으러 운하인지 수로인지 같은 곳 근처에 갔으며 그 곳에서 다리를 건너는데 곰 조각상이 있었으며 베를린인 곰을 상징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드레스덴 가는 날인데 창밖을 보니 풍력발전소도 많이 보이고 유채꽃도 많이 보였으며 유채에서 기름을 짠다고 하는데 세계식량기구에서 유채대신에 곡물을 심으라고 해서 유채를 줄이고 있다고 하였다.
드레스덴에서 먼저 눈에 띤 것은 황금색의 동상이었고 이름은 드레스덴 황금의 기사상이라고 하였으며 궁전이 있는 중심지로는 엘베강의 아우구스투스 다리를 건너가게 되어 있었다.
먼저 만나는 전경은 츠빙거 궁전의 전면, 국립 오페라 극장 젬퍼오퍼, 드레스덴 가톨릭 궁정 교회, 드레스덴 레지덴츠 궁전 등이 었다.
엘베강에 브륄의 테라스로 가서 엘베강 전경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브륄의 테라스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곳도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운다고 하며 드레스덴을 독일의 피렌체라고 하는 이유는 이 브륄의 테라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상도 하나 있었으며 드레스덴 출신의 조각가인 에른스트 리첼의 동상이라고 한다.
브륄의 테라스를 걸어가다가 계단을 내려 상점이 밀집된 뮨즈가세 거리를 지나서 만나는 것은 바로크 건물의 걸작이며 루터교 교회 건축물인 프라우엔 키르케였다.
프라우엔 키르케는 제2차 세계대전시에 폭격을 받아 초토화 되었으나 재건시키고 앞에는 폭격시 파괴된 잔재를 전시하여 전쟁에 대한 상흔을 되새기게 하고 있었다.
프라우엔 키르케 앞은 노이마르크트 광장이 있어 이 도시의 광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호텔 건물 앞에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동상이 있었고 주변에는 관광안내센터, 교통박물관 등도 있었다.
드레스덴에서 꼭 보아야할 군주의 행렬을 보게 되었고 군주의 행렬은 101m길이의 자기 타일을 사용해서 만든 작품으로 드레스덴의 유명한 마이센 지역의 타일을 사용했다고 하며, 작센공국을 다스리던 역대 군주들을 자기타일에 그림에 그려 벽에 붙인거라고 하였다.
군주의 행렬을 보고나서 모퉁이를 돌아가니 고등법원 건물이 있었으며 드레스덴 가톨릭 궁정 교회를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극장 광장에 다시 돌아왔으며 젬퍼오퍼 앞에서 작센 왕 요한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츠빙거궁전에 있는 마이스터 회화관을 들어가기로 했으며 가방을 맡기고 가야 한다고 해서 사진 촬영이 안되는 줄 알았으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작품 촬영이 가능하였다. 마이스터 회화관에서는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마돈나가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였다.
외부 구경을 하였으며 왕관의 문인 크로넨토어도 보고 시계가 있는 글로켄슈필 파빌리온도 있었으며 마주보는 월 파빌리온도 있었다.
다시 츠빙거 궁전을 나오니 옆에 카를 마리아 웨버의 동상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궁전 정원의 전경을 잘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츠빙거 궁전에는 분수가 유명하다.
드레스덴 구경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독일 여행을 마사히 마칠 수 있었다. |
출처: 금수강산 원문보기 글쓴이: 숲길(吉)